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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09화 (109/427)

건축의 신 109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8)

급박한 비명 소리를 들으며, 지게차로 뛰어갔다.

도착과 동시에 점프를 하며, 운전석에 착지했다.

키는 꽂혀 있었다.

‘다행이야.’

운전석에 자리를 잡으며, 바로 시동을 걸었다.

부릉 부릉.

‘다 똑같을 거야.’

예전의 경험을 되살리며, 클러치를 밟고, 운전석 옆의 레버를 앞으로 척 밀었다.

지게차는 전진 아니면 중립, 후진이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지게차는 회전반경이 지극히 좁기 때문에 일반 차량과 같이 생각해서는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지게차 종류는 속도가 위주가 아닌, 작업에 효율성을 두고 있기 때문에 뒤쪽의 바퀴가 움직인다.

회전 시 빙 크게 도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훽훽 돌아가 버린다.

솔직히 지게차의 기능에 대해서는 공부해 본 적 없었다. 운전법만 배웠을 뿐이었다.

알고 있는 것은 뒷바퀴가 움직이고, 그 바퀴의 각도가 아주 많이 꺾인다는 것.

‘지금 찬밥 더운 밥 따질 때가 아니잖아.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지게차를 몰아 사고 현장으로 달렸다.

***

빠아앙!

부릉부릉!

경적 소리가 아수라장이 된 마당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지게차를 바라보았다.

“엇!”

처음 보는 외국인이 지게차를 돌리며,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손을 좌우로 흔들며 그가 소리쳤다.

“비켜!”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직관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산하게 모여서 힘을 쓰던 사람들이 모두 현장에서 뒤로 도망치듯 물러났다.

“크아악. 살려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물러남과 동시에 지게차가 굉음을 울리며 쓰러져 있던 나무로 달려들었다.

부릉. 부릉.

그는 최단거리로 회전을 끝내면서, 포크를 앞으로 젖혔다.

척.

투사를 앞둔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나무더미를 향해 덤벼들었다.

콘크리트 바닥과 포크 날이 마찰하면서 불꽃이 일었다.

카가가각!

나무를 밀어버릴 셈인가? 그럼 깔려 죽을 텐데?

달려드는 지게차는 사슴벌레의 뿔처럼 포크를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의 폭을 조절하는 듯했다.

얼음판을 미끄러지듯, 지게차는 앞으로 돌진해서 깔린 사람의 허리 양쪽으로 정확히 포크를 끼워 넣었다.

겨우 10㎝ 정도의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더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끼기기긱.

다시금 불꽃이 일어났다.

“으윽!”

깔린 사람의 목에서 신음이 배어 나왔지만, 고통의 비명은 아니었다.

그를 깔고 있던 나무가 순간적으로 들어 올려지면서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고통과 신음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왜 더 들어가지 않는 것인가?

지게차는 겨우 50㎝ 정도를 전진하고는 더 들어가지 않았다.

답답한 압둘이 소리 질렀다.

“뭐하나? 성훈?”

대신 다시 엔진의 굉음이 들었다.

성훈이 소리쳤다.

“더 들어가면, 다리가 갈려요! 여기서 들어 올릴 테니, 저 사람 빼내세요.”

압둘이 앞장서며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얼른 빼내라!”

차의 돌진에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다시 뛰어들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압둘이 지게차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성훈! 더 올려 봐!”

부릉. 부릉.

이미 성훈은 포크를 위로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깔려 있는 나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나씩 걸려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그 위로 깔린 나무가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올라가서 나무를 치우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역부족이었다.

엔진부의 배기관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굉음을 질렀지만, 오히려 지게차의 엔진 쪽이 들썩거렸다.

부왕!

또다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성훈이 외쳤다.

“민수야. 지게차 뒤에 올라타! 얼른.”

성훈의 말을 들은 민수와 곽 이사가 지게차 엔진룸에 뛰어 올랐다.

성훈이 소리쳤다.

“곽 이사님, 사람 더 불러요. 집사님. 몽땅 지게차에 올라타라고 하세요.”

사람들의 눈에 외국인들이 지게차 엔진룸으로 올라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집사도 사람들을 독려했다.

“얼른 올라타시오. 무게가 부족해. 당장!”

수십 명의 사람이 엔진룸에 올라섰고,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부둥켜안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퀴 옆에라도 매달렸다.

지게차의 굉음이 귀를 찢을 듯이 시끄러웠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깔린 자의 비명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게의 균형이 맞춰지자, 나무의 틈이 벌어지며 들썩거렸다.

성훈이 깔린 사람을 손짓하며 외쳤다.

“왕자님, 얼른 빼세요. 포크가 얼마나 버틸지 몰라요!”

