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27화
실시설계 (07)
최 이사는 사라지면서도 그의 존재를 사방에 알렸다.
“뭘 봐! 새끼들아. 구경났어. 일 안 해! 확!”
30m가 넘는 로비를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최 이사 뒤통수를 �i았다.
그가 문을 열고 사라지자, 각 파티션의 부장들과 과장들이 우리 파티션으로 모여 들며 엄지를 세웠다.
“아! 진짜 속이 시원하다. 야, 노 과장. 쟤 뭐냐?”
“박 부장님. 저거 뭐 하던 친굽니까? 이 팀 신입입니까?”
“혜주 씨도 받아 놓고, 또 데려가면 어떡합니까?”
어떤 사람은 내게 직접 컨택을 시도했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어느 대학 나왔어?”
신상부터 시작해서, 최 이사의 복수를 염려하는 사람까지 잠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박 부장의 고함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다들 주목! 최 이사 이빨 갈면서 가는 거 봤지? 나 이번에 실패하면 모가지 내놔야 된다. 도와줄 거 아니면 다 꺼져! 얼른!”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박 부장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잘했어. 성훈 군.”
좌중을 보며 말했다.
“자, 다들 회의실로 집합. 싸움은 이제부터야.”
“자, 그럼 어느 부분부터 보완해야 할지 말해봐.”
‘흠. 이건 내 생각과는 다른데.’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반대로 가시죠.”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떤 부분에 흠이 있는지,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쪼개서 확인해 보시죠.”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는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야.”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그건 병법의 기본이지. 그런데.”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적이 어디를 공격해 올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방어를 하는 거잖아.”
“어떻게 공격할지를 알아야 방어를 하죠. 백 명의 경비가 도둑 하나를 못 막는다고 했습니다. 저 작품을 걸어놓고, 우리가 공격을 해보죠.”
“저거 자네 작품이야. 알지?”
자기 작품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하나 나중에 다른 놈에게 작살이 날 거라면, 지금 내 손으로 박살 내보고, 미리 답을 찾아두는 게 낫다.
연습 게임에서는 몇 번을 죽어도 된다. 연습 때 땀 한 방울은 실전의 피 한 바가지라고 누군가 말했다.
“저걸 최 이사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작살 내버리죠. 그럼 흠도 보일 겁니다. 보완으로 안 될 거라면 처음부터 새로 만들 각오도 하고 왔습니다.”
“쩝. 나중에 섭섭하다고 원망하지 말게.”
심각한 박 부장의 말에 입술을 쪼개며 웃어주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자, 모두 성훈 군 말 들었지? 시작해 봐.”
하지만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당사자 앞에서 뒤통수 까기니까.
“부장님, 그럼 저부터 할게요.”
“엉?”
괘도에 걸린 도면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전 아무래도 이 바닥슬래브가 걸립니다. 중공슬래브로 시공을 하니, 자체하중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 스팬이 너무 넓어요. 두께가 충분하다면 버텨내겠지만, 층고(層高)를 낮춘답시고 최대한 얇게 바닥을 얇게 했거든요. 약간만 주의를 놓쳐도 크랙이 갈게 뻔한데. 현장에서 이런 정밀 시공이 가능하겠습니까? 현장에 도면을 보낼 때는 초등학교 졸업자가 시공을 해도, 실수하지 않을 도면을 만들어 보내야 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부장님?”
멍하니 듣던 박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그건 자네 말이 맞지.”
‘꼭 자아비판 같네!’
그 뒤로도 전혀 내가 디자인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신랄한 혹평을 가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저거 정말 저 친구가 만든 거 맞아? 진짜로 철천지원수가 만든 거 아냐?’
이런 의문의 시선 말이다.
나 스스로 지적을 하면서도 놀랐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많네.’
이 디자인을 고수해서 시방서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보니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모든 것은 명암이 갈리는 것이다.
‘역시 난 현장 체질인가?’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눈에 불을 켜고 약점들을 찾아들었다.
디자인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너무 구조적 미관에만 신경을 쓴 거 아니냐?
풍하중을 적게 받으려고 층고를 낮게 한 건 좋은데, 지진이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거냐?
대책은 있는 거냐? 정말 와이어밖에 대책은 없었냐?
막말로 욕 빼고는 다 나왔다.
‘햐. 이 사람들 봐라. 최 이사는 아무것도 아닌데?’
회의는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각자 앞에는 주문한 도시락을 놓고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눈은 박 부장과 노 과장을 향하고 있다.
모두 긴장된 눈빛이지만 겁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최 이사가 아무리 지랄해도, 나한테 하겠지. 니들한테 할 거 아니니까. 괜히 긴장할 필요 없어. 알았어?”
“네!”
힘있는 대답이 이어지고, 박 부장이 말했다.
