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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30화 (130/427)

건축의 신 130화

실시설계 (10)

“혜주 씨, 먼저 들어가요. 저 화장실 좀 다녀갈게요.”

나도 긴장을 하긴 했었던 모양이다.

문을 열고 나오자 엄청나게 오줌이 마려웠다.

‘후, 다행이다. 그렇게라도 딜을 걸었으니 망정이지. 눈 뜨고 당할 뻔했네.’

내가 지난 삶에서 했던 회사 생활은 이런 대기업이 아니라,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어 왔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세수를 하면서 각오를 다잡았다.

“김성훈, 정신 똑바로 차리자.”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 경험이 많은 베테랑투성이였다. 특히나 양 부장처럼 실력 있고, 인망이 좋은 사람은 약간의 바람만 타도 순식간에 높은 자리로 올라갈 것이다.

‘문제라면 윗사람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겠지.’

하지만 생각이 있는 경영자라면 저런 인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사장도 생각이 있겠지.’

***

박 부장이 말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혜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양 부장님이 이렇게 빨리 정면 승부를 걸 줄은 나도 몰랐는걸. 알았으면 같이 같을 텐데.”

노 과장이 의견을 말했다.

“어쨌든 그 승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진흙탕 싸움으로 가야 했으니. 받아들인 건 잘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박 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나도 그래. 하지만 저 젊은 친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딜까지 걸었단 말이야? 노 과장 넌 그렇게 할 수 있어?”

노 과장이 그 말에 어이가 없는 듯 웃었다.

“절 지금까지 어떻게 보신 겁니까? 당연히 못 하죠? 양 부장님이 어떤 사람인데요. 승부사 아닙니까? 전 암말도 못 했을 것 같은데요.”

“자랑이다. 저런 걸 부하라고. 좀 보고 배워라. 자식아!”

혜주가 옆에서 듣다가 끼어들었다.

“성훈 씨, 완전 멋있었어요. 양 부장님과 최 이사님을 상대로 긴장도 하지 않더라니까요. 전 진짜 무서웠는데.”

박 부장이 말했다.

“저놈, 대단하네. 대단해.”

***

사무실로 들어가니 노 과장이 물었다.

“다시 봤어. 성훈 씨.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난 그 상황이면 도저히 그렇게 못 할 텐데.”

“저만 고생하는 건 좀 열 받잖아요. 그냥 같이 고생하자는 그런 의미죠.”

박 부장에게 갔다.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의 책임자는 그였다.

“죄송합니다. 제 맘대로 결정을 내려서.”

“아냐. 혜주 씨 말을 들어보니 그럴 시간도 없었겠더군. 아주 재치 있는 대응이었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내가 갔어도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거야.”

아마 박 부장이 함께 갔었다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

양 부장과 그는 오랜 동료 사이였다. 서로의 성격을 잘 아는 만큼 더 나은 결과가 도출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 부장은 그만큼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을 것이다.

양 부장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똑같은 조건을 내가 아닌 박 부장이 내걸었다면, 양 부장이 아까처럼 한 번에 수용을 했을까?

‘절대 아니지. 몇 번을 더 생각했을 거야.’

어쩌면 지금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조건은 우리가 유리하다.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에 성공을 하면 공격도 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들이 만들어낸 공략법으로 말이다.

어쨌든 박 부장은 결과에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결과였다면 몰라도. 나라고 해도 이 이상 유리한 조건으로 딜을 하기는 어려웠을 거야. 잘했어, 성훈 군.”

그는 일어서서 내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부장님이 함께 계셨다면 좀 더 매끄러운 방식으로 결과를 도출해 냈겠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고민할 시간이 없네. 다들 회의실로 집합!”

***

“그러니까 자네 맘에 들게 끔 한다는 조건을 걸었단 말이지.”

박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첫 번째 문제를 해결했을 때 턴이 돌아오는 거죠.”

“우리에게도 문제의 선택권이 있다는 건 대단한 무기가 될 수 있지.”

“또한 토스를 할 때도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좋아!”

