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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12화 (112/427)

건축의 신 112화

힐링 여행(02)

가끔씩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운명도 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성당 내부를 구경시켜 줄까요?”

그녀가 커피잔을 받으며, 말을 덧붙였다.

“자릿세는 그걸로 퉁 치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여자였다. 신세지는 것도 싫어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 줄래요?”

“‘Yes or No’도 아니고, 그래 줄래요? 성훈, 아저씨 같은 거 알아요?”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그리고 아저씨 맞거든!

그녀는 성당 내부로 나를 이끌었다.

이미 한 번 와서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미녀 가이드에게 안내를 받지는 못 했다.

내 그림을 기부하라고 하던 신부는 기억에 남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말했다.

“딱 좋은 시간에 왔네요. 지금이 최고의 쇼타임이거든요.”

‘쇼타임이라.’

미사실의 문을 열었다.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수영장 바닥에서 벌어지는 빛의 향연을 아는가?

물결의 흔들림에 따라 빛의 굴절이 달라지면서, 수영장 바닥에 오로라를 만든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흔들리네요. 빛이.”

밖에서 부는 바람 따위에 빛이 굴절될 리가 없다.

“아니죠. 성훈. 저런 건 춤을 춘다고 하는 거죠.”

그녀의 말처럼 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롱샹성당에는 똑같은 크기의 창이 없다.

일반적인 건물에서는 채광을 중요시하므로 단열과 구조에 문제가 없다면 가급적 창을 크게 뚫는다.

그게 일반적이고, 그게 정석이다. 이성적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창은 전체 건물에 비해 코딱지만 한 창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크기의 창들이 무작위로 뚫려 있다.

동일한 규격은 없다. 그리고 약간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했다.

창이 작은 만큼 내부가 어둡다.

그 어둠을 빛무리가 관통한다. 어둡기에 그 빛은 더욱 찬란하다.

강렬하면서도 아늑하다. 신의 후광처럼 성당 내부의 곳곳을 어루만진다.

장의자들, 신부의 강단, 그리고 강단 뒤 상부의 성모상까지.

외관이 남성적인 강함과 묵직함이었고, 신의 카리스마를 상징했다면, 내부는 말 그대로 마리아의 품속이다.

엄숙하지만 따뜻하게 감싸주며, 세파에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 준다.

어느 누가 그 온화함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으랴!

‘만약 오지 않았다면, 평생을 후회했을 걸작이군.’

르 꼬르뷔제라는 거장은 이성적 효율을 버린 대신, 감성적 효율만큼은 극대화시켰다.

완벽하게 100%!

신 앞에 선 자가 느낄 법한, 장엄하면서 부드러운 빛.

그리고 은은한 광채가 동공을 두드릴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전율.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에 뒤집어썼던 모자를 벗어 파카 주머니에 넣었다.

은은한 금발이 그녀의 어깨를 흘러내렸다.

“진정 신의 품이라면 이럴 것 같지 않나요?”

그녀는 그 빛들을 만지기라도 하는 듯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빛무리를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와 어울리는 대신, 스케치북을 꺼냈다.

빛 속에 강림한 천사를 그리고 싶어서였을까?

내 오른 손은 그녀의 모습에 날개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다가 왔다.

“와우, 천사를 그렸네요.”

“천사를 그리려고 의도했던 건 아니에요.”

곧 그녀는 모델이 그녀라는 것을 눈치챘다.

“고마워요.”

이처럼 인간의 감성을 어루만질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한 사람을 어찌 고만고만한 기술자로 부를 것이며, 그저 그런 예술가들과 비교할 것인가?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을, 역량을, 가치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욕망, 희열, 로망과 시적 감성을 자신의 건축물로 하여금 말하게 만든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비난하는 모든 자들을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예술가의 궁극적 목적지가 아닐까?

이 사람이야말로 건축의 신이라 불러도 그 칭호가 아깝지 않다.

그녀도 나도 몰아지경에 빠져서 빛의 콘서트를 감상했다.

빛의 요정들이 내 눈을 간질인다.

어떤 녀석은 장의자에 부딪히고, 또 다른 녀석은 바닥에 부서지며 장난을 쳤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사용한 사람이 또 있을까?

건축가들은 자신의 설계에 장난을 친다.

평이할 수 있는 부분에서 살짝 꼬면서 장난을 침으로써, 응당 평범해야 할 부분이 평범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 거장은 건물에 인위적인 변형을 최소화하면서, 자연의 빛이 장난스러운 결과를 나타낼 수밖에 없게끔, 고단수의 장난을 친 것이다.

아마도 실제적으로 건물로 구현하기 전까지 일반인들은 꼬르뷔제의 이런 장난스러움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천재의 위대성이 여기에 숨어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이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가 있다는 거 알아요?”

내가 잡지에서 읽었던 사실을 말했다. 물론 지금보다는 미래에서 본 잡지였다.

‘응?’

그녀의 미간이 금시초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잠시 뜨끔했지만, 나는 당당했다.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단지 지금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꽤나 유명한 디자이너인 걸로 기억해요.”

“누군데요?”

“그게 기억이 잘 안 나요.”

“유명하다면서요?”

유명하다고 다 기억하나?

난 패션 쪽으로는 문외한이었다.

“유명은 한데, 제가 그쪽을 잘 몰라요.”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

“확실한 건, 그녀가 롱샹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거고, 전 그녀의 영감이 어디에서 출발한 건지를 찾으러 왔거든요.”

