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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21화 (121/427)

건축의 신 121화

실시설계 (01)

통관절차를 거치고 있는데, 직원이 나를 따로 불렀다.

“김성훈 씨, 이 시계는 어디서 구입하신 겁니까?”

성훈은 사실대로 말했다.

“쿠웨이트의 압둘 왕자에게 선물 받은 겁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백만 원 정도 하는 거라면 세금이 얼마 나오지 않을 것이므로, 오백 정도 하는 고급시계라고 하면 세금이 100만 원 좀 넘게 나올 것이다. 지난 삶에서 부장이 시계를 사다 달라고 해서 구입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시계가 무슨 오백이나 하냐고 속으로 쌍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돈이 있는데 뭘 못 사겠는가?

‘그 정도라면 아깝긴 해도 내줘야지. 준 성의가 있는데.’

직원은 다급하게 무전기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상급자였던 모양이다.

“네, 세관장님. 그리 가겠습니다.”

“얼마인지를 몰라서 신고를 안 했던 겁니다. 세금을 내야 한다면 내겠습니다.”

세관원은 내 얼굴과 여권을 비교하고,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잠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혹시 압둘이 미친 짓 한 거 아니야.’

혹시 수천만 원짜리 시계라면 당장 돌려줘야 했다.

세금만 1,000만 원 단위로 나올 것은 당연하고, 차고 다닐 수도 없다. 그런 것을 차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압둘처럼 경호원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

* * *

공항세관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세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성훈에게 물었다.

“혹시 쿠웨이트의 압둘 왕자라고 하셨는지요.”

“네, 맞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말씀을 해주셔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사관에 잠시 확인만 하면 됩니다.”

세관장은 전화를 걸면서 밖으로 나갔다.

‘대사관에는 왜?’

생각도 못 한 곳에서 시간을 빼앗기게 생겼다.

영 부실했던 기내식에 배가 고파왔다.

함께 있는 직원에게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 빨리 좀 끝내 주실 수 없으신지.”

“왜 그러십니까?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지.”

“배가 고파서요.”

직원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공항 중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공항에서도 배달을 하는 모양이죠?”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네, 뭐. 가끔 있는 일입니다.”

종종 배달도 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배달의 민족이야. 장사에는 친절이 생명이지.’

* * *

세관장실로 아랍인 두 명이 들어왔다.

“대사님,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분이 들어왔습니다. 확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는 성훈의 여권을 들이밀었다.

“네, 맞습니다. 얼굴은 직접 확인하신 거지요.”

세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가 말했다.

“그럼. 그때 말씀드린 대로 세금은 즉시 납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분은 어떻게.”

“그분께서 저 시계가 얼마냐고 물으시면, 1,000만 원이 좀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시고, 세금은 압둘 왕자님께서 내셨다고 하시면 됩니다.”

“대사님. 아무리 그래도…….”

“수입품에 대해서 세관장님보다 더 잘 감별할 사람이 이 나라에 있겠습니까?”

사실이었다.

세관장은 경력만 30년이 넘어가는 베테랑이었다.

‘그런데, 저런 시계는 나도 처음 봤다고.’

브랜드가 ‘파텍 필립’이라는 것은 안다.

저것보다 저가로 보이는 시계는 몇몇 부자가 차고 다녔다. 물론 그것들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쳐서 들어간 것들이었다. 그때마다 파텍에 요청해서 카탈로그를 받았었지만, 지금 본 기억으로는 3억 이상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 짓도 제대로 하려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구만.’

세관장은 생각과는 상관없는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절차라는 것이…….”

대사는 세관장의 손을 꼭 쥐며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왕자님의 특별한 부탁이었습니다.”

뒤에 있던 부하가 대사의 눈길을 받고,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고, 대사는 다시 그것을 세관장에게 건넸다.

그리고 역시 한국에 익숙한 사람답게 말했다.

“작은 성의입니다.”

손에 쥐어진 봉투를 누가 볼세라 얼른 안주머니에 넣으며, 세관장이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문의 사항이 있다면, 대사관으로 연락을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세관장이 돌아서는 그들에게 물었다.

“안 만나고 가셔도 됩니까?”

“괜히 보고 가면 의혹만 더 살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뒤, 사방을 확인하고 안주머니의 봉투를 꺼냈다.

“두툼하네. 훅.”

봉투에서 막 찍어낸 듯한 돈 냄새가 났다.

“으헉. 전부 100달러짜리.”

