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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28화 (128/427)

건축의 신 128화

실시설계 (08)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진지한 토론 중이었다.

최 이사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해올 것이니, 어느 부분을 방어하자, 어떻게 반격을 하자. 하는 토의 중이었다.

“박 부장! 누구야? 누가 우리 광견무적을 저렇게 돌아버리게 만들었어? 엉!”

잔잔하던 사무실이 한 사람의 등장으로 시끄러워졌다.

들어오더니 대뜸 박 부장의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호쾌하고 목청이 큰 사나이였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것이 아주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광견무적(狂犬無敵)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미친개’ 최 이사다.

그러나 그를 이런 별호로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형님, 말조심을 좀.”

“흥. 꼰지르라지. 내가 그 인간 무서워서 할 말을 못 하나?”

그러면서 주변을 훑어본다. 누군가를 찾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박 부장이 실소를 흘렸다.

“하하.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네.”

그를 본 노 과장은 어느새 벌떡 일어서 있었다.

“양 부장님! 이제 제주도에서 완전히 올라오신 겁니까?”

벌떡 일어나 악수를 청하자, 양 부장이라는 자는 노 과장을 덥석 끌어안았다.

“아이구, 잘 있었냐. 내 새끼.”

“부장님은. 제가 과장 단 지가 언젠데. 아직도.”

퍽.

그는 노 과장의 등짝에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내리쳤다.

“어쭈구리. 과장 달았다고 맞먹자는 거냐? 나 부장 말호봉이야. 짜식아.”

“언제부터 말호봉이셨는지 기억은 하십니까? 하하. 제주도는 살 만하세요?”

“넌 내려온다고 진작 말해놓고는 왜 안 왔냐? 내가 꼭 이렇게 올라와야겠냐?”

나는 처음 봤지만 서글서글한 사람이었고, 팀원들 모두 그를 알고 반기는 모습이었다.

‘누구지?’

“서울 입성 기념 회식은 저녁에 하도록 하고, 누구야?”

“네?”

“우리 광견을 빡치게 한 녀석이 누구냐고?”

“아하! 저 친구입니다. 김성훈.”

그러면서 나에게 그를 소개시켜 주었다.

“성훈 씨는 처음 보지, 양재형 부장님. 제주도에 공사하러 내려가셨지. 언제 본사로 돌아오실지는 미정이지만.”

“쩝. 뭐라 반박을 하고 싶은데, 부정을 할 수가 없네.”

입맛을 다시는 그에게 노 과장이 말했다.

“그러게. 사회생활 연줄이라고, 최 이사랑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충언을 해드렸잖습니까?”

“그럼 어떡하냐? 그 꼴을 보고, 가만히 있어야 되냐? 나하고 일 년 차밖에 차이 안 나는데, 지가 무슨 대선배나 되는 줄 알아.”

그는 거기서 말을 끊고 나을 쳐다본다.

“잡설은 그만하고. 이 친구 우리 회사 신입이야?”

“아닙니다.”

“엉?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닌데, 여기 왜 있어? 최 이사 엿 먹였다고 알고 왔는데? 외주업체야?”

“아닙니다. 스타타워 원설계자입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성훈입니다.”

노 과장이 물었다.

“최 이사가 양 부장님을 그냥 불렀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냥 부르면 내가 올 사람이냐?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해 주면, 제주 현장 끝나는 대로 본사로 올리겠다고 언질받았다.”

“지킬까요?”

“몰라! 이번에도 약속 빵꾸 내면 회사에서 난장 한번 치고 관둘란다. 애새끼들 보고 싶어서 못살겠더라. 매주 비행기 타고 올라오는 것도 고역이고.”

“그래도…….”

“나 이렇게 약올려놓고, 최 이사 자기는 편할 줄 알아!”

거침없이 말을 한다. 그럼에도 주변의 어떤 사람도 그의 말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없다.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네.’

그가 말했다.

“성훈 씨. 내 조카뻘 같은데, 말 놔도 되지?”

그 말에 뭐라고 하랴!

눈썹을 으쓱이며 답했다.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부장님.”

활기차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좋아. 그럼 자초지종을 설명해 봐. 어떻게 빅엿을 먹였길래, 그 인간이 그 지랄을 해대는지.”

어제의 일들을 읊었다.

박 부장까지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형님. 어제 최 이사가 얼마나 쪽팔려서 갔는지 아우’ 하면서 말이다.

회의라기보다는 화기애애한 화합의 장으로 보였다.

“흠. 그랬단 말이지.”

양 부장이 나를 힐끔 쳐다보며 웃었다.

“어이, 김성훈.”

“네, 부장님.”

그가 엄지를 척 세우며 웃었다.

“잘했다. 잘했어. 내가 어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데. 젠장.”