“에헤, 거짓말.”

‘확실히 좀 개연성이 약하기는 했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제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여요?”

그리고 신빙성 있는 인물 하나를 덧붙였다.

“저도 여기가 처음은 아니에요. 여기 신부님은 저 기억하실 건데, 여름에도 왔었거든요.”

난 진실을 말하지 않을지언정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신부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나를 위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그녀는 내 말에서 진심을 느꼈던 모양이다.

“어떤 건지 찾게 되면 가르쳐 줄래요? 전 궁금한 걸 잘 못 참아요.”

“훗. 소피아.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니까, 일단 찾아봐야 해요. 알다시피 영감이라는 게 애매하잖아요.”

그러나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만큼 사실을 바라봄에 직관적이었다.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의 물건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요?”

그녀도 유명 디자이너라고 하니,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뭐라고 답해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같이 찾아봐요. 그래서 그게 뭔지 찾게 되면 말해주기로 해요.”

“좋아요. 그리고 디자이너 이름이 기억나면 말해줘요. 궁금해요.”

호기심에 들뜬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그리 넓지 않은 성당 내부를 돌아다녔다.

장의자 아래를 만져 보기도 하고 강단 내부를 살펴보기도 하면서, 보물찾기 하듯이 성당을 훑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강단 옆의 작은 의자에 앉아서 그 인터뷰 기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다른 곳을 뒤지고 있었다.

여름에 봤던 신부가 들어왔다.

“방문자님들,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소피아를 보더니 대뜸 그녀를 알아 봤다.

“소피아 자매님.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는 준엄하게 물었다.

“그곳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의자가 너무 편해서요. 나무 의자인데, 느낌은 굉장히 고급스러워요.”

딱딱한 나무 의자가 편해봐야 얼마나 편할 것인가?

그런데 편했다.

내 몸에 맞춘 듯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아주 간단한 원리였다.

내 팔과 다리의 길이를 맞춘 듯이, 온몸의 체중부담을 의자가 고스란히 분산시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몸의 비례와 모듈을 생각했다니, 역시 거장은 다르구나.’

나는 전생에 가구 영업을 했었다. 독일에서 들어오는 앤티크 가구와 고급 소파 등등의 물건을 취급했었다.

강남의 논현동 가구골목에 즐비한 영업장 중의 하나가 내 삶의 터전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눈썰미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내 고객들은 모두 돈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높은 만큼 좋은 것을 입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고급진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운이 좋아 땅값이 올랐든, 재수가 좋아 주식이 수백 배로 뛰었든, 어쨌거나 그들은 그것을 향유할 능력이 있는 자들이었으며, 그런 만큼 그들은 눈이 높았다.

그런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는 적어도 가구에서 만큼은 그들 위에 있어야 했다.

고객보다 내 제품을 모르면서 어떻게 장단점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투박한 의자는 그런 고가의 제품보다 더 앤티크하면서, 더 안락했다.

“소피아도 와서 앉아 봐요.”

소피아도 그곳에 앉더니, 정말 편한 듯 등까지 기대고 눈을 감았다.

“성훈. 신부님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전부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결국 나는 신부에게 다가가 그에게는 좋지 않을 기억을 상기시켰다.

“이번 여름에 다녀갔었던 김성훈입니다. 그림을 기증하라고 하셨던.”

“아! 그 깍쟁이 청년이구만!”

그는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크! 봐요. 나 맞지?”

신부는 그 의자가 롱샹을 방문하는 신부나 주교들이 모두 탐내던 물건이라고 했다.

“원래는 4개였는데, 얼마 전에 하나는 부서져서 3개밖에 없습니다.”

신부가 소피아에게 물었다.

“자매님.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오지 않으셨나요?”

“네, 요즘은 뭔가 하시느라 바쁘시네요.”

“흠. 오시면 의자를 손봐주실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신부는 정말 많이 아쉬운 듯 했다.

“신부님. 이 의자들도 르 꼬르뷔제선생이 만드신 건가요?”

건축가들이 실내장식으로 쓰이는 것들은 직접 디자인하거나 만드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 혹시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을 까요.”

“글쎄요. 제가 여기 온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그전부터 있었던 겁니다. 그 자료들을 찾을 수 있을지…… 그나저나 그렇다면 가구 장인을 불러야 하나.”

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다.

고민에 빠진 그에게 말했다.

“신부님. 제가 가구라면 조금 아는데, 한번 봐도 될까요.”

친해지면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아까 내가 의자를 보며 가구에 대해 좀 아는 척했던 걸 신부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이럴 게 아니라, 같이 사무실로 가십시다. 어차피 의자도 그곳에 있으니.

소피아는 아직도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불렀다.

“소피아. 같이 안 갈래요?”

“어머.”

그리고 민망한 듯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의자가 너무 편해서요.”

“그렇죠. 저도 가구에 대해서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 만들었네요.”

“그러게요. 우리 할아버지가 만든 의자처럼 편안해요. 아니, 그것보다도 더.”

“할아버지가 꽤 솜씨가 좋으신가 봐요?”

“네, 가구 장인이세요. 요즘은 나이가 드셔서 잘 안 만드시던데, 예전에는 곧잘 만드셨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할아버지를 한 번 만나 뵀으면 좋겠네요. 저도 가구에 관심이 많거든요.”

우리는 잡담을 하며, 신부를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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