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43화 (143/427)

건축의 신 143화

MT(05)

경호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 걸려 있었다.

“선배님, 여대생들이 놀러온 것 같습니다. 다섯 명이나 됩니다.”

“그래?”

내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생각했던지, 녀석이 다시 말했다.

“선배님, 여대생이라고요.”

세상에 널린 게 여대생인데, 뭘 저렇게 설레발치는 것일까?

“그렇게 좋으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공대, 그것도 여성의 비율이 극악한 건축과다.

하긴 나도 저 나이 때는 여자라면 좋아 죽지 않았던가? 그 시절 나에 비하면 경호는 양반이다.

“좀 까칠해 보이긴 했지만 예뻤습니다.”

“경호야. 내가 학생회장 왜 팼는지 아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다 들었습니다.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고, 그 위험을 말하니 듣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닙니까?”

“애들한테는 이야기 안 했지?”

“네, 알면 괜히 혼란스러워질 것 같아서요.”

“잘했다.”

일단 눈만 쌓이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분명히 불안한 마음에 단독 행동을 하는 자가 나온다.

“괜한 말로 사고를 만들 필요는 없지.”

“네,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 내가 말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함구해라.”

“네.”

“문제는 여대생들이 있는 펜션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란 거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

“글쎄요.”

“초대하면 올 것 같냐?”

녀석의 얼굴에 웃음이 보인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내 말에 경호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여대생들이 사내들만 득실거리는 곳에 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조촐하게 다섯 명만 왔다는 건,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을 만나고 싶었으면, 도시의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으로 갔겠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선배님?”

“일단 가보자. 사정을 설명해 봐야겠지.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냐?”

“네, 그렇죠. 미인이 다치면 안 되죠.”

밖으로 나오니 후배들이 모여서 마당을 쓸고 있었다. 언제 만들었는지 눈삽까지 들고서 말이다.

한 녀석에게 물었다.

“지금 너희들 뭐하는 거냐?”

“옆 펜션의 여대생들이 미끄러지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쯧쯧. 시키지도 않은 짓을.”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니, 별로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이것이었다.

‘이 눈, 하루 종일 계속 퍼부을 텐데.’

내일 아침까지 체력이 남아 있기를 빌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이 녀석들을 앞세우고, 도로의 눈을 치우면 지금이라도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은 마당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런 열정이라면 10㎞ 정도는 우습게 치우겠는걸. 녀석들.’

경호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사실 아까 저랑 몇 명이 같이 갔었습니다. 그 녀석들이 소문냈나 봅니다.”

곧 눈은 다시 쌓이겠지만 후배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선배들이 미끄러질까 봐 그랬다고 해봐라. 얼마나 귀여움을 받겠냐? 이것들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석이라면 ‘선배님은 여자가 아니잖슴까?’ 하며 대거리를 했겠지.

“레드카펫이라도 깔아두지 그랬냐?”

경호도 기분이 들떴었던 모양이다.

‘그럴 걸 그랬나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치워진 눈 속에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거 뭐냐?”

급하게 치우느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워 들어보니 아기자기한 모양의 펜던트였다.

“어린애들이 가지고 놀다가 흘렸나 봐요.”

“그렇겠지.”

처음에는 ‘여대생들이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전혀 젊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그것도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데요.”

“그러네. 일단 주워놓자. 여기 놔두면 녹만 슬 테니까.”

“그냥 버리시지. 그런 걸 뭐 하러.”

“그래도…….”

경호는 귀신이 붙는다는 둥 재수 없는 소리를 했지만, 어린애들이 차는 펜던트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항상 뇌리를 지배하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내 딸.

‘나도 예진이에게 이런 펜던트라도 선물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날 좀 더 기억해 주지 않았을까?’

경호의 버리라는 만류에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찾는 사람이 있다면 돌려줄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물건이지 않겠냐?”

***

“아까도 왔더니, 왜 또 온 건가요?”

그녀는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눈이 많이 쌓이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자칫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당신의 말을 어떻게 증명할 건데요?”

여자들만 있는 곳에 남자들이 왔으니,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들어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드리죠.”

“알았어요. 당신만 들어와요.”

안으로 들어가며 상하부의 구조를 살폈다.

‘역시 한 교수가 있던 곳과 같아.’

“기둥 간의 간격이 너무 넓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전 넓어서 좋기만 하거든요. 증명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나가세요. 수작 부리지 말고.”