세관장은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아랍 놈들이 돈을 물 쓰듯이 한다더니.”

봉투를 다시 안주머니로 넣었다.

“정체가 대체 뭐기에 저렇게 신경을 쓰는 거야? 대부호의 아들인가?”

젊은이가 지금 차고 있는 ‘파텍 필립’이 어떤 시계인가?

‘난 저런 시계를 직접 찬 사람도 처음 봤는데. 판매가로 3, 4억이었지.’

직접 본 적이 있어야 진품인지 가품인지를 구별하겠지만, 선물을 한 사람이 아랍의 왕자였다.

가품일 가능성은 0%였다.

그리고 저건 수십 년의 경력으로 봤을 때, 한정판이었다. 그것도 선택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초고가 한정판 말이다.

대체로 저런 물건은 ‘판매가’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구매자와 판매자의 가격이 맞으면 결정된다. 중고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중고가 더 비싸다.

완전 한정판으로 돈을 줘도 못 사는 물건을 선물하는 것도 대단한데, 세금까지 내준다는 말인가?

* * *

세관장이 들어왔다.

성훈은 마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세관장이 말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습니까?”

“네, 친절히 대해 주셔서…… 그런데 왜?”

“시계가 처음 보는 시계라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세금을 매기려고 하면,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정보도 없는 겁니까?”

성훈은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에 IMF 때문에 단속이 심해져서, 고급 시계들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데이터가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불찰입니다.”

성훈이 시계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얼마 정도 하는 시계인데요?”

“네, 약 900만 원 정도 하는 시계인데, 세금은 쿠웨이트 대사관에서 지불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성훈의 물음에 세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헉, 그래도 세금이 300 정도는 나왔겠네요?”

“네, 맞습니다.”

“휴. 그럼…….”

다행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세관장이 성훈에게 물었다.

“혹시 신고하실 다른 물품은 없으십니까? 바로 여기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네, 없습니다.”

성훈의 가방에 남아 있는 것은 소피아와 자신의 스케치북, 그리고 먹다가 남은 라면 몇 봉지가 전부였다.

세관장이 말했다.

“다음에는 더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자네가 나가는 곳까지 안내해 드리게. 또 들러주십시오.”

성훈이 나가고, 세관장은 자신만의 VIP 목록에 새로운 이름을 기재했다.

‘김. 성. 훈.’

세관에도 VIP는 있는 모양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학교로 향했다.

한 교수는 어디 갔는지 없고, 한석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선배님, 성공하셨슴까?”

“응? 뭐?”

“크흐흐. 아시면서 그러심다. 프랑스에서 백마랑…… 크헥.”

따악.

인정사정없이 놈의 뒤통수를 날렸다.

‘이게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백마?’

내친 김에 허벅지에다가 로우킥 한 방을 더 날렸다.

“죽고 싶냐?”

‘어디 지금, 아름다운 추억에 똥칠을.’

한석이 컥컥 대며 말했다.

“아니, 벌써 그런 관계까지. 그럼 형수님이랑…….”

‘아. 정말 네놈 주둥이가 매를 버는구나.’

“너 오늘 완전히 승천시켜 주마.”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데, 한 교수가 들어왔다.

그사이, 한석은 도망쳐 버렸다.

“선배님,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감다. 글구 죄송함다.”

한석의 뒷모습을 보며 한 교수가 말했다.

“쯧. 보자마자 얻어맞기도 쉽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게요. 저놈 아직도 군대 안 갔습니까?”

“다다음주면 간단다.”

“그런데 왜 방학인데도 학교 와서 설친답니까?”

“정신 차렸는지, 펑크 난 학점 때우겠다고 교양과목 듣고 있다.”

“입방정은 여전하지만, 철은 들었네요.”

“그래도 저놈. 너 보고 싶다고 많이 기다렸다.”

“민수는요?”

“얘기 안 하디? 자기 할아버지 절 짓는데 따라가서 돕고 있지. 그놈도 바빠.”

민수 할아버지면 대목장 최기형 옹을 말하는 것이리라.

한 교수가 웃었다.

“나도 민수 덕분에 한번 뵙고 왔다. 하하.”

“무슨 수로요?”

“민수 내가 태워다 줬거든. 하하하. 그런데 성훈아.”

“네.”

“잘됐냐?”

“뭐가요?”

“그 아가씨랑.”

‘아! 맞다. 이 인간이 원흉이었지.’

로우킥을 날릴 수도 뒤통수도 날릴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면 아니지. 분기탱천하지 마라.”