그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나는 최 이사가 불러서 왔다. 알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무리 사람이 싫어도 일은 제대로 하자는 주의다. 이해하지?”

“그럼요. 사람보고 일합니까? 일보고 사람 뽑죠.”

“그럼 됐어. 좋아. 제대로 한판 붙어 보자고. 어설프게 준비했다가는 나한테 제대로 깨질 거야.”

박 부장이 그를 보며 씨익하고 웃었다.

“형님. 제주도에 간 동안 우리는 놀은 줄 아십니까?”

양 부장은 다시 성훈을 쳐다본다.

기분 좋은 웃음을 얼굴에 채운 채 말이다.

“그래도 뭐. 실력은 탄탄한 것 같으니, 해 볼만 하겠네. 나도 작년에서야 한계 상태 설계법을 써먹어 봤는데.”

박 부장이 물었다.

“어디서요?”

“어디긴 어디야. 제주도지. 거기는 내 말에 딴죽 거는 인간이 없잖아. 그래서 내 맘대로 한번 해봤다. 공무원들 설득하기가 어려워서 그랬지. 재미있었다.”

“직접 해보시니 어떻던가요?”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고려해야 할 게 많지. 내 생각이지만, 나중에는 이 설계법을 주류로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허용응력 설계법보다는 경제적인 부분도 있고, 신뢰도도 높아 보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실질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었다.*

양 부장이 말을 이었다.

“학교 수준이 높은가 봐. 지방대라서 별로 대단하게 안 여겼는데. 생각을 바꿔야겠어. 자네 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가르치나?”

“학교에서 가르친다기보다 이번 구조대전을 지도하셨던 한승원 교수님이 예일 건축학과 출신입니다. 이 작품의 공동설계자이십니다.”

지난 삶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구조설계법에 대해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 구조에 대해서는 한 교수가 나보다 100배 낫다. 깊이도 있고.

***

내 옆을 풀죽은 한혜주가 지나간다.

‘어울리지 않는데?’

내가 생각하는 한혜주는 캔디 같은 이미지다. 생긴 건 바람 불면 날아가게 생겼는데, 하는 짓은 끈질긴 잡초다.

‘왜 저렇게 힘이 빠져서. 어딜 가나?’

슬쩍 보니 계단실로 들어가서는 아래층 계단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어제의 일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서로 가진 바 능력이 다른데 말이다.

부러움이 심해지면 심마(心魔)가 된다.

‘쯧. 어리다. 아직 어려.’

뭔가 그녀에게 힘이 될 만한 것이 없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눈에 걸리는 사람이 노 과장이었다.

노 과장은 은근히 혜주를 칭찬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야근을 할 때도 그랬다.

“아! 혜주가 일은 잘하는데. 너무 여려. 저래 가지고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들은 박 부장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그의 뒤통수를 날렸다.

“이 자식아. 너만 안 괴롭히면 돼. 알아!”

화장실에서 나오는 노 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과장님.”

작게 목소리를 쥐어짜며 그를 불렀다.

주위를 둘러보며 그가 내게로 뛰어왔다.

비밀스러운 말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 성훈 씨. 왜, 왜?”

방화문을 열고 계단실로 들어갔다.

아직 혜주는 나오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숨을 죽이는 소리도 들렸다. 당연히 노 과장은 듣지 못했다.

“노 과장님, 혜주 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 괜찮지. 아주 괜찮은 재원이야.”

“에이. 맨날 혼만 내시면서.”

“엉? 혼낸 적 없는데?”

정말로 노 과장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내게 눈을 부라렸다.

“혼났다고 풀죽어 있는 걸 제가 봤는데요?”

“에이, 설마!”

“…….”

“진짜야?”

그의 확인에 그냥 말없이 웃었다.

‘정말 몰랐던 거냐?’의 눈빛을 날리면서.

노 과장은 굉장히 억울했던 모양이다.

“성훈 씨. 그건 말도 안 돼. 나 입사했을 때는 맨날 옥상에 끌려가서 대가리 박고 쪼인트 까였다고. 그 자리에서 서류철로 싸대기 맞는 건 꾸중 축에도 못 끼었다니까?”

쯧쯧. 누가 들으면 건설회사가 아니라, 군대인 줄 알겠다.

‘그렇지. 그게 남자들의 세계지. 혜주가 남자냐?’

때려라. 망할 자식아. 그런다고 내가 물러날 거 같냐?

이렇게 오기로 버티는 것이 남자들의 세계다.

“혜주 씨는 여자잖아요.”

“야. 그…… 미안하네. 나름 살살한 건데. 내가 형제만 셋이라서. 전혀 몰랐네. 기분 나쁘면 말할 줄 알았지.”

과장에게 물었다.

“다른 여직원들한테는 왜 안 그러시잖아요.”

“다른 여직원? 누구?”

