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17화
힐링 여행(07)
산속에서의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귄터의 가구 만드는 것을 도왔다.
그의 공방에는 내가 아는 곳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전동 공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건가!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내가 생각하고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중세시대의 공방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오늘도 식사를 마치고, 소피아와 산책을 하고 공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소피아가 길가의 돌멩이를 툭 찼다.
“할아버지는 왜 내가 돕는다고 하면 싫어할까요?”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서겠죠. 자존심이 강하시잖아요.”
“그러면서 당신 도움은 왜 매번 받냐고요.”
그녀의 불평의 원인은 불평등에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남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첫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왜 귄터가 소피아를 작업에 넣어주지 않을까?
이방인인 나도 쉽게 참여를 하는데 말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소피아가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도와줄게요.”
“흥.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그리고 상황 종료.
이 사람은 도와준다고 하면 한사코 마다한다.
장인의 자존심인지, 늙은이의 고집인지 몰라도 말이다.
그렇게 소피아는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타산지석!
나는 그녀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재밌겠네요, 같이해도 됩니까?”로 말이다.
이런 경우, 귄터는 이렇게 답한다.
“흥. 해보든가. 쉽지 않을 거야.”
그녀는 이런 대화법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도 소피가 다치는 게 싫거든.’
나처럼 두꺼운 피부야 상관이 없겠지만, 그녀는 손등에 정맥이 다 보일 정도로 피부가 얇다. 칼을 만지게 하고 싶은가?
소피와 헤어져 공방으로 들어갔다.
귄터는 의자 다리에 홈을 파고 있었다.
다리와 다리 연결대의 맞짜임을 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맞짜임이란, 두 개의 부재를 ‘ㅜ’형식으로 짜 맞추는 것을 말한다.
끌을 망치로 치면서 나무를 파내고 있었다.
“귄터, 그렇게 구멍을 뚫으시면 힘들지 않으신가요?”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그는 웃었다.
“땀이 작품에 배어야. 장인의 혼도 작품에 배어든다.”
적어도 귄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뭘 만드시는 건가요?”
“알아서 뭐하게.”
‘뭐하긴요. 궁금해서 그러지.’
결국은 대답을 해줄 거면서, 말은 항상 퉁명스럽다.
내가 물어보는 이유?
도면이 있으면 대번 알아볼 건데 말이다.
‘도면이 없거든.’
그는 도면 없이도, 척척 만들어냈다.
머릿속에 도면이 들어 있으니 가능한 일이리라.
귄터는 계속 혼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사람과의 접촉이 어색해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말만 한다.
무뚝뚝한 독일인 같으니!
그의 작업대에는 그가 파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어차피 하다 보면 뭘 만드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귄터.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해도 돼요?”
“흥. 가능할까?”
그러면서 나에게 눈짓으로 가공해놓은 자재를 가리켰다.
“쉽지 않을 거야. 흐흐.”
그의 승낙을 받아내며 망치와 끌을 들었다.
애초에 결과가 안 좋았다면, 만지지도 못 하게 했으리라.
“그래도 지금까지는 결과가 좋았잖아요.”
“클클. 그렇기는 했지. 보기보다 손재주가 있더군.”
그에게 민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 대목장의 손자라는 말이군. 그 사람은 운도 좋군. 그렇게 대를 이을 후계가 많으니 말일세.”
“아드님도 가구 쪽으로 일을 하신다면서요.”
“흥. 그놈 이야기는 하지 말게. 못돼먹은 놈.”
소피아가 커피 세 잔을 들고 들어왔다.
두 남자의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기계를 사용하세요.”
늙은 그가 힘들어 보여서 하는 말이리라.
“기계 따위에 의지를 하니까, 그런 쓰레기들이 나오는 것이야.”
요즘에 나오는 목공예품이나 가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쓰레기까지는 아닌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과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소피아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아빠 회사의 제품들은 인기가 많다고요. 가격도 저렴하고 좋기만 한데요.”
“그래! 그 저렴함이 문제다.”
“저렴한 게 어때서요.”
“그렇게 만들려고 하니, 제대로 만들 시간이 없지. 대충 끼워 맞추니, 틈이 생기고, 그 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 되는 것이다.”
