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48화
MT(10)
쿵.
“으그극.”
발바닥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발뒤축에서 짜르르 올라오는 전기.
‘끄아악. 젠장! 얼음 바닥이었지.’
미쳤지. 이대로 달려 나갈 생각을 하다니.
짧은 순간이지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것 같았다.
‘에라! 나도 몰라.’
오늘만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던가?
정신없이 앞으로 굴렀다.
그녀를 안은 채로 정신없이.
등으로 분산되면 발목에 충격은 덜 가겠지.
데구루루.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펜션에서 최대한 멀리.
몇 바퀴나 굴렀을까?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2층이었으니까 다행이지. 3층이었다면…….’
생각하지 말자.
차가운 땅바닥에 머리를 뉘었다.
‘하아, 살았다.’
잠시 잠깐이지만 죽음을 각오했었다.
내 삶의 어느 한 부분에 지금처럼 격렬한 적이 있었던가? 내 모든 삶을 통틀어서 말이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상큼한 청포도 향이 내 콧속을 간지럽힌다.
“에취!”
가슴으로 품에 안긴 여자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현주 씨?”
내 가슴에 손을 짚었다.
“으음.”
그녀는 나지막한 콧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어찌나 굴렀던지, 그녀의 긴 생머리가 두건마냥 그녀의 얼굴에 감겨 있었다.
“풋.”
현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바로 세웠다.
“왜 웃어요?”
“그냥요.”
그녀는 완전히 일어나 앉으며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말려 있던 머릿결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했다.
“후우, 좀 어지럽네요.”
그때였다.
우드득. 쾅.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꺅!”
현주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눈보라와 함께 붕괴의 후폭풍이 우리를 덮쳤다.
현주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까지는 안 와요.”
민수와 경호가 달려왔다.
“형, 괜찮으세요?”
“선배님.”
민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윽!”
“어디 다치셨어요?”
“발목이 약간 삔 것 같아. 그 외에는…….”
미현과 다른 친구들도 달려왔다.
“현주야, 괜찮은 거니? 성훈 씨도 다친 곳은 없어요?”
미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으니까, 현주 씨 부축해서 여기서 벗어나죠.”
민수의 부축을 받아 걸어가는데, 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당장 병원에…….”
“미현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현주가 미현을 안심시켰고, 그제야 미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경호가 투덜거렸다.
“정작 다친 데가 없는지 물어야 할 대상은 선배님인데 말이죠.”
“됐어. 얼마나 걱정을 했으면 저렇게 울고 있겠냐? 얼른 가자.”
민수는 후배들을 진정시켰고, 경호는 지붕 청소를 진두지휘했다.
***
민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현이 다가왔다.
“현주 씨는요?”
“누워 있어요.”
그런 일을 겪었는데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리라.
“다친 데는 없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 혹이 좀 났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죠?”
“대책을 마련해 봐야죠. 일단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돌아갈 방법을 마련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다급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며칠만 지속되어도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언제까지나 지붕을 쓸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현주 씨,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미현이 말했다.
“당신의 결정에 따를게요.”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민수야, 회장 불러와라. 놈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민수가 나가고 미현이 물었다.
“지금 당장 움직이시려고요?”
상당히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한 시간이라도 지체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애들도 지쳐가니까요.”
사실 육체적인 피로도보다는 정신적인 피로감이 더 심할 것이다.
이 건물도 언젠가는 저 폐허들처럼 될 거라는 불안감 말이다.
잠시 후, 민수가 회장들을 데리고 왔다.
“선배님, 부르셨습니까?”
들어오는 녀석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련만, 아까의 절박함이 떠올라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건물 무너진 거 봤냐?”
녀석들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몇 사람이나 죽을 뻔했는지 아냐?”
놈들은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기도 할 것이다.
“지나간 일이니, 더는 추궁하지 않겠다.”
고개를 숙인 학생회장에게 말했다.
“여기로 오는 길. 너보다 잘 아는 사람 있냐?”
당연히 답사를 하러 왔었으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는 잘 알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아뇨. 없을 겁니다.”
“그럼. 너희에게 이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학생회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훈의 의중을 알려는 듯 눈알을 번들거렸다.
“일단 지금까지 사상자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냐?”
회장이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이다.
건물이 무너질 줄 몰랐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다치면 절대로 회피할 수가 없다.
“사상자가 생기면 네 입장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거야.”
회장은 성훈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사람들 데려와.”
“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밤늦은 시간,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 있으면 말해라. 납득할 만하면 수긍해 주마.”
사실 성훈으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한 상황이었다.
총무가 말했다.
“저, 선배님. 내일 아침에 가면 안 될…….”
뻑.
어느새 일어났는지 성훈이 발차기를 날렸다.