“성훈 군 말처럼 어차피 완벽한 구조는 없다. 어떻게 보완할지만 알면 된다. 답이 없으면 문제겠지.”
앞의 된장국을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후루룩. 자.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해봐. 순서 상관없이. 아무나 생각나는 대로 말해.”
반찬 냄새가 진동을 하는 회의실에 열정이 흘러넘쳤다.
혜주 또한 열심히 그 토론에 참가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것은 현장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아 이론적인 분석으로만 그쳤다는 점이다.
‘하고자 하는 의욕은 좋군.’
다른 것은 글로 배우고 말로 배울 수 있지만, 경험은 스스로 체득하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신입의 한계다.
노 과장이 말했다.
“야, 성훈 씨. 아까 그게 얻어 걸린 게 아니었네.”
“뭡니까? 그럼 제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구라 쳤다는 말씀이세요?”
장난스럽게 오버하는 내 대답에 노 과장도 방어 자세를 취하며 뒤로 슬슬 물러났다.
“야, 성훈 씨. 그렇게 잡아먹으려고 하지 마. 최 이사 같아.”
그러면서 노 과장은 최 이사 첫 등장을 흉내 내었다.
고개 왔다 갔다 하면서, 오지명 버전으로 말이다.
“뭐.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잡아먹는 것 아니잖아.”
회의실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혜주도 내 옆에서 보고 있다가, 웃음이 터져 나오자, 내 등짝을 손으로 마구 때렸다.
‘아윽, 고사리 같은 손이 왜 이렇게 매워!’
노 과장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지. 여기 성훈 씨가 한계 상태 설계법, 그거 알 거라고 생각한 사람 있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과장이 저거 보라며 말을 이었다.
“봐!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야. 자넨 졸업하면 꼭 우리 팀으로 와라. 내가 저놈들 제쳐 놓고 바로 대리로 올려줄게. 응?”
우리들은 짓궂게 장난도 치면서 금방 친해졌다.
“자자. 이제 장난은 그만하고.”
박 부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최 이사 팀에 박 과장 알지? 박 과장이 공격의 주축이 될 거야.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는 대략 추측이 됐겠지?”
“네!”
“모두 각자가 할 일은 알 거라고 믿는다. 각 부분에서 시공할 때 걸리적거릴 수 있는 부분이나, 최 이사 쪽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들은 보완책까지 마련해서 보고서 올리도록. 이상!”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보며 박 부장이 말을 이었다.
“노 과장은 특히나 이음매 부분하고, 슬래브에서 크랙이 갈 만한 부분은 철저하게 체크해. 성훈 군 말처럼 가장 쉽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부분이니까.”
“네, 부장님.”
그리고 내게 말을 걸었다.
“성훈 군. 미안한데, 혜주랑 같이 자료집 찾는 것 좀 도와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저도 자료실에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우리 회사에서 진행했던 사례도 많이 있으니까. 참고를 하게.”
나가는 내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아까는 진짜 잘했어. 나도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난감하더라고. 자네가 먼저 나서줬으니, 고민이 줄었네. 고마우이.”
“뭘요. 저 좋자고 하는 일인데요.”
“아까 부장님도 잘 참으시던걸요. 저도 최 이사 하는 게 얼마나 꼴 보기 싫던지 폭발할 뻔했습니다.”
박 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쩌겠나. 이게 직장 생활인걸.”
***
둘이 걸어가면서 혜주가 물었다.
“성훈 씨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요? 학교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줘요?”
“아뇨. 우리 학교에서도 전공과목으로 가르치진 않아요.”
그녀는 의아한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잘 사용하지도 않는 공법이었다.
“우리 교수님이 미국에서 왔어요. 예일.”
“우와. 예일이면…….”
한국엔 서울대가 있고, 건축엔 예일대가 있다.
물론 개개인의 관점 차이겠지만. 한 교수 때문인지, 나는 예일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
“그 교수님이 계속 그렇게 구조계산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죠. 그게 뭐냐고.”
“아. 그래서…….”
그녀의 멍한 눈을 보며 물었다.
“혜주 씨, 부럽구나?”
뜨끔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눈을 보름달처럼 휘며 웃었다.
“솔직히 그래요.”
“아까 발표할 때도 굉장히 적극적이던데.”
어깨를 으쓱하면서 쑥스러워했다.
“채택된 건 하나도 없잖아요. 반면에 성훈 씨는 모두 다.”
“내거 내가 깨놓고, 안이 채택되는 걸 기뻐한다는 것도 웃기지 않아요? 내가 설계를 어설프게 했다는 걸 인정하는 건데.”
그래도 부러운 모양이었다.
‘당신도 현장 경험이 쌓이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거예요.’
내 현장 경험은 꽤나 길다. 아마 현장 경험으로만 본다면 박 부장보다 길 것이다.
그게 100% 건설 경험은 아니라고 해도, 항상 건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고,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하기 싫었었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
저녁식사가 끝나고, 사무실로 올라오고 있었다.
