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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07화 (107/427)

건축의 신 107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6)

왕자는 몇 차례나 성훈 앞에서 시범을 보였지만, 그때마다 탈락 판정을 받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왜 나만 맨날 오토바이를 타는가?’

왕자는 자신과 민수를 비교해 보았다.

‘팔뚝? 내가 더 굵지, 손? 내가 더 크지. 힘? 내가 더 좋지! 그런데 왜!’

알라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왜 저놈은 오토바이 한 번 안 타고, 저리 깔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힘이 드는 것 같지 않은데.’

민수의 드릴은 피스를 갖다 대기만 하면, 무슨 블랙홀이라도 되는 양 쏙 하고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에서 정지한다.

면과 딱 맞는 피스 자국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연 황금빛 자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압둘 자신의 패이고, 깎여 나간 피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인위적으로 박은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처럼!

면접에서 최종 탈락을 선고받은 자처럼 다시 구석으로 돌아갔다.

왕자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이 단순한 드릴질을 몇 시간이 지나도록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말인가?’

힘 조절을 단계별로 할 수 있는 충전드릴이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확한 자세로 피스를 박지 않으면 피스가 갈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

민수가 물었다.

“왜 저렇게 힘들어하실까요?”

“그러게! 저렇게 힘을 쓰는 건 무식한 짓인데 말이야!”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자세로 몇 번만 돌려주며, 그다음은 알아서 피스가 딸려 들어가는데 말이죠.”

그렇다.

드릴질은 힘과 노력이 아니라 요령과 감으로 완성된다.

적당하게 스크류 홈을 타고 피스가 빨려 들어가면, 그다음은 그 홈을 따라서 피스가 스스로 알아서 박힌다.

끝날 때 즈음, 살짝 방아쇠에 힘을 빼면, 모터에서 ‘윙’ 하고 전기 들어가는 미세한 소리만 내면서 멈춘다.

그걸 느껴 보지 못한 자는 평생 해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힘과 투지가 아니라, 정확함과 타이밍이었다.

“저렇게 힘으로 하려고 들면, 밤이 새도 요령을 못 찾지.”

“하지만 형은 알려줄 생각이 없으시죠?”

민수를 보며 웃었다.

“당연하지. 우리 손으로 완성해야 의미가 있지.”

설령 그 요령을 안다고 해도, 실제로 손의 감각이 그것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

드디어 물레가 완성되었다.

이제는 물이 흘러가는 시내를 만들 차례였다.

그동안 박혔던 피스를 빼느라 기진맥진한 집사와 곽 이사는 누워서 숨만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복근 땡겨 죽겠습니다. 곽 이사님.”

“말도 마십시오. 저는 팔뚝에 알통이 배겼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며 꼼짝도 하지 않으려 했다.

피스를 뽑는 방법은 간단했다. 방법만 간단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고통스러웠다.

드라이버 반대편에 망치로 찍어서 강제적으로 피스에 ‘+’자 홈통을 만든 다음, 온몸의 체중을 실어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체중을 실으면 실을수록 잘 빠진다. 피스를 빼기 위해서는 전력으로 밀어야 하는 것이다.

노력의 결과는 1분에 1㎜ 정도!

그렇게 1㎝ 정도 대가리가 나오면 그때서야 펜치로 잡고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15분에 한 개 정도를 제거했지만, 그것도 숙련도가 있었으니, 나중에 5분에 1개 정도를 뺄 수 있었다.

50개의 피스를 빼기 위해 두 사람은 네 시간 이상을 그것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내뱉은 말은 이거였다.

“아이고! 죽겠다.”

상부 저수조와 하부 저수조를 설치하고, 그 사이에 물이 흐르는 시내를 만들면 끝난다.

아까부터 드릴질은 못 하겠다며 판때기를 집어던지고,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왕자가 우리에게 접근했다.

그가 근엄하게 물었다.

“크흠, 이보게. 내가 도와줄 것은 없나?”

성훈이 말했다.

“저기 피스 좀 갖다 주세요.”

“어험! 감히…… 탈랄!”

왕자는 집사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저기 한 구석에서 집사와 곽 이사가 혀를 빼물고 기절한 채 누워 있었다.

“그럼 이것 좀 들고 계실래요? 조금도 흔들리면 안 되는 것 알죠?”

왕자 체면에 심부름을 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의 발로는 민수에게 눈을 돌리게 했다.

민수의 눈이 먼 산을 바라보자, 성훈이 말했다.

“여기서 도금이 벗겨지면 카미는 중금속에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할 거에요!”

눈짓으로 말했다.

‘민수보다 드릴질 잘할 자신 있으면 하시든가!’

“크흠. 기다리게.”

잠시 후 돌아왔다.

“이거면 되나?”

“아뇨. 그거 말고, 38㎜짜리로 가져오세요. 아니 그냥 다 가져 오세요.”

왕자가 모든 피스가 든 통을 들고 왔다.