적재하중 이상의 무게가 걸리자, 포크에서도 ‘끼익끼익’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미처 엔진룸에 올라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나무 틈에 손을 집어넣거나 철봉을 이용해 지렛대처럼 올리고 있었다.

압둘과 집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운전수를 당겼다.

“억지로 상체를 잡아당기지 말고 다리 쪽을 잡고 빼내세요. 뼈가 꺾이면, 동맥을 찌를 수도 있어요!”

엔진의 굉음에 들리지 않을 만도 하건만, 압둘은 제대로 알아들었고, 조심스럽게 다리를 끄집어 내었다.

“이제 저쪽으로 가세요. 얼른요.”

압둘이 성훈을 돌아보자 성훈이 다급히 손짓했다.

“또 무너질지도 몰라요. 얼른요!”

집사가 들것을 만들어 들고 와서는 재빨리 사고 현장을 이탈했다.

들썩이던 나무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릉. 쿠당탕탕.

성훈이 뒤를 보며 소리쳤다.

“이제 내려! 난 하나씩 정리하고 갈 테니까. 빨랑!”

일사분란하게 모두가 현장을 벗어났다.

그제야 지게차의 굉음 소리가 평소 소리로 돌아왔다.

사고가 나고 일 분여 초가 지난 시점이었다.

부릉부릉.

삐. 삐. 삐. 삐.

지게차가 후진을 하며, 포크를 빼냈다.

그리고 무너질 위험이 있는 위의 것부터 차례대로 밀어 넘어뜨리기 시작했다.

쿠당탕. 콰당.

우르르릉. 쾅.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나무들이 무너져 내렸다.

“헉헉. 성훈 군은 언제 지게차를 배웠대?”

어찌나 놀라고 긴장을 했던지, 현관의 발코니 아래 털썩 앉으면서 곽 이사가 물었다.

민수라고 알 리가 있겠는가?

“글쎄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것 같아.”

정말 성훈은 전혀 서투른 기색이 없었다.

하나하나 차례대로 밀면서 더 이상 자재가 넘어지지 않도록 정리하고 있었다.

멀찍이서 사람들이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 가운데서 성훈 혼자만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곽 이사의 얼굴에 의문이 생겼다.

‘저거 뭐지?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네?’

뭘 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일 분이었다.

***

“으으윽.”

여전히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아까의 죽을 듯한 소리는 아니었다.

고비는 넘어갔다.

압둘이 소리쳤다.

“주치의 핫산을 불러와!”

“이미 불렀습니다, 왕자님. 주치의께서는 출근 중이라고 했으니, 거의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진가방을 든 노인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집사가 물러나며 말했다.

“전하. 핫산 님이 도착하셨군요. 헬리콥터를 대기시키겠습니다.”

“그래, 당장 오라고 해. 왕실병원에도 연락을 넣어!”

“왕실병원에 말입니까? 그곳은 왕족들만…….”

인상이 험악하게 변한 압둘이 고함쳤다.

“내 일을 하러 와서 다친 사람이야. 뒷책임은 내가 진다.”

“휴! 핫산, 괜찮은가?”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허벅지 뼈가 부러졌지만 대동맥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주치의가 말했다.

“구조가 조금만 늦었어도, 부러진 뼈가 혈관을 찔렀을 겁니다.”

지게차 기사는 주사를 맞고 누워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고통은 많이 가신 모양이었다.

“왕자님. 진통제를 놓았으니, 병원에 가는 동안에는 괜찮을 겁니다.”

그는 오자마자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기사에게 제일 먼저 진통제를 놓았다.

맨 정신으로 뼈가 부러진 고통을 견딘다는 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압둘은 그의 질문에 무너진 나무 더미를 가리켰다.

“저기에 깔렸다네.”

머리가 허연 핫산의 입이 딱 벌어졌다.

지게차의 움직임에 따라, 산처럼 쌓여 있는 나무들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다행스럽게 깔린 나무가 몇 개 되지 않았나 봅니다. 맨 아래 깔렸었다면 죽었을 테니…….”

압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저기 맨 밑에 깔렸었다네.”

“그런데도 즉사를 안 하고 살았단 말입니까? 제법 통뼈인 모양이군요. 쇼크로 죽어도 시원찮을 판이었데.”

“깔린 즉시 꺼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네.”

압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역시 왕자님께서 초동조치를 제대로 하셨군요.”

주치의는 압둘 왕자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아니야. 저 친구가 빨리 움직여 줬기에 가능했던 게지.”

지게차를 몰고 있는 성훈을 보며, 주치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라면…… 알라의 가호가 있었군요. 알라의 가호는 때때로 손님과 함께 오는 법이지요.”