“가구가 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가 의자를 번쩍 들며 말했다.
“여기 어디에 그런 소리가 나느냐?”
“적당히 쓰다가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요.”
“제대로 만들면 백 년을 쓸 수 있는 것을 대충 만들어 싸게 파니, 그 가치를 모르고, 오 년도 안 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야.”
“그만큼 사람들은 좋은 것을 쓰게 된다고요.”
“그래 봐야 허접한 인스턴트겠지.”
“공산품이에요. 그리고 인스턴트면 어때요? 사람들은 편리하다고요.”
“네 애비와 똑같은 소리를 하는 구나. 그딴 생각으로 대충 만들어내니까, 그런 쓰레기가 나오는 것이고, 내가 만든 작품도 결국은 그런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모른다고요. 그게 공장물건인지, 장인의 작품인지.”
“당연하지. 안목 없는 자들이 그 차이를 알기나 할까!”
“그럼 그렇게 만들어서 돈을 벌면 되죠.”
“날 보고 쓰레기인 줄 알면서 그렇게 만들라는 말이냐? 장인이 사용자의 만족을 생각하지 않고, 돈만을 추구하며 만드는 건 쓰레기와 다름이 없어.”
“너무 고집만 피우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좀 보라는 말이죠.”
“왜? 내가 왜? 그딴 소리나 하려거든, 썩 돌아가라.”
“흥. 말 안 해도 돌아갈 테니, 염려 말아요.”
소피아는 커피를 내려놓고 나가 버렸다.
서로서로 지지 않으려는 둘이었다.
소피아가 화를 내며 돌아간 뒤, 귄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히 작업에 집중했다.
그라고 속이 쓰리지 않으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테지.’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나도 밖으로 나왔다.
소피아는 발코니에서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타왔던 커피를 탁자 위로 내밀었다.
나를 힐끔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습죠?”
호수를 보며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항상 화목한 집안이 어디 있으랴!
“아빠랑 할아버지랑 틀어진 지가 10년이 넘었어요.”
어설픈 위로보다는 말없이 들어주는 게 더 낫다.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요즘 들어서는 할아버지도 많이 늙었고, 아빠도 공장이 어려운 것 같은데……. 요즘에는 제품의 다양화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둘이 화해를 하면 좋을 텐데. 둘 다 화해라는 단어를 몰라요. 고집쟁이들. 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어머. 다 식었네.”
그럴 수밖에 5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말을 했으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작년엔 자기 아들이 결혼을 하는 데도 오지를 않았다고요.”
소피아는 묵혀놓았던 감정을 풀어내듯, 한동안 집안 이야기를 더 하고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명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잘되겠죠. 신경 쓰지 말아요.”
‘대체 아들이 몇 살인데, 지금 결혼을 한 거지?’
속으로 계산을 하느라, 소피아가 들어가는 것도 몰랐다.
***
“귄터. 주문을 받고 만드는 건가요?”
“나는 주문 따위는 받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팔아요?”
“흥. 내놓기만 해도, 살 사람은 사간다.”
요 며칠간의 작업을 봤을 때, 딱히 주문을 받고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아서 물어본 거였는데.
‘완전 강철 멘탈이네.’
살 테면 사고, 말라면 말아라.
배짱 장사의 표본이었다.
그래도 팔린다는데, 내가 더 무슨 말을 하랴.
만드는 동안 윤곽이 슬슬 나왔다.
“흔들의자죠?”
“훗.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리송한 대답을 하며, 귄터는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항상 캠핑을 다닐 때,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다닐까?’
저녁의 노을을 즐기기에는 접이식 의자보다는 흔들의자가 더 좋지 않을까? 가지고 다닐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귄터. 왜 흔들의자는 조립식이 없을까요?”
“그렇게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지.”
귄터의 생각으로는 그게 맞겠지만, 이제 곧 한국에는, 아니, 전 세계적으로 삶이 윤택해지고, 여유가 생길수록 사람들은 자연을 찾아가게 된다.
그것이 ‘캠핑’이라는 유행을 만들게 된다.
‘제품의 다양화? 이거 승산이 있는 걸!’
