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49화 (149/427)

건축의 신 149화

학생회장(01)

“아, 씨발. 추워 디지겠네.”

회장의 목소리였다.

어두운 밤길에 플래시 불빛 3개만이 흔들거렸다.

“회장아, 그냥 조용히 가자. 추워서 말할 힘도 없다. 젠장.”

흥이 식은 회장은 주제를 여자로 바꿨다.

“야, 근데, 아까 그년들은 뭐냐? 존나 예쁘지 않던.”

“예쁘긴 예쁘더라. 호리호리해 가지고.”

그들은 여자들과 엮일 시간이 없었다. 하루 종일 눈을 쓸었기 때문이다.

“예쁘면 뭐 하냐? 우리 같은 놈들은 쳐다도 안 보게 생겼던데.”

듣고 있던 회계도 입이 툭 튀어나왔다.

“빨리 가기나 하자. 진짜로 얼어 죽겠다.”

동이 터왔다.

“경찰서다. 얼른 들어가자.”

뛰어가려는 둘을 회장이 붙들었다.

“얘들아. 이대로 끝낼 거냐?”

“아, 추워. 그게 무슨 소린데?”

“그래, 뭔 소린지 알아듣게 말을 해야지. 회장.”

회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런 데라고 알고 온 것도 아니고, 그걸 왜 우리 책임으로 돌리냐고. 안 그러냐?”

총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게 어디냐? 사람 안 다쳤으니, 다행이지.”

회장의 목소리에 살이 어렸다.

“이런 병신! 그래서? 사람이 다치기라도 했냐?”

“야, 그래도 다쳤으면 너도 우리도 작살나는 거였어.”

“그래, 회장. 네가 분한 건 알겠는데 이제 그만하자.”

하지만 회장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의 코에서 콧김이 푹푹 나왔다.

회계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일단 내려가서 신고하고,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 그 뒤에는 내가 모두 알아서 할게.”

어이없다는 듯이 총무가 말했다.

“야, 애들 아직도 눈 쓸고 있을 거라고. 진짜로 남은 펜션이라도 무너지면 그때는 진짜 끝장이야. 선배 말대로 시간이 없어.

회계도 거들었다.

“그래,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너! 우린 왜 끌고 들어가는데.”

“병신아. 이렇게 폭행을 당했는데 나 혼자 가서 뭐라고 하면 그게 올바로 증거로 먹히겠냐? 증인은 많을수록 좋은 거야!”

총무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아이구, 이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무슨……. 그리고 세 명이 한 명한테 줘 터진 건 안 쪽팔리고?’

“그래서 고소하겠다고? 그 뒤에는?”

“너 우리 외삼촌이 국회의원인 거 알아? 몰라?”

결국 국회의원 빽으로 뭔가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총무가 말했다.

“난 됐어. 무조건 빠질 거야. 더 이상 그 선배랑은 그런 일로 안 엮이고 싶다.”

“덩치는 산만 해가지고 겁 많은 새끼. 그럼 넌 빠져. 회계는?”

회계도 별반 신통치 않은 반응이었다.

“나도 빠질란다. 괜히 더 문제를 키우지 말자.”

“겁쟁이 새끼들. 내가 저런 놈들을 믿다니. 난 지금 바로 병원에 입원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병신같이 만회할 기회를 줘도 못 먹네.”

회장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회계가 총무에게 말했다.

“너 봤냐?”

“뭘?”

“그 선배 시계?”

“몰라. 내가 봐서 아냐?”

“내가 시계는 좀 알잖냐?”

“근데?”

“그 시계 졸라 비싼 거야. 억수로 부자만, 아니, 돈이 썩어 남아야 찰 수 있는 시계라고.”

“그 말은?”

“학생회장은 좆 됐다는 말이지.”

“그럼, 지금이라도 전화 때려 줘야 되는 거 아니냐?”

회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회장 저 새끼. 저렇게 눈 돌아가면 아무 말도 안 통해.”

“그래도 외삼촌이 국회의원이라니까,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것도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상대한테나 통하는 거지. 저 정도로 돈 많으면 안 통해. 국회의원 빽 가지고 어떻게 하기 어려워. 넌 왜 안 한댔냐?”

“내가 건달 생활 좀 해봤잖아. 아는 형님들도 좀 있고.”

