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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10화 (110/427)

건축의 신 110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9)

정말 액땜이라도 한 것인지, 그 뒤로는 순조로웠다.

자르고 붙이고, 다만…….

이 번의 것은 피스가 아니라 볼트와 너트의 조립으로 이루어졌다.

기술자가 많았던 만큼 속도는 빨랐고, 정확했다.

이것까지는 압둘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압둘이 넋을 잃고 드릴을 든 손을 힘없이 떨구었다.

“이런! 이제 드릴이 좀 손에 익었구만!”

‘익기는! 이제 아주 수준급으로 오토바이를 타더니!’

“스케일이 커지면, 하중도 다르니까. 피스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왕자님!”

마음껏 드릴질을 해보려던 압둘의 희망은 날아가 버렸다.

기운 빠진 압둘에게 말을 걸었다.

“좀 작은 거라도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압둘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러면서도 말을 툴툴거렸다.

“작은 걸 뭐하게? 왕자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아.”

“왕자님. 장식용으로 쓰시죠. 뭐. 그리고 카미도 물통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요?”

“흠. 정 원한다면야. 만들어주지!”

“민수야. 1/8 스케일로 도면 하나 그려봐라. 왕자님께서 만드신단다.”

그리고 민수를 압둘의 보조로 붙여버렸다.

누가 보조가 될 것인지는 하늘만이 판단할 것이다.

통화가 끝난 집사가 말했다.

“왕자님, 수술이 순조롭게 끝났다고 합니다. 안정을 취하고 있답니다.”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 군. 자네는 지게차를 잘 몰던데. 따로 연습이라도 한 건가?”

피식 웃었다.

‘사실대로는 말할 수 없고.’

“그냥 배워두면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아는 형님께 배웠습니다.”

“오, 그런가!”

인생에서 배워둬서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쓰일 곳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

지난 삶에서 나에게 지게차 모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중졸이었다.

인연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잠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스쳐 지나갔던 사람이었다.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 이 일을 택했다던 그는, 밝고 생각 있는 사람이었고, 이 기술로 아이와 아내가 먹고살고 있다면서 자랑스러워했었다.

나이는 나보다 3, 4살 많았던가?

고아였던 그는 일찍 가족을 가지길 원했고, 이제 공부를 더 해서 포크레인이나 불도저 같은 중장비를 배우겠다고 했었다.

옆을 지나가는 포크레인을 보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저 사람은 자기 숟가락을 들고 다니네.”

부러워하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비웃었었다.

‘그래 봤자, 운전수일 뿐이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당당하게 한 사람의 몫을 했던 그를 지금 다시 만난다면, 당신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감사하며 안아주고 싶다.

학력, 학위, 그것이 사람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함을 시기하면서, 내 부모가 유학을 보내줄 능력이 안 되어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원망하던 시기도 있었다.

내 어머니에게 해서는 안 될 원망을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지난 삶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유치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지난 삶에서의 나도 김성훈이었고, 지금의 나도 김성훈이다.

다만 그때의 철없던 나 자신을 알고 있기에 조금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중일 뿐이다.

노력에 노력이 중첩되면, 더 이상 나 이외의 다른 것을 탓하지 않게 되면, 그때서야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되새기며,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후회로 중첩된 과거를 딛고 새로운 내가 되기를 희망한다.

***

거대한 물레방아가 완성되었다.

물이 내려오는 슬라이드 판만 7~8m를 넘어갔다. 기울기를 많이 낮췄음에도 말이다.

놀이동산에서처럼 튜브를 타고 내려와도 될 정도의 크기였다.

“왕자님, 카미는 여기서 물 마실 필요가 없겠는데요.”

압둘이 무슨 말이냐며 나를 쳐다봤다.

“입에 대기만 해도 물이 절로 위장으로 들어갈 것 같아서요.”

물길이 너무 세다며 놀리는 말이었지만, 어쨌거나 압둘은 만족했다.

