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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41화 (141/427)

건축의 신 141화

MT(03)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게 뭔지 아는가?

그건 우물 안 개구리가 왕 노릇 하는 거다.

한 편의 저질스런 촌극을 보는 기분이랄까?

‘안타깝네. 거기에 장단 맞춰줄 사람이 아니라서.’

뜻하지 않게 판이 짜여졌으니, 신명 나게 놀아보지 뭐.

100㎏쯤 나가는 거구인 총무가 건들대며 다가왔다.

“선배, 요즘 존나 잘나가더라. 상금도 많이 받았다던데. 그거 학생회에 기부나 좀 하지.”

그러면서 내 어깨를 툭 쳤다.

‘I.M.F.가 애들을 버려놨네. 선배들이 신경 안 쓰니까 세상이 제 것 같지.’

이 녀석들의 생각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다른 과도 아니고 건축과가!

눈 오면 폭삭 주저앉을 이런 곳을 구해놓고 뭐가 어째!

건축과가 건물 무너져서 애들 죽었다고 하면 신문 일면거리다.

‘이것들이 선배들 얼굴에 똥칠을 하는구나.’

사람이 좋아 보이니까, 별 시답잖은 것들이 다 덤빈다.

“총무, 너 지금 나 쳤어?”

나를 비웃으며 다시 어깨를 밀었다.

“자, 또 쳤다. 어쩔래! 선배 대접 해주니까, 네가 뭐나 된 줄 알아?”

“니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 못 참는다. 이거 정당방위인 거. 알아?”

녀석이 나를 보며 놀리듯이 웃었다.

“네, 정당방위 하세요. 선배.”

그 옆으로 회계 녀석이 나섰다.

이 녀석은 독하게 생긴 얼굴로 딱 봐도 깡 좋게 생겼다.

“씨발, 후배들은 학원 자유화와 민주화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속 편하게 공부나 처하고 앉았습니까? 선배?”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생이 공부하는 거 가지고도 난리냐?’

난 다시 살게 되었어도 공부 제대로 안 한 게 한이던데.

내 웃음이 놈의 화에 불을 질렀던 모양이다.

“이게 웃어? 씨발. 누군 공부할 줄 몰라서 안 해? 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거라고. 알아?”

‘이건 뭐 고삐리 겁주는 것도 아니고.’

연극 그만하고 패버릴까 하는데, 뒤에서 팔짱을 떡하니 끼고 나를 비웃는 회장이 보였다.

‘좀 더 하자.’

“야, 회장. 얘들 좀 말려 봐라.”

“이 새끼야. 회장님이 니 친구야? 어디서 혓바닥을 나불거려.”

‘이젠 아주 별걸로 다 시비를 거네.’

회장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의미리라.

‘요것들 봐라. 완전 왕 같은데.’

“야, 너 웃어? 어깨까지 으쓱여? 너 이러면 폭행 방조란 거 알아? 범죄라고, 범죄!”

회계가 비릿하게 웃었다.

“조또, 선배는 주둥이로 싸우나 봐.”

“그러게 존나게 혓바닥 기네. 흐흐흐.”

총무에게 말했다.

“자꾸 이렇게 툭툭 치면 나 안 참는다.”

이번에는 회계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었다.

‘으, 이거 은근히 열 받네.’

회계가 말했다.

“선배, 참지 마. 아무도 참으란 말 안 했거든. 바보냐?”

“나 이거. 분명히 말하는데, 정당방위다.”

“지랄도 가지가지 하네. 그래, 정당방위 해라. 처맞고도 그런 소리 나오나 보자. 응?”

놈의 비웃는 소리를 들으며 방을 빙 둘러봤다.

총무가 말했다.

“뭘 보냐? 도와줄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소리라도 지르든가. 흐흐.”

‘혹시 CCTV가 있을까 싶어서 봤다. 바보들아.’

이 시절에, 이런 건물에 그런 게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사람 인생 알 수 없는 거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었다.

“회장아. 얘들 말려라.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어쩔 건데?”

“너 학생회에서 공금 횡령한 거 다 까발린다.”

물론 근거는 지난 삶에서의 소문들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못 봤다.

회장이 웃었다.

“어이가 없네. 거 참,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다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거라고. 학교에서도 나는 못 건드려. 병신아.”

‘흐흐. 그건 명확한 증거가 없을 때나, 협상이 필요할 때 하는 이야기고.’

이처럼 멋모르고 까부는 것은 어설프게 알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더 싫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구분 못하는 녀석들이 더 잔인하다.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만 정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도 불사한다.

마치 카미카제(자살특공대)가 그랬던 것처럼.