회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사람, 함부로 건드리면 뒈져. 진짜로.”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아는 회계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총무가 물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냐?”

“뭘 어떻게 해? 시키는 대로나 잘해야지. 잘못 걸리면 너나 나처럼 빽도 없는 놈들은 순식간이야. 사람을 그렇게 패는 인간 봤냐? 그 선배 정도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 뻔히 알 텐데.”

“하긴 그런 사람이 앞뒤 안 재보고 팰 리는 없지. 으윽.”

마지막까지 성훈의 킥에 당한 총무가 어깨를 움켜쥐었다.

“어쨌거나 빨리 경찰들 데리고 올라가자.”

“회장은?”

“몰라. 그 새끼는 지가 알아서 하겠지.”

***

“야, 이 사람들아. 눈이 와서 갇힌 거야 그렇다고 쳐도. 멀쩡한 집이 왜 무너져?”

둘과 같이 올라온 경장이 짜증을 냈다.

“그러게. 지금이 70년대인 줄 아나? 시간 되면 어련히 제설 작업 안 할까 봐. 젊은 학생들이 경찰에게 허풍을 떨어?”

그 옆의 순경은 한술을 더 뜬다.

“학생들, 거짓말이면 공무집행 방해죄 적용되는 것 알아?”

눈 덮인 오르막을 오르며 쌓인 짜증을 오르막 끝에서 폭발시켰지만 무너진 펜션 2채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총무와 회계가 당당하게 말했다.

“경찰 아저씨, 보셨죠?”

경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김 순경, 뭐 해? 얼른 무전 치고. 기자들 불러!”

멀리서 성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 얼른 안 모시고 오고.”

경장이 성훈에게 물었다.

“자네가 책임자인가?”

“당분간은 그렇습니다.”

정작 책임자여야 할 한 교수는 술병에다가 잠자리를 옮기면서 몸살까지 걸려서 끙끙 앓고 있었다.

“네, 제가 책임자입니다.”

“다친 사람은 없나?”

“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훈의 말을 총무가 거들었다.

“저희 선배님께서 잘 이끌어 주셔서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성훈의 눈에 총무가 회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이 보였다.

“맞습니다. 성훈 선배님 덕분입니다.”

‘이것들이 몇 대 맞더니, 정신을 제대로 차린 건가?’

그 모습을 경장이 뭔가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상해. 두 녀석의 얼굴이 멍투성이인 것도 그렇고.’

뭔가 추궁을 하려고 하는데, 현주가 말했다.

“맞아요. 어제 펜션이 무너지는데, 성훈 씨가 절 구해줬어요. 위험을 무릅쓰고요.”

다른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증언을 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했구만. 사람이라도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잘했어.”

경장이 성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나는 현장을 한번 둘러보겠네.”

“네, 알겠습니다. 경호는 가서 안내해 드려라.”

성훈이 돌아서며 말했다.

“총무하고 회계는 나 좀 따라와라.”

“야! 왜 너희끼리만 왔냐? 회장은 어디 가고?”

총무가 회계를 앞으로 스윽 밀었다.

놀란 녀석이 그를 돌아봤지만 ‘내가 훨씬 더 많이 맞았잖아. 더 이상 맞기는 싫다. 넌 말도 잘하잖아?’ 하는 썩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훈이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뿌드득. 뿌드득.

“이것들 봐라. 내가 분명히 연대 책임이라고 말했을 텐데. 회장이라는 놈이 도망을 가!”

그리고 그들에게 손짓했다.

“옆방으로 따라 들어와.”

다급히 회계와 총무가 성훈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사정했다.

민수를 비롯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둘은 체면을 차릴 정신이 없었다.

“선배님,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그래서 회장이 날 폭행으로 고소한다? 그거냐? 지금?”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 씨, 말이 되는 소리예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큰 사건이 될 걸 막아줬더니. 안 그러니? 현주야.”

미현이 흥분해서 말하는 소리였다.

“선배님, 저희는 분명히 말렸습니다.”

내려다보는 성훈의 눈빛에 오금이 어렸다.

총무의 말마따나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안 그랬으면 저희가 이렇게 올라왔겠습니까?”

성훈도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놈은 믿는 빽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거네. 그렇지?”

“네, 말씀이 맞습니다. 배은망덕한 놈입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라는 격언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 둘이 오히려 배은망덕하고 의리 없는 놈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사정은 달랐다.

