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13화
힐링 여행(03)
사무실 구석에 있는 부러진 의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신부님, 이거 맞죠?”
“맞습니다.”
“용케도 부서진 걸 안 버리셨네요.”
“부서지지만 않으면 원형 그래도 보전하는 거죠. 사람들이 신기술을 보러 여기 오겠습니까? 르 꼬르뷔제라는 거장의 작품 그대로를 보러 오는 거겠죠.”
이곳 사람들이 전통을 대하는 방식인 건가?
가끔씩 오래된 한옥에 함석으로 된 빗물받이가 떡하니 달려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불편한 것 안다.
그 시대의 선조들도 그 불편함을 더 겪고 살았을 거다.
물론 그 불편함을 그분들에게 겪으라고 하는 것도 오지랖임은 알고 있다.
어쩌면 거기 살면서 보존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미학적으로 보기 싫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땅으로, 기와로 떨어지는 빗물소리 대신, 녹슨 함석 물받이로 떨어지는 ‘통통’ 소리가 왜 그렇게 듣기가 싫었던지.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신부는 벽난로의 불씨를 살리고 장작을 집어넣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훈훈한 기운이 올라올 겁니다. 저는 자료를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난 의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았다.
“성훈, 가구를 다루는 게 익숙해 보이네요.”
‘지난 삶에서 가구 땜빵만 십 년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무 만지는 게 좋아서 취미로 가구를 좀 만들었어요.”
소피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해놓고 보니 뜨끔했다.
취미로 가구를 만들었다라. 조각을 했다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그녀는 이해한 듯 보였다.
“그럴 수 있죠. 제 주변의 남자들은 다 가구를 취미로 만들거든요.”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취미로 가구를 만드냐?
주변을 둘러보니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이래서 고칠 수 있으려나. 망치하고, 조각칼만 가지고는…….”
“잠시만 기다려 봐요. 할아버지가 혹시 고칠 게 있을지 모른다고 염료하고 장비를 가져가라고 했거든요.”
그녀가 톱과 망치를 비롯한 재료들을 가지고 왔다.
그동안 나는 의자의 분리를 끝냈다.
“엥. 성훈! 뭐하러 그렇게 다 분리를 한 거예요?”
“이왕 할 거면 처음부터 온전하게 손보는 게 나아요.”
그녀의 얼굴에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왜 고생을 사서 해요? 성훈 당신. 고집 세죠?”
“아뇨. 저보고 사람들이 살아 있는 보살이라고 불러요.”
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쳇. 하는 거 보면 빤히 보이는데, 완전 우리 할아버지과네요. 피, 고집쟁이들.”
말투는 그랬지만 정말 할아버지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알면 이거나 거들어요. 가구 장인의 손녀라면서 이런 것도 안 해보지 않았겠죠?”
“거의 못 해봤죠. 여자들은 이런 거 하는 거 아니라던데요?”
“그렇구나. 음음.”
‘호기심이 강해 보이는데, 하지 말라고 안 하는 성격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성역할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했던 모양이다.
“그럼 별로 나무를 만져보지 못했겠네요?”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허리에 손을 울렸다.
“흥. 그럴 리가요. 이래 봬도 원래는 가구 장인이 목표였어요.”
“정말요?”
“저도 할아버지 못지않게 고집쟁이거든요.”
“그런데 왜?”
고집을 꺾었냐고 묻지는 못 했다. 그녀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조각칼을 만지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거든요. 그 이후에는 근처도 못 오게 하세요.”
그녀는 생긴 것과 달리 상당히 말괄량이였던 모양이다.
그녀에게 의자의 부품들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제가 오늘 당신 소원 이뤄 드릴게요. 가구 장인! 이거 다 사포질하세요. 좋죠?”
그녀가 사포질을 하는 사이 나는 나무를 깎았다.
“할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음. 건축가? 가구 장인?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 두 가지가 가장 크네요.”
“부모님은 뭐하시는데요?”
“아빠는 가구공장을 운영하세요.”
그녀의 주변 남자들이 가구를 만들었다는 말이 왠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도 익숙한 모습으로 사포를 들고, 해체해 놓은 부속품들의 흠집을 문지르고 있었다.
“이야! 대를 이어서 하시는 건가요? 사이가 좋으시구나. 부럽네요.”
그녀는 입을 삐죽이며 사포질을 멈췄다.
“흠. 같은 일을 하시긴 하지만 사이가 그닥…… 워낙 자기주장이 강하신 분들이라.”