앞서 걸어가던 박 부장이 물었다.
“노 과장, 이번에 재형이 형 올라올 것 같지 않아?”
“설마요! 최 이사가 양 부장님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박 과장 정도 실력으로는 우리한테 안 돼. 최 이사가 질 걸 뻔히 알면서 승부를 거는 사람은 아니잖아.”
“서 전무도 양 부장님 컨트롤이 안 되니까, 제주도로 보냈잖아요. 최 이사가 제 손으로 호적수를 불러들이겠습니까?”
“흐흐흐. 자식아. 그게 문제라니까. 쓸 만한 놈들은 다 바깥으로 �i아 보냈으니, 인물이 없다는 거. 지금까지야 저작권이 우리 회사에게 있었으니, 어떻게든 힘으로 눌렀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거든. 변수가 생긴 거지.”
“마냥 좋아하실 일은 아닙니다. 양 부장님은 우리에게도 변수가 될 겁니다.”
“어쨌거나 형님 올라오면 술이나 진탕 마셔야 되겠구만. 그 양반도 서울 공기는 오랜만에 마시는 걸 테니.”
“하하. 그때는 저도 꼭 좀.”
양 부장은 최 이사 아래에 있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본사에 있지 못하고, 외부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고, 그런데 실력은 있는 인물. 그 정도로 해석이 가능했다.
내가 원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최 이사가 가진 무기. 그것을 빼 드는 것.
‘숨기고 있는 무기는 어쩔 수 없지만, 빼 들면 방법이 보이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실력, 매력, 쌓아온 캐리어. 그리고 주변의 인맥.
다른 사람의 힘이라도 끌어다 쓸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무기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칼을 든 검사를 보고, ‘신외지물을 쓰다니 비겁하다. 칼 놓고 싸우자’고 하면, 그건 그냥 바보지. 바보.’
정글에서의 싸움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
정녕 정정당당을 외치고 싶다면, 압도적인 실력을 가져라. 감히 비겁자들이 시비 걸지 못하도록.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정당함은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보다 못하다.
최 이사가 가진 인맥들이 다 최 이사 같은 인간들일까?
‘아니지. 저 자리에 있으려면, 배짱만 가지고는 불가능해. 그 말은 제대로 된 실력기반이 있다는 것이지.’
세상에 제갈량 같은 사람만 있으면 통일이 안 된다.
유비가 칼솜씨나 지략으로 왕 자리 올랐겠는가? 한고조 유방은 또 어떻고! 공포가 되었든 인정(人情)이 되었든, 사람을 부리는 것 또한 실력이다.
내 옆에 있는 박 부장이나 노 과장은 괜찮은 실력자들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최 이사 아래에 있는.
그게 최 이사의 무기일 것이다.
‘열이 받으면 받을수록 더 좋은 무기를 선보이겠지. 언제 그 사람이 나 같은 애송이에게 망신을 당해 봤겠어.’
진검 승부에 나무 칼 들고 덤비는 멍청이는 아니겠지.
***
최 이사는 짜증이 나 있었다.
“양재형이 언제 올라온대?”
“아마 내일 오전 중으로 도착하실 겁니다.”
“부르면 째깍째깍 올 것이지. 왜 그렇게 늦는데?”
“현장이 마무리 단계라서 쉽게 손을 뗄 수가 없답니다.”
“애들 보고 하라고 하면 되지. 그걸 지가 왜 해? 소장이 달리 소장이냐? 애들 관리가 안 되니 그따위밖에 못 하지. 넌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그런 놈까지 불러야 되는 거냐?”
말을 할수록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그런 타박을 듣고 있는 박 과장도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양 부장님은 오고 싶어서 오겠어? 오시면 술이나 한잔 사달라고 해야겠다. 직장 생활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고.’
“언제쯤 오실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더러운 건 같이 있는 게 아니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최 이사가 그에게 나가라며 손짓했다.
“에잇, 다 꼴 보기 싫어. 물이나 한 잔 가지고 들어오라고 해.”
하지만 답답한 것은 자신이니, 참을 수밖에 없다.
아까의 일을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이 솟구쳐 오른다.
‘좆만 한 새끼가. 감히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겠다. 두고 보자.’
***
곽 이사가 말했다.
“전무님, 최 이사가 양재형을 불렀답니다.”
“미친 거 아냐? 그 인간?”
“적당한 미끼를 던졌겠지요.”
“서 전무가 �i아 보낼 때도 반발이 엄청 심했는데, 내가 보기엔 악수(惡手)를 두는 것 같아.”
“일단 적당히 쓰고 다시 내려 보내겠지요. 설마 자기 목을 조르는 멍청한 짓이야 하겠습니까?”
“잘 감시해. 서 전무도 버거워했던 반골이야. 원숭이 새끼가 구름 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