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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26화 (126/427)

건축의 신 126화

실시설계 (06)

최 이사가 말했다.

“뭐냐. 넌? 못 보던 놈인데.”

머리가 길어서 못 알아보는 것일까?

너무 바쁘게 올라오는 바람에 해외여행 동안 길었던 머리를 자르지 못했고, 올라와서는 야근을 하느라 이발을 못했었다.

“하고 다니는 꼬라지하고는, 니가 히피족이냐?”

개가 짖는 소리에 일일이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다.

“안녕하십니까? 김성훈입니다.”

“누가 니 이름 물었냐? 정체가 뭐냐고?”

“저번에 뵀었는데, 기억 못 하시나 봅니다. ‘밀레니엄 스타타워’ 원설계자입니다.”

“원설계자? 그 싸가지.”

‘돌대가리는 아닌 모양이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맡겼으면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이지.”

“맡겨놓고 잘되는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확인하러 왔습니다.”

“흥. 믿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맡겼으면 믿어라. 그런 말 몰라? 학생.”

학생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말을 지지리도 비꼬면서 한다.

그때도 그랬었다.

말은 ‘계약을 하러 왔습니다’였지만, 태도는 ‘현재에서 계약을 해주러 특별히 행차를 했다. 내놔 봐라’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하지만 한 번은 참자.’

“믿음과 신뢰가 쌓이려면 많이 만나봐야 할 것 아닙니까.”

“흐흐. 그 학교에는 그렇게 인재가 없나. 현재건설에 대표로 올 만한 사람이 자네 같은 학생밖에 없나? 아니면 자네 정도로 현재 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인가? 흥.”

한마디로 참 많은 것을 말하고 많은 것을 비웃는다.

‘햐. 최 이사. 정말 복장 터지게 말 잘하네. 울컥하는데!’

“어느 학교인지, 누군지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제 설계가 잘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난 처음부터 탐탁지 않았어. 외국의 유능한 건축가도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 나부랭이들이 한 걸 우리 손으로 지어주다니. 고새를 못 참아서, 쯧쯧.”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필요하다고 사갈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지어준다고?

‘계약 파기 한다고 현재 사장에게 말해볼까? 왜냐고 물으면, 최 이사가 꼴 보기 싫어서 못 하겠다고 하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가볍다.

내가 느낀 모욕에 대한 대가로는!

‘엄마 뒤에 숨어서 고자질하는 것도 아니고. 쳇.’

그 생각이 들었다는 자체가 부끄러웠다.

최 이사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

계약이 되었으니,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어쩌면 5억이라는 돈을 받았으니, 현재와의 계약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생각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말이고, 항상 갑의 입장을 고수해온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내가 먼저 계약파기라는 수를 내밀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하는 모습이었다. 현재는 지금까지 을이었던 적이 거의 없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나부랭이 소리를 듣고도 ‘네, 네’ 할 정도로 내 성격이 무난하지는 못 했다.

“그 나부랭이 하나도 설득 못 하셔서 돌아가신 분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깍두기 얼굴이 인상을 팍 쓰니 제법 분위기가 나왔다.

다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했지만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적어도 ‘아까처럼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지는 않겠지’라는 약간의 희망이 있는 정도.

“뭐야?”

“남자답게 깨끗하게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미련이 남으신 모양입니다.”

그는 나이 생각을 하며, 관록과 체면을 중시하는 중년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뚜벅뚜벅 내게로 다가왔다.

“이거이거. 참 대단한 친구네. 그래 원설계자 좋지.”

점점 다가올수록 그는 점점 올려다보고 나는 내려다본다.

그렇게 다가오면 겁먹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당신 아래 직원이라면 그럴 테고, 현재건설에 목멘다면 그렇겠지.

“정말 제대로 된 말씀을 하시려면, 구조에 대한 비난을 하지 마시고 비판을 해주시지요.”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이 비판이 아니다?”

“……”

“왜 말을 못 하나?”

‘어이가 없어서?’

이때는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최 이사님, 국어 공부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훗.”

그를 코앞에 두고 비웃음의 콧김을 내뱉었다.

그의 뺨이 꿈틀거린다.

‘안타깝겠지. 한 방 날릴 수 없는 것이.’

나는 아주 온화하게 웃었다.

싸가지가 없다고? 어른하고 말하는데?

노인 공경? 그건 지하철에서 해야 할 행동이다.

일 얘기 하는데 위아래가 어디 있나?

맞는 말이면 수용해야 하는 거지.

애를 달래듯 나긋나긋 말했다.

상대가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내면, 똑같은 놈이 되는 것 아니던가?

“이사님이 말씀하신 곳에 기둥을 떡하니 박아놓으면 얼마나 건물이 폼이 안 나겠습니까?”

“폼 내려고 안전을 포기하겠다.”

“그래서 떡하니 세련되게 와이어 하나 걸어놨습니다. 못 보셨습니까?”

“녹슬면 어쩌려고.”

“방청 처리 제대로 하면 됩니다. 현장에서 잘하면 되는 거지요.”

“지금까지 전례가 없잖나?”

“왜 전례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홍콩의 상하이은행이 제 공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것 봐.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다는 말이잖아.”

“왜 한국에서는 못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현재건설이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어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코딱지만 한 기숙사 하나 하더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네. 흐흐흐.”

최 이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너털웃음을 가장했다.

“왜 그렇게 시공을 하면 안 되는지, 제대로 말씀을 하셔야지 제가 납득을 할 것 아닙니까? 단지 이사님께서 하기 싫다고 해서, 1970년대 구닥다리로 시공을 하시면, 저는 그렇게 변경하고 싶겠습니까?”