‘우리가 비겁하다고? 그럼 직접 맞아보든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

그럼 회장은 왜 그렇게 오기를 세우는데?

‘그 새끼는 덜 맞아서 그런가 보지. 적어도 선배한테 직접적으로 주먹을 겨누지는 않았잖아. 그래서 덜 맞았거든.’

이 생각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 둘에게는 성훈에게 덤빈다는 것이 바위로 계란 치기로 느껴졌다.

성훈이 말했다.

“일어서라.”

미현이 흥분해서 말했다.

“성훈 씨, 어떻게 회장이란 사람은 그럴 수가 있죠? 책임감도 없나요?”

그런 미현을 향해서 회계가 말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할 것만은 아닙니다. 그 친구 외삼촌이 지방이지만, 꽤나 유지고 국회의원이라서 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그렇게 숙이고 있었던가요? 그럼 지금 성훈 씨한테는…….”

“저희는 선배님 후배잖습니까? 이러는 게 당연한 거죠.”

이제 성훈에게 납작하게 고개를 숙이는 둘이었다. 물론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야 많이 있겠지만, 그들로서도 더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모험인 것이다.

성훈이 말했다.

“놔두세요. 보아하니 이놈들도 마음을 고쳐먹은 모양인데.”

둘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현이 물었다.

“몇 선 국회의원이신데요?”

“재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총무의 대답에 미현이 피식 웃었다.

“현주야. 재선이래. 어쩜 좋으니?”

그러면서 성훈에게 말을 건넸다.

“성훈 씨, 우리가 도와줄까요?”

성훈이 미현을 바라보았다.

‘도와준다고? 왜? 무엇을? 어떻게?’

애초에 도움 받을 생각이 없는데, 방법은 물어서 무엇하랴.

“왜 돕는다는 거죠?”

“그야 당연히, 성훈 씨가 현주가 위험에서 구했잖아요. 그 대가로.”

그런 미현을 현주가 말렸다.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넌 사람 목숨으로 거래하려는 거니?”

현주의 화난 목소리에 미현이 말을 잃었다.

“현주야. 그런 말이 아니잖니? 그리고 겨우 2선 의원을 가지고, 너 같은 애 앞에서 명함이나…… 우푸푸. 지금 뭐 하는 거니?”

현주가 미현의 입을 막았다.

“성훈 씨, 현주 말 오해하지 마세요. 신세를 갚았으면 좋겠다는 거지, 다른 의미는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성훈은 고개를 저었다.

“현주 씨, 잘 들으세요. 저는 어제 그런 일을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냥 사고였고,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하지만 성훈 씨.”

“그리고 만약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직접 요청하겠습니다.”

미현과 현주의 대화로 봐서는, 꽤나 힘이 있거나 재력이 있는 집안의 여식들임이 분명했다. 재선의원을 우습게 볼 수 있는 그런 집안 말이다.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타고 온 폭스바겐만 해도 그리 흔한 차는 아니었다.

‘왜 도움을 준다는 데, 거절하냐고?’

바보 아니냐고?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다.

남자는 곧 죽어도 멋이다.

혼자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의, 그것도 자신보다 어린 여성의 힘을 빌린다는 말인가?

‘남자가 가오가 있지?’

자칫 오해하면 그녀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접근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수많은 막장 드라마에서 그러는 것처럼.

미현을 쏘아 보았다.

‘이 사람아. 설령 인연이 된다고 해도, 꿇리고 들어가기는 싫거든! 데릴사위도 아니고.’

미현이 내 성훈의 눈빛에 발끈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예요?”

“제가 뭘요?”

실제로 만약 그렇게 권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했다는 것, 벌어질 미래의 사고를 막았다는 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했다.

또한 힘이 있는 자들이라고 해서, 그 힘에 기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 갑질이 싫어서 이런 말도 안 되는?주식과 그 외의 미래의 지식을 숨기는?수행을 하고 있는 중인데, 지금 와서 힘을 빌린다는 말인가?

그건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았다.

방을 나오며 성훈이 중얼거렸다.

“작살을 내려다가 살려두니까, 다시금 칼을 겨눈다. 그거지?”

뒤따라 나오던 총무들이 성훈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회장, 좆 됐다. 병신 새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