‘그건 또 언제 배웠대? 그래도 분기탱천까지는 아니잖아요.’

한 교수는 진짜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일은 없었냐? 잘 갔다 왔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현재에서는 연락 온 거 없어요?”

“왜 안 묻나 했다. 곽 이사 전화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왜요?”

“일주일이면 온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이주가 넘게 지났으니 찾는 게 당연하지!”

“구조대전 건 실시설계는 얼마나 진행됐대요?”

“그게…… 몰라.”

“교수님이 왜 모르세요? 곽 이사가 보고 안 해요?”

“나 논문 때문에 바빠서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너 오면 이야기하라고 했지. 지금쯤 속이 바짝바짝 탈 거다.”

맨날 논문. 내 이번에는 이 인간을 꼭 끌어들이고야 만다.

“논문은 좀 변화가 있으세요?”

“아. 그러고 보니, 넌 바로 쿠웨이트로 갔구나. 그날부터 며칠 동안 스승님 따라다니면서 많이 뜯어냈다.”

저 말은 만족할 만한 변화를 꾀했다는 말이리라.

“잘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내 경험상, 공부에 왕도는 있다.

그건 스승이 가진 지식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먹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는 한 교수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많이 뜯어 두시죠. 나중엔 나한테 뜯겨야 할 테니.’

한 교수의 배부른 투정이 이어졌다.

“그래. 아직은 좀 숙성이 덜 되었지만, 조만간 결과가 나올 거다. 그래서 내가 시간이 없다.”

결국은 나더러 현재건설에 가라는 말이다.

‘휴. 소피와 있던 시간이 꿈만 같구나!’

“그 여자 생각하냐?”

어째. 그런 건 또 귀신같이 알아채네.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널 일 년 동안 봐왔다. 모르겠냐?”

잠시 꿈같았던 시간은 내 기억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특히나 백마 타령을 하는 놈에게는 더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 * *

한 교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성훈에게 물었다.

“성훈아. 그 파텍 어디서 났냐?”

“좋죠? 압둘이 줬어요.”

“호. 그래? 왕자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네. 그걸 선물로 줬다고? 난 갖고 싶어도 매물이 없어서 못 샀는데.”

“매물이요? 경매하세요? 그렇게 비싸지 않다던데.”

“엥? 짜가냐? 진품으로 보이는데.”

“설마 압둘이 짜가를 줬겠어요? 보실래요?”

한 교수는 성훈이 건네준 시계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진품이었다.

자신이 한동안 갖고 싶어서 브로커들을 닦달했던 모델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이놈, 바보 아니야? 압둘은 왜 그랬지? 너무 액수가 크면 안 받을까 봐 그랬을까? 관세 내준다고 했으면 낼름 받아 챙겼을 놈인데. 뭐 이유가 있겠지.’

일단은 압둘의 장단에 맞추기로 했다.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나서서 말해 줄 이유야 있겠는가?

“이게 비싸지 않다고? 얼마 정도로 보는데.”

“선물 받았으니까, 전 잘 모르죠. 세관장이 그러는데 900만 원 정도 한다던데요.”

한 교수가 씨익 웃었다.

“그래? 내가 두 배, 아니, 세 배 줄게. 팔래?”

“됐거든요. 그래도 쿠웨이트 왕자가 준 건데.”

“그럼 됐어. 잘 간직해라. 성훈아. 선물 받은 거는 함부로 팔거나 바꾸는 거 아니다.”

“저도 압니다.”

“그리고 씻는다고 함부로 풀어놓지도 말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만큼은 성훈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되는 한 교수였다.

‘그래도 녀석이. 제 것을 빼앗길 멍청이는 아니지.’

성훈이 말했다.

“제가 앱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거 방수도 되고, 착용감도 좋아요 찬 거 같지도 않으니 벗을 일이 없죠. 역시 비싼 건 다르네요.”

한 교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

‘헛똑똑이. 저거 어떡하냐!’

“현재건설에는 언제 갈 거냐?”

“지금요. 차 가져갑니다. 쓰실 일 없죠?”

성훈이 한 교수 책상위의 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

‘곽 이사는 얼마나 진행을 해놓았을까?’

진행상황에 따라서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잘 달리는 말에는 당근을, 고집세우는 말에는 채찍을.

저작권이라는 열쇠를 쥔 사람이 성훈이었다.

꿈은 끝났다. 이제는 현실에서 전투를 치러야 한다.

‘잘 쉬었으니, 다시 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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