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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25화 (125/427)

건축의 신 125화

실시설계 (05)

최 이사는 우리 팀의 파티션 입구에 떡하니 서 있었다.

그는 깍두기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쥐색양복 호주머니에 손을 낀 채 웃고 있었다.

작은 키지만 단단한 체구에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그의 모습을 본 순간, 팀의 분위기를 싸늘해졌다.

“뭐,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잡아먹는 것 아니잖아.”

전형적인 포식자의 분위기.

팀원들 하나하나 얼굴을 훑어가며,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박 부장의 책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건들건들 걸어가는 모양새가 산책이라도 온 모습이었다.

최 이사가 물었다.

“곽 이사는?”

“지방에 일이 있어서 안 계십니다.”

“이 인간은 툭하면 출장이야. 내가 있는 날만 골라서 말야.”

이죽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들도 걱정이 많겠어. 뭐하면 우리 팀으로 와.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 테니까.”

그리고는 유일한 여자인 혜주에게로 눈길이 향했다.

“건설회사에 여자가 웬 말이야. 인사과는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쯧쯧.”

언짢아하는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비릿하게 웃었다.

“얼른 남자 하나 잡아가지고 시집이나 가. 나대지 말고 말야.”

“박 부장, 그때 바꿔놓으라고 한 건 수정했어?”

맡겨놓은 물건 내놓으라는 투였다.

박 부장이 씁쓰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이사님께서 지시하실 것이 아니라 판단됩니다.”

“어허, 이런 답답한 사람을 봤나. 그러니까 자네가 만년 부장인 거야. 서로 좋게좋게 가자는 걸 왜 말을 안 들어. 어차피 곽 이사가 본다고 알겠어? 자네가 결정하면 끝나는 거잖아.”

은근히 곽 이사를 깔아뭉개며 오히려 곽 이사를 설득하라는 강요였다.

“정히 곽 이사가 신경 쓰이면 내가 말한 대로 해. 곽 이사는 내가 설득할게.”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원도면의 구조를 최대한 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임의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 팀에서 시공하게 될 거야. 괜히 힘 빼지 말자고. 현장에 들어가면 전부 수정되는 거잖아. 안 그래?”

박 부장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 봐야, 현장에서 바꾸면 끝나는 것을 뭐 하러 헛짓을 하느냐고 하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굳었다.

자신들의 수고가 이토록 폄하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 과장에게 물었다.

“최 이사 말대로 최 이사가 진행하는 겁니까?”

“모르지. 그건 사장님이 결정하실 일이지.”

“그런데 왜 저렇게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는 겁니까?”

“서 전무, 아니, 성훈 씨는 말해도 모르겠네. 그냥 대충 들어. 저 인간 윗선이 알래스카로 발령이 나버리면서, 입지가 줄었거든. 황 전무한테도 미운털 박혀서 오리 알 신세란 말야. 어떻게든 실적을 쌓으려고 발버둥 치는 거지.”

‘회사의 골치 아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은데.’

다행스럽게 노 과장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성훈 씨가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고, 하여간 실적에 목마른가 봐. 그리고 저 인간이 자신 있어 하는 것이 시공이기도 하고.”

“그럼. 시공할 때 채가면 되는 거지.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랍니까?”

“얘기했잖아. 저 인간이 새로운 거 엄청 싫어한다고.”

“공기 단축은 핑계고, 사실은 신공법을 잘 몰라서 두려워하는 거 아닐까요?”

“설마! 하지만 여기가 어디냐? 현재야. 현재.”

능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대기업.

저렇게 살아남는 것도 능력이다.

부장의 책상에 있는 도면을 최 이사가 집어 들었다.

“뭐야. 변경된 게 별로 없네. 하이구, 이것도 구조라고 한 거야? 쯧쯧.”

그는 박 부장의 얼굴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 상태로 현장에 가져가면, 현장에 맞게 설계 변경을 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자네들이 알기나 해?”

“변경하실 필요 있겠습니까?”

“야, 네가 현장을 알아! 현장을 개뿔도 모르는 것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일을 하면 이런 일이 발생을 하는 거야. 꼴랑 몇 년 현장하고 나니, 현장이 쉬워 보이지?”

“그런 말씀이 아니잖습니까? 이사님. 충분히 검토를 했고, 승인도 받았습니다.”

“검토? 승인? 흥. 너 실적 챙기자고, 현장에서 처음 보는 공법으로 변경하는 수고를 해야겠냐? 직공들 다 굶겨 죽일 셈이냐? 넌 새끼야. 부장씩이나 달고 있는 새끼가 왜 이렇게 생각이 없냐? 엉!”

“이사님.”

최 이사는 설득하려는 박 부장의 말을 막았다.

“야, 이렇게 스팬(다리, 건물, 전주 따위의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이 길어서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그래서 와이어로 매달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하중 버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 생기면!”

