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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33화 (133/427)

건축의 신 133화

실시설계 (13)

양 부장이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요청한 대로 5개를 뽑아 왔네. 박 부장네 실력이면 별로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양 부장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자면, 저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제발 우리가 준비한 것이 있기를.’

박 부장이 말했다.

“일단 검토를 하고 우리끼리 회의를 좀 하겠습니다.”

박 부장이 서류를 검토하며 말했다.

“성훈 군. 예상한 대로 슬래브랑 와이어가 나왔군.”

“둘 다 쉬워보이지는 않는데, 와이어 쪽은 좀 애매해요.”

“왜? 오히려 그쪽이 간단명료해 보이는데.”

“느낌이에요. 뭔가 미끼를 흔드는 것 같아요.”

양 부장을 슬쩍 쳐다보니, 그는 느긋하게 우릴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일단 슬래브 문제를 해결하면서, 저 팀에서 와이어 문제에 어떤 장난을 쳤는지 확인해 보죠.”

“그래. 자네 말이 일리가 있군. 슬래브 쪽은 오히려 장난칠 곳이 없어. 정공승부로 가면 되겠군.”

“애매한 것보다는 확실한 곳에 승부를 걸어야 할 때죠.”

우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회의는 순조로웠다.

양 부장의 팀원들이 던진 질문에 기존 공법으로 가능하다는 구조적 해석과 설계 변경을 통한 해법을 내놓았다.

방어와 동시에 반격으로 진지를 구축하듯, 그들이 건네준 문서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갔다.

때때로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노 과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침착하게 그 위기를 잘 넘겼다.

양 부장이 말했다.

“역시 잔 펀치로는 쓰러지지 않는군. 박 부장. 애들 교육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박 부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렴. 양 부장님 팀만 하겠습니까?”

“그럼 이제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겠군.”

양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방의 괘도로 향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저게 뭐지?’

양 부장이 웃으며, 괘도의 페이지를 넘겼다.

“자네들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을 테니, 긴 설명은 하지 않겠네. 문제는 이 부분일세.”

그가 지휘봉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슬래브의 단면이었다.

양 부장은 슬래브의 양 끝단을 봉으로 죽 그었다.

“층고를 낮추고, 자체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중공슬래브를 쓴다는 것도 좋아. 하지만 그것만으로 보기에는 슬래브의 스팬이 과도하게 넓어. 기둥 간격이 10m가 넘는다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내 구조대전 출품작이 완벽하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점수를 많이 받았던 것은 가능성이었다.

아무나 시도하지 못하는 공법을 시도했고, 층고를 낮추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을 심사위원들이 인정한 것이었다.

‘학생작품을 현재에서 사가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박 부장이 말했다.

“양 부장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원설계자인 성훈 군이 답변하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군요.”

“그러게. 나도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으니 말일세.”

일어서서 괘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전체를 보며 설명하기에는 그것이 더 나았다.

“이 부분은 설계 초기에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었던 부분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빠듯하게 한계치를 넘기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배근에 실수라도 있는 날이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 말에 좌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현장에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러게. 일일이 확인하러 다닐 수도 없는 거잖아.”

그렇다.

직접 시방서대로 잘 되었는지 확인만 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염려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네. 맞습니다.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현장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 부장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부분이 제일 고민이라네. 과연 도면대로 제대로 시공될 것인가?”

“그래서 저는 현장의 제작 방식을 바꾸려고 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공법이 아니라, 현장의 제작 방식을 바꾼다고?”

“네. 현장에 슬래브를 제작하는 공장을 만들려고요.”

“엉?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

“현장에서 슬래브를 만들고, 완성된 슬래브를 타워크레인으로 올려서 끼울 겁니다.”

실현 가능한 것인지의 논의가 잠시 이어졌다.

실제로 프리스트레스 방식의 기둥이나 보는 공장에서 제작되어 운반되며, 교량 공사 시에 많이 사용된다.

“왜 그것을 공장에서 하지 않고, 현장에서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가로세로 10m가 넘는 슬래브를 운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의 파손도 무시할 수 없구요.”

양 부장이 내 설명의 뒤를 덧붙였다.

“그렇게 진행할 수 있다면, 현장에서 시공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기사들의 불필요한 움직임은 최소화 할 수 있겠군.”

“네. 그리고 균일한 제품이 생산되겠죠.”

실제로 그렇게 할지, 다른 방법을 찾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었다.

양 부장이 나를 웃으며 쳐다본다.

‘만만치가 않은 놈이야!’하는 눈빛이다.

‘양 부장님. 말로 안 해도 다 들립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완전한 해법은 아니야. 여전히 얇아. 하중이 걸렸을 슬래브의 처짐은 분명히 발생할 거야.”

“제가 현장에 공장을 차리려는 이유에는 그 고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양 부장은 뭔지 말해 보라며, 고갯짓을 했다.

‘또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라며.

“저는 양방향 슬래브를 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처짐을 최소할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처짐의 최소화라고 한 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어떤 건물이든 처짐이 발생한다.

느끼지 못할 뿐이다.

고로 처짐이 없는 건물이다.

라고 단언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0.1nm(나노미터)라도 처짐은 발생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정한 -구조적으로 안전한- 기준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프리텐션 공법입니다.”

프리텐션 공법이란 콘크리트를 굳힐 당시에 미리 인장력을 가한 강선을 삽입하고,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어 일체화 시킨 뒤, 인장력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콘크리트 제품 자체에 강선의 인장력이 가해져서 휨이나 처짐에 강한 부재가 된다.

