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39화 (139/427)

건축의 신 139화

MT(01)

새내기들의 등장으로 온 학교가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과 학생회장이 신입생들을 모아놓고 MT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3, 4학년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1, 2학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IMF라는 직격탄을 맞은 우리 세대에게 캠퍼스 라이프란 배부른 소리였다.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94학번으로 민수와 동기였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아냐?”

“어딘데요? 회장님?”

“작년 말에 새로 지은 펜션이라 이 말씀. 완전 새 거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찾은 건지 알아? 이박 삼일 동안 설악산의 정기를 맘껏 마시고 돌아오자고!”

‘쯧쯧. 공짜로 구한 거냐? 돈 주고 구해놓고는! 하여간 제 자랑은.’

그 말을 듣는 신입생들이 기대감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을 것 아닌가?

‘대학 가면 네 맘껏 놀아라.’

환호하는 학생들을 보며, 학생회장이 말했다.

“더 좋은 소식을 알려줄까?”

“뭡니까? 회장님.”

새내기들이 한 목소리로 회장에게 물었다.

그는 어린 녀석들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가는 펜션에 모 여대에서 MT를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와!”

남자들만 있는 건축과 MT 현장이 들끓어 올랐다.

“학우들의 파라다이스가 바로 그곳이다. 나를 따르라.”

‘저 인간, 나중에 정치권으로 갔다더니. 말은 잘하네.’

그는 운동권 출신답게 신입생들을 선동하며, 대절해 온 버스에 차례대로 태웠다.

“구호. 따라한다. 최강!”

아직 멋모르는 신입생들이 회장의 선창에 화답했다.

“공대!”

“무적!”

“건축!”

내가 지나오는 내내 회장의 자기 자랑이 이어졌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하.’

한 교수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도 3학년이 되어 정식으로 세미나 식구가 되었다.

그래 봐야 세미나 인원은 민수와 나 둘뿐이었지만.

한석이는 군대를 갔다.

내가 서울의 현재건설 본사에 있는 사이, 민수와 한 교수가 송별파티를 해줬다고 한다.

민수도 MT에 참석을 하는지, 가볍게 놀러가는 차림이었다.

“형. 한석이가 형 못 봐서 섭섭해하던데요.”

녀석의 너스레가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뭐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잘 다녀오겠지.”

“100일 휴가 나오면 술 사 달라던데요.”

“녀석. 몸 건강히 다녀오기만 하면 술이 대수겠어? 사고 치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한 교수도 말끔한 세미 정장 차림으로 들어왔다.

“성훈아, 진짜로 안 갈 거냐?”

“네, 안 간다니까요. 가서 술 퍼먹고 놀 시간에 저는 공부나 하렵니다. 교수님이나 실컷 노시다 오십시오.”

“이게 어디 놀러가는 거냐? 다 일의 연장이지.”

“거기 눈 많이 오는 동네니까, 운전 조심하시고요”

“일기예보 보니까, 이번 주는 눈은커녕 날씨만 좋다더라. 나이도 어린 녀석이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은 거냐?”

‘그 일기예보가 문제라고요.’

우리나라 기상청은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을 많이 한다.

“어쨌거나 조심하시라고요.”

한 교수가 피식 웃으며 내게 열쇠를 넘겼다.

“술 마실 건데, 차를 왜 가져가냐? 조심해서 잘 다뤄라.”

“휴, 이제 조용하네.”

3층짜리 학과 건물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현재에서 가져온 도면을 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해외 전화네. 누구지?’

-성훈?

낯설지 않은 프랑스 억양의 독일어였다.

“어? 소피아. 잘 지냈어?”

-안 받을 줄 알고 걱정했어요. 성훈도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듣는 소피아의 목소리는 밝았다.

부자간의 감정싸움은 잘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고집 센 두 남자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가!

“응. 귄터는 잘 있고?”

-네, 할아버지와 아빠는 잘 화해했어요. 성훈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나에 대한 감사로 시작된 그녀의 수다는 끊임없이 이어지더니 순식간에 10분이 흘러버렸다.

귄터가 회사로 돌아왔고, 그가 만든 흔들의자 겸 요람을 응용해서 신제품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다는 둥, 회사 이름을 ‘Germany Craft’로 바꾸었는데, 훨씬 귀티나지 않느냐는 둥 하는 이야기를 했다.

‘흠. 여자는 다 이런 건가? 제발 결론을!’

10분이 지나가자 나도 인내의 한계에 봉착했다.

“소피, 내가 좀 바빠서 그런데 결론을 좀…….”

-어머. 무슨 남자가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요!

순간,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다.

‘야! 10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들었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수화기를 내려놓을 걸 그랬다.

‘중간중간에 ‘듣고 있어요? 성훈?’이라는 말만 없었다면, 정말로 그랬을 텐데.’

소피아는 천상 여자였다.

“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한숨을 내쉬며 성질을 죽이고 말했다.

-눈이 얼마나 왔는지 알아요?

‘내가 봤어야 알지!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눈은 또 왜 나오냐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피아의 말이 이어졌다.

“놀라지 말아요. 얼마나 눈이 많이 왔던지, 할아버지 오두막 한 귀퉁이가 내려앉았다니까요. 대단하지 않아요?”

누군가 말했다.

남성의 전화 통화가 정보의 전달이라면, 여성의 통화는 감정의 전달이 목적이라고.

“그래요. 사람들은 안 다쳤어요?”

내 목소리가 약간 무덤덤해 들렸었나 보다.

-사람들? 내 걱정을 먼저 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

톡톡 튀는 목소리가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귄터가 회사로 돌아갔다면 거기는 아무도 없었겠네.’