압둘이 핫산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핫산.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던가?”

핫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함마드께서 말씀하셨지요. 가장 완성된 인간이란 이웃을 두루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이웃에게 관용을 베푸신 왕자님께 알라께서 귀한 손님을 보내셨군요.”

그는 압둘이 어릴 때부터 그의 건강을 책임져 온 의사였으며, 영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무슬림이었다.

압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알라의 가호인 게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

주치의도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네, 저런 산더미에 깔렸는데, 고작 대퇴부 골절로 끝난다는 건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은 구해내는 과정에서 부러진 뼈가 대동맥을 건드리게 되고, 그랬다면 분명히 과다 출혈로 죽었을 겁니다.”

옆에 누워 있는 노동자는 대퇴부가 부러지긴 했지만, 막상 출혈은 별로 없었다.

나무에 깔리면서 긁힌 것이 전부였다.

“사실 전화를 받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잘못 꺼내다가가는 부러진 뼛조각들이 살 속에 묻히면서 대동맥에 박히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요. 이 사람은 그것 또한 없으니, 정말 알라의 보살핌이었습니다.

압둘 왕자의 설명이 진지하지 않았다면, 주치의는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방금 들린 굉음만 들어봐도 기가 질릴 무게였다.

나무 한 개당 1톤은 넘는 무게인데, 그게 몇 십 개가 사람을 짓누른다고 해보라.

그럼에도 살아났으니, 그것이 천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사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겠지만, 사실상 그가 나무에 짓눌린 것은 고작해야 30초 남짓 될까 말까 했다.

***

자재 정리를 끝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거실에서 통화하던 압둘의 고함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래서! 지금 못 하겠다는 거야? 내가 책임진다고. 바로 수술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으라고 해! 뭐? 증상? 기다려 봐. 주치의 바꿔줄 테니. 핫산!”

“네, 왕자님!”

민수들과 이야기하던 주치의가 뛰어 들어갔다.

전화기를 그에게 넘기고 압둘이 밖으로 나왔다.

“알라의 가호가 있었네. 친구여.”

밖으로 나온 압둘은 나를 두 팔로 부드럽게 안았다.

옆에 있던 민수의 볼이 불퉁해졌다. 한국어로 말했다.

“이게 어떻게 알라의 가호란 말이 나옵니까! 형이 다 한 건데요.”

압둘에게 안긴 채 말했다.

“어쨌든, 저 사람 운이 좋았던 건 확실하지.”

곽 이사가 민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었다.

“압둘 왕자의 말은 성훈을 만난 것 자체가 알라의 가호라는 말일세.”

압둘이 허그를 풀고, 내 손을 부여잡았다.

“고맙네. 성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입니다.”

압둘은 한층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무리한 일을 진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긴 저걸로도 충분히 카미는 만족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제 위험한 부분은 지나갔다.

쿠웨이트 한가운데 오두막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왔다갔다는 흔적이 될 것이다.

“왕자님, 액땜한 걸로 생각하세요.”

“액땜?

“큰일하기 전에 작은 곤란을 먼저 겪음으로써, 뒤에 올 액운을 미리 때웠다는 의미죠.”

“하하하. 그게 말이 되는가?”

압둘이 웃어 넘겼지만, 나는 곽 이사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죠. 이사님!”

그리고 한국어로 말했다.

“전 이 물레방아 꼭 만들고 싶습니다. 이사님.”

곽 이사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

“끙.”

하지만 재촉하는 내 눈빛에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성훈 군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는 오히려 기뻐합니다. 새옹지마라고도 하지요.”

곽 이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뜻을 풀어 설명하며, 압둘을 설득했다.

마당 한쪽에 헬기가 내려앉았다.

집사가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잘 부탁해. 탈랄. 병원에는 말해 뒀다네. 올 때는 거대한 물레방아를 볼 수 있을 걸세.”

주치의가 말했다.

“아닐세. 탈랄. 자네는 왕자님을 보좌해야지. 왕자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되겠나? 핫산.”

“성훈 군의 말처럼, 액땜을 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핫산이 미소를 지으며 압둘에게 말했다.

“부디 알라의 가호를 지닌 자를 잘 대접하시기를. 그리하여 왕자님께도 알라의 영광이 함께하시길.”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압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의 충심을 잊지 않겠네. 부디 잘 다녀오게.”

들것에 누운 기사에게도 축복을 했다.

“그대에게도 알라의 가호가 있기를.”

헬기가 떠나고 압둘이 말했다.

“성훈. 자네가 이 공사를 끝까지 책임져 주게나. 알라의 가호가 함께 하는 것 같으니.”

“걱정 마세요. 왕자님. 책임지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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