“카미가 아주 편안해하는군. 진작 만들어줄 걸 그랬어.”

카미는 거실을 터서 만들어 놓은 제 방에 안락하게 누워 있다.

밖에서 보면 오두막이 집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방에는 압둘을 위한 소파도 있고, 카미를 위한 볏짚 침대도 있었다.

때로는 눕기 위한 침대가 될 것이고, 때로는 카미의 간식도 될 것이다.

카미가 잠든 것을 지켜보던 압둘이 말했다.

“고맙네. 성훈.”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았다.

병원에 갔었던 핫산도 수술이 잘 끝나면서, 압둘의 집으로 돌아왔다.

압둘이 차를 마시며 말을 꺼냈다.

“알라께서는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라고 하셨다.”

좌중의 시선이 압둘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성훈에게 내 마음의 표시로 선물을 하나 하고 싶군!”

그가 핫산을 쳐다보자, 핫산이 입을 열었다.

“지당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입으로만 말하는 가르침은 헛된 깨달음이지요.”

압둘이 집사에게 물었다.

“뭐가 좋을지 생각해 보라.”

“글쎄요. 성훈 님은 젊으시니, 람보르기니나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가 어떠실는지요?”

압둘이 들어보니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이! 내 의견 따위는 묻지도 않는군.’

성의는 고맙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걸 받아서 어디다가 쓰게!

울산 바닥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을 텐데, 나 부자라고 소문낼 일이 있는가? 주차는 어디다가 하고!

그거 밖에다가 세워두면, 누가 발자국이라도 남길까 봐 잠이나 잘 수 있겠어? 누가 훔쳐갈 염려는 없겠네.

나는 지금은 소리 소문 없이 살고 싶었다.

“왕자님. 싫습니다!”

민수와 곽 이사가 나를 보며, 입을 딱 벌렸다.

“형. 혹시 미치신 거 아니에요?”

곽 이사는 민수 때문에 선수를 놓친 듯 입만 뻐끔거렸다.

압둘도 약간 놀라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는 내 성의 표시라고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군.”

집사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들어보니 그러하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적어도 요트는 되어야.”

얼른 그들의 대화를 잘라 먹었다. 마음이 살짝 불편해지려 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게는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들이 아니었다.

‘나도 그 정도 돈은 있다고! 단지 필요가 없다고.’

이들이 말하는 것은 사치품을 넘어서 돈 잡아먹는 기계였다.

세금 떼기 딱 좋은 품목! 유지비는 또 얼마나 들 것인가?

“왕자님, 카미가 편해져서 뭔가를 선물해 주시고 싶다는 마음은 감사합니다.”

압둘이 알았다며 내게 물었다.

“딱히 받고 싶은 것이 있는가? 미처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군. 미안하군.”

압둘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받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듯 했다.

“저는 그저 카미가 편해지는 것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처음 시작은 분명히 목적이 있었다. 몰딩의 제작시기를 늦추려는, 그리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목적.

그러나 진심으로 카미를 아끼는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고, 나는 그 마음을 돈으로 환산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물질적인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마음에 들어서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카미가 좋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돈이나 물질적인 것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압둘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따로 바라는 것이 있는가?”

대답을 하려 하는데, 카미가 내 옆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물레방아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가던 중이었던 것 같다.

카미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전 그냥 이 녀석이 편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만남의 기회는 또 있을 것이고, 아랍의 부자를 한국으로 초대할 일은 또 있을 것이다.

‘속 보이게 한국으로 와달라고 할 수는 없지.’

카미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긴 혀로 내 얼굴을 핥았다.

‘이 미친!’

온몸에 소름 쫙 돋아 올랐다.

‘이! 낙타 대가리야!’라고 소리칠 뻔했다.

기억났다.

예전에 개 키울 때도 만지는 건 좋아해도, 핥는 건 엄청 싫어했는데…….

