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18화
힐링 여행(08)
귄터는 발코니에서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내가 오는 것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성훈. 자네가 만들어준 스파게티는 별미였어.”
분위기 전환 겸, 저녁식사를 내가 준비하겠다고 했고, 고이 간직하고 있던 짜파게티를 내놓았었다.
“고춧가루가 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자네 나라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건가?”
“네, 뭐. 흔하디흔한 거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좀 보내 주게.”
“훗. 알았어요. 그것 말고도 많으니까, 몇 종류 사 보낼게요.”
“고마우이.”
귄터는 파이프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귄터, 딱히 기계작업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내가 잘 알지도 못 하는데, 싫고 말고 할 게 있겠나?”
“아까 소피아의 말을 들으니,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아마도 머지않아. 가구 장인들은 전부 사라질 거야.”
왜 그런 추측을 하는 것일까?
지금 시기 한참 후에도 나는 독일에서 들어온 가구 판매를 했었다.
왜 가구 장인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일까?
“장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
푸른 눈의 외국인에게서 장자(莊子)의 이야기를 듣다니.
“내게 가구를 가르치셨던 스승님이 해주신 말이네. 거기에 목수가 등장한다더군.”
그는 장자의 <천도(天道)편>을 말하고 있었다.
“수레의 바퀴를 만드는 목수가 왕이 책을 읽고 있는데, 당신은 성인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군요. 했다더군. 왕이 화를 내며 연유를 물으니, 자신도 자식에게 수레바퀴 만드는 비결을 깨치게 해주고 싶지만, 그게 안 돼서 나이 일흔이 되도록 아직도 직접 하고 있다는 말이었네.”
실제로는 약간 달랐지만,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윤편(輪扁)의 이야기였고,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을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으니, 그들이 남긴 글이란, 결국은 성인의 찌꺼기가 아니냐’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그의 오래된 기억에는 가구에 대한 것만 남아 있었다.
“손기술이라 함은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고, 글로도 남길 수 없는 감각의 영역이라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직접 전수를 받아도 다 깨달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을 계산기에서는 기껏 몇 개의 단순화된 숫자로 정리를 한다고 하더군.”
“컴퓨터라고 해요. 대신 규격화가 잘되었죠.”
“그래. 그 규격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더군.”
“그래야 컴퓨터가 인식을 할 수 있으니까요.”
“손의 감각은 그 계산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들이지. 계산기의 기준에 맞춰 수치화할 수 없으니, 손기술의 정수는 다 사라진다고 봐야지. 그건 장인이 아니야. 계산기 기술자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지금은 시절이 좋아져서, 나무가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나무도 귀한 자원이었다네. 석유가 나오기 전에는 땔감으로 많이들 사용했지. 그리고 품질이 좋은 나무는 더더욱 귀했다네. 그때부터 장인들은 어떻게 하면 한정된 자원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지.”
내가 본 귄터는 아직도 쓰고 버려지는 것보다는 오랜 세월 간직하고 기억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랬겠죠.”
“그런 절박함이 기술을 발전시켰고,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거라네. 귀한 자원을 어찌 함부로 낭비할 수 있었겠나. 지금과는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지.”
풍요로움은 낭비를 만든다.
내일도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데, 어제의 제품을 소중히 여길 사람은 없다. 몇몇의 소장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똑같이 취급된다. 그리고 그 소장품의 숫자는 세대를 거듭 내려갈수록 적어진다.
작품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고, 제품으로서의 소비만이 남게 된다.
너무 풍요로 워서 소중한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손의 감각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있다네. 실수해야만 얻게 되는 것이 있다네. 그건 숫자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회한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목수라면 나무의 결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네. 나무와 친해지고, 그 생몰(生沒)을 알게 되면, 망치와 끌이 제 길을 찾아가는데, 기계에는 그것이 없지. 오로지 똑같은 곡선, 똑같은 형태를 만들어내지. 자연스러운 형태는 사라지고, 판박이를 찍어내는 것 같다네.”
그는 넋두리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쩌면 자신의 실력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한탄이었다.
“성훈. 그것 어디에 다양함과 자연스러움이 있겠나. 그만큼 사람들의 보는 눈도 좁아지고 낮아지는 것일세.”
아름다움도 교육받는 시대가 아닌가?
‘이것이 아름다움이다’라는 명제를 못 박아놓고, 교육을 시킨다. 아니, 세뇌에 가깝다.
스스로 이것이 아름답다고 판단하지 못한다.
‘그것밖에 본 적이 없는데, 알 수가 없지.’
더구나 디자인 회사들의 목표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 새로움은 매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다음 시즌에는 이것이 유행할 거야. 모두 이렇게 찍어내라고.”
모든 디자이너의 펜은 그 유행을 따라 몰려든다.
창작과 다양함은 사라지고, 오로지 소비자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한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저급한 자기세뇌다.
오로지 목표 달성만을 향해 달려간다.
그 목표란 바로, 돈이다.
그 길에 아름다움과 다양함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누군가를 탓할 것은 아니지. 그게 흐름이니까.’
