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19화
힐링 여행(09)
귄터와 나의 흔들의자가 완성되었다.
흔들의자의 늘어난 양쪽 좌판은 커피나 파이프를 놓는 여유 공간으로 이용될 것이다.
귄터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콜록콜록. 성훈. 수고했어.”
“뭘요. 귄터가 다 한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완성품만 만들다가 조립식을 처음으로 시도하려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래서 사흘이면 완성이 되었어야 할 것이 일주일이나 시간이 걸렸다.
“이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만 남았군그래.”
그의 말에 미소로 답했다.
“알았어요. 제가 치우고 갈게요. 먼저 들어가 계세요.”
귄터가 작업대에서 일어났다.
“끄응. 오늘은 마지막으로 자네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는 걸 먹고 싶구만.”
그는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작업대를 정리하고 오두막으로 돌아갔을 때, 귄터는 잠들어 있었다.
소피아가 그를 옮기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제가 할게요.”
“정말 내가 못살아요. 그만큼 쉬엄쉬엄하라고 했더니.”
귄터는 요 며칠의 활기찬 움직임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탈진해 있었다. 그를 들어 난로 옆 소파에 뉘었다.
이제는 침대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항상 거기에 누워서 잤으니.
‘이것도 다용도라면 다용도겠지.’
소피아는 귄터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는 중이었다.
“아우. 정말 남자라는 사람들은 말을 안 들어요.”
그건 국적, 인종, 나이를 불문하고 다 똑같을 것이다.
나라고 다르겠냐만, 그녀의 잔소리가 내게 옮아오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러게요. 남자란 참.”
그녀가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내게 쏘아 보냈다.
‘뭐. 난 귄터의 수발을 든 거뿐이라고.’
“흥.”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그녀 옆의 양동이를 집어 들었다.
“물도 바꿀 겸, 우리 산책이라도 하죠.”
귄터는 이틀 동안 누워서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와 소피아는 여유를 즐겼다.
***
성훈은 호수 중앙으로 카약을 몰았다.
소피아는 성훈을 등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고기들이 도통 입질을 하지 않는다.
소피아가 물었다.
“성훈은 언제 떠날 건가요?”
“모르겠어요. 아직 귄터도 아프니, 좀 더 있을까 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래요? 좀 더 같이 있었으면 했는데.”
“왜요? 벌써 가려구요.”
“네, 이제 곧 엄마가 출산을 하거든요.”
“엥?”
소피아가 몇 살인데, 엄마가 또 출산을 한단 말야?
성훈은 눈이 동그래져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새엄마예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가 말했다.
잔잔한 바람에 물결이 흔들린다.
“5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많이 힘들어 했거든요.”
인생의 반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은 때때로 삶을 허무하게 만든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목적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잔소리를 하든 키스를 해주든, 죽을 때까지 옆을 지키겠노라 맹세했던 사람이 사라지면, 가슴엔 시린 바람만 가득 찬다.
“그때, 옆에서 도와준 언니 같은 분이었어요.”
그 말을 하면서도 복받쳐 올랐던 모양이다.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좋은 사람이에요. 엄마에게도 잘 했고…… 또.”
소피아는 새엄마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을 말하는 만큼, 그녀의 아빠에게 생모의 존재감은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왔다는 말인가.
그녀가 한창 감성이 예민할 시기에 그녀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소피아. 당신이야말로 힘들었겠군요.”
그녀의 스케치북이 젖어들었다.
소피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그녀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줬어요. 엄마가 아닐 때는 좋았어요. 하지만 막상 엄마라고 부르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돼요.”
성훈은 가슴으로 그녀의 차가운 등을 안아주었다.
온기를 느끼며 그녀가 말했다.
“난 엄마에게도 그녀에게도 좋은 딸이 아니었어요.”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사라진 다음에나 알게 되는 것이 소중함이니까.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날 거예요.”
하긴 결혼한 지 일 년이 되었으니,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뭘까?
“그래도 당신은 그들에게 소중한 딸일 거예요.”
“정말로 그럴까요?”
그녀처럼 사랑스러운 딸을 둘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그 사람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성훈에게도 예진이는 세상과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당연하죠. 확인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성훈은 이미 잃어버렸기에, 그 느낌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소피아는 성훈에게 등을 기댔다.
***
여명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눈을 뜨니 귄터가 보이지 않았다.
발코니로 나왔다. 그는 안개 자욱한 호수를 보고 있었다.
“왜 여기 나와 계십니까?”
“원래 늙으면 새벽잠이 없다네.”
이제 몸살이 다 나은 것인지, 아픈 기색은 많이 없었다.
‘안 아프냐고 물으면, 버럭 화를 낼 테지!’
나도 옆에 앉아서 같이 새벽의 고요함을 즐겼다.
가끔씩 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와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소리 말고는 조용했다.
“성훈.”
파이프를 문 그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좋지?”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연한 말에 대답이 필요할까?
그저께 완성된 흔들의자에 앉아서 앞뒤로 끄덕끄덕하는 귄터에게 말없는 미소로 답했다.
그런 나에게 귄터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좋지.”
삐걱. 삐걱.
미명의 안개 낀 숲 속.
새 지저귀는 소리와 바닥의 삐걱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평화롭다. 한가롭다. 심신이 안정된다.
귄터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좋지? 흐흐.”
사실이다. 그냥 여기 눌러앉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니.
이곳에서 보는 새벽안개는 낭만적이었고, 소피아는 아름다웠다. 제법 괜찮은 곳이지 않은가!
“조르당에 대해서 물었던가?”
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가?
“놈의 독일식 이름은 프란쯔다.”
“‘귄터 & 프란쯔’의 프란쯔 말입니까?”