최 이사는 어떤 이유로든 내게 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건 자네 같은 애송이가 끼어들 영역이 아니야. 여기는 실무자의 영역이라고.”

“원설계자 보고 끼어들지 말라니. 그 말씀은 납득을 못 하겠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아 처먹어라. 그런 말인가?’

지금 그와 나는 코가 닿을 거리에서 말을 하고 있다.

최 이사는 목이 꽤나 아프겠다.

나와 그의 키 차이는 20㎝가 넘는다.

최 이사가 독기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가 구조설계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나대는 건가?”

이 말에는 우리 팀 인원 모두가 얼굴이 벙쪘다.

원설계자에게 대놓고 할 말은 아니지 않나?

‘흥분해서 돌아버린 건가?’

짜증이 날 정도로 앞뒤 구분을 못 한다. 안 하는 건지도.

학생이라고 해도, 구조대전에서 대상을 탈 정도면 아무리 몰라도 구조의 ABC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구조설계에는 허용응력 설계법과 극한 강도 설계법, 그리고 한계 상태 설계법이 있지요.”

“흥. 공부 좀 한 모양이지.”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뭐 이런 게 아는 축에나 끼겠습니까? 학교에서 다 배우는 건데요.”

나의 이죽거림에도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이사님께서 공부를 하실 때는 우리나라가 건설 후진국이라, 허용응력밖에 안 배우셨을 텐데. 제가 착각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건설에 있어서도 후진국이다.

이 시절 건축기술의 대부분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하는 것을 따라했다고 알고 있다.

극한 강도 설계법은 일부에서 좀 사용되는 정도였고, 한계 상태 설계법은 1996년인가 1997년인가에 일부에 도입되어 실용화가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박 부장이나 노 과장처럼 구조설계에 아주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만 생활하던 최 이사가 알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만, 혹시 아신다면 한계 상태 설계법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내가 뭘 묻는지는 최 이사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내 예상대로 최 이사는 답하지 못했다.

이름은 들어봤다고 말하면, 정확히 모른다고 인정하는 꼴이고, 안다고 대답하면 설명을 해달라고 할 테니까.

그는 그 개념을 알더라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부르르 떨고 있는 최 이사에게 진지하게 사과했다.

“모르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뿌드득.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어금니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듣는 쪽에서는 훈계조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계속 발전해야지. 매번 1970년대에 쓰던 공법이나 써서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반면 최 이사는 나를 올려다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

“최 이사님. 제가 원설계자입니다. 그리고 제가 저작권 가지고 있구요. 그건 아시죠?”

“그래서! 검증되지도 않은 공법을 가지고 현장을 진행하겠다는 말인가?”

“검증은 받겠습니다. 우려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정녕 관심이 있으시고, 제 공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신다면, 현장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느니, 이 팀에 똥을 싸질렀느니, 전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비난을 하지 마시고, 왜 뭐가 문제가 되는지, 하나하나 제가 이해할 수 있게 비판을 해주십시오.”

“검증을 어떻게 받겠다는 건가?”

“국가에 검증을 받을 수도 있고, 정 미덥지 못하면 최 이사님께서 해주시든가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럼 이 설계대로 누군가는 시공을 하면 됩니다. 군소리 없이요.”

‘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겠지.’

박 부장이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너무 몰아붙이는 것 아니야?’라며.

괜찮다. 나는 일부러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실적이 달린 생사패일지 몰라도, 내게는 꽃놀이패다.

내가 계약을 포기한다고 잃는 것? 기껏 돈 몇 푼? 그걸 포기하더라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망가뜨려 준다.

왜 이런 생각이 가능하냐고?

현재 사장은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문과 매체에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때렸거든.

‘경남건축대전 대상’에 빛나는 작품을 현재건설에서 시공한다고.

그래서 미래를 보며 경영하는 기업이라며.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포기한다고? 최 이사를 자르는 게 훨씬 이득이지.

‘최 이사, 당신을 잠깐 실수한 거지만 당신 습관이 스스로를 죽이는 거야.’

나는 그에게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벌게진 얼굴로 최 이사가 돌아섰다.

“다시 오지.”

박 부장이 심히 걱정된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쩌자고 저렇게 도발을 했나?”

“저 정도면 제대로 준비를 해서 오겠지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이러다가 자네 설계대로 안 될 수도 있어?”

이 사람들과 나의 차이점이다.

나는 설계로 보고, 이 사람들은 실적으로 본다는 것.

“부장님은 이걸로 무조건 가려고 하셨습니까?”

“그럼?”

“최 이사 말마따나, 현장에서 딴지를 걸 수도 있는 이런 공법으로요?”

“그럼 애초에 이 공법을 고집한 이유가 뭔가?”

“전 제 설계대로 하고 싶은 마음 없는데요? 기본으로 잡은 거죠.”

“그게 무슨 말이야?”

“솔직히 저걸로 어디 가서 자랑하겠어요?”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 방법을 연구하러 최 이사님이 달려가셨잖아요. 흠이 될 만한 부분을 필사적으로 찾겠지요.”

“그럼…….”

“우리는 그 부분을 보완하면 됩니다.”

박 부장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린다.

“어허이, 이 친구 보게나.”

“현재의 제대로 된 기술력으로 제 어설픔을 보완해야죠.”

난 내 설계를 고집할 생각이 없다.

지금의 설계는 개념을 도식화해 둔 것에 불과하다.

판타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에 맞는 보완이 필요하고, 그 보완은 끝없는 머리싸움에서 나온다.

최 이사는 실적에 목말라 있다.

최 이사는 자기 편의대로 현장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최 이사는 나를 지극히 싫어할 것이다.

최 이사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올 것이다. 자신의 역량을 다해서.

‘최 이사, 껍데기를 벗겨 먹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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