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11화
힐링 여행(01)
스위스 국경도시 바젤의 작은 마을이다.
어젯밤에 바젤의 숙박업소에 도착해서, 지금은 이국에서의 아침을 맞았다.
나는 르 꼬르뷔제의 걸작, ‘롱샹’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저번에 왔을 때는 급한 일정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었지.’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장갑 낀 손엔 작은 물병 하나와 지도책을, 목에는 손바닥만 한 카메라를 걸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눈앞에는 하얀 눈이 내려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는 사막 한가운데서 더워 죽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눈밭이라니.”
중심가에서 살짝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처녀지가 내 앞에 있었다.
첫 발자국을 디딘다. 조심조심. 하지만 확실히 이 땅이 나를 기억하게.
‘확실히 저번에 왔던 것과는 다르네.’
경로도 다르고, 계절도 달랐다.
처음 롱샹을 방문했을 때는 프랑스 쪽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이었고, 그나마도 시간이 촉박했기에 역에서 내려서 바로 택시를 잡아탔었다.
오늘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힐링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온 거였으니까.
김동률의 ‘출발’을 흥얼거리며, 여관 밖을 나섰다.
‘지금쯤 김동률도 여행을 하며, 이 노래의 시상을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였다.
그렇게 부르고 싶은 욕망에, 노래방에만 가면 그의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었다.
그의 목소리는 국보급이 아닐까?
남자인 나도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달달했다.
‘김동률만큼이야 못해도, 꽤나 인기가 있었는데. 흠.’
바젤 역에서 프랑스 벨포트 역까지, 기차로 한 시간 남짓을 달렸다.
눈 옆으로 휙휙 지나가는 유럽의 겨울 풍경은 자연스레 입술이 벌어지게 만든다.
평화롭다. 아름답다.
눈꽃을 피운 침엽수가 줄지어 있는 숲, 반대편으로 보이는 아담한 호수, 그 안에 비춰진 탐스러운 구름까지.
엘프는 없었지만, 엘프가 살 만한 숲은 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
르 꼬르뷔제의 롱샹성당.
프랑스 보주 산속에 있는 성당은 1950년에 시작하여 4년 후인 1954년에 완공되었다.
현대건축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건축가를 꼽을 때, 그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우리나라의 1세대 건축가 김중업 선생께서도 한때 르 꼬르뷔제와 함께 일을 했었다. 사사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실제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보면 르 꼬르뷔제라는 거장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의 롱샹 순례자 성당은 2차 대전 때 폭격을 받아 소실되었다.
기적처럼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성모상을 보존하기 위해 성당을 다시 짓기로 했고, 그 설계자로 르 꼬르뷔제가 선택되었다.
당시 그는 나치에 협력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설계자로 추천한 쿠튀리에 신부와 교회는 르 꼬르뷔제의 행동이 개인의 영리가 아니라, 인류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위해서라면 그 대상이 설령 악마라고 할지라도 타협할 수 있는 예술가임을 이해했다.
이 설계 의뢰는 교회가 르 꼬르뷔제라는 거장에게 주는 사면령과도 같았다.
르 꼬르뷔제는 그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 ‘롱샹성당’을 지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건물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나는 거장이 남긴 발자취를 보러 간다.’
내딛는 발에 힘이 들어갔다. 하얗게 김이 서려 나옴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언덕을 한참 걸어 올라가니, 거장이 말년에 설계한, 정말…… 기가 막히게 특이한 모습의 성당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보인다’라는 말은 실례가 될 정도로 땅 위에 떡하니 자리박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첫 느낌은 ‘뾰족 버섯’ 같았다. 하얀 몸통에 연갈색 뾰족지붕!
르 꼬르뷔제가 아니고는 누구도 설계할 수 없는 건물.
‘와! 멋있다!’
다시 봐도, 그냥 멋있었다. 곡선이 어떻고, 건축가의 사상이 어떻고, 다 필요 없었다.
어쭙잖은 미사여구는 이 성당에 결례가 될 것이다.
한 걸음을 더 내디딜 때마다 나무에 가려 있던 성당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뜨악!’
입은 떡 벌린 채, 등줄기로 소름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그 어떤 스펙타클한 영화를 보면서도 이런 전율은 느낀 적이 없었다.
가만히 있는, 존재 자체가 카리스마다.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아마 신을 직접 대면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성당이라는 건물의 목적성에 더할 나위 없이 부합한다.
“그는 정말 천재야! 어떻게 이런…….”
