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47화
MT(09)
성훈이 소리쳤다.
“물러나! 더 이상 다가가지 마. 위험해.”
지붕의 가운데가 삐걱대며 눈이 후드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눈과 날카로운 얼음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붕 한가운데가 발광하듯 떨리며 꺾이고 있었다.
끼이익. 쿠당탕. 탕.
보이지는 않지만 내부의 대들보가 꺾어지는 소리일 것이다.
“뒤로 물러서.”
철골이 부딪히는 굉음과 판넬 구겨지는 소리가 여과 없이 귀를 관통했다.
달이 내뿜는 조명 아래.
건물이 비명을 질러대며 쓰러져 가고 있었다.
이게 현실이 아니었다면 감탄을 했으리라.
이보다 더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었을 테니.
그러나 현실은 무참함, 그 이상이었다.
찌그러진 창틀에서 조각난 유리들이 비산한다.
그마저도 눈보라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졌다.
부서지는 판넬에서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뒤로 물러나. 파편이 어디로 튈지 몰라.”
그 광경을 목도하는 모두가 얼이 빠져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소름이 끼쳤을 것인가?
무너지며 찢어진 철판에 사람의 피부 따위는 가위 앞의 헝겊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피가 쏟아지고 내장이 흘러내린다는 정도일까?
민수와 경호가 어느새 옆에 서 있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네요. 선배님.”
“무시무시하네요. 형.”
민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전 솔직히 형이 걱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건축에 사명감을 가져라.
건축가의 손에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다.
입이 닳도록, 피를 토하도록 말해도 알 수 없다.
백 번을 말해도, 느끼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온몸으로 건물의 비명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 장면은 평생 동안 머리에게 지워지지 않겠지.
‘이 광경이 뇌리에 남아 있는 한은, 감히 건축으로 장난칠 생각은 못하겠지.’
오늘의 일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 사태에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민수야. 그럴 리 없겠지만, 인원 점검 해봐라. 빠진 사람 있으면 바로 이야기하고.”
민수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경호는 119나 경찰에다 연락해. 건물이 무너졌다고.”
잠시 후, 경호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성훈 선배님, 휴대폰이 안 터집니다.”
펜션이 무너질 정도의 폭설이니, 송신탑에 문제가 생겨도 전혀 이상할 것도 없지.
안 되는 현실을 원망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럼 우리 옥상에는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와.”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민수가 빠진 인원은 없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로써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치지 않은 것인가? 휴.’
멍하니 서 있는 미현이 보였다.
“어떻게 저런 일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죠.”
엄밀히 말해 건축가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기준에 맞지 않는 설계를 해줬을 리가 없을 테니까.
‘건축주가 비용을 줄이려고 무슨 수작을 부린 거겠지.’
그러나 그 관리 감독의 책임도 건축가에게 있었다.
누가 되었든 이 일은 건축인들의 책임이었다.
미현이 고개를 숙였다.
“어, 성훈 씨. 아까는 오해해서 미안해요.”
그녀의 진심을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주 씨는 어디 갔나요? 안 보이는데.”
미현도 몰랐다는 듯 뒤돌아보며 말했다.
“글쎄요. 화장실에 갔나?”
얼이 빠져 펜션을 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현주 혹시 못 봤니?”
역시 모르는 모습이었다.
“민수야. 경호야. 애들한테 현주 씨 본 사람 있는지 물어보고, 찾아오라고 해.”
미현들 중 하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미현아. 아까 현주가 펜션에 뭐 놓고 온 거 있다는데, 거기 간 거 아닐까?”
“설마. 현주가 거기 위험하다고 해서 여기로 온 거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그거 현주한테는 소중한 거잖아. 미현이 네가 늦장 부려서 현주가 너 챙기느라고 그런 거잖아.”
친구의 타박에 미현은 짜증으로 맞받아쳤다.
“그럼 그게 나 때문이라는 거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 사람들아. 지금 그걸로 싸울 때니?’
