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08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7)
“왕자님, 얼마나 크게 만드시려고…….”
압둘은 내 말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 보려고 하네. 그런데 성훈. 물레방아 옆에 있던 집은 뭔가?”
‘집도 엄청나게 크더니, 큰 거 되게 좋아하네.’
그의 관심은 온통 물레방아에 쏠려 있었다.
“방앗간입니다. 오두막이죠.”
“안 만든 이유는 뭔가?”
원래 압둘의 흥미를 끌 것 같아서 만들려고 했는데, 장식의 의미 외에는 효용이 약할 것 같았다.
높이 1m밖에 안 되는 집을 지어서 뭘 하겠는가?
쓸모가 없었다. 압둘의 아이들이나 들어가서 놀면 몰라도.
“낭만적일 것 같아서 그리긴 했는데,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압둘의 생각은 나와 달랐던 모양이다.
“난 그걸 짓고 싶다네. 도와주겠지?”
“그걸 왜 지으시려고요? 누가 살지도 않을 건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까미도 제 방이 있어야 하겠더라고.”
듣고 보니 타당한 생각이었다. 개도 개집이 있듯이 말이다.
쿠웨이트 한복판에 방앗간이라.
‘용도는 그 용도가 아니겠지만, 재미있지 않을까? 카미가 말년 복이 트였네.’
***
“전무님.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아직도 쿠웨이트라고? 난 벌써 오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지금은 뭐라고 말씀하셔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무슨 소리야? 거기서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잖아. 알리 왕자도 우리 쪽으로 설계건을 넘긴다고 했고.
곽 이사는 황 전무에게 압둘이 물레방아를 만들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하이고. 압둘은 농사라도 지을 셈인가? 어쨌거나 끝나는 대로 바로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전무님”
-그리고 아마 가까운 시일 내로 부사장 쪽에서 움직임이 있을 거야.
“왜 말입니까? 몰딩값은 더 올랐지 않습니까?”
-그건 그거고, 압둘이 우리 쪽과 연결되는 것이 싫은 거지. 자네가 부사장 쪽 사람들을 만나서 좋을 일은 없지 않나?
“알겠습니다. 지금 급해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밖에서 성훈이 곽 이사를 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
위이잉-
지게차들이 시끄러운 굉음을 내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왕자의 지휘 아래, 빠르게 마당은 목재소로 변해갔다.
기계들이 제자리에 놓여진다.
그 옆으로 기술자들이 붙어서, 기계들의 수평을 잡고, 전기배선을 하고 있었다.
해 뜰 녘에 시작된 기계들의 설치는 정오가 거의 되어서야 끝이 났다.
“정말 굉장한 규모네요. 스케일이 달라요.”
“그러게 말이다. 이게 왕자의 품격인가?”
민수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단지 돈이 많으니, 뭘 해도 하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네요.”
민수가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실 무시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중동의 여러 나라가 분쟁을 겪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을 테니.
그리고 여성과 평민에 대한 차별은 더더욱 내 편견을 부채질했었다.
“나도 그런 생각은 했지만, 이 추진력은 그런 제도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
“정말 마음먹고 복지를 생각하고 나라 발전을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발전을 하겠네요.”
역사에 ‘If’란 무의미한 단어겠지만, 부정부패에 지도층이 물들지만 않는다면 이 나라는 무궁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그렇겠지.”
기계를 설치하는 동안, 나는 왕자의 협조 요청에 기술자들과 도면을 보며 협의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이렇게 스케일이 커지니, 이것도 공사 같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이렇게 기술자들을 불러도 되느냐는 말이었는데, 왕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왕가의 일이 곧 나라의 일이지.”
“하긴 건설 자체가 이 나라에서는 국책사업이죠.”
압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건설부 장관이 자기 집에 정원을 손보겠다고 작업자들 불렀다가는, 당장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상식이 비상식인 곳, 이곳은 나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기술자들은 간단한 구조의 물레방아를 금방 이해했고, 왕자의 말마따나 ‘샘플’도 있었으니, 금세 왕자의 스케일에 맞는 도면을 새로 만들어냈다.
그런 와중에도 카미는 몇 번이나 물레방아를 방문했고, 왕자에게 몸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려댔다.
정오쯤 되었을 시간이었다.
“이 사람들, 지금 뭐하는 거냐?”
아직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하나둘 마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옷을 툭툭 털며 의복을 정제하더니. 마당에 자리를 깔고 한 방향으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민수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고, 곽 이사가 답을 주었다.
“살라트라네, 예배하는 거지.”
“일을 하다가 말고요?”
“무슬림들에게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배라네.”
민수도 생각이 난 듯, 설명을 덧붙였다.
“이슬람에는 다섯 가지 종교적 의무가 있다네요.”
신앙고백(샤하다), 기도(살라트), 단식(사움), 자선(자카트), 메카 순례(하즈)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살라트는 하루 다섯 번의 개인 예배를 뜻하는데, 일출, 정오, 오후, 일몰, 심야가 정해진 시간이었다.
가능하다면 모스크에 모여 거행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메카의 카바신전을 향해 절을 한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의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있고, 그것이 곧 신앙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어떤 이에게는 자식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목표가 곧 신앙일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세뇌이니, 맹목적이니 비난하거나 깎아내릴 이유는 없었다.
‘이것도 이 사람들의 문화겠지.’
***
계속 띄엄띄엄 차들이 들어왔다.
앉아 있는 사람들 뒤로, 또 하나의 트럭이 들어왔다.
나무를 가득 실은 차였다.
탕.