노을 지는 산속에서, 강변에서 흔들의자라!
“귄터. 이거 조립식으로 만들면 어때요?”
“엥!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냐?”
하긴 내가 말하고도 황당했지만.
“생각해 보세요. 어딘가 캠핑을 가거나, 놀러 가는 사람들은 힐링을 하러 가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듯 귄터의 눈가 주름이 깊어진다.
“당신이 함부로 가구를 대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그는 전통이 훼손되는 걸 지극히 싫어하는 고집쟁이였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당장에라도 호통을 지를 기세였다.
그에게 말했다.
“흔들의자하면 편안함이 떠오르죠.”
“당연하지.”
내게 흔들의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달래는 모습이었다. 흔들흔들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힐링을 하러 간다면서 거친 땅바닥에 앉거나, 가벼운 금속제의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고요.”
“그래서?”
여전히 납득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귄터. 가정이에요. 당신이 산속에 놀러갔어요.”
“여기가 산속이야.”
“그러니까 가정이라고요. 석양이 지고 있어요.”
그는 눈을 끔뻑거렸다.
“당신 앞에 흔들의자와 금속과 천으로 만들어진 간이의자가 있어요. 어디에 앉을 거 같아요?”
귄터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훗.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감히 어디다가.”
“아쉽지만 흔들의자는 가져가지 못하죠.”
일반적인 흔들의자는 부피가 꽤 크다.
“그러니까. 좋은 데서 분위기 좀 느끼고 싶은데, 가져가기가 불편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 안 가져가면 되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왜요? 좋은 걸 왜 안 해요?”
“가구는 자꾸 손 타면 안 돼.”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가구다.
하지만 그 부피로 인해서 이동하는 것에 불편함이 있으며, 한 번의 이동이 있을 때마다 가구에는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귄터가 걱정하는 것은 가구의 수명이었다.
그래서 가구는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면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설득의 방법을 바꿔봤다.
“그럼 접이식은 어때요?”
“나는 가구에 쇠붙이 안 쓴다.”
“네? 그건 또 왜요?”
“가구는 내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완성품이다.”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면 녹이 쓸어버릴 텐데. 내가 가서 바꿔줄 수 없잖느냐.”
그것 또한 그만의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교체를 몇 번 반복하면 가구에는 불필요한 가공들이 가해지고, 오히려 가구의 수명을 짧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당장의 편리를 생각했지만, 귄터는 가구 자체의 수명을 생각하는 장인이었다.
“귄터. 가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만족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죠?”
“당연하지. 최종적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사용자지.”
“그럼 사람들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물건을 원한다면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소피아 말을 들어보니, 요즘은 제품의 다양화가 대세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날보고 그걸 따라가라고? 그건 실력이 모자란 것들이 하는 짓이다.”
‘실력 좋은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짓도 아니잖아요!’
여기서 이 말을 하면 시비 거는 꼴밖에 안 된다.
“그래도 당신 같은 실력자가 만든다면 또 다르지 않을까요? 그리고 조립식이라면 다용도로도 쓸 수 있다고요.”
다용도라는 말에는 흥미가 좀 생겼는지 내게 물었다.
“이 흔들의자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예를 들면?”
갑자기 물어보니 생각이 날 리가 있나?
“예를 들면 상부의 등받이 팔걸이를 빼고, 탁자로?”
“크하하. 이 친구야. 이 흔들거리는 것을 탁자로 쓴다고?”
“쳇. 그건 흔들다리를 빼면 된다고요.”
내 당황하는 모습이 우스웠던지, 더 크게 웃더니 말했다.
“그런 말 안 되는 소리를 하려거든. 공방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그럼 요람은 어때요? 흔들의자처럼 흔들리잖아요.”
“뭐? 요람?”
“그렇잖아요. 아기를 항상 안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됐어. 그만하게. 조립식으로 만들면 연결부가 많이 상해서 가구 수명만 짧아져. 쓸모없는 짓이야.”
“그럼 그 부위를 강하게 하면…….”
“어허. 그만하고, 끌이나 좀 건네주게.”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다음 날 바로 번복하게 된다.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몰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