고양이는 그나마 혀가 까끌까끌해서 싫지는 않았는데, 침 흘리는 짐승들의 혀는 뭐라고 할까.

뜨끈뜨끈하고 살아 있는 해삼이 내 몸에 붙는 기분이라서 엄청 싫어했었다.

그리고 이놈은 방금까지 위에서 게워낸 건초들을 씹고 있었다.

“으윽…….”

필사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얼굴에는 가식적인 미소를 보였다.

‘난 정말 핥는 게 싫다고!’

낙타 녀석 아구창을 한 방 날리고 싶었는데, 이를 악 물고 참았다.

압둘이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된 밥에 똥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흐흐흐…….”

웃고 있으니 압둘이 말했다.

“그렇게 좋은가? 성훈. 흐흐흐.”

“네, 흐흐흐.”

“우리 까미도 자네가 맘에 드는가 보구만.”

나와 카미의 화목한 웃음에 거실의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정작 선물을 하고 싶은 인물이 받지 않겠다고 하자, 압둘의 고민이 커졌다.

핫산이 압둘에게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압둘이 근엄하게 물었다.

“성훈. 그럼 하나만 묻겠네.”

“네, 말씀하십시오. 왕자님.”

“언젠가는 카미가 죽게 될 걸세. 그때, 자네는 카미의 장례식에 올 건가?”

무슨 의미로 묻는 것일까?

‘당연히 카미가 좋기도 하고, 한 번 더 압둘을 보며 친분을 쌓을 수 있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핥는 것은 싫어하는 것은 내 취향일 뿐, 나는 카미가 좋았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동물이 싫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큰일이 없는 한은 당연히 올 것입니다.”

압둘은 입을 꾹 다물고, 고맙다고 했다.

“그것은 신성한 약속이니 지켜져야 할 것이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좋다. 그러나 카미가 없다면, 자네와 나를 이을 끈이 없다네.”

조용하게 압둘은 말을 이었다.

“카미가 없어진다면, 나는 친구가 없어진다. 그대가 나와 친구가 되어 달라.”

‘친구? 사업상의 동지가 아니라? 내가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서.’

“왜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겁니까?”

“자네에겐 알라의 가호가 함께하신다.”

“저도 그 말씀엔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라나 다른 신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신은 없을 테니까.’

내가 종교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몇 가지 없다.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이건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

‘결국은 내 뜻대로 살아라. 너는 내 것이니라.’

일부 종교에 국한된 것이겠지만, 두 번째의 삶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식어가는 차를 마시며, 압둘이 물었다.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외롭다고 친구가 되어 달라고 하는데, 거기에 자신의 신앙인 알라를 말하는데, 내가 뭐라 할 텐가?

옆에서 집사가 말했다.

“왕자님. 그 옛날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 격언에 ‘코끼리가 들어갈 만한 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코끼리 몰이와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압둘이 눈으로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성훈이 친구가 되기에 자격이 모자란단 말인가?”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로서는 충분히 걱정이 되는 것이리라.

“친구에 자격은 무슨, 알라 앞에서는 어떤 인간도 평등하다.”

단호한 압둘의 말에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탈랄. 나는 그를 알라께서 보내주신, 내 친구라 생각한다. 내게 준하는 예의를 갖춰라.”

압둘의 말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전해라.”

그렇게 나는 쿠웨이트의 왕자와 친구가 되었다.

***

곽 이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정말 한국으로 안 돌아갈 생각이십니까?”

그동안 평대를 쓰던 곽 이사가 다시 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이사님, 왜 또 갑자기 존대를 하십니까? 어색하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압둘 왕자님 친구분이신데.”

압둘이 사람은 좋아 보여도,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말씀 마시고, 평대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민수도 옆에서 내 말을 거들었다.

“네, 제가 보기에도 이사님이 이상해 보입니다. 사우디에서부터 말입니다.”

곽 이사의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민수의 당연한 의문이었다.

