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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40화 (140/427)

건축의 신 140화

MT(02)

네 시간이 지나서야 속초에 도착했다.

그곳을 거쳐서도 한참을 들어갔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니 지도를 보면서 찾아가는 중이었다.

‘적당한 곳에서 놀다오면 되지. 망할 자식!’

학생회장을 욕하면서 운전을 했다.

지도책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웠다.

‘주변에 물어볼 만한 곳이 있을까?’

어떻게 펜션을 만들어도 이렇게 산중에 만들었을까?

호연지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꼭 이렇게 산중에 와야 한다고 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추억거리가 산에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하긴. 나도 귄터처럼 그런 산중에 살고 싶어 했으니.’

지나가는 길에 마을회관 앞에 담배를 피우는 노인이 보였다.

얼른 내려서 그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반백의 노인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대뜸 이 마을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뭔가? 물어 보게나.”

“파라다이스 펜션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는 눈치인지,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뭔 펜션?”

“파라다이스요.”

생소한 이름 탓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야 했다.

‘가다가 길 물어볼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작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던데요.”

“김 씨네 과수원 터를 말하는 건가?”

그는 혼잣말을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회관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자신보다는 젊은 노인을 데리고 나왔다.

“이 친구가 이장이야. 이 동네에서는 모르는 게 없지.”

노인은 나를 대신해서 설명을 했다.

“거기 과수원에 건물 올린다더니. 그거 펜션인가 하는 거 맞지?”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산에 올라가다가 봤는데, 간판은 세워놨더라고요. 자네가 말한 이름인지는 긴가민가하네. 어쨌거나 이 동네에서 새 건물은 그것밖에 없어.”

“그거 벌써 다 올린 거야?”

“껍데기는 다 올라갔죠. 그런데 아직 허가는 안 받았을 텐데.”

이장의 말에 노인이 투덜거렸다.

“쯧쯧. 지 애비가 그 과수원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들이라는 놈은 애비 묘도 세우기 전에 건물 짓는다고 땅을 밀지를 않나. 돈독이 올라가지고. 망조다. 망조.”

“어르신. 어디 그 집만 그렇겠습니까? 쯧쯧.”

혀를 차던 이장이 손짓을 하며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 오르막 따라 죽 가다 보면 새로 만든 샛길이 있을 걸세. 간판도 있으니까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인사를 하고 차로 돌아왔다.

마을회관에서도 10분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이었다.

길은 또 얼마나 꼬불꼬불하던지, 레이싱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오르막을 다 올라서야 간판이 보였다.

<파라다이스 펜션 주차장 100m>

잠시 차를 세워두고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올라온 길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눈이라도 쌓이면, 차 못 내려가겠는데.”

이 길을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이런 데를 어떻게 찾은 거냐?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또 5분정도를 걸어 올라갔다.

“민수가 미친놈이라고 욕한 이유가 있었네.”

시간은 벌써 9시가 넘어 있었다.

올라가니 널찍한 마당에 학우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나를 아는 듯했다.

‘누구지?’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학교에서의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작년 MT 때도 참석을 안 했었네.’

녀석이 내게 다가오더니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성훈 선배님. 2학년 과대 이경호입니다.”

“응. 반가워.”

이름을 아는 거 보니 내 소개는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경호는 반가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이번에도 참가 안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렇게 뵙게 돼서 기쁩니다.”

“날 알아?”

2학년이면 작년에 신입생이었을 텐데, 나는 그들과 어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선배님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성훈 선배님 삼인방은 유명하잖습니까? 에펠탑도 있고, 구조대전 대상 건도 있고 말입니다.”

‘흠…….’

생각을 해보니 알 만도 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덩치가 큰 결과물들을 만들게 되었고, 또 그게 학교에 전시까지 되지 않았던가.

에펠탑도, 스타타워 모형도 말이다.

경호가 말을 이었다.

“이번 신입생 대다수가 에펠탑과 구조대전 모형을 보고 들어온 겁니다.”

그의 말에 괜히 겸연쩍어졌다.

“하하. 내가 그렇게 유명했었냐?”

