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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44화 (144/427)

건축의 신 144화

MT(06)

돌아 나오는 길은 어느새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훗, 우리 아이들 호구라고 해도 좋다. 아직은 순수하잖아. 보기만 좋구만.’

저 녀석들이 나중에 커서 나라의 기둥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올바로 이끌어줄 사람만 있다면 말이다.

‘훗. 내 또래의 녀석들만 있으니, 인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건가?’

지금의 나는 선배가 아닌, 어른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돌아서서 아이들이 지붕에서 눈 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붕이 경사가 거의 없으니, 주의만 한다면 다치지는 않겠네.’

그런 만큼 눈의 쌓이는 것을 더 주의해야 한다. 미끄러지지 않고 그대로 쌓여 버릴 테니까.

“민수야. 좀 어떠시냐?”

한 교수와 민수도 짐을 챙겨서 큰 동으로 이동해 있었다. 위험한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민수는 한 교수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제 좀 나아지신 것 같은데, 아직은.”

“쩝.”

아까는 토하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얼굴이 파리한 것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일까지는 일어나셔야 될 텐데 말이야.”

“그때까지는 회복될 거예요. 아까 해장국 먹고 잠드셨어요.”

민수가 책을 덮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 회장 쟤네들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요.”

그런 민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 내가 수업들을 때, 녹음하는 거 알지?”

내 가슴 포켓에 달린 볼펜을 가리켰다.

“설마 녹음하셨어요?”

“응. 이 건으로 시비 걸고 덤비면 바로 아웃이야. 이미 총장님하고도 얘기 끝났어.”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까 엄청 바쁘신 것 같던데.”

아까 펜션에서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 일 다 끝났어. 다른 일만 없으면, 내일까지는 별일 없을 거야.”

“싸가지 없는 여자애들인데,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해요?”

“그럼 그냥 내버려 둘까? 집에 깔려서 죽든지 말든지?”

민수가 씁쓰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애들 행동이 지나치잖아요. 걱정돼서 간 사람한테.”

세상에는 고마운 거 모르는 사람 천지다.

길가의 돌멩이를 발로 치워주는 사람이 있기에, 어린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선행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작은 배려일 뿐이다. 넘어지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지 않던가.

“넌 신경 쓰지 마. 내가 걔들한테 뭘 바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애들도 좋아서 하는 거지. 뭘 바라고 하는 거겠냐?”

“마냥 맘 편하지는 않네요. 해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아서.”

“나 맘 편하자고 하는 거야. 내가 뻔히 알고 있었는데, 내 일 아니라고, 이득이 안 된다고 모른 척하라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래요. 형이 잘 알아서 하시겠죠.”

“여기 있으면 뭐하냐. 우리도 나가서 어울리자.”

다시 책을 집어 드는 민수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형. 저 안 심심한데요.”

“내가 단지 심심해서 이러는 거 같냐?”

“그럼요?”

“학생회장 같은 저런 놈들이 판치는 건 선배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런 억지가.”

“단지 취직하려고 이 학교에 온 건 아니잖냐? 적어도 우리 후배라면 건축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

“그럼 가르치면 되죠.”

민수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두면 애들이 따라오냐? 친해져야 말발도 먹히는 거지. 얼른 나와.”

목표하는 바를 이루려면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뒤를 받쳐주는 배경도 든든해야 한다.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주는 사람은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자들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능력만 키우려 들었지. 과연 내가 학교에서의 활동이 있었다면, 그 애송이들이 나를 그렇게 무시했을까?’

여태껏 등한시했던 내 학교에서의 인맥을 나는 지금부터라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

눈 벽돌을 허리높이로 쌓아 양쪽으로 눈담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다.

“나름 신경 써서 장식했네.”

“녀석들. 고생 좀 했겠는데요.”

어린 녀석들이 하는 짓이 재밌지 않은가?

고작해야 스물한두 살일 텐데.

후배들의 작품에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퍽.

눈덩이가 날아와 내 얼굴에 맞았다.

‘이 녀석들이.’

휙 돌아보니 1학년 녀석들이었다.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성훈 선배님, 눈싸움하시죠?”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까?

지난 삶의 나이로 치면, 조카뻘인 녀석들이 내게 친해지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내 나이에 네 녀석들과 이렇게 유치하게 놀아야겠냐?’라는 생각과 동시에, ‘못 그럴 건 또 뭐냐?’ 싶었다.