“문제 안 생깁니다! 다른 현장에서는 이 공법으로 잘만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삐걱거리고, 공기 다 잡아 처먹냐? 새로운 공법? 지랄하고 앉아 있네? 이러나저러나 하중받는 거 똑같고,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면 다 똑같아.”

최 이사가 버럭 역정을 냈다.

“와이어 빼고 그 자리에 기둥 하나 박자는 게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그것 못 해?”

박 부장이라고 할 말이 없을 리 없었다.

옳다고 생각했기에 시도했고, 밀어붙인 일이었다.

시험 과정에서 아무리 능숙하게 시공을 했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현장에서 그 정도는 다반사 아닙니까? 그리고 결과도 괜찮았습니다. 으레 있는 일을 가지고 너무 비약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봐야지. 안정성이 검증이 되야 쓰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 이제 처음 썼는데, 무슨! 그러니까 그건 다음 현장에나 쓰자고. 현장에서 잘 쓰는 게 있으면 그걸로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 말이 틀려?”

“과장님. 최 이사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당최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노 과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현장에는 검증된 공법을 쓰겠다는 거지.”

“그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검증된 공법으로 안정적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검증이 최소 5년은 지나야 안정적이라는 게 문제지.”

“5년 전에 쓰던 공법을 쓴다고요? 왜요? 굳이 저렇게 구조 변경을 하향 조정해야 하는 겁니까?”

최 이사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중간에 기둥 하나를 더 넣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과장님, 최 이사가 말하는 저게 공기 단축에 도움이 됩니까?”

“공기 단축보다는 안 해본 걸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기둥이 촘촘히 박히는 게, 싫어서 일부러 고민하면서 보를 와이어로 매다는 공법을 적용했었다.

내 나름대로는 굉장히 고민한 방법이었다.

‘그걸 지금 시도도 안 해보고 무산을 시키겠다고.’

저래서 무슨 발전이 있을 것인가?

내가 보기에 실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최 이사였다.

기둥이 굵어지든지, 외관상의 미적인 부분을 포기하든지 간에 어떻게든 현장을 완성시켜서 자기 실적을 챙기겠다는 심보였다.

“저러다가 벽도 내력벽으로 하자고 할 것 같은데요.”

내력벽은 주로 아파트건설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구조벽 형식이다. 기둥 대신 벽에서 하중을 받는 시스템이다.

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지만, 기둥이 굵더라도 스팬을 넓혀서 넓은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고층빌딩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나와 노 과장이 속삭이는 와중에도 최 이사의 열변은 계속되었다.

“쉬운 길 놔두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냐 그거지. 내 말은! 중요한 건 결과야. 결과!”

그가 말하는 결과란 무엇일까?

최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설계, 구조, 다 현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시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라고. 현장이 결과라고!”

“현장을 편하게 돌리기 위해서, 니들이 존재하는 거라고. 알아! 현장이 없으면 니들도 다 필요가 없어.”

현장시공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부산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나도 현장에서의 효율을 지극히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말을 과한 부분이 있었다.

작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정확한 시공에 중심을 두는 것이지, 저 말대로라면 시공을 하기 위해서 설계를 한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최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들이 생각 없이 똥 싸질러 놓은 거 현장에서 얼마나 개고생하면서 치우는지 알기나 알아?”

최 이사의 말은 억지가 다분했고, 다소 역겹기까지 했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잖아.’

새로운 공법의 적용을 거부한다.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든 건물을 올리는 것은 똑같다? 이해할 수 있다.

시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한다? 무슨 개소리냐!

나날이 발전해도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어려운 판국에, 이 무슨 시대 착오적인 사고방식이라는 말인가?

그래도 미친개라는 별명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노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 지금 말하는 거 들어보니, 그렇게 미친개 같지는 않은데요.”

“그야. 여기는 현장이 아니잖아.”

“다른 이유가 있나요?”

“자기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안 하면 말야……”

내가 외부인이라서 말하기를 꺼리는 것인가?

“어차피 알아야 상대하죠. 어떻게 되는데요?”

“현장에서 시공을 하면서 담당자를 불러내.”

“네? 왜요?”

현장에서도 시공하는 직공들이 있을 텐데. 직공들이 훨씬 더 시공을 잘할 텐데 담당을 불러낼 이유가 뭐라는 말인가?

노 과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직접 해보라고 하는 거지. ‘네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네가 제일 잘 알겠네’라면서 말야.”

“치졸하네요.”

개념을 잘 안다고 해서, 그걸 가장 잘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럼 체육학 박사는 100m를 10초 안에 다 뛰어야 하는 거냐?

“그런데 그게 통해요?”

“어떡하냐. 그것 때문에 현장에서 일 진행이 안 된다고 난리를 치는데. 그냥 현장에서 개망신을 주는 거지. 이게 뭐하는 거냐고 대들었다가는 그 자리에서 박살 나는 거지. 미친개가 그냥 나온 별명이 아니야.”