발길질에 총무의 거구가 구석으로 쓰러졌다.
“좋게 말로 하니까, 상황이 이해가 안 되지. 개새끼들아.”
민수가 성훈을 말렸다.
“형. 얘네들 아니면 갈 사람도 없어요.”
성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이 새끼들. 죽이고 싶은 걸 참고 있는데, 뭐가 어째?”
황급히 회장이 말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성훈이 쓰러진 총무를 가리키며 고함질렀다.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
“네, 선배님.”
회장과 회계가 총무를 부축하고 나갔다.
성훈이 그들의 뒤에 대고 말했다.
“시간은 내일 아침 동트기 전까지다.”
“네?”
회장이 뒤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지금 쉬지도 않고 내려가라는 말이야? 이 밤에 눈길을?’
딱 죽지 않을 만큼 달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정을 구하기에는 성훈의 분노가 녹녹치 않았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도 선배님. 그거…….”
회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안 뛰어?”
그리고 성훈이 벌떡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넵.”
셋은 뒤돌아볼 틈도 없이 문을 닫고 사라졌다.
쾅.
***
‘기특한 녀석들.’
성훈은 눈을 쓸다가 허리를 펴고 이마를 닦았다.
밤새 눈 치우는 것을 감독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밤새 교대로 눈을 치웠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희미하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성훈 씨, 좋은 아침이네요.”
뒤돌아보니 현주가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괜찮아진 거예요?”
“덕분에요.”
현주가 성훈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고마웠어요. 진짜로.”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었으니, 그럴 법했겠지만, 애초에 성훈과 그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미현에게 오해를 받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성훈 씨, 내려가서 커피나 한잔 할까요?”
그녀가 손에든 보온병을 흔들었다.
성훈이 눈을 쓸고 있던 후배들에게 말했다.
“이제 곧 구조대가 올 거야. 그때까지만 참자.”
후배들이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걱정 마시고……. 흐흐.”
성훈이 저 웃음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지만, 딱히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내려가면 이 형이 거하게 고기 한판 쏜다.”
“와! 감사합니다. 선배님!”
제설 작업을 후배에게 맡기고 아래로 내려왔다.
눈길을 걸으며 현주에게 물었다.
“당신 때문에 왔다면서요. 그렇게 들었는데…….”
“여기 여행 온 거요?”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보기엔 많이 힘들게 느껴졌나 보죠.”
“좋은 친구들이네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더라고요.”
“뭐가요?”
고개를 나에게로 돌리며 눈을 깜빡거린다.
‘뭐든지 물어봐요’라는 눈빛이었다.
난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종종 봤었다.
자상한 눈빛 속에 자신의 아픔을 숨기는 사람들.
엄마처럼 말이다.
“당신 때문에 왔다고 하면 당신은 쉬고, 친구들이 뭔가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녀가 끊임없이 미현과 친구들을 챙기고 달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왜 제가 챙기냐고요?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이런 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건, 마음이 아프거나 괴로운 일이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어 보였다.
“당신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요.”
“그렇죠. 괜한 걱정이라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참고 있는 거든지.”
어제 처음 본 여자에게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그런 거 모른다.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는 중이었다.
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다가 사라진다.
살짝 입매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천성인가 보죠.”
“주변 사람들을 많이 챙기는 게?”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쳤군요.”
“그럴지도.”
그녀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퍼져 나왔다.
“저기 앉아서 이야기하죠.”
성훈이 손이 가리킨 곳에 바위가 있었다.
그는 쌓은 눈을 슥슥 쓸고는 앉으라고 손짓했다.
“고마워요. 어제 후배들 대할 때는 엄청 무서운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런 면이 있었어요?”
현주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앉았다.
성훈이 물었다.
“그런데 어제 거기는 왜 간 거예요?”
“두고 온 게 생각나서요.”
“뭔데요?”
성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냥……. 펜던트예요. 옛날에 선물 받은 거.”
“소중한 거 아니에요? 찾으러 갈 정도면.”
“아뇨. 이젠 괜찮아요. 그것 때문에 다칠 뻔했잖아요.”
“그래도 찾아준다고 약속했잖아요.”
현주가 먼 곳을 보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잊어버려요. 성훈 씨도. 이제 됐어요.”
정말 괜찮은 것인지, 체념한 것인지 그녀의 옆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원래 그런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성훈이 손을 포켓에 넣고 꼼지락거렸다.
꺼내 들고 햇빛에 비춰본다.
산을 바라보는 현주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이런 거요?”
“네, 그런……. 어디서 났어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어제 낮에 주웠다고?
그럼 그녀가 그곳에 갔던 것은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행동이 된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구한 것도 결국은 그 쓸모없는 짓에 동참한 무의미한 짓이 되겠지.