유행은 돌고 돌아, 다시 소비자들은 그때의 아름다움을 찾을 것이다.
가능할 것 같은가?
이미 그것을 할 줄 아는 자들은 늙어죽었거나, 혹은 굶어죽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아쉬울 것은 없다.
내일은 또 다른 유행을 찾아갈 테니.
귄터가 말했다.
“세월은 변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쇠퇴하는 것이지.”
나비가 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꽃더러 날 따라오라 말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말인가?
소중한 것은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
***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성훈이 말했다.
“귄터. 저 먼저 가서 정리하고 있을게요.”
“그래주겠나? 콜록. 내 곧 따라가지.”
성훈이 나가자 귄터도 식탁에서 일어섰다.
“할아버지. 오늘도 작업하려고요?”
“밖에 나갈 수도 없는데, 의자나 만들지.”
“어제 밤새도록 끙끙거렸으면서. 오늘 하루는…….”
“내 몸은 내가 알아. 네 녀석이 참견할 바가 아니다.”
“칫.”
괜히 걱정하다가, 한 소리를 들은 소피아는 고개를 돌리고 하던 짐정리를 마저 했다.
“소피. 왜 벌써부터 짐을 정리하는 거냐? 내려가려고?”
“네, 차가 다닐 수 있으면 갈 거예요.”
“항상 겨울이 끝나면 가더니, 이번에는 왜 그리 서두르는 거냐?”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응? 출산?”
“새엄마요.”
“흠. 벌써 그렇게 됐냐?”
“네, 벌써 일 년이 지났네요. 이제 아빠랑…….”
“콜록. 그 얘길랑 하지 말거라.”
“할아버지.”
“왜?”
“아빠도 많이 늙었어요.”
귄터는 말없이 오두막을 나갔다.
***
귄터는 한참이나 있다가 공방으로 들어왔다.
“산책하셨어요?”
“미안허이. 역시 깔끔하게 정리를 잘해 뒀구만.”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작업이 수월하죠.”
일의 절반은 준비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을 잘 갈려 있어야 하고, 도구는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장인은 공구를 찾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홈을 가공하다 날을 갈아야 한다.
“어제 흔들의자를 다용도로 만든다고 했던가?”
‘무슨 변덕이지. 하루 만에.’
“네, 조립식이 된다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겠죠.”
귄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듯하군. 그렇게 만들어 본 적은 있나?”
“글쎄요. 애초에 조립식을 목적으로 만들어본 적은 없네요.”
그가 말했다.
“해보지. 콜록. 클클.”
“갑자기 결심을 바꾼 이유가 뭡니까?”
80년이나 묵은 고집이 바뀔 이유가 뭔가?
“그걸 알아서 뭘 하게.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나 보지.”
‘허. 어이가 없네. 만들다 보면 알게 되겠지.’
오늘의 제작에는 귄터의 잔소리가 덤으로 따라 붙었다.
“어허. 성훈. 결을 그렇게 타면 안 된다니까.”
“오늘 유난히 까칠하신데요?”
“지금 만드는 건, 내 장인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만드는 조립식 작품이 될 거라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 말씀이 너무 거창한데요.”
누가 때려도 넘어질 것 같지 않은, 드워프 같은 노인네가 하는 말 치고는 신빙성이 없었다.
“요즘은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감도 영 떨어져.”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데끼. 어른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귄터. 등받이를 2단으로 만들 필요가 있나요?”
“조립식이라면서. 당연히 분리가 되어야지.”
“어제 얘기했던 요람을 만드실 생각인가요?”
“크흠. 뭐. 그 비슷한 거야. 콜록.”
이상한 것도 아닌데, 뜨끔한 모양으로 귄터는 기침과 헛기침을 연신 해 댔다.
굳이 요람의 펜스용도가 아니라면 등받이를 2단으로 분리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만드는 과정은 흔들의자와 비슷했다.
대신 좌판(엉덩이가 닿는 판)의 너비를 두 배로 키웠다.
의자로 쓸 때는, 컵이나 잡다한 물품을 얹는 공간이 될 것이다.
양쪽의 팔걸이대를 뽑아서 좌판 끝으로 끼우면 장축의 펜스가 되고, 등받이는 두 개로 분리되어, 하나를 좌판의 앞쪽으로 끼우면 아기가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는 단축의 펜스가 된다.
귄터가 호통 쳤다.
“아무리 조립식이라고 해도 대충 만드는 건 용서 못 해.”
“그건 나도 용서 못 하긴 마찬가지라고요.”
한 번뿐인 인생에 대충이 어디 있나!
죽을 동 살 동 해도 시간이 모자란 판국에.
고작 의자 하나를 만드는데, 공방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
과로하지 말라며 소피아가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고 간 후, 슬며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소피의 아버지도 가구 회사를 한다던데요.”
“녀석은 ‘귄터&프란쯔’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헉? 정말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회사였다.
‘Germany Craft’라는 유명 브랜드의 전신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독일 가구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큰 회사였다. 전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았다.
‘그렇게 큰 회사일 줄이야.’