하긴 누군들 안 해봤을까?

나도 현장 출신이었다. 지난 삶에서 말 안 통하는 상대가 있을 때, 가끔 이런 말을 했었다.

‘씨발 놈아. 그렇게 잘하면 네가 와서 직접 하든가!’

속이 상하니까 하는 말이지, 정말 실행한 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도 거의 없다.

‘현장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내가 그런 말을 했겠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라’의 강한 표현일 뿐이다.

현장과 데스크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거의 대부분은 서로를 설득하면서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걸 직접 실행하는 미친놈이 있을 줄이야.

아무리 짜증나는 상황이라고 해도, 시켜도 될 것이 있고 안 될 것이 있다.

‘그걸 구분 못 해서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은 모양이네.’

우리 얘기가 끝나갈 때 즈음, 최 이사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잘 아니, 시공도 잘하겠다. 그치?”

박 부장이 슬슬 열이 받고 있었다.

“최 이사님, 지금 저 협박하시는 겁니까?”

“뭐! 협박? 이거 말하는 꼬라지 봐라. 그게 상관한테 할 말이냐? 어이가 없어서.”

최 이사의 상스러운 말이 이어졌다.

“야. 이 새끼야! 상관이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넌 뭐, 용가리 통뼈라도 삶아 먹었냐? 병신 같은 것들이 현장은 좆도 모르면서 나대기는 존나 나대요.”

침만 안 뱉었다 뿐이지 하는 말은 양아치 수준이었다.

최 이사가 박 부장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고 있었다.

대기업, 중소기업, 방법만 좀 다를 뿐이지. 하는 짓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꼭 저렇게 나이든 사람을 후배들 앞에서 망신을 줘야 하는 건가!

‘의리가 있다고 하길래, 잘 꼬드겨서 같이 해볼까 했는데. 휴!’

일말의 기대를 품은 내가 바보 같았다.

넌 폐기 처분이다.

박 부장이 할 말이 없어서 저러고 있겠는가?

눈가의 주름이 부르르 떨리는데도 그는 참고 있었다.

최 이사의 치졸한 복수의 대상은 자신, 아니면 노 과장이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리라.

노 과장이 말했다.

“나 아는 선배가 고집 세우다가 현장에서 그 망신을 당하고 회사 관뒀어.”

회사에서 부하직원을 혼낼 때, 생각이 있는 상사라면 함부로 꾸지람을 하지도 않지만, 정말 화가 났을 때는 따로 불러서 꾸중을 한다.

부하직원들이 있을 때, 그를 혼낸다는 것은 그가 앞으로 부하직원들에게 상사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부하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그를 동급 내지는 아래급으로 취급하게 된다.

“나야 뭐. 부장님하고 친하고, 오른팔인 거 다들 아니까 상관없지만, 현장에서 그 꼴 당했다고 생각해 봐. 소름이 끼친다니까.”

“그 후에는 그분이 현장에다가 무슨 말을 해도 안 통하겠군요.”

권위를 잃은 상사의 말을 누가 듣겠는가? 또한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자존심이 상해서 피해망상증이 생긴다.

‘내 앞에서는 예. 예. 해도, 뒤에서는 비웃겠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노 과장이 속삭였다.

“그렇지. 마녀사냥이나 마찬가지야.”

“미친개라고 하는 이유가 있네요.”

우리는 미친개의 날뛰는 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한혜주가 끼어들었다.

“최 이사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눈치도 없이, 얘는 또 왜 나서는 거야?’

그녀의 입을 잽싸게 틀어막았다.

생각해 보라.

남자들만 득실득실한 곳에서 여자 목소리가 얼마나 튀게 들릴지를.

최 이사가 우리 쪽을 슥 하니 돌아봤다.

“어떤 놈이야?”

반사적으로 한혜주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녀 앞으로 나서며 혜주에게로 향하는 최 이사의 시선을 막아섰다.

‘이제 박 부장도 저기까지가 한계치인 것 같네.’

박 부장은 내 요청을 잘 이뤄냈다.

‘최 이사님이 어떤 분인지 직접 겪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 이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진상이네. 개진상. 그렇게 회사 생활 하고 싶냐?’

저런 인간의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잘난 맛에 살며, 자신의 저런 영웅적인 행동이 팀에게 이득이 되고, 부하들은 자신을 존경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공 쪽에서는 좋아라 하겠지. 뒤에서는 욕하겠지만. 더 볼 것도 없네.’

지금까지 저런 말을 들은 내 귀가 불쌍했다.

내가 직접 겪은 최 이사는 쓰레기였다.

재활용하면 다른 재료까지 썩게 만드는 그런 쓰레기.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 어떠한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최 이사에게 말했다.

“이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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