“네, 저 다음 해에는 한 교수님 세미나 지원할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 아직 일 년이나 남았다고.’

그리고 나는 4학년이 되면 학교에 붙어 있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가 말할 틈도 없이 뒤를 보며 학우들을 불렀다.

“야! 여기 김성훈 선배님이시다. 와서 인사드려라. 알지. 에펠탑!”

그 말과 동시에 어린 친구들의 눈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우르르 몰려와서는 인사들을 해댔다.

“김성훈 선배님, 뵙고 싶었습니다. 1학년 과대 김OO입니다.”

“안 오셔서 섭섭했습니다. 2학년 이XX입니다.”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었나? 하긴 수업 말고는 일체 학교 활동은 안 했으니, 친해질 기회도 없었지.’

그 뒤로도 ‘김OO’, ‘이XX’라는 녀석들과 비슷한 인사들이 계속 이어졌다.

누가 누구인지 하나도 기억을 못할 정도였다.

내게 필요가 없거나, 미인이 아니면 기억을 하지 않는 몹쓸 뇌 용량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가오지 않는 그룹도 눈에 띄었다.

그들에게는 경계의 눈빛까지 살짝 어려 있었다.

“경호야. 쟤들은 뭐냐?”

그가 피식 웃었다.

“저 친구들은 민수 선배를 더 존경하는 녀석들입니다.”

“크크큭.”

‘이건 뭐냐? 파벌이 생긴 거냐? 나하고 민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경호야. 어제도 이랬냐? 민수한테도?”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히키코모리, 샤이가이로 불리는 민수였다.

녀석은 필요할 때는 말을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아직도 많이 껄끄러워했다.

“네, 민수 선배 팀에서 인사를 했었습니다.”

“민수가 뭐래디?”

경호도 그 모습을 봤던 모양이다.

“그냥 조용히 숙소로 도망치시던데요. 그래도 저녁에 술자리 하면서 많이 친해졌습니다.”

경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했다. 우리 민수 잘 좀 부탁한다.”

경호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고, 지금 하는 것을 보니 나름의 리더십도 있는 친구였다.

‘굳이 한석이와 비교하자면 좀 더 적극적이고, 행동력이 있다고 할까?’

경호가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선배님, 한석 선배파도 있습니다.”

“걔들은 뭐 하냐?”

“못 봐서 섭섭하다고, 다들 술 먹고 뻗었습니다.”

‘가지가지 한다.’

“한석이 휴가 나오면 볼만하겠네.”

100일 휴가 나와서 아가씨들도 아니고, 술꾼들 사이에서 술만 퍼마시다가 군대로 돌아갈 녀석의 미래가 내 눈에 보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지만 안 봐도 아는 것도 있지.’

잠시 새내기들의 생기발랄한 기운에 내 목적을 잊고 있었다.

‘이런 녀석들 눈에 눈물 나게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경호에게 물었다.

“참! 학생회장 봤냐?”

“네,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이후 일정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일정이 뭔데?”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족구나 줄다리기. 그런 겁니다.”

‘나름 책임감도 있고. 괜찮은 녀석인데.’

인솔을 해온 놈이 본분을 망각하고 술 퍼마시고 잠이나 자다니, 짜증이 살짝 났다.

“그 자식도 어제 술 많이 마셨냐?”

“네, 아무래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자리다 보니.”

“너는?”

“전 원래 술 셉니다.”

호언장담하는 녀석이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형이랑 한잔하자.”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경호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녀석의 안내를 받으며 학생회장이 있다는 방으로 갔다.

가는 길에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큰 건물 하나에 작은 건물 두 개, 총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펜션이라기보다는 교회 수련회의 용도에 맞을 듯한 건물이었다.

철제 구조에다가 외벽에는 샌드위치 판넬을 붙여서 만들어 놓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MT 용도로는 괜찮겠네. 튼튼하기만 하다면.’

가면서 물었다.

“경호야. 우리가 세 동 다 쓰는 거냐?”

“아뇨. 두 동을 우리가 사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예약했다고 하던데요.”

“언제 오는지는 모르고?”