물론 나는 사장이 만나줘야 할 정도로 높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 회사의 영업사원들만 만나봤지만 말이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의 제품들은 없어서 팔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귄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바뀐 이름에 익숙하다 보니, 눈치채는 게 늦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귄터의 평은 냉랭했다.
“흥. 그래 봐야 사업가일 뿐이다. 돈밖에 모르는 놈.”
“가구도 잘 다루신다고 하던데.”
“그건 인정하지. 그런 재주를 가지고도, 돈 버는 것밖에 할 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왜 그렇게 폄하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회사를 잘 운영하시는 분을?”
“그놈 하나 때문에 독일의 가구들은 다양성을 잃었다.”
“그건…….”
그 회사는 다른 회사들을 인수 합병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사장이 냉혈한이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하긴 유명 가구회사는 전부 먹어 치웠으니.’
“녀석은 나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어. 공방에서도 인정하는 촉망받는 인재였고 나도 녀석에 대한 기대가 컸었지. 나도 녀석이 발전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 가겠다고 했을 때 쾌히 찬성을 했었고.”
귄터는 찬물을 한 잔 들이켜더니, 주머니에서 파이프와 담배봉지를 꺼내들었다.
“내 장인들에게도 귀여움을 독차지했단 말이야. 그랬던 녀석이…… 콜록. 콜록. 어려운 시기에 경영권을 물려준 건 미안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놈이 내게 경영권을 물려받고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아나?”
분개한 귄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밑에 있던 장인들을 잘라내는 거였다. 대신 기계들이 내 공방을 채워갔지.”
수익성을 따지는 사업가기질이 있는 그에게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을 터였다.
“나도 그놈이 그런 결정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회사의 존폐를 걱정할 만큼 어려운 시기였으니.”
“당신의 반대가 두려웠던 거겠죠.”
“흥. 그렇다고 나를 따르던 장인들을 내 허락도 없이 내�i아! 고얀 놈. 제 놈이 아저씨라 불렀고, 어린 시절부터 놈을 자식처럼 귀여워했던 친구들이야.”
“어려운 시절이었다면서요.”
“그래도 내게 상의는 했어야지. 그게 도리 아닌가!”
머리가 허예진 지금도 이처럼 불같이 화를 내는데, 그때는 더 힘이 넘쳤을 것 아닌가?
아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공장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죠.”
어쩌다 보니,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변호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그 선택을 하기 전에 내게 물어볼 수는 없었나. 그 친구들이 내게 와서 얼마나 하소연을 했는지 아는가?”
하기사 귄터보다 아들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었다.
그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 결과가 뭔지 아나?”
“지금 공방에는 나무를 아는 목수가 한 놈도 없어. 기계는 잘 다루겠지. 놈들이 만드는 것은 목제품이 아니야.”
‘목제품이 아니면 뭡니까?’
“플라스틱으로도 금속으로도 그저 똑같이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지. 반드시 나무여야 할 필요도 없지. 정작 제 놈들이 만지는 나무가 뭔지도 몰라.”
차마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확신하듯 차갑게 말을 뱉었다.
“이제 좀 더 기계화가 되면, 그놈들도 필요가 없어지겠지. 컴퓨터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그 후로 회사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 쓰레기가 되었어.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더군. 손으로 만질 줄 아는 장인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 당연한 노릇이지.”
“그래도 승승장구하면서 잘 나갔잖아요.”
“내가 돈을 벌려고 그 일을 시작한 줄 아는가? 아닐세. 돈을 벌려고 했었다면 다른 일을 했겠지. 그 회사는 나와 프란쯔의 정신이 어려 있는 내 전부였다네. 나는 그걸 놈이 잘 이어주길 바랐고.”
1970년대, 그때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격동기였다.
귄터에게 물었다.
“화해를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지금 와서 화해는 무슨. 나도 늙었고, 녀석도 늙었다. 그냥 그렇게 죽고 나면 모두 사라질 것을. 다 쓸데없는 감정소모야.”
귄터는 처연하게 파이프를 물었다.
“아드님이 작년에 결혼했다는 것은 알고 계셨습니까? 소피가 원망하던데.”
“흥. 버르장머리 없는 놈. 어른에게 와서 소개를 시키고 인사를 해야지. 딸랑 딸내미한테 소식이나 전해? 올 거면 오고, 싫으면 말라는 거냐?”
‘찾아오면 받아줄 생각은 있다는 말이네.’
어쩌면 기다림에 익숙해진 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찾아가기는 자존심도 상하고, 몸도 힘들 테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찾아오면 받아줄 생각은 있구요?”
“받아주기는 뭘 받아줘!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하면 모를까? 그놈은 그럴 용기도 없을걸!”
과연 그는 언젠가 찾아올 아들을 어떻게 맞아줄 것인가?
어림도 없다며 큰 소리를 치는 귄터를 보며, 나는 웃음이 나왔다.
사과와 화해에는 시기가 있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도 어색함이 생기면 다가가기 어렵다.
그리고 가끔은…….
사과도 화해도 필요 없는 사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