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37화
스타타워 프로젝트(03)
“미리 간다고 연락을 할 걸 그랬습니다, 사장님.”
“아닐세. 괜히 긴장시킬 필요는 없어. 잠시 인사나 하고 가려는 건데.”
불이 켜 있는 파티션으로 가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부장인 것 같습니다. 요즘 연일 밤샘 작업을 한다고 하더군요.”
사장이 검지를 입에 대었다.
“쉿.”
비서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박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사장님은 심계가 깊으신 분일세.”
사장이 비서를 바라보았다.
‘김 비서,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마침 애매할 때 온 것 같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간단히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사장은 궁금해졌다.
직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들어볼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비서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건너편의 파티션으로 들어갔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들어나 보자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비서도 상황이 이해가 갔다.
사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던가?
***
“전 오히려 사장님께서 주도적으로 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내심 아쉬웠습니다.”
양 부장이 성훈의 말에 이견을 말했다.
“성훈 군, 그건 꼭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돼. 다른 생각이 있으시겠지. 사장님은 심계가 깊으신 분이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납득을 할 것이 아닌가?
조용히 양 부장의 말에 집중했다.
양 부장은 계속 제주도에 나가 있었지만, 본사의 상황에는 계속 귀를 열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전에 자네 기숙사에 다녀오신 다음에 이사들을 모두 소집하셨었지.”
성훈도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사실은 서 전무를 알래스카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 파다해.”
“설마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지! 그런데 욕조 하나를 뜯어보고, 서 전무를 알래스카로 날려 버렸다는 건 이해가 되나? 고작 서 전무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하긴 그것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사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서 전무를 밀었지만, 어느 순간 서 전무가 부사장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해 버렸던 거지. 그래서 사장님이 둘 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이 돌고 있다네.”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을 이용해서 휘하의 이사들에게 정신 재무장을 강제한 것이니 말이다.
“그 뒤로 한동안 이사들이 바짝 긴장해서 사장님의 눈치를 봤어야 했지.”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는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군요.”
양 부장이 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자네가 지은 그 건물이 가치가 없었다는 건 아냐.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으니 가능했었겠지.”
‘사장이 옆에서 듣는다면 흐뭇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장님의 목적이 국민에 대한 현재건설의 홍보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현재의 내부 상황을 성훈에게 알려준 사람은 곽 이사였다.
“그렇다고 치고 말이야.
“만약 제가 사장님이라면, 이 건물에 대한 모든 건을 오픈해 버릴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라디오도 보이는 라디오를 한다고요.’
물론 청취율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꽤나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에 대해, 건축 전반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 삼풍과 성수대교. 심지어 IMF마저도 건설회사의 몸 부풀리기 때문에 거품 경제가 생겼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니 말일세.”
건설이란 큰돈이 움직이는 사업이니, 이것에 엮인 비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건물을 짓고 있다. 일고의 부정부패 없이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고, 건설 과정을 보여주는 것 말입니다.”
양 부장이 말했다.
“어허이, 이 사람아. 생각은 좋지만, 그래서는 공사 진행이 안 돼!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인가?”
그의 반론에 성훈이 피식 웃었다.
“누가 현장을 오픈하자고 했습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고 중간 과정을 찍어서 외부에 홍보수단으로 쓰자는 거죠.”
폐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공사를 공개적으로 보여주자는 말이었다.
공사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진행하는 것이 펜스를 세우는 것이다.
외부와 단절되며, 외부인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펜스가 건축을 폐쇄적으로 보이게 한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양 부장은 여전히 부정적인 모양이었다.
“음. 하지만 효율을 중시하는 사장님이시라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실 거야.”
“일단 물어나 보자고요.”
“물어보나 마나일걸. 그리고 이사들을 거쳐서 결재가 올라가야 하는데, 그런 발상을 결재 올릴 이사들은 없다고 봐도 돼. 그때 이후로 이사들이 얼마나 몸 사리기 바쁜지 아나?”
***
‘왜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결정을 하는 거야?’
처음에는 기분이 흐뭇해졌던 사장이었다.
남의 눈치 안 보기로 유명한 양 부장이 자신을 그렇게 용의주도한 사람을 봐주다니 말이다.
이렇게 소문이 퍼져 있다면, 사장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커져서, 이사진들도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장이 비서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지금 양 부장이랑 얘기하는 녀석, 안전모지?”
비서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사장님이 하시는 일에, 뭐? 아쉽다고!’
사장은 지금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요즘 이사들 분위기가 어떤가? 저들 말처럼 경직되어 있는 것인가?”
김 비서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서 전무가 빠지고 나니, 황 전무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군.’
“일단 녀석이 무슨 소릴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
일전에 황 전무에게 들은 바로는 안전모가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
“실제로는 우리는 평범하게 일을 진행하면서도, 오픈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요. 홍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홍보의 주된 목표란 원하는 상대에게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선별적으로 골라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그것을 지원할 팀이 필요합니다.”