“그래서 소피는 고집 센 사람이 싫겠구나.”
“꼭 그렇지 만은 않아요. 할아버지처럼 고집 있는 사람이 가끔은 매력적이거든요.”
더 알고 싶었지만 초면에 너무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아서 화제를 바꿨다.
“당신은 미술을 배운 이유가 뭐예요?”
“전 사실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럼 디자인 관련 과를 가는 것이 맞지 않나요?”
“하지만 미술의 기본이 튼실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는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이 지나도 아직 신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료 찾기가 쉽지 않으신 모양인데요.”
“그러게요. 지금 몇 시나 됐나요?”
“이제 11시가 조금 넘었네요.”
“어머, 고풍스러운 시계를 차셨네요. 보통은 우리 나이 대에는 디지털인데.”
나는 ‘훗’ 하고 웃었다.
“친구한테 선물 받은 거예요.”
얼마나 하는 건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패션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나보다는 잘 알겠지만, 적어도 400만 원은 넘을 것이다.
그 이상 되는 것이라면 당장 뜯어서 압둘에게 돌려보낼 것이다.
‘왜냐고?’
500만 원 정도를 넘어가면, 관세가 제품가의 50%가 된다고 알고 있다.
천만 원짜리면 세금으로 30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집사라면, 내가 세금을 크게 내지 않는 범위에서 처리했을 거야.’
500만 원만 해도 나 같은 학생이 차고 다니기에는 과한 물건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 친구가 부자인가 봐요. 그거 우리 아빠도 그거랑 비슷한 거 차고 있던데.”
“네, 좀 부자예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나무를 깎았다.
“성훈, 천천히 해요. 커피도 좀 마시고.”
언제 커피를 내렸는지 그녀가 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커피포트를 벽난로에 걸었다.
커피가 다시 데워지면서 고소한 향이 사무실에 가득 찼다.
후루룩.
“후우, 후우.”
잠시 티타임을 가진 후, 다시 보수 작업에 몰두했다.
나무를 반대쪽의 모양과 똑같이 만들었다.
그동안 민수와 작업을 해서인지, 나도 나무와 조각칼을 다루는 데 익숙해졌다.
지금은 기존의 나무와 같은 색이 되게끔 옻물을 덧칠했다. 보수를 위한 기본 작업이 끝났다.
“이제 조립만 하면 되겠네요.”
이제 나무를 끼워 넣으려고 의자를 뒤집었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의자 에이프런(좌판 아래에 있는 다리와 다리를 잇는 세로판) 귀퉁이에 작게 글자 끄트머리만 나와 있었다.
나무망치로 톡톡 치면서 에이프런을 떼어냈다.
소피아가 그걸 왜 떼냐는 듯, 의아하게 나를 바라봤다.
‘아! 프랑스어네.’
칼로 새겨진 거였는데, 안타깝게도 프랑스어였다.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소피아, 내가 아까 디자이너 얘기 했었죠.”
“그게 왜요?”
나는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찾았어요? 정말로? 농담일 거라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죠?”
“저 따라다니면서 수작 거는 남자들 무지 많았거든요.”
“전 다를 걸요.”
“무슨 근거로?”
“이게 증거죠.”
내 손에 든 에이프런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내가 읽지 못하는 프랑스어로 된 글자가 있었다.
“엇!”
“설마 내가 10년도 훨씬 전에 당신에게 보여주려고 써 두진 않았겠죠?”
“진짜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에이프런을 받아 들었다.
“소피아, 뭐라고 쓰여 있어요? 전 읽을 수가 없어요.”
“내가 프랑스 말을 안다고 누가 그래요?”
“치사하게 혼자서만 알고 있기 없어요. 당신이 불어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녀의 독일어에는 프랑스 억양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쳇. 아저씨처럼 말을 하면서 눈치는 엄청 빠르네요.”
그녀의 말보다 에이프런에 적힌 말을 가리켰다.
“<존경하는 스승, 르 꼬르뷔제를 기억하며…… 파리에서. 조르당> 이라고 쓰여 있네요.”
“스승에게 바치는 선물인가?”
“그럼 제자겠네요? 거장의 제자!”
그녀는 궁금증이 동한 모양이다.
내가 아는, 그래 봐야 아주 좁은 지식이지만 그의 제자나 동료 중에 조르당이라는 이름을 가지 자가 있었던가?
“글쎄요. 난 잘 모르겠네요.”
소피아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의 숨겨진 제자일지도 몰라요! 아, 낭만적이야.”
‘왜?’
난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말이 안 돼요.”