박 부장이 좌중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이런 상황이다. 성훈 군이 이틀이라는 시간을 저쪽에 준만큼, 저들도 우리에게 동일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었다. 동일한 조건을 요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문제는 양 부장님이 어떤 과제를 내놓을지를 알 수 없다는 거다.”

혜주가 의문을 제기했다.

“문제를 내준다는데, 좋은 것 아닌가요?”

이 물음에 노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혜주 씨, 학교에서 오픈북 시험 쳐 봤어요?”

“아뇨. 왜요?”

“그게 더 어려워요. 책만 보고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는 아예 내지를 않거든요. 돌아버리죠.”

박 부장의 걱정도 여기에 있었다.

“맞아. 그냥 내는 시험은 교과서 수준이겠지만, 양 부장이 내는 문제는 해석을 하고 그 위에 우리들만의 재해석을 더해서 그들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오픈북으로 시험 친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바보멍청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

오픈북 시험을 치는 교수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정말! 진짜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를 내겠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오픈북 시험이다.

당연히 책에 답이 있는 문제는 내지 않는다.

‘오픈북이라. 참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

지난 삶에서는 오픈북이라고 공부 안하고 탱자탱자 놀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있었다.

“혜주 씨, 책에 있는 건 그저 문제풀이의 가이드 정도죠. 그 위에 자신의 의견과 교수가 원하는 결과를 동시에 도출하려면 미리 그 과목에 대해서 개념과 현시대의 추세까지 머리에 담아둬야 하거든요.”

문제는 알려주되, 저들을 만족시킬 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샐틈없이 방어를 한다고 해도,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허점이 보이게 마련이다. 하물며 공격하는 이가 닳고 닳은 베테랑이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봐도 보이는 허점을 실무자들이 찾지 못할 리가 없지.’

그러나 문제는 양 부장이 더 깊이 있게 파고들 것이며, 그 난이도가 심히 높을 것이라는 거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그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지.’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문제를 푸는 것도 사람이고, 내는 것도 사람이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확실한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하나씩 풀어가는 것도 방법이지.’

박 부장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답답해하는 모습이었다.

“부장님, 우리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 시간에도 양 부장님 팀에서는 우리 약점을 찾고 있을 겁니다. 마냥 넋 놓고, 어떤 문제를 낼지 기다릴 수 없다는 거죠.”

노 과장이 물었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하려고? 방법이 있어?”

“방법이라기보다는 제안이죠.”

박 부장이 말했다.

“뭐든 좋아. 말해보게.”

“다섯 가지 문제를 낸다고 그걸 미리 다 숙지할 이유는 없습니다.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말입니다.”

계속 말해보라며 박 부장이 눈짓했다.

“다섯 개 중에서 하나만 제대로 맞추면 됩니다. 하나를 정확히 맞히면 그것을 푸는 것에도 시간이 단축될 것이거니와 푸는 동안 나머지 넷의 난이도를 분석할 수 있을 겁니다.”

한꺼번에 문제를 낸다고 했다. 그건 충분히 연구할 시간을 주겠다는 양 부장의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그 배려를 이용하는 염치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그 사람은 박 부장도 한수를 접어주는 진짜 전문가라구!’

다른 사람은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한계상태 설계법을 직접 실행해 본 사람이었다. 그는 대담한 행동가였다.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지! 다른 문제들에 대한 대비는 그때부터 하면 되겠군. 모든 문제에 포커스를 맞출 이유가 없지.”

어차피 첫 번째의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 양 부장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할 테니까.

‘팀원들의 기를 죽일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일단 양 부장님은 슬래브와 와이어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 둘은 포함될 겁니다.”

두 가지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착각이다.

그 두 가지만 해도 세세하게 들어가면, 범위가 무시무시하게 넓다. 50층짜리 건물에 슬래브가 한두 개 들어갈 것 같은가!

‘어느 부분에서 문제 제기를 할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지.’

박 부장의 미간이 깊어졌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정도면 우리를 얽어맬 준비가 되었다는 건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죠. 극악하게 어려운 문제가 나온다면 그중에 쉬운 것 하나를 우리가 해결하고 제일 어려운 문제를 넘겨 버리면 됩니다.”

내 말에 노 과장이 재밌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하. 네놈들도 죽어봐라. 그 말이네.”