“자네는 마치 사장님의 의중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처음의 의도가 보인다면, 그 결과물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의 디자인은 산다는 것, 자체가 홍보의 목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성훈의 생각이었다.
‘구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필이 되었었지. 실제로 홍보 없이 공사만 진행할 생각이었다면, 유명한 건축가의 디자인을 구입했겠지. 유명 건축가의 디자인을 사왔다는 것 자체가 큰 홍보일 테니까.’
하지만 현재에서는 ‘한국 건축의 미래를 주도하겠다’라는 거창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사장님의 실제 의도는 이것이 아닐까요?”
“비록 학생들의 작품일지언정, 그 가치만 충분하다면 구입한다. 그리고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있다. 우리 현재는 믿을 만한 기업이다. 그리고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다.”
‘대충 홍보하고 끝낼 거라면, 내 디자인을 구입했을 리가 없어. 난 그 홍보를 최대한 이용해서 내 작품을 홍보해야 해. 건축에서도 명성은 무시할 수 없거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말씀을 성철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었다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졌을 것인가? 아니, 의미를 가질 수나 있었을 것인가?
비단 명성만이 아니라, 그분의 삶의 철학이 담겨있는 말이겠으나, 그 명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대충 설계하고 끝낼 거라고 예상했다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디자인 변경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분명히 외부에 보이기 위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사장님도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원하실 거라는 말이죠.”
양 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일세.”
성훈이 말을 이었다.
“예상되는 결과물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팀입니다. 또한 어느 부분이 가장 눈에 뜨일지, 어떤 부분이 국내 및 해외 건축계에 어필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도 우리 팀이 되겠지요.”
“자네 말처럼 홍보가 주된 목적이라면 그렇겠지. 지금 현 단계에서 우리처럼 이 디자인에 잘 아는 사람은 없지.”
실제 물건을 만드는 사람보다 그것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자넨 어떻게 프로젝트팀을 만들 생각인가? 구체적인 안이 있나?”
“사람을 골라둔 것은 이미 말씀을 드렸고, 안을 진행하는 것은 곽 이사님께 부탁을 드릴 겁니다.”
“하지만 곽 이사는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는 절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야.”
성훈의 생각도 그랬다. 아마도 곽 이사는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극히 단기적인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알리에게 호텔 공사 건을 협상할 때도 그랬었다.
하지만 그 수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리에게 그 말을 듣지 않았었다면, 성훈은 꼼짝없이 곽 이사에게 이용당했을 것이다.
“곽 이사님을 설득하는 것은 저에게 맡겨 주시죠. 이 일은 어차피 제 일이니까요.”
양 부장이 물었다.
“사장님께서 이 일을 승낙하실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건 만드는 사람에게 물건을 물어보지 않고, 다른 홍보팀에게 일을 진행시킨다는 건 바보가 할 짓이죠. 이게 만약 아파트 분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구매 고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판매자가 될 테니까요. 구매할 능력이 되는 고객들만 상대하면 되거든요.”
당연한 말이지만, 돈이 없어서 구입도 못할 꼬마들에게 아파트 홍보를 할 멍청이는 없다.
물론 홍보가 잘 되면, 이 ‘스타타워’라는 사무용건물도 분양이 잘될 것이다.
“하지만 제 예상이 맞는다면, 사장님이 팔려고 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현재 건설의 이미지이고, 우리가 홍보하려는 대상은 구매자가 아니고, 건축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자, 우리나라 사람들 전부가 되는 거잖아요.”
“자네 예상과 맞지 않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겁니다. 지금은 이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
“사장님을 직접 찾아뵐 생각입니다. 하지만…….”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사장님께 약간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왜? 회사 내부의 상황 때문에 당장 진행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 않겠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의 결과가 다른 것 때문에 뒷전으로 밀리는 거니까요. 건축의 미래가 회사 내부의 득실 관계 때문에 미뤄지는 거잖아요.”
“너무 학생다운 순진한 생각이라고는 생각지 않나?”
“전 아직 학생이니 상관없습니다.”
양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네. 나도 최 이사를 설득해 보지.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게.”
성훈은 협력을 말하는 양 부장을 보며 생각했다.
‘내 프로젝트를 최 이사나 곽 이사가 맡게 된다면, 또다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
오로지 그들의 실적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당할 것이다.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공법을 바꾸는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항상 감시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러나 이미 진행되어 버린 공사는 되돌리기가 어렵다. 자원의 낭비가 된다. 시간과 돈, 모든 부분에서.
성훈의 프로젝트를 가장 이상적으로 진행해 줄 인물은 눈앞에 있는 양 부장이었다.
성훈이 말했다.
“양 부장님,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