양 부장이 물었다.

“그렇게 해서 슬래브의 처짐을 잡아내겠다? 좋은 생각이야. 그럼 나머지 하나는?”

“그 방법으로 거의 처짐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완전하지 못할 경우에는 슬래브의 한 면을 쉘(곡면)로 만들어버릴 겁니다.”

“단면이 증가하는 만큼 강해지겠군. 쉘의 비는 부분은 전기 배선 등의 잡다한 필요 공간이 활용할 것이고. 그렇지?”

“네. 맞습니다.”

“좋아. 거기까지는 내 인정하지.”

내 얼굴을 보며, 양 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페이지, 다음 페이지.”

괘도를 넘기면서 혼잣말 하듯 말했다.

“흠. 그럼 이건 말해 봐야 소용없겠고. 이것도 그러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슬래브들이었다.

하지만 아까 말한 프리텐션공법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현장에서 만들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양 부장이 나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하나 얘기해 놓고는, 여러 개를 해결해버렸네. 젠장.”

계속 페이지가 무의미하게 넘어가니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도 없이 말이다.

“우리 곰탱이들은 왜 그 생각을 못한 거냐고! 박 대리!”

“네!”

“지하층 도면, 몇 페이지야!”

“36페이지입니다.”

내가 얼른 36페이지를 잡아 넘겼다.

양 부장이 볼살을 씰룩거렸다.

“고마워. 성훈 군.”

“별 말씀을요!”

“생각하기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거야.”

양 부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의 디자인은 건물의 구조미를 살리기 위해서, 하중을 받는 철골기둥들이 노출되어 있다. 그렇지?”

“네. 맞습니다.”

굳이 구조미를 살릴 필요가 없다면, 철골기둥을 노출시킬 이유가 없다. 하늘로 쭉쭉 뻗는 선들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각 빔(보 : Beam)의 하중은 와이어를 통해서 주 기둥으로 하중이 연결되지. ‘Y’자 모양으로 말이야.”

“그렇습니다.”

“구조대전을 할 당시에는 그런 부분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나 보더군.”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면서 지하층의 측면도를 지적했다.

응당 있어야 할 와이어가 보이지 않았다.

‘아차!’

구조의 노출만 생각했었지, 지하층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었고.

아니, 아예 지하층 도면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양 부장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소홀했던 모양이야.”

각 기둥들의 거리가 먼만큼, 그 사이 빔들의 휨을 방지하기 위해 와이어를 설치했던 것이다.

그 와이어들이 없는 빔은 휘어지고 만다.

그러나 지하층에서 빔들을 노출시킬 수도 없거니와 와이어를 설치할 수도 없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교체를 하라는 말인가?

급히 답변을 하려는데, 양 부장이 선수를 쳤다.

“물론 콘크리트로도 가능해. 빔의 두께를 늘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그의 말투에서 놀림의 기운도 살짝 느껴졌다.

내 답변에 따라서, 다음에 양 부장이 해결책을 제시할 때도 똑같은 방법을 쓸 것이다.

‘그러면 내 건물은 비만 철골 쓰레기가 되겠지!’

그렇게 되면, 최 이사에게도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양 부장은 ‘빔 두께를 늘려서 하중을 잡는 걸 누가 못하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젠장. 말할 뻔 했다. 빔 두께를 늘리겠다고.’

오히려 양 부장에게 고마웠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이테크를 이야기했던 성훈 군은 그런 무식한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렇다.

이건 자존심 문제다.

지금까지 계속 입으로는 하이테크를 지껄여 놓고, 불리해지니까 이제 와서 양으로 밀어붙인다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양 부장의 계속되는 선공에 승기가 굳혀졌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최 이사가 통쾌하다는 듯 비웃었다.

“흥. 예쁜 건물이 밥 먹여줘? 건물에 미적 감각이 왜 필요해? 바람 막고 비만 막으면 되는 거야. 다 그렇게 살아왔어. 우리나라가 그렇게 성장한 거야. 알아?”

‘그게 건설업계 중역이 할 말이냐? 그럼 양복은 왜 입어? 누더기 걸치면 되지!’

내가 잠시 대답을 못하자, 기세를 올렸다.

“그러게 뭐 하러 하이테크를 타! 그냥 콘크리트로 굵게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잖아.”

‘양 부장이 말한 무식한 방법이 바로 그거라고. 알아?’

최 이사의 근시안적인 해법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제는 건축도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야! 언제까지 남의 디자인 하청만 할 건데?’

1970년대의 국가적 생존전략이었던 건설을 무시할 생각도, 그때의 산업역군들을 무시할 생각도 없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사라져가는 추억을 정석이라 믿으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나!

과거는 인정하되, 현재의 변화 또한 수용해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열세인 상황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제 분명히 이 부분을 떠올렸었어.’

그런데 피곤함에 쩔어서 자료를 찾다가 잠이 들어 버렸었다.

‘젠장. 분명히 양 부장이 디자인한 건물이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에 막힌 듯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이 부분이 쟁점이 될 거라 생각해 놓고도.’

돌덩이 같은 내 머리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양 부장이 웃으면서 돌아섰다.

“이런! 그 부분은 미처 놓친 모양이군.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 볼까? 그걸 설명하면, 우리 팀의 승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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