‘나한테 무슨 감정 있나? 왜 이렇게 팅팅거리지?’

위를 올려다보니 대들보가 보였다.

“흠……. 좀 불안하긴 하지만.”

풀쩍 뛰어서 상부의 대들보에 매달렸다.

끼익. 끼익.

펜션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거 심각하네. 눈 쌓이면 버티지를 못하겠어. 잘 설득해서 데리고 나가야겠네.’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갑작스런 내 행동에 그녀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쿵.

내려오는 소리가 바닥에 울려 퍼졌다.

“보셨죠. 껍데기만 예쁘지. 전반적으로 건물이 불안해요.”

심상찮은 소리에 안에 있던 여자들이 나왔다.

“미현아, 이거 무슨 소리……. 어머.”

거실의 낯선 남자를 보고 흠칫 놀란 모습이었다.

미현이 말했다.

“현주야. 펜션이 무너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그래서 보러 들어오라고 했어.”

“그래? 관리인 아저씨구나. 어젯밤에 자는데, 바람 너무 세게 불더라고요. 보일러 좀 강하게 틀어주세요.”

“그게 아니라, 건물이 불안하대. 무너진다는데? 참나. 우리 아빠가 건설회사 하거든요!”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내가 이런 촌구석에 오지 말자고 했잖아. 그냥 호텔에 가자니까. 고집을 세워서는.”

“조용한 데 가자고 해서 그런 거잖아. 미현이 너도 찬성했잖니.”

현주에게 말했다.

미현이라는 여자는 말귀가 막혀서 이해를 시킬 수가 없어 보였다.

“말씀 도중에 죄송한데. 저기 건물 보이시죠.”

우리가 머무는 큰 동을 가리켰다.

“네, 그런데요?”

“그 위에서 눈 쓸고 있는 친구들 있죠.”

“추우실 텐데, 왜 저러고 계신 건가요?”

“눈 쌓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쓸어내리는 거예요. 지금은 눈이 쌓여서 움직일 수도 없으니, 바람 막을 곳은 있어야죠.”

“눈이 쌓인다고 집이 무너져요?”

아까 미현에게 한 설명을 간략하게 해줬다.

“네, 아주 큰 사고로 이어지죠. 순식간에 집이 사람을 덮치는 거니까요. 피할 시간도 없어요.”

“그럼 난리가 나야 할 텐데, 그런 것치고는 사람들이 너무 즐거운 것 같은데요?”

시비를 거는 듯한 미현의 말에는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저런 모습을 보이겠느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런 오해를 하기에 충분했다. 펜션이 무너진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여자를 만난다는 기쁨에 얼굴에 웃음이 걸려 있었으니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우리 애들한테는 말 안 했어요. 혼란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눈만 안 쌓이면 큰 문제는 아니거든요. 댁들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건,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부탁하는 의미예요.”

현주가 물었다.

“어떤 협조를 말하는 건가요?”

“제일 좋은 건, 우리가 있는 건물로 옮기는 거예요.”

미현이 빈정대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냥 꼬시러 왔다고 해요.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거창하게 하세요.”

좋게 설득하긴 글렀다. 저렇게 날을 세우고 있으니.

“쩝. 전혀 그런 마음 없고요. 정히 불편하시면, 저희가 지붕이라도 쓸게 해주세요. 불편하지 않게 조심할게요.”

“그러게 내가 호텔로 가자고 했잖아. 이게 뭐니. 이런 떨거지나 달라붙고.”

“얘. 미현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걱정돼서 와 주신 분한테.”

미현의 차가운 눈초리가 나를 찔렀다.

“걱정은 무슨. 참나. 멀쩡한 건물 무너진다는 소리나 하고 있는데. 요즘은 그런 식으로 여자를 꼬시면 넘어온대요?”

톡 쏘는 그녀의 말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불순한 마음 없다고 말씀드렸고, 다른 분들의 의견도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물어보나 마나죠. 당신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아가씨,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뇨. 저야…….”

미현이 쌍심지를 켰다.

“대답 잘해. 우리가 여기 남자나 만나러 왔니? 너 때문에 온 거잖아.”

“얘. 미현아. 꼭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잖아. 위험할 수도 있다잖아.”

“현주. 넌 그런 거짓말을 믿니? 일부러 접근한 건지 어떻게 알아.”