“감히 나를, 학생회를 협박해!”

“인정하는 거냐? 난 그냥 소문 얘기한 건데.”

“그래, 인정하면 어쩔 건데. 학교에서 알아도 방법 없어. 니 말을 누가 믿어준다고.”

총무가 말했다.

“회장, 빨리 끝내자. 귀찮다.”

“알았어. 힘도 없는 게 공부 좀 한다고 선배랍시고 까불면 이렇게 되는 거야. 새끼야. 꿇려.”

‘배짱 좋네. 그 배짱. 어디까진지 확인하자고.’

앞으로 내밀었던 팔을 내렸다.

그동안 한기 녀석과 흘렸던 땀의 성과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확인할 시간 동안 상대가 버텨 줄지는 의문이지만.

관장의 조카인 그는 아마추어 권투 챔피언이었는데, 지금은 MMA로 종목을 바꾸는 중이었다.

한기가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형. 땀은 배신하지 않아요.’

총무가 내 얼굴로 주먹을 뻗었다.

“아씨,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턱.

나를 향해 뻗어오는 주먹을 잡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지금 내가 한기 녀석의 스파링 파트너를 하고 있거든.’

전직 권투선수였던 한기의 잽에 비하면, 총무의 주먹은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일류 격투가의 주먹질만 아니라면 눈에 보일 정도로 훈련을 했었고, 특히나 외국이라도 간다 치면 특훈이라면서 나를 괴롭혔었다.

‘형, 외국 나가서 맞고 다니면 호소할 곳도 없어요’라면서 말이다.

“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내가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지?”

‘얼굴로 날아오는 거 뻔히 아는데, 아마추어도 못 되는 녀석의 주먹을 못 잡으면 난 등신이게.’

총무를 향해 잽을 날렸다.

기습적인 공격 한 방에 총무의 코뼈가 내려앉았다.

곧이어 양 콧구멍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당황한 녀석에게 웃어주면서 로우킥을 날렸다.

뻑.

어찌나 찰지게 들어갔는지, 방 안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였다.

총무의 일그러지는 얼굴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두툼한 눈두덩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방어를 해야 할 자유로운 오른손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허벅지를 감쌌다.

‘흥. 완전 초보구만.’

아래로 주먹을 뻗어 두툼한 턱을 날려 버렸다.

‘금은 안 가도 한동안 음식 먹기 어려울 거야.’

뚱보는 ‘헉’ 하는 짧은 신음성과 함께 입을 벌린 채 쓰러져 버렸다.

일어서려고 버둥거렸지만, 고통만 늘일 뿐이다.

그대로 텅 빈 녀석의 복부를 짓밟아버렸다.

“꾸웨엑.”

방 안에 역한 냄새가 퍼졌다.

회계가 공격 자세를 취하고 멍하게 나를 쳐다본다.

“난 누차 말했다.”

“네, 네? 뭘요?”

‘맞는 거 보니까, 존댓말 나오지.’

“정당방위라고.”

회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맞지? 정당방위?”

녀석을 향해 집게손가락을 움직였다. 까딱까딱.

‘안 오면 내가 가지. 그런다고 덜 아프지 않거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사각 링보다 작은 방에 도망칠 곳은 없다.

녀석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서, 선배님.”

다가가는 동안 놈의 등이 벽에 닿았다.

놈의 어깨를 짚었다.

“진작 그러지 그랬냐?”

놈의 턱에 엘보우를 박아 넣었다.

턱이 팔꿈치에 맞은 반동으로 맞은 벽에 부딪혔다.

“커헉.”

‘이 새끼, 뇌진탕 걸리는 거 아냐?’

하지만 이미 시작한 싸움, 확실하게 밟아야 했다.

놈의 복부에 니킥을 꽂아 넣었다.

“큭.”

다시 한 번 복부를 뚫을 것처럼 강하게 꽂았다.

“우웩!”

벽이 쓰러질 듯 흔들거린다.

‘거봐. 이렇게 약하다고.’

회계가 무릎을 꿇고 토악질을 해댔다.

‘남은 놈이 누구더라.’

학생회장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였다.

아까의 비웃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겠지.’

쓰러진 둘을 가리키며 그를 보았다.

“봤지. 분명히 정당방위라고 했다.”

팔짱을 풀 여유도 없었는지,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놈에게 다가갔다.

제일 꼴 보기 싫은 놈이고, 봐준다고 해도 보복이나 생각할 놈이었다.

“회장아.”

“선배님, 저는 안 덤볐는데요.”

“응.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원래 패거리는 연대책임이고, 대가리가 제일 많이 맞는다.