“왜? 왜 그렇게 생각해요?”
“단지 르 꼬르뷔제의 제자나 동료였다는 말만 해도,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기 좋았을 텐데 말이죠.”
물론 그럴 능력이 되었으니, 르 꼬르뷔제와 같이 작업할 수 있었겠지만, 워낙 위대한 건축가이다 보니 꼬리표가 붙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의 김중업 선생 또한 거장의 이름 덕을 본 것도 있겠지만, 그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까?
“당연히 밝히는 게 이득이죠. 그렇죠? 소피아.”
“그래도 숨기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겠죠. 그러니까 더 궁금하지 않아요?”
환한 미소로 나를 종용했다.
그녀의 말도 신빙성이 있었다.
제자가 아닌 자가 제자라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죽었을 수도 있다.
르 꼬르뷔제는 2차 대전 당시를 살았던 인물이다.
전쟁 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다른 것에도 이런 글이 있지 않겠어요? 우리 뜯어 봐요.”
“신부님이 아시면?”
“뜯지 못하게 하실걸요?”
하도 소피아가 호들갑을 떨어서 다른 의자의 좌판만 분리해 보았다.
똑같은 문구밖에 없었다.
신부는 누렇게 색 바랜 일지를 들고 왔다.
“30년 전에 누가 기증하고 간 거네요. 그 당시 관리자가 잘 어울린다면서 받아두었다고 적혀 있어요.”
30년 전이라면 르 꼬르뷔제가 작고하던 해인가? 다음 해인가?
신부가 말을 이었다.
“누군지는 알 수 없네요. 미안해요. 형제님. 그런데 의자는 왜 다 여기에 와 있습니까?”
“다른 의자들은 어떻게 접합했는지 보려고…….”
말도 안 되는 어색한 변명을 해댔지만, 신부는 별말 하지 않았다.
고쳐져 있는 의자를 보며 수고했다고 고마워했다.
소피아의 말처럼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팔걸이에 팔을 걸치고 앉았을 때, 금세 알 수 있었다.
딱딱한 나무로 된 의자였다. 그런데 가벼웠다. 좌판과 팔걸이까지의 길이가 어떻게 자로 댄 듯 딱 맞는지, 그리고 등받이의 기울기도 등의 곡선과 맞닿았다. 엉덩이와 팔꿈치, 허리까지 모든 체중을 의자에 골고루 분산시킨다.
얼마나 인간에 대한 연구가 철저했으면, 이렇게 맞춤형처럼 편안할 수 있는 것일까?
멀리서 볼 때는 투박해 보였지만, 앉아서 느끼는 의자 마감은 말할 수 없이 세련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30년이 넘은 의자라는 말일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손때 묻은 부분이 있고, 세월에 퇴색된 부분도 있었지만, 그나마도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이걸 만든 장인은 어떤 사람일까?
신부가 재밌다는 듯 목록을 뒤적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오호라. 이 의자에는 히스토리가 있네요. 이거 보세요.”
그와 소피아는 그 히스토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
“저 이전의 신부님이 유난히 아끼셨네요.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부서뜨려서 눈물을 흘렸다고…….”
“어머, 미사를 보러 오셨던 주교님은 의자 하나만 가져가면 안 되겠냐고…… 말도 안 돼! 주교님이.”
만나보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파리, 조르당, 르 꼬르뷔제. 나이는 최소한 50대는 넘었을 것이다. 르 꼬르뷔제가 죽은 지 30년이 되었으니.
“성훈, 어디 가게요?”
“누군지 궁금해서요.”
“어떻게 가려고요?”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따라와요.”
“당신은 왜 가려고요?”
“나도 궁금하거든요. 여러 가지로.”
여러 가지라니, 뭐가?
그녀의 차 앞에 섰다.
독일의 국민차. 구형 폭스바겐이었다.
“아빠가 내 탄생일을 기념해서 구입한 거래요. 그래서 나랑 나이가 같아요.”
“관리가 잘되어 있네요.”
“그럼요. 아빠가 딸처럼 아꼈던 차인데요. 키도 얼마 전에 받았어요.”
손가락에 키홀더를 돌리면서 내게 자랑을 했다.
차에 탔다.
“고마운 줄 알아요. 조수석에 처음으로 타는 남자니까.”
“감사합니다. 태워주셔서.”
그녀가 파리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시속 40㎞로 달렸다.
“왜 이렇게 천천히 몰아요?”
지금껏 한마디 말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그녀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시끄러워요. 안전운전 몰라요? 안전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