“네, 그것까지는 못 들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구조는 똑같은데. 지역도 얼추 비슷하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이 큰 건물이 무너지면, 그 아래 깔린 사람은 무조건 죽거나 다친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던지, 기둥이 생각보다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대들보도 그렇게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데.’

그 건물이 아니라고 해도, 내 생각에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니면 다행이지만, 위험은 일단 피하는 게 먼저지.’

위아래를 둘러보며 가는 사이에 방에 도착했다.

***

“크, 술 냄새.”

학생회 간부들과 숙소에 들어와서도 술을 먹었던지, 방 곳곳에 양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술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쯧쯧.”

나도 한때는 술을 이겨 보고자 기를 쓰며 마셨던 적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술이 강한 편이었기에, 소주 5병을 먹어도 멀쩡한 정신일 때가 많았다.

당연히 목표는 열 병 혹은 그 이상이었다.

‘미친 짓이었어. 죽을 때도 취해 있었지.’

여전히 술은 좋아했지만, 술 먹은 다음 날 몸에서 풍기는 냄새는 싫었다.

내 몸에서 나는 것도 싫은데, 꼴 보기 싫은 녀석의 냄새는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경호야. 깨워라.”

학생회장이 부스스 눈을 뜨며 말했다.

“어? 성훈 선배 왔네요. 안 오는 줄 알았더니.”

녀석의 입에서 똥냄새가 났다.

‘맘 같아서는 패버리고 싶네.’

지난 삶의 소문만으로 눈앞의 학생회장을 어떻게 할 명분은 없었다. 정치권으로 갔다고 다 사기꾼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학생 때부터 학생회의 공금을 유용하고, 총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뒤로 로비를 했다는 등등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었고, 또한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현상들이 짜증날 뿐이지.’

학생들에게 10만 원씩 거둔 돈을 가지고, 기껏 해야 곡식창고로 쓰일 만한 곳을 빌렸다는 게 짜증이 나는 거였다.

‘이장은 아직 영업허가도 안 받은 것 같다고 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애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 말이다.

‘괜한 혼란을 부추길 필요는 없지.’

“경호야. 나가 있어라.”

경호는 나와 학생회장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군말 없이 나가 버렸다.

“야, 이 건물 눈 오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애들 챙겨서 나가는 게 어떠냐?”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난다.

“선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멀쩡한 건물이 왜 무너져요?”

그의 말에 벽을 툭툭 치면서 물었다.

“넌 이 스티로폼 판넬이 멀쩡해 보이냐?”

“어젯밤에 그렇게 바람 불어도 멀쩡했다고요. 그 소리 하시려고, 예까지 온 겁니까?”

회장이 주전자에 입을 대며 중얼거렸다.

“거참, 실없는 선배네.”

실핏줄이 빠직 하고 터지는 듯 이마가 따가웠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왜 그런 건지 해명을 요구하든지, 혹은 듣고 나서 반려를 하든지, 보통은 그렇지 않던가?

‘이 새끼. 완전 썩었네.’

회장의 옆의 간부들을 툭툭 치며 깨웠다.

“야. 총무, 회계. 일어나 봐라. 성훈 선배가 이상한 소리 한다.”

숙취에 괴로운 듯 같이 누워있던 둘이 일어나 앉았다.

“뭔데? 회장.”

일어난 회계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성훈 선배네. 요새 억수로 나간다면서요?”

총무가 그 말을 받으며 웃었다.

“그러게. 씨발. 누구는 민주화 운동 하느라, 쌍권총을 찼는데 말이야. 좋겠수.”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에 빈정댐이 섞여 있었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들이 으름장을 놓네. 어이가 없어서.’

내 앞의 놈들이 학생인지 건달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학생회장은 더 가관이었다.

“야, 그래도 선밴데, 그러면 쓰나?”

그러면서 옆의 놈을 슬쩍 부추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학생회장도 권력이라 그거냐? 떠받들어 주니까, 뭐라도 된 줄 아는 건가?’

한번 ‘왕놀음’이라는 병에 걸리면 죽어야 고친다.

항상 휴대하고 다니던 볼펜의 스위치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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