“네?”

뻑.

놈의 왼쪽 허벅지를 발로 찼다.

“크아…….”

뻑.

다시 찼다.

약간의 개인감정이 섞였겠지만, 지금 나는 굉장히 냉정하다.

이번에는 왼쪽 허벅지를 가격했다.

뻑. 뻑.

놈이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회장아.”

이를 악물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럴 줄 알았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사실은 아까부터 으쓱거리는 어깨가 보기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관절기로 부숴 버리고 싶지만 참았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인간인양 행세하면, 정말 역겹거든.’

꿇은 놈의 어깨에 로우킥을 찼다.

빡.

옆으로 튕겨 나가 동료가 있는 곳까지 주르륵 밀려났다.

그리고…….

밟았다.

내 분노가 풀릴 때까지.

방문이 벌컥 열렸다.

경호였다.

“성훈 선배님, 괜찮으…….”

화난 얼굴로 말했다.

“닫아!”

“네!”

쾅.

오 분 정도가 지났을까?

“후.”

그동안 비명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원래 아프면 비명 소리 안 나온다. 나오는 건 타격 당시의 신음 소리뿐이었다.

돈 몇 푼 떼어먹기 위해서 사람 생명으로 장난치는 놈들에게 용서라는 말은 불필요한 단어였다.

“으윽.”

고요한 가운데 신음 소리만 울려나왔다.

밖을 향해 말했다.

“밖에 누가 있어?”

경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선배님.”

“수건 물에 적셔 가지고 와라.”

경호가 대답과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앉아라.”

앞의 세 놈은 신음만 할 뿐, 미동이 없었다.

‘맞을 땐 잘도 저항하더니.’

“아직 덜 맞았네.”

딸칵.

손잡이의 잠금쇠를 걸어 잠갔다.

***

경호가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왔을 때, 방 안에서는 다시 발길질 소리와 신음 소리가 어우러져 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손잡이를 살짝 돌려보았다. 잠겨 있었다.

‘휴.’

가끔씩 학생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간부들이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폭력을 자행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겨레와 민족의 해방과 민주화를 부르짖는 자들은 선배, 혹은 선임들의 그런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은 대물림되었다.

그 틀을 벗어나려고 하면 학교를 자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훈 선배님, 무서운 건 알았지만 아주 제대로 밟으시네.’

꼴통으로 유명했던 한석이 성훈과 같은 팀이 되고 부터는 모범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과내에는 소문이 분분했었다.

꼴통 바로잡기는 죽도록 패는 것밖에 없다고.

경호 자신도 먼발치에서 보았지만, 오로지 보이는 것은 한석 선배가 대들다가 맞는 모습뿐이었다.

그것도 얼마 전에 가까이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외국 갔다가 돌아오셨을 때도 그랬지. 보자마자 한석 선배 뒤통수를 갈기실 줄이야. 거기다가 그 로우킥은 또 얼마나 강했던지.’

건물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분노의 한 방이 아니었던가?

‘한석 선배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했지만, 그렇게 맞고도 멀쩡하게 다닐 정도면 대체 얼마나 맞았다는 말이야?’

***

“회장아, 나도 아무런 근거 없이 MT를 철수하자는 말은 안 한다.”

무릎 꿇은 학생회장이 의자에 앉은 나를 올려다본다.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한 번만 더 덤벼라. 그땐 진짜 지옥을 보여줄 테니까.’

그를 노려보며 다리를 꼬았다.

학생회장이 움찔했다.

“눈깔아.”

“네, 선배님.”

“한 교수님께 가서 물어보자. 건물에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시면 나도 아무 말 안 하겠다. 됐지?”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라. 난 어디 계시는지 모르니까.”

셋이 절뚝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고 있다.

“똑바로 안 걸어? 어디서 엄살이야?”

나의 짜증 난 목소리에 셋이 동시에 허리를 폈다.

경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어쩌시려고.”

“뭘?”

“보복 들어올 텐데요.”

“흐흐. 제발 그래 달라고 빌고 있다. 그때는 진짜로 죽여 버릴 테니까. 한 번은 봐주지만, 두 번은 못 봐주지.”

앞서서 걸어가는 셋을 보며 경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깽값 무세요.”

“왜 돈 들어갈까 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흥. 그런 돈은 안 아깝다. 돈 주고 더 때리지 뭐.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은 아주 죽여 놔야 돼.”

돈은 또 벌면 되지만, 저런 놈들 때문에 죽어간 생명은 되돌릴 수 없다.

‘한 교수에게도 미래의 진실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라면 명확한 판단을 내려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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