“일단 해결하고 나서 웃어. 자식아. 긴장된 와중에.”

노 과장은 박 부장의 핀잔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혜주가 질문을 던졌다.

“성훈 씨, 제가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하나만 맞춰도 된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흠. 다 이해할 거라 생각하고, 너무 대충 설명을 했군.’

분명히 나의 실수였다.

게임의 룰을 정확하게 일러줘야 어이없는 실수가 나오지 않는다.

“양 부장님은 제 디자인의 약점 5가지를 지적할 거예요. 전 거기서 우리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달라고 요구했죠. 가장 쉬운 것을 선택해서 풀고, 나머지 4개의 난이도를 분석할 계획이죠.”

“네, 거기까지는 알아들었어요.”

“그리고 남은 4개의 지적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걸 양 부장 팀에 넘길 거예요. 그 선택권도 제가 가져왔거든요. 거기서 그들이 풀지 못하면 최 이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뭐죠?”

“만약 2번째 턴에서 우리가 이기면, 우리는 그들이 제시한 구조적 약점 3가지를 최 이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해결하면 돼요. 약점 보완의 이익이 있는 거죠. 좀 더 완벽한 디자인이 된다고 해야 할까?”

“양 부장님이 자신들만 풀 수 있는 문제를 내면요?”

노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혜주 씨, 양 부장님의 실력이 좀 더 나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우리 박 부장님도 만만치 않아요. 그런 정도의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 풀 수 있어요.”

박 부장이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맞아. 양 부장님만 풀 수 있는 문제는 없다네. 아마도 양 부장님은 초반에 승부를 보기 위해서, 자신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만 골라서 올 거라고.”

양 부장도 알 것이다. 우리는 가장 쉬운 문제를 고를 것이고,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를 떠넘길 거라는 것을.

혜주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부장님, 자신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왜 내는데요? 이해가 안 되잖아요.”

“최 이사 목적은 그 문제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구닥다리 공법으로 가려는 거지. 요컨대 우리가 포기하게만 만들면 되는 거라네.”

혜주는 이 게임의 룰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완전 ‘도’ 아니면 ‘모’네요.”

박 부장이 나를 재촉했다.

“성훈 군, 계속 말해보게.”

“그러니까. 우리는 일단 그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대비하면 됩니다.”

노 과장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문제를 내겠죠.”

“과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은 우리끼리 모의 대전을 해보고, 그것에 따라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미리 찾아서 예상 문제와 대략적인 해결책을 준비해 둬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간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양 부장님이 내는 문제도 그것들 중에는 반드시 있을 거라는 말이군. 그렇지?”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략 맞을 겁니다. 부장님.”

양 부장이 어떤 문제를 낼지는 그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한다. 방어의 입장이라고 해서 방어에만 치중하게 되면 시야가 좁아진다.

우리는 공격적 방어를 하기로 했다.

‘연습 게임으로 미리 맞으면 맷집은 강해지지 않을까?’

***

박 부장이 결론을 내렸다.

“흠. 데이터가 많이 필요하겠군. 노 과장!”

“예!”

“자료실에서 찾을 데이터들을 정리해서 모든 사람에게 분배해.”

“모든 사람? 혜주 씨도요?”

“당연하지!”

노 과장이 신입에 대한 걱정을 표했다.

“혜주 씨가 할 수 있을까요? 온 지도 얼마 안 되고 여자인데다가.”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거 안 보여? 그리고 일에 남녀가 어디 있어? 혜주 씨한테 맡길 거, 노 과장 네가 다 할 거야? 할 수 있어?”

그리고는 부장이 혜주에게 물었다.

“혜주 씨, 못 할 것 같아? 그럼 딴 사람…….”

혜주가 다급히 말했다.

“아니요. 맡겨만 주세요.”

박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 군도 부탁하네.”

“당연하죠. 제 일인걸요.”

노 과장은 데이터 작업의 분배를 시작했다.

혜주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그녀가 처음으로 맡게 되는 제대로 된 일거리였다.

그전까지는 모든 수습사원이 그러하듯, 서류 정리와 복사가 전부였지 않던가!

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다짐했다.

‘반드시 해내고 말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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