“어제 당신에게 갈 때……. 주웠어요.”
그녀는 말없이 펜던트를 바라본다. 그리고 성훈을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나에게 올 때, 이걸 주울 시간이 있었을까?’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성훈이 말했다.
“난 약속을 지켰어요. 그럼…….”
돌아서는 성훈을 향해 현주도 일어섰다.
“성훈 씨.”
“응?”
“고마워요. 정말.”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귀중한 거라면 목걸이를 하고 다니세요.”
‘엄한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가려던 성훈이 되돌아서며 물었다.
“현주 씨, 지금 뭔가 답답하죠?”
무슨 의미냐는 듯 얼굴을 갸웃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제 당신의 춤은 아름다웠어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한풀이 춤처럼 보였어요.”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할 수도 있었다. 잽싸게 말을 이어 붙였다.
“아, 전 무용 잘 몰라요. 전혀 몰라요.”
양손을 내젓는 성훈을 보고는 피식 웃고 다시 산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네요. 풋.”
나풀나풀 선녀처럼 춤을 추는 그녀를, 무당이 살풀이하는 것처럼 봤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던가.
성훈이 말했다.
“여기서 풀고 가요. 이왕 여행 온 것 답답한 건 비워 버리고 가야죠.”
“어떻게요?”
잠시 고민하던 성훈이 말했다.
“뭐 어떻게는요. 고함 한 번 지르는 거죠.”
말을 내뱉고는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해졌다.
‘평생 큰 소리 한번 쳐본 적 없을 것 같은 여인에게 고함을 요구하다니, 김성훈 너도 참…….’
그녀를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제가 시범을 보일게요. 큼. 큼.”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성훈이 고함을 질렀다.
“김성훈! 이 멍청한 자식아. 인생 똑바로 살아~!”
반대편의 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성훈! 똑바로 살아~!’
현주를 돌아보며 머쓱하게 말했다.
“이렇게요.”
그녀가 초승달 같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자기보고 멍청하다니. 당신은 참.”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면 벌써 부자가 되고,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하는 말이죠.’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는걸.
‘내 것이 아니었던 돈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건, 게임하면서 맵핵이나 치트키 쓰는 거랑 뭐가 달라? 과정은 없는 결과만 얻겠지.’
그 결과를 맛보고 나면, 과정을 알고 싶어질까? 한 사람의 인생을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인생은 사람의 지나온 길을 말하는 것이다.
삶의 궤적.
지난 삶에서 먹고사느라 정신없이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면, 이번 삶에서는 좀 더 정리정돈하면서 내 삶의 자서전을 스스로 쓰고 싶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정당한 게임을 하면서.
물론 지금도 충분히 정당하지 못하다.
내가 보유한 백억에 달하는 주식이 그 증거다.
지금의 나는 심히 비겁자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성훈이 물었다.
“어제 재미있었죠?”
“그럼요.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우리도 해볼까요?”
“무슨?”
“2번 올빼미.”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뜨면 되묻는다.
“네?”
“어허, 동작 봐라. 2번 올빼미.”
성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아들은 듯했다.
“이번 올빼미. 고! 현! 주!”
한 번도 고함을 쳐보지 않았던지, 찢어지는 쇳소리가 나왔다.
“목소리 그것밖에 안 됩니까?”
하지만 조교 흉내를 내면서도 성훈은 웃었다.
‘이나마도 얼마나 용기를 낸 거겠어.’
“아닙니다.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듯, 그녀의 얼굴이 쑥스러움으로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정말 조교처럼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그러고 놀았던 것처럼.
“고함 일발 장전!”
현주가 복명복창한다.
“고함 일발 장전!”
“배에 힘주고.”
“배에 힘주고.”
“발사!”
“고현주. 바보, 멍청이, 똥개, 말미잘, 인생 똑바로 살아~!”
곧이어 그녀의 목소리도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양 무릎을 짚고서 숨을 헉헉거렸다.
숨을 고르고 일어서서는 심호흡을 했다.
한층 밝아진 얼굴이었다.
“가슴이 좀 시원해진 것 같아요?”
제 명치를 통통 치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어머, 정말.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아요.”
얼굴에 계속 드리워 있던 편안한 미소는 사라지고, 새로운 공기를 마신 듯한 상쾌한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후. 하. 후. 하.”
아침의 공기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라도 하듯, 크게 심호흡하고 있었다.
그녀의 속이 시원한 표정에 나마저도 속이 시원해졌다.
내가 좋은 사람이냐고.
아니,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돌아온 내 삶이 나에게 혹은 내 주변 사람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지금의 잠시간 휴식이 끝나면,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이다.
되돌아오는데, 현주의 메아리가 들렸다.
“성훈 씨,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