녀석들이 보기에는 난 겨우 군대를 다녀온 몇 살 많은 예비역에 불과했다.

퍽.

이번에는 민수의 점퍼에 눈덩이가 맞았다.

2학년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성훈 선배님, 이리 오시죠. 야. 민수 선배 공격.”

“풋.”

나와 민수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과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양편으로 갈라졌다.

“민수야. 건투를 빈다.”

날아오는 눈덩이에 기분이 나빴냐고?

전혀!

놀아달라는 강아지를 보며, 기분 나쁠 어른이 있을까? 있다면 그만큼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성정이 강퍅하다는 말이겠지.

“까짓것, 한판 놀아주지 뭐.”

다시 날아오는 눈덩이를 전방 앞구르기로 피하며, 구르는 동시에 눈덩이를 뭉쳐 들었다.

일어서면서 나를 겨냥했던 과대 녀석의 머리통을 정확히 맞혔다.

“크윽!”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나랑 붙으려면, 몇 년 더 수련을 하고 와라. 이 녀석아.”

지난 삶의 나였다면 이런 행동은 죽어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 삶에서 마흔이 넘었던 나는 허리가 아주 좋지 않았다. 무리하게 가구를 들다가 삐끗한 허리가 계속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때마다 고통을 느꼈다.

‘수술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나아졌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후유증 때문에 더 고생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좀 뻐근한 게 낫지.’

그때도 젊었던 내게 불확실한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젊어진 것도 있지만, 체육관에서의 반복 수련으로 내 두 생을 통틀어 최고조의 컨디션이었다.

감히 군대도 안 다녀온, 여물지 않은 녀석들이 덤빌 수 있는 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겁이 없으니, 젊음이 아니던가?

1학년 과대가 소리쳤다.

“선배님, 우리는 쪽수가 많습니다. 얘들아. 공격!”

유치한 눈싸움이지만 질 수야 있는가?

선배 체면이 있지.

응당 승부를 걸어왔다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반대편을 돌아보니, 2학년들이 손짓하고 있었다.

“선배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날아오는 눈덩이들을 등으로 막으며, 그쪽 담벼락을 향했다.

이런 싸움에 승패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만, 선배가 후배에게 져서야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 무슨 유치한 발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하지만 눈싸움에 로우킥, 하이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눈 범벅이 되어, 눈뭉치를 던지는 것뿐이었다.

한 녀석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승부를 보기로 했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그런 거 없는데요.”

“에이, 헛힘만 뺐네.”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잠시 휴전!”

맞은편 담벼락에서 민수가 일어났다.

“왜요? 형!”

“종목 바꾸자. 이러다가 끝이 안 나겠다.”

“뭐로 하시게요?”

내 앞의 녀석들에게 물었다.

“족구 어때?”

적어도 족구라면, 킥을 써먹을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2학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야. 족구! 진 팀이 내려갈 때, 짐 들고 가기. 어때?”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니, 민수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답했다.

“네, 콜. 약속 지키십시오.”

우리가 네트를 만들고 있을 무렵, 여자들이 있는 펜션 쪽에 눈 쓸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곳으로 향했다.

펜션 뒤쪽에서 아까 봤던 현주와 경호와 눈 쓸던 아이들이 모닥불에 뭔가를 굽고 있었다.

“경호야. 눈 안 치우고 뭐 하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녀석들이 놀랬는지, 벌떡 일어섰다.

경호가 긴장한 모습으로 말했다.

“선배님, 잠시 누님이 쉬었다가 하라고 해서.”

같이 있던 현주가 일어서며 말했다.

“추운 데서 애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제가 구워 먹자고 했어요. 너무 힘들어 보여서.”

“괜찮아요. 눈은 많이 치웠으니까. 아까 그분은 오해를 하신 모양이지만, 진짜로 위험해서 그런 거예요.”

“네, 알아요. 안 그러면 이런 고생을 할 리가 없잖아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미현이가 말이 심했어요. 죄송해요.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좀 민감해진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무슨 사정이 있었겠죠.”

‘말 안 통하면 다른 사람이랑 하면 되지. 그 사람을 꼭 설득해야 할 이유도 없잖아.’

말이 안 통하는 여자 따위 궁금하지도 않았다.

현주가 물었다.

“아까 제안했던 게 그쪽 동으로 옮기는 거였죠?”