그냥 여기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거장의 흔적만으로도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김중업 선생께서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외관을 만족스러울 때까지 둘러보고, 주변에 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저기가 좋겠네.”
롱샹의 전면이 다 보이는 나무 밑에 작은 돗자리를 폈다.
큰 나무 아래라 그곳에는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방석 하나를 놓고, 그곳에서 롱샹을 바라보았다.
‘기도하는 손’의 모습이 웅장한 건물로 표현되어 있었다.
배낭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 느낌을 담을 수는 없을 거야.’
사진으로도 감동을 담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작가의 감동을 내가 느끼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감동임에는 분명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의 울렁거림을 내 손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나는 수천 장의 종이를 괴롭힌 것이다.
아담한 몸체 위의 웅장한 버섯머리를 그려 나간다.
‘아!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이 감동을 공유할 수 있을 텐데.’
아쉽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롱샹의 외관은 남성적이다.
거친 벽에 굵직한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디테일도, 선명한 라인도 없었다.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은 탑뿐이다.
건물 자체는 약간 사선으로 벽체가 하늘로 치닫고 있다. 기계적인 냄새가 나지 않다.
그럼에도 안정적이다. 산처럼 평온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말을 걸었다.
약간은 독일 억양이 섞인 영어였다.
“혹시 동행이 있으신가요?”
감탄으로 자연스레 벌어져 있던 입을 다물었다.
‘누구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몰아의 순간을 깬 것에 대한 짜증도 약간 있었다.
코발트블루의 선명한 띠를 두른 눈동자 두개가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몇 번을 말을 걸려고 하다가, 집중하시는 것 같아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오는 그녀의 입술로 눈이 향했다.
이국에서 처음 느낀 비현실적인 느낌.
눈을 깜빡거렸다.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 전체가 보였다.
새하얀 얼굴에 다홍색 입술, 그리고 젖살이 덜 빠진 듯한 미묘한 얼굴선.
흐려지는 정신줄을 다잡았다.
‘음. 왜?’
나는 말없이 미간을 좁혔다.
“동행이 없다면, 비어 있는 자리에 좀 앉아도 될까요?”
‘왜 하필 여기?’
“이 자리가 롱샹을 그리기 제일 좋은 자리거든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모로 꺾으며, 가벼운 미소를 보낸다. 보조개가 살짝 패었다.
‘그랬던가.’
그저 이 자리가 제일 좋아서 여기 앉았던 것뿐이다.
비켜달라고 하면 비켜줄 용의가 있었다.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생기게 하는 미소였으니까.
그녀가 물었다.
“저도 여기서 그려도 될까요?”
조금 넓게 펼친 돗자리를 보고 온 모양이었다.
내 돗자리는 둘이 앉기에 충분히 컸으니까, 그녀의 하얀 손은 빈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갑작스런 천사의 등장에,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네,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나도 그녀에게 동화된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옆에 살짝 쪼그리고 앉아서 롱샹을 바라보며 손으로 이리저리 구도를 잡았다.
“역시 이 자리가 제일 좋아.”
독일어였다. 이번에는 프랑스 억양이 섞인 독일어.
다시 그녀는 내게 영어로 말했다.
“이것 좀 맡아주실래요?”
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척척 자기 말을 했다.
“독일어가 편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어머. 독일 말을 할 줄 아시네요. 동양인이라 영어로 말했는데.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그녀의 화구를 내려놓으며 살포시 웃었다.
눈썹을 으쓱하며 허락했다.
그녀가 눈밭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춥죠?”
털모자를 쓴 그녀는 코끝만 발개져 있었다.
“그렇죠.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안 불어서 포근하네요.”
쪼로로록.
그녀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그리고 내 그림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흐음.”
신음하듯 작은 경탄을 내뱉으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코발트빛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나도 모르게 숨 쉬기를 멈춰 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아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왼손은 깔고 앉았던 방석을 뽑아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앉아요.”
내 엉덩이에 깔려 있던 부분에 살며시 손을 대보고는 말했다.
“따뜻하네요. 고마워요.”
‘커피값 대신이라고 생각하자. 잘 했다. 왼손아.’
그녀가 내 옆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녀를 옆에 두고 눈이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음흉함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하겠다.
새하얀 얼굴에 건강한 구릿빛이 살짝 섞여 있다. 그럼에도 반짝거리며 윤기가 흐른다.
볼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턱선에서 파란 선이 보인다. 정맥이리라.
투명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녀는 독일에서 왔고, 23살이라고 했다. 이름은 소피아.