트럭기사는 뛰듯이 운전석에서 내려 차문을 닫았다.
예배가 시작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급하게 트럭의 짐칸을 풀기 시작했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제 막 나무를 고정시켰던 바를 풀고 있었다.
“이보게. 나얀!”
사장이 트럭 기사를 다급하게 불렀다.
“왜 이렇게 늦었나?”
“오다가 고장이 나서 늦었습니다.”
“얼른 이리 오게! 살라트 시간이야.”
바를 풀다 말고, 기사가 말했다.
“이것만 내리고 가면 안 될까요?”
“지금 왕자님이 예배 준비하시는 거 안 보이는가?”
나무를 내리려고 지게차까지 도착을 했는데, 사장의 부름에 안 갈 수도 없고, 지게차 기사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예배 끝나고 내려도 될까요?”
지게차 기사도 그의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러시죠. 이제 곧 살라트 시간이니까요.”
그도 지게차를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한 쪽으로 세워두고, 옷을 털며 자리에 앉았다.
***
우리는 이방인이라 거실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방해되기 싫었고, 그렇다고 따라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엇. 저거.”
민수는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뭐요? 뭐 잘못됐어요?”
“마지막에 들어온 트럭 말이야. 바를 풀다가 가버리네.”
“급하니까 그렇겠죠.”
“그렇다고 일머리 단속도 제대로 안 하고, 가버리냐?”
내 현장이 아니니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요?”
“당장 물건을 내릴 게 아니면 바를 풀지 말든가, 바를 풀었으면 짐을 내려야지. 저게 뭐냐?”
“이 사람들 성격이 원래 그런가 보죠. 무슨 일이 있기야 하겠어요.”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저거 치워놓고 하라고 해야지.”
곽 이사가 나를 말렸다.
“안 된다네.”
“왜요?”
뜻하지 않은 제지에 나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벌써 시작했다네.”
지게차를 바라보니, 다행히도 목재 트럭에서 비켜서서 옆에 지게차를 세우고 있었다.
“괜찮겠죠. 저렇게 치워놨으니,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민수가 내게 아무 일 없을 거라며 말하고는, 다시 압둘에게 눈을 돌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내 평생 처음 보는 살라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그곳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사람들은 이런 걸 매일 다섯 번 이상 한단 말이야?’
압둘이 양손을 앞으로 들어 올리며, 아랍어로 ‘알라’라며 말하고 있었다.
왕자는 제일 앞쪽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기독교나 천주교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압둘이 신부 역할을 하는 건가요?”
“예배 인도를 하는 사람을 ‘이맘’이라고 한다네.”
예배의 사회자 역할을 이맘이 한다고 했다. 어떤 직책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한다.
분파에 따라서 그냥 사회자 역할만 하든지(수니파), 준예언자의 의미(시아파의 일부)를 갖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럼 목사 같은 종교지도자가 없는 겁니까?”
뿌리가 천주교와 같아서, 난 솔직히 비슷한 모습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 형식은 전혀 달랐다.
“이슬람에는 사제가 없다네. 모두 평등하다는 거지.”
곽 이사의 설명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허. 왕족을 보면 별로 평등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신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거겠지.”
“그게 무슨…….”
“종교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평민이 왕에게 ‘이건 이슬람에 저촉된다’라고 비판할 수 있다네.”
“물론 여자는 안 되겠죠?”
곽 이사는 대답할 말이 궁했던 모양이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어쨌든, 아주 독특한 광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지극히 이슬람 냄새가 나는 광경이었다.
요일을 정해놓고 모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종교가 생활인 곳은 처음이었다.
‘정신적 자유 대신, 영혼의 평온을 택한 것인가?’
종교적이라고 해서 광기, 그런 것이 생각나기보다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예배를 하거나, 경건했던 적이 있던가?’
짧았지만,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 평온함 가운데, 마음의 평정을 깨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저건 좀 채비가 잘못되었는데.’
채비, 단속, 혹은 현장에서 나이 많은 분들은 ‘단도리’라고도 한다. 일본어 표현이다.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과 끝맺음이다.
시작이 잘못되면 방향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끝맺음이 어설프면 끝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일을 쉬는 중간에도 일의 단속을 잘 해둬야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내 신경을 자꾸 거슬리게 하는 것은 나무를 싣고 온 트럭이었다.
목재를 완전히 결착시키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내려 버리지도 않는 그 트럭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게차 기사는 예배가 끝나고 바로 물건을 내릴 요량이었는지, 바로 근처에서 무릎을 꿇고 경배를 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는데…….’
왕자의 경배를 따라, 다른 사람들의 경배가 몇 번이나 이어졌다.
예배는 순조로웠고, 거의 끝날 때쯤 되었을 때였다.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앞에서 경배를 하고 있던 지게차 기사는 의문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두께 10㎝의 굵은 나무 더미들이 그를 덮쳤다.
굉음이 들렸다.
쿵. 쾅. 쿠당탕.
“으아악!”
그는 느닷없이 덮쳐오는 나무에 비명을 질렀다.
예배는 엉망이 되었고, 사람들이 우르르 그 장소로 몰려들었다.
거실에 있던 우리 셋도 다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무를 들어 올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압둘이 주름 잡힌 미간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어찌 이런! 얼른 들어내게나!”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서, 사람들은 정신이 없었다.
옆에서 뛰어가던 집사에게 물었다.
“지게차 운전할 줄 아는 사람 더 없어요? 탈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습니다. 저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었죠.”
사람들이 힘을 합해 나무들을 치우고 있었다.
깔린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