현주가 그녀에게 화를 냈다.

“접근하려면 기회는 많았어. 꼭 이런 곳에 와야 하는 거니?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야.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일부러 접근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거냐?’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당신에게 뭔가를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무너지면 사람이 다치니까 걱정이 돼서 당신네 지붕을 쓸어주겠다는 거예요.”

“누가 당신한테 걱정해 달랬어요?”

“미현아. 너 왜 그러니. 왜 그렇게 예민해?”

현주가 그녀를 방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죄송해요. 애가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좀 예민하네요. 미안해요.”

현주는 좀 더 이성적인 것 같았다.

“현주 씨, 그럼 이 펜션 지붕을 쓸어도 될까요? 아, 물론 실례가 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무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네, 부탁드릴게요. 저희 때문에 고생을 하게 해서 죄송해요.”

그녀의 말은 맞았다.

애초에 안 왔다면 내가 고생할 일도 없었으니까.

‘에휴, 이게 뭐냐. 턱없는 오해나 받고.’

“아니에요. 그래도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신발을 신고 나오면서 말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내일 아침에 우리가 떠날 때, 같이 가시는 게 어떨까 싶어요. 자칫 잘못하면 통신도 끊기고, 고립될 수가 있거든요.”

“그건…….”

“당장 결정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생각해 보시라는 말이지.”

현주에게 학생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저, 관리인 아닙니다.”

그녀가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죄송해요. 오해를 했어요.”

***

사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후배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이 펜션 지붕도 쓸어야 한다. 지원자는 손…….”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선배님.”

“아뇨. 제가. 으푸! 죽고 싶냐?”

녀석들의 지원을 다 받아서 눈을 쓸다가는 눈이 쌓이기도 전에 집이 무너지게 생겼다.

“그만. 주목!”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경호 녀석도 손을 들고 있었다.

‘훗. 상남잘세.’

“경호. 네가 지원자를 골라 봐라.”

후배들의 시선이 모두 경호를 향했다.

‘나 안 뽑으면 죽인다!’

이글거리는 눈빛에 몸이 타버릴 정도였다.

경호가 하나를 뽑았다.

뽑히지 못한 자의 아쉬움과 뽑히고 싶은 자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저 자식도 됐는데, 나 안 되면 알지? 한판 하자는 소리를 알아듣겠어.”

“과대. 공평하게 하자. 공평하게. 엉?”

‘이런 문둥이 같은 것들. 콱!’

왜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에 저렇게 매달리는 것인지. 아무리 여자에 목말라도 그렇지.

‘하긴! 나부터도 호구 짓 하는 거지만.’

이 상황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그만. 그만. 경호야. 미안하다. 없던 일로 하자.”

그리고 후배들을 향해 말했다.

“눈을 쓸 사람은 세 명이다.”

내 말에 모든 이의 신경이 집중되었다.

이번에 누가 되든 승복하지 않을 눈치였다.

‘굳이 하고 싶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 내가 할 것도 아닌데. 싸가지 없는 게 뭐가 예뻐서.’

“순서 정해라. 그 순서대로 과대가 진행한다. 불만 있는 놈 나와.”

이미 녀석들은 내말은 들은 체 만 체,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개고생인데, 그걸 좋다고. 쯧쯧.’

선배니까 솔선수범해야 되지 않느냐고?

내가 왜?

그 여자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말인가?

하고 싶다는 녀석들 천지빼까리로 널렸는데.

순서가 정해지고 녀석들이 빗자루를 들고 지붕으로 기어 올라갔다.

“얘들아. 조심해라. 미끄러지면 크게 다친다.”

“걱정 마십시오. 성훈 선배님. 광이 반짝반짝 나게 쓸어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경고하는데, 그 여자들한테 찝쩍거리다가 걸리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엉!”

“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과대 아닙니까? 잘 감시하고 있겠습니다.”

어떻게든 그 펜션에 붙어 있을 핑계를 만들어내는 경호를 보며 웃음이 픽 나왔다.

‘젊음. 그만한 가치가 또 있을까?’

그런 싸가지 없는 여자 하나 다치거나 죽거나 무슨 상관이겠냐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삶을 얻은 자의 부질없는 오지랖일까?’

영웅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적어도 내 손에 닿는 것이라면 구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건축에 관계된 거라면 더더욱!

‘내 눈 앞에서 건물이 사람을 해치는 걸 지켜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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