건축의 신 150화
학생회장(02)
학교로 돌아왔다.
다음 날, 바로 총장실을 찾았다.
“총장님, MT 때 전화드린 건 때문에 왔습니다.”
학회장 패거리를 패면서 그들의 비리에 대해서 녹음을 했었다. 그리고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서 총장과 통화를 해서 방법을 찾아 달라고 했었다.
내 건축 인생의 모토가 될 건축과가 그런 놈들에 의해서 더럽혀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총장이 차를 권하며 말했다.
“음, 학회장의 비리 건에 대해서는 총학생회에 통보를 했다네.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그 친구들도 뭐라고 하지는 못할 걸세.”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그럼 전.”
그 정도까지 진행이 되었다면 학생회장이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기정사실일 것이다.
일어서는 나에게 총장이 말했다.
“그것 말고도 말할 게 있을 텐데?”
아마도 학회장이 폭행 건으로 고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나처럼 나이를 먹다 보면 사방 천지에 눈과 귀가 깔린다네.”
“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만약 총무와 회계가 딴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증인은 충분한 것이고, 만약 뒷배경으로 추잡한 짓을 한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다.
‘안 되면 압둘이라도 불러 볼까?’
친구끼리 돕고 사는 거지, 뭐 있겠어?
하지만 총장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자네의 의지는 알겠지만 번거롭지 않겠는가?”
“그렇겠죠. 하지만 제가 벌인 일인 걸요.”
‘병원에 찾아가서 입을 뭉개놓을 것을’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성훈 군. 흥분하지 말고, 차나 한 잔 마시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슬며시 웃는 그를 응시하며 차를 마셨다.
“싸움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있는 법일세. 하룻강아지가 덤빈다고, 호랑이가 발톱을 세우면 얼마나 체면이 상하는지 아는가?”
“상대가 덤빈다면 저도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하는 법이지요.”
“자네가 거기에 간 것과 한 일은 이미 알고 있다네. 그래서 하는 말일세. 괜히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말게나.”
총장이 느긋한 모습으로 차를 들이켰다.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성훈 군. 실은 어제 이화여대 총장에게 전화를 받았다네. 그리고는 자네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친구가 워낙 꼬장꼬장해서 남 칭찬을 잘 안 하거든. 흐흐.”
어제의 일이 생각나는 것인지,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현주라는 아이의 아비도 내가 아는 사람이더군.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 터이니, 괜히 번거로운 일은 하지 말게나.”
저 너그러운 웃음에 속았다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예전에 ‘구조대전’에 참가를 하게 된 이유도 총장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물론 사우디에서 열리는 국제 심포지엄에 혹하기는 했지만…….’
총장은 절대로 손해 보는 짓을 하지 않는 양반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겠죠.”
내 말에 총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허, 젊은 친구가…….”
그의 대답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럼 정말 원하시는 것이 없…….”
“성훈 군, 자네랑은 말이 잘 통해서 좋아. 허허허.”
‘그럼 그렇지. 절대 손해를 안 본다니까.’
사실 지금 새 학기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학회장 녀석과 싸우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 일이 될지 몰랐다.
‘몇 번이나 경찰서에 불려가야겠지.’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 확실한 증거라는 것은 경찰이 보기에는 나의 입장에서나 확실한 것일 테니 말이다.
고소를 당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귀찮은 일이다.
그럴 바에는 총장의 말을 따르는 게 백번 나았다.
‘구조대전 준비하느라 좀 힘들기는 했지만, 얻는 것은 많았었지.’
대외적으로는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력서에 한 줄 써 넣을 수 있는 것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명예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 이후, 현재에서 그 설계도면을 사 갔으며, 사우디에서 왕자들과 인맥을 만들 수 있었다.
‘솔직히 이득을 많이 봤군.’
하지만 결코 쉬운 것은 아닐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
총장의 말이 이어졌다.
“난 자네가 구조대전에서 대상을 탄 것을 보고, ‘아직 내 사람 보는 눈이 죽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네. 이번 일도 자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걸세.”
‘총장님, 말씀을 끄시는 것만 봐도 절대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론을 말씀하시지요.’
그런 내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헛기침을 연신 해댔다.
“별일 아닐세. 금년 말에 열리는 ‘한국문화박람회’에 출품하면 되는 거야. 허허허.”
“한국문화박람회요? 처음 들어봤습니다만.”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걸세. 외교통상부에서 그 안건이 나왔다고 하더군. 하지만 거의 확정적이라고 봐도 된다네.”
“하지만 총장님. 박람회라고 하면 주로 음식이나 의복들이 많이 출품될 것 아닙니까?”
이 시절, 한국에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라면 한복이나 비빔밥 정도였을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세.”
이어진 총장의 말을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외교관과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열리지만 주된 목적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품 대상의 제한이 없다네.”
“그런데 그걸 제게 제안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귀찮은 일을 감수하시면서 말이죠.”
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학회장의 일이야, 자네에게는 번거롭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네.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지.”
그가 차를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자네는 이미 몇 번이나 출품을 하지 않았던가?”
총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네? 저는 기껏 해야 구조대전 한 번 뿐입니다만…….”
총장이 나를 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건 어떤 의미지?’
총장이 말했다.
“크흠. 말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건만.”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인가?’
사실 내 이름이 아니라서 그렇지, 출품을 한 적은 몇 번이나 있지 않았던가?