혹시라도 다쳤다면 지금쯤 병원에 누워 있을 것이고, 전화도 못하겠지.

다치지 않았으니 이렇게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하는데, 결론을 뻔히 아는데.

‘지금 상황에서 이 말을 했다가는 미움을 받겠지? 후.’

“저런 소피아, 많이 다쳤어요? 정말 그렇다면 내 마음이 많이 아플 거야. 아니지?”

최대한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연기가 통했던 모양이다.

-호호. 걱정 말아요. 안 다쳤으니까, 전화를 했죠.

‘으극! 내 말이!’

10분째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면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소피아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성훈,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네.’

눈이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다.

비는 흘러내리지만 눈은 쌓이게 되고, 폭설이 내리면 그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얼음이 되어버린다.

그것을 건축에서는 적설하중(積雪荷重)이라고 하며,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는 설계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오두막이 무너질 때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끔찍한 사고?’

어제 느꼈던 찝찝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후 3시가 되어서 민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저희들 잘 도착했어요.

“민수야. 날씨는 괜찮니?”

괜한 노파심이기를 기도하며 물었다.

-여기 날씨가 장난이 아닌데요. 칼바람 불어요.

“오늘 날씨 좋다고 하던데?”

“네, 대관령 넘어올 때만 해도 좋았는데, 도착하니까 추워지네요.”

“쯧. 고생이 많다. 어쩌겠냐. 이미 갔는데. 여대생들이랑 잘 놀다 와라.”

-여대생은 무슨 여대생이에요? 이 촌구석에 올 사람들이 누가 있겠어요?

민수도 여대생을 만난다는 희망이 있었던 것인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투정에 웃으며 말했다.

“회장이 구라 친 거냐?”

-그런 것 같아요. 그 자식. 미친 거 아닌가 싶어요. 이게 무슨 파라다이스예요. 혹한기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미친 놈!

***

“벌써 자정이네.”

방으로 돌아와 책을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일 일기예보나 확인하고 자야겠다.’

TV를 켰다.

정장 차림의 아나운서가 말했다.

“갑작스레 내려온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내일 저녁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강원권에는 폭설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며, 일부 산간지역에는 폭설 주의보가 발효 중입니다.”

이번 주 내내 날씨가 좋을 거라면서!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것이 날씨라는 것은 알기에, 누구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아, 정말 신경 쓰여 죽겠네.”

지난 삶에서 돌아오기 얼마 전, 경주의 어느 동네에서 학생들이 MT를 갔다가 죽었다는 뉴스가 계속 떠올랐다.

딱히 강원도에서 폭설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는지 떠올려 봤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헉!”

졸다가 기겁을 하고는 벌떡 깼다.

“아, 맞다!”

1999년 3월에 강원도에 갑작스런 폭설이 내렸었다.

“그때, 새로 지은 펜션이 무너져 내렸었어.”

다행이라면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관계로 사용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인명피해가 없었으니, 크게 뉴스가 되지도 않았었지.”

하지만 건축 잡지에서는 다루어졌었다.

폭설이 건물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하며, 건축 기준을 맞추지 못한 건물이 어떤 피해를 받게 되는지에 대한 예시로 말이다.

“이게 지난 삶의 정확한 기억인지, 아닌지는 몰라.”

그래도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것보다는 직접 가보는 것이 나았다.

가서 직접 보면 무슨 해결책이라도 나올 것 아닌가!

꿈꾼 거라면 또 어떤가?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더 다행이 아닐까?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전화를 걸었다.

“민수야. 자냐?”

졸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형. 무슨 일이세요?

“일기예보 봤냐?”

-아뇨.

다들 지금쯤 한참 술 마시고 뻗어 있을 텐데, 뉴스 따위를 봤을 리가 없었다.

“교수님은?”

-옆에서 주무세요.

“깨울 수 있냐?”

-안 될걸요. 술 진탕 드시고, 2시에 잠드셨어요.

‘학생들 인솔해서 간 양반이 학생들이랑 똑같이 놀고 있냐! 으이구.’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당장 주소 불러라.”

-왜요? 오시게요?

“응. 좀 걸리는 게 있어서 가 봐야겠다.”

주소를 받아 적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내 안의 성훈이 물었다.

‘가서 뭘 할 건데?’

“몰라. 일단 가 봐야지. 그럼 알면서도 내버려 두냐?”

‘흥. 오지랖은. 가서 펜션이 무너진다고 말하려고?’

뜨끔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가서 말해봐. 바로 정신병원으로 끌려갈 테니.’

그의 말에 반박하듯이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가서 불이라도 지를까?”

불이 나면 사람들이 알아서 대피할 것이 아닌가?

녀석이 나를 비웃었다.

‘흐흐흐. 새로운 삶에서는 방화범이 되고 싶었던 거냐?’

“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딴죽만 거는 주제에. 가만히 입 닥치고 있어!”

나 자신에게 짜증을 내면서 밤길을 달렸다.

미래를 안다고 한들, 그 기억이 항상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지난 삶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내 인생을 이렇게 진취적으로 개척하고 있는데, 내 주변의 다른 것들은 얼마나 바뀌었을 것인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도 가늠하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왜?’

나로 인해서 변화되는 세상이라는 것.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달라지는 것은 모두 내 책임이야.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니라!’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미래를 안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우, 폭설을 막아야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데,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정 안 되면 진짜 불이라도 내버리지 뭐.’

룸미러에 ‘어떻게 불을 내면 들키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룸미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야, 김성훈! 아직 확인도 안 했잖아!’

일단은 내가 아는 그 건물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오른발에 힘이 들어간다.

부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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