‘겨우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얼굴이었는데.’
서로 통성명을 하는 사이에 나는 마지막 터치로 그림을 맺었다.
그녀의 그림을 볼 여유가 생겼다.
그녀의 스케치북을 가로지르는 선을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내 것이 강함 일색의 러프스케치 느낌이 강하다면, 그녀의 그림은 한결 안정적이었다.
“전 미술 전공인데, 성훈도 미술학도예요?”
그러면서 내 그림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선이 굵고 강렬해요. 롱샹의 외관과 정말 잘 어울리네요.”
그녀가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했다.
추위에 얼어 있던 손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아뇨. 건축학도예요.”
그녀가 나를 살며시 돌아보며 입술을 오므렸다.
“그림을 특징 있게 잘 그리기에, 미술학도인 줄 알았어요.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해요.”
이미 불쾌한 마음은 그녀의 미소와 커피 한 잔으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이 훈훈한 느낌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뇨. 마침 다 그렸습니다.”
“느낌이 어때요. 롱샹?”
이런 건축물을 보면, 말을 아끼게 된다.
보기만 해도 감동의 눈물이 나올 정도인데, 내 가벼운 입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말이 필요 없는, 예술작품이죠.”
그녀도 그렇다는 듯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을 보여줄까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건축학도치고, 르 꼬르뷔제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롱샹성당에 사진이라도 걸려 있나? 저번에 왔을 때는 못 봤는데! 당연히 보고 싶지.
이런 초고수, 솔직히 말해 괴물 같은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광일 것 같았다.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녀는 지갑을 꺼냈다.
‘웬 지갑?’
그녀는 지갑에서 10프랑을 꺼냈다.
그리고 세로로 세운다.
이건 뭐지?
“짜잔! 르 꼬르뷔제.”
그 지폐에는 양복을 입고, 안경을 슬쩍 들고 있는 민머리의 노인이 있었다.
그리고 적혀 있는 이름. ‘Le Corbusier 1887-1965’.
그의 얼굴을 알고는 있었다. 워낙 유명한 거장이라 건축학도라면 모를 수가 없다.
‘꿈에서라도 좋으니, 르 꼬르뷔제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하지 않은 학생이 얼마나 될까?
그가 남기고 간 결과물을 보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나라의 지폐에 새겨질 정도의 위인이었던가?
보통은 구국 영웅이나 왕을 새겨 넣지 않는가?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충무공 이순신, 쌀, 다보탑, 아쉽게도 아직 신사임당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그를 존경한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김중업 선생이나, 김수근 선생을 그렇게 생각하는가?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가치관에 충격을 받았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엔지니어, 예술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거 스위스 지폐예요. 10프랑.”
음. 스위스 쪽에서 왔음에도, 나는 숫자에만 신경을 썼지, 거기에 새겨진 사람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르 꼬르뷔제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왜?”
그녀가 커피를 홀짝이며 설명을 이었다.
“원래는 스위스 사람이었대요. 나중에 프랑스로 국적을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역시 존경스러운 발자취였다.
다른 나라로 이적을 했음에도, 그의 동향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대우하고 있었다.
가히 영웅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처음 오는 건 아닌가 봐요. 소피아.”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나를 흘겨본다.
“역시 이 자리가 가장 잘 보인다면서요. 그럼 당연히…….”
“맞아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르고 싶은 곳인데, 이번에는 겨울밖에 못 왔네요.”
“그렇게 롱샹이 좋아요?”
“사실은 할아버지가 이곳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따라오다 보니, 저도 좋아하게 된 거죠.”
“혹시 할아버지께서…….”
“아뇨. 정정하세요. 요즘은 바쁘셔서 같이 오지 않았지만. 아직도 망치질을 안 하시면 몸이 쑤신다고 난리세요.”
할아버지를 말할 때마다, 그녀의 볼에는 보조개가 패었다.
커피를 마시며 말을 하는 사이 그녀의 그림도 완성이 되었다.
나와는 다른, 포근한 눈을 덮고 있는 롱샹이 그녀의 스케치북에 내려 앉아 있었다.
“세부적인 묘사가 예술이네요. 표현력이 좋아요. 소피아.”
그녀가 스케치북을 덮었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인가?’
아쉽지만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했다.
인연이 아닌 것은 어떻게 해도 헤어지게 되어 있고, 인연인 것은 어떻게든 이어지게 되어 있다.
지난 삶을 살면서 확인한, 몇 안 되는 진리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