멀리서 민수가 소리쳤다.
“형. 현주 누나가 안 보여요. 아무 데도 없어요.”
‘아! 이럴 수가.’
산을 내려간 곳이 아니면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젠장.”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뭐라고요?”
미현이 쌍심지를 켜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미 달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 왜 하필 지금이야. 나한테 말이라도 하지.’
펜션을 향해 달렸다.
그곳으로 달려가며 기도했다.
‘제발. 부디 제발.’
한 명의 사상자라도 생긴다면 그동안 공들인 것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
눈보라가 어지러이 날린다.
얼마나 뛰었을까?
불 켜진 펜션이 보였다.
느낌 탓일까? 펜션이 살짝 기울어져 보였다.
‘제발! 그냥 느낌이기를.’
다가갈수록 가슴이 미치도록 울렁거렸다.
흔들리는 파도 위에 펜션이 떠 있는 느낌이었다.
끼익끼익.
아주 불안한 느낌.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마치 다른 공간에 들어온 듯한 위화감.
귀 뒤가 쎄하게 간지러운 느낌.
귀를 시리게 하던 눈보라는 사라지고, 건물의 비명 소리만 들렸다.
키릭. 키릭.
거실에는 불이 켜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천정에 달린 샹들리에만이 흔들거릴 뿐이다.
뒤따라온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뒤돌아서 소리쳤다.
“들어오지 마. 위험해!”
지금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들였다가는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민수야. 애들 통제해. 멀리 떨어지게 하고.”
“네, 형. 여기는 걱정 마세요.”
아이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을까?
발바닥으로 건물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젠장할.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럴 거라면 내가 적임자다.
이미 내 발은 집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현주 씨? 안에 있어요?”
목소리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달려 나가야 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네.”
겁먹은 듯한 목소리가 2층에서 들려왔다.
“일단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요.”
어설프게 움직이다가 하중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그냥 깔리는 거다.
지금 이 건물은 성냥개비 위에 아령을 올려놓은 것 같다.
옆으로 쓰러질지, 아니면 성냥개비가 똑 부러질지 아무도 몰랐다.
‘올라가면 방법이 있을까?’
그걸 생각할 정도면 이렇게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가면서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
계단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움직이는 걸음마다 긴장이 어렸다.
‘이번에도 천정 가운데가 먼저 무너질까?’
무너진 펜션은 중간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반드시 똑같지는 않겠지만, 같은 구조라면…….
‘일단은 그걸 믿어보는 수밖에.’
샹들리에가 다시 요동친다.
그냥 나가라고 외치는 소리 같았다.
‘바보냐? 얼른 나가!’
경고를 무시하고 계단을 디뎠다.
‘그냥 지나치던 계단인데, 젠장.’
삐익. 삐익.
계단이 비틀리는 소리가 난다.
지붕의 눈 무게를 버티기 어려운 듯, 기둥들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거기에 바람은 신나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쾅.
바람에 현관문이 닫혔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휙. 휙. 휙. 휙.
소리 없이 18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계단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무너질 정도로 삐걱거렸다.
콰직.
처음 발돋움했던 계단이 조각조각 으스러졌다.
‘이런. 벽이……. 조금만 더 버텨 줘. 제발.’
이렇게 죽을 거면 돌려보냈겠어?
어떻게 해도 살 운명이면 살겠지.
여기 있으면 깔려죽을 거고.
밖으로 도망치면 평생 비겁자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살아야 한다.
아무도 욕하지 않겠지만 내 스스로 말이다.
‘그건 싫어!’
비명을 삼키며 나머지 다섯 계단을 뛰어올랐다.
멈출 틈도 없이 불 켜진 방으로 들어갔다.
끼익. 콰직. 콰직.
기괴한 파열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집이 계단을 집어삼키는 소리였다.
그녀는 주저앉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이었다.
두려움 때문이겠지.
소리 없는 눈물이 그녀의 눈을 채우고 있었다.