총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이 나이가 되면 사방으로 눈이 깔린다고 말일세.”
하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이미 총장은 알고 있었다.
‘그건 이화여대 총장이 지인이라서 그런 것이고.’
총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일개 학생인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것도 우스운 생각이 아니던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총장의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자네가 별로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말하지는 않았네만, 내 나이쯤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네. 이를테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의 눈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네 작년 여름에 한 교수랑 베를린에 갔었지?”
“네.”
“내 지인 하나도 거길 참가했었는데, 참고로 그는 외국인이고, 은상을 탔었다네.”
총장이 지인과의 통화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마이어 옆에 한 교수를 봤다고 하더군. 참, 한 교수도 그 친구는 모를 거야.”
“그래서요?”
“그리고 젊은 동양인이 같이 있었다고 하더군. 박람회에서 손님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자네가 가장 눈에 띄더라는 거야. 글쎄. 난 그때 그 친구가 말하는 사람이 자네란 걸 대번에 알았지.”
그럴 것이다.
그때 당시 동양인이라고는 우리 일행과 소세키 일행밖에 없었으니까.
“일본인도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만.”
그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총장이 말했다.
“크크크. 그 말이 더 웃겼지. 그 일본인들이 자네를 병아리 새끼가 어미 새 �i듯이 따라가더라고 하던데? 실제로 그러기가 어렵지 않던가? 일본인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감히 한국인에게 고개를 숙일 사람들인가?”
총장은 지인이 봤다는 사람을 나로 확신하고 있었다. 총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 친구가 자네에게 국적도 물어보고, 이름도 물어봤다던데? 하지만 정작 마이어가 대상을 수상할 때는 보이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했다더군.”
‘그때야 피곤해 죽을 것 같아서 숙소로 들어갔었지.’
“하지만 그건 한 교수님의 부탁으로 잠시…….”
“그렇다고 해서 마이어의 대상 수상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나? 정 궁금하면 그때의 일본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되겠군. 소시지인가, 소새끼인가 하는, 3D 방면으로는 유명인이라고 하던데.”
‘꽤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걸.’
여기까지 알고 있으면 발뺌을 할 수도 없다.
‘어떻게 거기까지 인맥이 뻗어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 뿐이다.
내 당황을 읽기라도 한 듯 총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시청을 신축하는 것과도 일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여기서는 잠시 숨이 멈출 뻔했다.
‘대체 이 노인, 정체가 뭐야? 전직 CIA?’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안다.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난 지난 삶에서 돌아온 뒤에 가급적 행동에 조심을 하면서 살았다. 그럼에도 총장은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혹시 한 교수님께 말씀을 들으신 겁니까?”
“에잉, 난 한 교수랑 별로 안 친해. 이 나이가 되면 남는 건 사람뿐이라네.”
생각보다 발이 넓은 노인이었다.
정작 조심했어야 하는 사람은 총장이었던가?
의자에 앉아서 천리를 본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금 보면 의아한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생각해 보라.
나 같은 새파란 학생을 총장이 불렀다. 거기에 더해서 거래까지 하자고 했었다.
‘그것도 에펠탑을 핑계로 말이야.’
그게 학교 내부에서는 이슈가 되었겠지만, 과연 총장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이었냐? 라고 하면 고개가 저어진다.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너무 자만했던 거지.’
총장은 이미 나의 행적을 알고 있었다.
단지 내 능력을 끌어낼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에펠탑을 핑계로 구조대전에 참가하기를 요청했고, 그 미끼로 심포지엄 티켓을 걸었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총장은 ‘당연하지’라는 얼굴로 말했다.
“언제긴 언제야. 바로 그날 알았지.”
침묵하는 나를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실은 기자회견까지 다 준비하고 있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학교 학생이, 대학원생도 아니고 2학년이! 해외에서, 그것도 건축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 그런 대단한 일을 했어. 난 당연히 자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 알았지. 그런데! 한 교수의 이름도 자네의 이름도 없더란 말이지. 한 교수가 3D 그래픽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잖나. 이상하지 않은가?”
일장 연설을 하던 총장이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후루룩. 그런 차에 이런 생각이 들었지. 자네가 뭔가 다른 생각이 있구나. 그렇다면 좀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거기까지 듣고 말을 끊었다.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하는데,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들으면 내 인생 설계까지 나오겠군.’
총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외부로 알리지 않으신 겁니까?”
“하하.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일이고, 하나씩 하나씩 터질 때 마다 이슈가 될 텐데, 뭐 하러 그리 급히 터뜨릴 텐가?”
“정말 그것뿐입니까?”
“자네가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면 벌써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뭔가 생각이 있어서 알리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성훈 군.”
“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샴페인을 성급히 터뜨리는 것은 일을 망치는 지름길이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고, 주변에 원치 않게 시기하는 사람도 생겨나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그 시기가 더 중요한 거라네. 그 이름을 지킬 능력과 실력을 갖추고 말일세.”
총장은 뜻밖의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연륜에서 나오는 힘인 것인가?’
그동안 나는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고 생각했고, 타인을 존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을 비웃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내가 아는 걸 너는 모르지?’ 하는 교만!
단지 코앞의 미래를 안다는 것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노인은 미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또 나에 대해 조사를 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추려 했던 내 행적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