“크흠. 그럴 사정이…… 아니. 알겠네. 그런데 성훈 군. 정말 한국으로 안 돌아갈 건가?”

난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사우디에서의 일 때문에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려던 내 일정도 많이 늦어졌다.

“네, 사우디에서의 사건도 원래 계획에 없었던 거라고요. 아시잖아요.”

“지금 한국에 자네를 필요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나?”

“제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만.”

“구조대전의 작품도 실시설계를 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제가 꼭 필요한 겁니까?”

“자네가 있어야 뭔가 진행이 되어도 될 것 아닌가?”

공동 설계자, 민수를 보며 말했다.

“여기 민수도 있잖아요.”

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팔을 내저었다.

“곽 이사님. 어차피 성훈이 형 승인 안 받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시죠?”

곽 이사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가봐야, 나 잡아먹으려고 설계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요.”

기존의 공법을 쓰자고, 구조설계팀에서 날 설득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뭐하러 이렇게 승인도 받지 못한 공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승인받게 하면 되죠?’

‘그래도 승인받는 시간을 생각하면 낭비야!’

‘그러니까 맨날 발전에 없는 거라고요.’

이 설전이 평행선을 타게 될 것이다.

“이사님. 차라리 그 공법을 실용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세요. 그럼 제가 나중에 들러서 확인하면 되죠?”

하지만 나는 내 원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소 끌려가듯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곽 이사 때문에 왕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맙지만, 원래는 없던 예정이었다.

곽 이사의 높아진 언성에, 압둘이 붙여준 경호원의 눈이 매서워졌다.

압둘은 정무가 바빠서 마중 나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경호원 둘을 붙여줬다.

두 명 중의 하나는 내 티케팅을 위해서 매표소에 가 있었다.

‘왕자의 스케일이란 정말.’

그러니 곽 이사가 내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저기 가서, 잠시 나랑 얘기 좀 하게.”

곽 이사가 나의 소매를 잡았다.

동시에 경호원들이 곽 이사의 어깨를 짚었다.

“성훈 님의 탑승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시지요.”

곽 이사는 다급한 것 같았지만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봬요. 민수도 잘 가고.”

그들은 나를 왕족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안내했다.

곽 이사가 물었다.

“언제쯤 돌아올 생각인가?”

“대략 일주일이면 되지 않을까요? 장담은 못 하겠네요. 잘 들어가세요.”

인사를 하며 그들과 헤어졌다.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경호원들이 자리를 배정해 주며, 승무원에게 뭐라고 말했다.

아마 잘하라는 당부 혹은 명령의 말일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 내게 작은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뭡니까?”

자리에 앉아 그들에게 물었다.

건넨 경호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저 왕자님께서 작은 성의라고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선물 포장지를 풀었다.

이렇게 작은 것이니, 과한 것은 아니겠지만, 보석이나 값비싼 물건이라면 돌려줄 생각이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시계였다.

‘18K인가?’

고급스런 금장에 가죽 끈으로 된 남성용 시계였다.

시계 뒤쪽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태엽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보다는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난 지난 삶에서 20만 원 이상 가는 시계를 차 본 적이 없었으니, 알 수가 없었다.

“비싼 건가요?”

그들의 입에서 즉각 답이 나왔다.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차고 다녀도 크게 사치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뒤쪽을 보니 아랍어로 뭐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말이죠?”

경호원이 말했다.

“인샬라. ‘신이 원하신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그들이 내렸다.

비행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삶 언제쯤이던가,

책을 보는데, 거기서 유명 디자이너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전 롱샹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곳은 제 영감의 원천이죠.’

그 뒤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일정표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는 과연 그곳에서 힐링할 수 있을까?

내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얻었던 영감을 나도 얻을 수 있을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는 롱샹에서 뭘 채울 수 있을까? 혹은 뭘 비울 수 있을까?’

일등석은 편안했다.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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