“네, 이 펜션도 눈을 계속 쓸어내리면 위험하지 않겠지만, 밤새도록 눈을 쓸 수는 없잖아요. 따로 방 드릴 테니까, 안전은 염려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미현이, 잘 설득해 볼게요.”

“그래 주면 고맙죠. 애들도 고생할 필요 없고.”

돌아서려는 현주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예요?”

“아까는 너무 뜬금없어서 놀랐었어요.”

“그렇죠. 집이 무너진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 친구들이랑 얘기해 보니까,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 순박하고 좋은 친구들 같더라고요.”

그녀의 솔직한 평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딱히 나쁜 놈들은 없지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 생기지 않도록 조치해 놓을게요.”

“네, 하지만 금방 설득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현주를 들여보내며 말했다.

“결정되면 경호한테 이야기해 주세요. 짐 옮길 애들 보낼 테니까.”

돌아 나오며 경호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조금만 참아라.”

“뭘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경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쟤네들 별로 예쁘지도 않던데? 왜 난리들이냐?”

녀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저 정도면 엄청난 미인들이죠?”

“그래?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런데.”

여성을 보는데 있어서, 굳이 미추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삶에서 수많은 접대를 하면서 많은 여자를 만났었다.

예쁘다는 것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때 만났던 텐프로 아가씨들보다 예쁠까? 어림도 없지.

경호의 생각에 동참하는지, 다른 녀석들도 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라렸다.

‘이 녀석들. 소피아 보면 기절하겠는데.’

녀석들에게 말했다.

“족구할 녀석은 교대하고 내려와라. 학년 대항이다. 지는 학년이 짐 들고 내려가기.”

***

네트 앞에서 민수와 악수를 나눴다.

“설마! 선발로 나온 겁니까?”

“응. 왜? 안 되냐?”

“그 노구로 쉽지 않으실 텐데.”

‘네가 애들 패는 걸 못 봐서 그렇지. 아직 힘이 넘치거든.’

싸움 좀 한다는 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민수가 말했다.

“어쨌거나 큰 보상이 걸려 있는 승부입니다. 페어플레이를 기대합니다. 형.”

의외로 민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으니까.

뒤돌아서 후배들의 응원을 촉구하는 몸짓까지 취하는 여유를 보였다.

‘뜻밖이네.’

“민수야. 자신 있나 보다?”

“제가 군대 있을 때, 한 족구 했거든요.”

무한 자부심을 보이는 민수였다.

그런 민수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다리를 허공으로 쫙 찢으면서 말이다.

그런 나를 보며, 민수의 인상이 변했다.

“어? 형. 구기 종목 안 좋아하신다면서요.”

“그랬지. 구기 종목을 별로 안 좋아해.”

지난 삶의 나는, 아니, 지금의 나도 구기 종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야구나 축구를 무슨 맛으로 보는지 몰라.’

규칙을 뻔히 알면서도,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을 잘 못했다.

물론 야구나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를 별종 취급했었다.

차라리 그런 것보다는 치고받으며 바로바로 결과를 보여주는 격투기 계열을 즐겨 봤었다.

“형. 뛰는 거 싫어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응. 땀나고 바로 못 씻으면 짜증나거든.”

“그런데 족구를 하신다고요?”

“응. 족구는 땀도 별로 안 나고, 그렇게 달리는 것도 아니거든.”

그 말을 하며, 허공으로 하이킥을 날렸다.

신장 185, 체중 73.

지금 내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형. 잘 생각해 보세요. 재밌자고 하는 게임에 형 같은 사람이 끼면 어떻게 해요.”

“내가 왜? 나 선수 아니거든?”

“그래도.”

“쉽지 않을 거래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심판이 건네준 공을 받아 무릎차기를 통통 하며 대답했다.

“형. 운동 하시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매일 체육관에서 토 나올 정도로 운동하는데, 너 같으면 밖에서 하고 싶겠어? 오늘은 운동도 못할 텐데. 잘됐네.”

민수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형. 대충할 생각 없죠?”

“당연하지. 보상이 얼마나 큰데, 내가 이 나이에 어린놈들한테 원망이나 들어야겠어?”

뒤로 제자리 공중제비를 돌면서 말했다.

“뭐해. 너희 부대에선 입으로 족구 했냐? 시작하자고.”

“에잇, 젠장.”

민수가 투덜대더니 뒤돌아서며 외쳤다.

“1학년, 전원 수비 모드! 대충을 모르는 선배니까. 최선을 다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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