“현주 씨, 여긴 뭐 하러 온 거예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흑. 놓고 온 게 있는 것 같아서…….”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했잖아요!”
맺혀 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미안해요. 정말.”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끊었다.
됐어.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내밀며 물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현주가 울듯이 말했다.
“다리가 안 움직여요.”
“이런 젠장맞을!”
마음속의 말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일단 여기서는 벗어나야 해.’
아래로?
계단이 남아 있다고 해도, 위험해.
끼기기긱. 끼이잉.
굉음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 십여 초나 버틸 수 있을까?
“당신.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아니에요.”
허리가 빠졌다는데 뛰기는 무슨.
‘김성훈. 정신 차려.’
안고 뛰어내리는 수밖에.
‘문제는 내 다리가 버텨내느냐 하는 거지.’
“현주 씨.”
“네?”
나를 돌아보는데,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많이 나가봐야 45㎏ 정도.
‘설마 이 정도로 금 가기야 하겠어.’
“지금. 뭐…….”
어버버하는 그녀를 다시 내려놓았다.
창문을 열고 하나씩 뜯어냈다.
“여기로 나갈 거예요.”
‘그다음은?’
눈으로 묻는 현주에게 말했다.
“지금 질문할 시간 없어요. 알죠?”
그녀를 창가에 놓고 창밖으로 몸을 뺐다.
“현주 씨, 손!”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두 팔을 뻗어 그녀의 겨드랑이에 넣고 쭈욱 뽑아 올렸다.
“어머?”
“좀 아프더라도 참아요.”
가벼웠다. 쑥 딸려 올라왔다.
***
쩡. 쩡. 쨍그랑.
창유리들이 갈라져 사방으로 비산한다.
저 소리가 끝나면 폭삭 주저앉는다.
“형. 얼른 뛰어내려요.”
‘기다려 봐. 집이 어느 쪽으로 무너질 줄 알고.’
현주는 두 팔로 내 목을 감싸고 있다.
온몸으로 두려움의 떨림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무서우면 눈 감아요.”
말하는 내 입에서 단내가 난다.
귀를 아리는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꽉 잡아요.”
이 여자가 지금! 영화 찍는 줄 아나!
지금 현주를 안고 있는 두 팔을 꽉 죄였다.
‘이 가느다란 팔뚝으로 낙하 충격을 버틸 수 있을까? 떨어지는 충격에 팔을 놓칠지도 몰라.’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두 팔로 목을 꽉 잡으라고. 당신 뺨이 내 얼굴에 닿을 정도로 이렇게!”
그녀의 몸을 거칠게 당겨 안았다.
현주가 움츠려들며 내 목을 꽉 조았다.
그녀의 숨결이 내 목을 뜨겁게 했지만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놀라서 난리 안 치는 게 어디냐!’
미리 언질을 주었다.
정신 놓기라도 해버리면 곤란해지니까.
“충격이 올 거야. 그냥 출렁할 테니까 참아.”
충격이라는 말에 놀랐던 모양이다.
‘나도 몰라. 이런 거 처음이거든.’
하지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야 있나?
휘잉.
“날 믿어.”
“네.”
긴장했던지 경직된 쇳소리가 나왔다.
현주에게 물었다.
“꼭 찾아야 하는 거예요?”
뭔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물건일 터.
그녀는 가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괜찮아요.”
“나중에 같이 찾아봐요.”
“미안해요. 사실은 당신 말을 믿지 않았어요.”
“무너진다는 거?”
“네, 반신반의…….”
“내려가서 혼내줄 테니 각오해요.”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현주의 떨림이 멎었다.
“아파도 팔 놓지 마. 그대로 뛰어 갈 거니까.”
발 딛은 자리가 흔들린다.
민수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형! 무너져요. 얼른.”
“알아!”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 하. 후. 하. 눈 꼭 감아.”
그녀는 나를 동그랗게 뜬 채 보고 있었다.
“후!”
내 입 바람에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꽉 잡아.”
“네!”
바닥을 박차며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