“우리 반대편에 있는 선미 씨요.”

“에이. 그 사람은 우리 팀도 아닌데. 그 여자 일하는 거 봤어? 얼마나 어리바리한지. 난 우리 팀 와도 안 받는다. 얼마 못 버텨. 조만간 이별할 사람한테 내가 신경을 왜 써! 내가 대가리 총 맞았어?”

노 과장의 목소리가 계단실에 쩌렁쩌렁 울린다.

‘듣고 있나. 한혜주?’

“혜주 씨는 좀 다른가 보죠?”

노 과장이 나를 요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 성훈 씨. 우리 혜주한테 관심 있어? 다리 놔줘?”

실실 웃으면서 다가오는 게 진짜로 다리를 놔줄 셈이다.

‘아나. 됐거든. 이 양반아. 당신이나 장가가라고.’

이미 한 번 갔던 몸이라, 결혼은 진절머리 나고. 연애도 당분간 생각이 없다고!

“뭐. 좋은 사람이라 관심은 가는데, 연애는 관심 없어요. 그냥 인간적인 관심요. 아시죠?”

엉뚱한 생각하지 말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에이, 좋다 말았네. 사내 커플 한 쌍을 내 손으로 만드나 했는데.”

뚱하게 바라보는 내 눈을 피하며 노 과장이 말했다.

“혜주 씨는 뭔가 찾아오라고 시키면, 틀리는 적이 없어. 얼마나 꼼꼼한지 몰라. 그리고 귀도 열려 있어서, 우리끼리 했던 이야기도 잘 알아들어. 보통 수습이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 그리고 말이야.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혜주에 대한 노 과장의 칭찬이 한참을 이어졌다.

내가 한혜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반드시 누군가는 혜주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상사는 직원을 평가해야 한다. 직속 상사가 되었든 그렇지 않든. 부하의 평가는 상사가 한다.

항상 노려보고 있느냐? 그럴 시간은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느냐?

상사는 신입이 했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다. 신입이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안다는 말이다.

말 한 마디만 건네 봐도, 일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 판단이 가능하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젊은이들이 꼰대라 부르며 무시하는 상사들이 가진 기본 능력이다.

‘굳이 혜주 씨가 스스로의 진가를 보이려고 안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요.’

***

성훈이 노 과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긴 제가 봐도, 어린 친구가 대단한 것 같아요.”

“어린 친구? 내가 보기엔 성훈 씨는 더 대단해.”

노 과장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기는 괴물이면서 누굴 칭찬해!’

초년병들이 실수를 하는 가장 큰 것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의 입으로 떠벌리거나, 선배에게 인정받고 얼른 큰일을 하려는 욕심에 자신을 증명하려 안달이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큰 실수는 대부분 그 과정에서 일어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진리를 잊지만 않는다면, 그 한 걸음이 쌓여서 천 리 길을 만든다.

***

“성훈 씨 오늘 양 부장님이랑 양곱창 집에 갈 건데, 같이 갈 거지?”

“우리 일은 어쩌고요.”

“거의 다 끝났어. 그리고 양 부장님이 온 이상, 부장님이 안 움직이면 최 이사도 못 움직여!”

“왜요?”

“그런 게 있어. 알고 싶으면 저녁에 나 따라 오라고.”

그 말을 끝으로 노 과장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슬쩍 아래를 보니, 아직도 혜주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뭔가 생각에 잠긴 모양이다.

‘뭔가 위로의 말이라도 해 줘야 하나.’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만 해도 됐어. 더 가면 오지랖이야.’

나도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고. 박 부장님이 혜주 씨 찾던데. 깜빡했네. 어디에 간 거지? 아직도 화장실인가? 길다 길어.” 하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작가주>

1. LSD설계법/LRFD설계법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한계 상태 설계법(LSD : limit state design)이라 명칭하고, 미국에서는 하중-저항계수 설계법(LRFD : load and resistance factor design)이라 부르고 있다.

<참고>

모든 물체에는 일정한 탄성을 지니고 있다.

물체가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하중이 가해졌을 때, 잠시 변형을 하지만 다시 원상태로 회복을 한다.

대나무를 예로 들자면, 약간의 힘이 가해졌을 때는 휘어졌다가 다시 회복되지만, 한계 이상의 힘을 가했을 때는 부러지고 회복되지 않는다.

이 회복되지 않게 되는 상태를 ‘한계 상태’라 말한다.

한계 상태 설계법은 구조물이 그 사용 목적에 적합하지 않게 되는 어떤 한계(크랙, 지반침하 등등) 상태에 도달되는 확률을 허용한도 이하로 되게 하려는 설계법이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겠으나, 한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허용응력 설계법에 비해서 계산은 복잡하지만, 신뢰도나 경제성은 비교적 높다고 알려져 있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구조설계 관련 책을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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