“그렇다네. 녀석과 나는 동문이었거든. 독일에서 가구를 배우다가 죽이 맞았지. 그리고 또 프랑스로 건너와서는 르 꼬르뷔제 아래에서 함께 건축을 배웠었다네. 놈이 나치정권에 이용당하지만 않았더라면, 꼬르뷔제 선생이 그런 오해를 받을 일도, 녀석도 이름을 숨길 이유도 없었지.”
아마도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이었을 테니, 귄터도 프란쯔도 젊었을 것이다.
“어리석은 녀석.”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녀석 딴에는 뛰어난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거지. 꼬르뷔제를 좋아해서 이름도 프랑스식으로 바꿨지.”
“그랬군요.”
“녀석은 존경하는 꼬르뷔제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원했고, 전쟁 분위기에 편승해,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조급함이 정치인들의 눈에 띄었고, 녀석은 이용당했다. 그만큼 꼬르뷔제는 인지도가 높았거든.”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는 귄터의 눈은 초점이 흐려 있었다.
시간을 넘어, 그 시절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 전체 인생을 통틀어도 나는 그의 반절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또한 그는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인류의 역사를 겪어 왔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나 격동의 세월을 살았고,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죽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분단을 눈으로 목도하고,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재건한 산업의 역군이며, 통일을 체험했다.
그런 그가 말했다.
“정치는 녀석처럼 멍청한 놈들이 하는 거다. 아니면 아예 순수하던가.”
친구를 욕하면서도, 그의 말투는 평온했다.
“정말 생각이 있는 놈들은 정치를 하지 않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가 아니거든.”
툴툴거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대가리에 욕심으로 가득 찬 놈들이 할 일이지. 어차피 그놈들은 노력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으니, 자기 주머니 채우는 데만 열정을 다하지.”
독일인이 정치인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르당은 순수했고, 녀석의 진심은 이용당했다. 그게 다야.”
그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프란쯔, 아니, 조르당은 어떻게 되었을까?’
“놈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아니, 그전부터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 열정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을 살아 있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그렇지?”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동업을 하셨는지.”
“그놈에게 어떻게든, 일을 시키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거든. 뭐라도 삶의 목적을 만들어줘야 했다. 녀석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잘 안 되었던 모양입니다.”
귄터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저 기계적으로 뭔가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르 꼬르뷔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정신을 차리더니, 만든 것이 그거야. 그리고 내게 부탁을 하더군. 그걸 스승의 작품과 함께 놓아달라고. 거기다가 그런 짓을 한 줄은 나도 몰랐지만.”
“미안했었나 보죠. 스승에게.”
“그랬겠지.”
매년 그가 롱샹을 찾았던 것은 친구의 유품이 잘 있는지를 확인하러 갔던 것으로 보였다.
탕. 탕.
다 타버린 재를 털고는 다시 새 연초를 채워 넣었다.
귄터의 기나긴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나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거 확인하려고 여기 온 거라면서.”
“훗.”
그의 웃음에 미소로 맞장구쳤다.
그렇다. 처음 시작이 그것이었다.
“대답을 들었으니, 이젠 가봐.”
귄터는 웃으면서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정 이런 곳을 갖고 싶다면, 다른 데를 찾아봐. 여긴 내 자리야.”
그래. 사실 이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이 말을 하려고 했었다. 몸살에 걸려서 그 말을 할 시점을 놓쳤을 뿐이고, 나는 그걸 핑계 삼아 좀 더 머물렀던 것이다.
결국은 이곳이 너무 맘에 들어서 떠나는 것을 뭉그적거렸을 뿐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요?’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눌러 담았다.
그렇게 말하면, 귄터는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군식구가 될 뿐이겠지.’
영원히 머물 것도 아니었고, 잠시 쉬어가려 했을 뿐이다. 그 휴식의 시간이 약간 더 늘어났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수긍의 웃음뿐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돼. 여긴 시간이 멈춘 곳이거든. 나도 프란쯔가 죽은 뒤. 마음이나 달래려고 무작정 걷다가 이곳에 도착했었지. 그게 벌써 30년 전 이야기야. 그리고는 떠날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 그렇게 한 번 두 번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들놈에게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게 된 게지. 내가 만약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녀석과 싸울 일도 없었을 게야.”
지난날을 결국은 자기 잘못이라는 말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너는 좀 더 늙어서 와라. 지금 내 나이쯤 되면 말이다. 그때는 내가 이 자리 물려주마.”
그의 말을 들으며 웃음이 나왔다.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으랴!
80살 먹은 노인이 50년 뒤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귄터가 쑥스러운 듯 먼 산을 보면서 말했다.
“성훈. 나는 네놈이 맘에 든다. 나이답지 않은 진중함도, 모든 것을 놓은 듯이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여유도. 네놈 나이 또래에는 그게 쉽지 않거든.”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 이후, 난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도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이니. 그렇게 뭔가 쫓기듯 살아왔다. 이번 삶에서만큼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랬었는데…….
이곳에서는 잠시나마 모든 것을 놓고 순수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전생에 그렇게 꼴 보기 싫어했던 가구도 만들어보고 말이다.
지금까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변을 둘러볼 때는 내 필요에 의해서였다. 목적이 있을 때 말고는 오로지 앞만 보며 전진했다.
‘나는 행복했었나?’
하긴 이런 질문을 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내가 잠깐 미망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귄터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듣고 있나. 성훈?”
“무슨 말을 했죠?”
“여긴 내 무덤 자리라고.”
노인은 덤덤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인생의 황혼에서 저렇게 편안하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까?
2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이 노인과 나는 정이 들었다.
입만 열면 호통이고, 아들 욕을 하는 노인이지만, 그를 안다면 누가 그를 미워할 수 있으랴!
“고마워요. 귄터. 덕분에 편히 쉬었어요.”
나도 떠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