성훈이 말했다.

“거기 꼼짝 말고 계세요. 어디 보자, 38㎜랑 28㎜를…… 이거면 되냐? 민수야.”

“네.”

민수가 피스를 받아 들었다.

윙. 척.

한 번의 오차도 없이 피스가 빨려 들어갔다.

왕자가 움직이려 하자 성훈이 말했다.

“어디 가세요. 거기 가만히 계세요. 이거 끝날 때까지요.”

“크흠! 알았네.”

“다음에는 16㎜ 피스가…… 왕자님! 조기 보이시죠?”

지금 성훈은 한쪽 어깨로는 경사판을 받치고, 두 손은 그것을 쥐고 있기에 가리킬 수단이 없었다.

입술을 한 쪽으로 몰았다.

왕자가 성훈이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네, 조오기.”

압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나무 색이랑 똑같은 색깔 스티커가 있을 거예요. 찾아오세요.”

“왜?”

“여기 피스 위에다가 붙여야 하거든요. 그래야 물이 덜 들어가고 녹이 덜 슬죠.”

“끙. 감히…… 탈랄.”

여전히 탈랄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성훈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카미야. 어디 가니?”

어두운 밤인데도 카미가 일어났다.

성훈의 부르는 소리에 슬쩍 한 번 돌아보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카미야. 미안해! 누구만 아니었으면, 훨씬 빨리 끝낼 수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뜨끔한 표정의 압둘이 말했다.

“스티커 가지고 오라고 했었나?”

압둘이 스티커를 가지고 왔다.

성훈이 입술로 물레를 가리켰다.

“왕자님, 그걸 조오기 나뭇결에 맞춰서 붙여주세요.”

“이익!”

“죄송합니다. 전 그저 카미가 중금속이 섞인 물을 좀 덜 마시게 하고 싶어서. 생각이 짧았습니다.”

“카미를 위해서라니, 내가 좀 수고하지.”

스티커를 들고 돌아서는 왕자에게 성훈이 말했다.

“하나도 빠지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왕자님!”

왕자의 숨죽인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퍽퍽.

“끄응. 왕자님.”

두 사람의 신음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왕자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일어나. 얼른!”

***

물레방아를 수차처럼 이용하여 물을 끌어 올리는 것은 간단하다.

그것이 기울임 판을 흘러가게 하는 것도 간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간헐적으로 물이 흘러내릴 수밖에 없고, 카미는 물을 마시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사판의 상부와 하부에 저수통을 설치했다.

물레방아의 물은 상부의 저수조에 담기고 그 물이 넘치면 끊임없이 물이 흐르도록 장치를 했다.

그리고 하부의 저수조에도 끊임없이 물이 담기게 될 것이다.

물레방아의 모터에 전원을 켰다.

압둘과 나머지 두 사람도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제발 잘되기를.’

거대한 수조에서 물레방아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촤악.

물레방아에 설치된 두레박에서 물을 길어 올린다.

저수조의 높이랑 같은 위치에 두레박이 도착했을 때, 두레박이 뒤집혔다.

쏴아악.

상부 저수조에 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몇 번의 두레박이 뒤집어졌을 때, 상부 저수조의 물이 서서히 고이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경사판을 타고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물이 하부의 저수조에 고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물레방아가 몇 바퀴를 돌아갔을 때였다.

쪼로록.

드디어…….

하부의 저수조에서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물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거실 한가운데 양탄자에 누워 있던 카미의 귀가 까딱까딱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관록이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소리가 나는 곳에 주인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왕자가 말했다.

“와, 성훈 군. 드디어 흘러내리기 시작하는군.”

“그렇네요.”

“카미 녀석이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

왕자의 어깨 뒤로 카미의 얼굴이 쓰윽 하고 튀어나왔다.

카미는 저수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후루룩 들이켜기 시작했다.

낙타는 한 번에 서 말의 물을 마신다고 했던가!

개처럼 물을 혀로 말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하부 저수조에 처박고는 빨대로 빨듯이 물을 빨아들였다.

저수조의 물이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곧 채워지기는 했지만!

30L의 물이 바닥을 보이자, 카미는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옴죽거리며, 긴 혀로 입가를 훑었다.

“맛있다는 것 같은데요. 왕자님!”

왕자의 얼굴이 태양처럼 밝아졌다.

“카미…….”

카미는 눈을 감고 물맛을 음미하듯 쩝쩝거리더니, 왕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물통에 입을 박았다.

왕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카미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

그에게 목례를 하며, 민수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고생했다. 민수야.”

민수도 흐뭇하게 웃었다.

“제가 고생한 게 있나요. 저분들이.”

민수가 가리키는 곳에는 스티커를 다 붙이고 기운을 소진한 채, 구석에 앉아 있는 집사와 곽 이사가 보였다.

압둘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성훈 군. 이런 게 한국에는 많이 있나?”

차, 비행기, 심지어 요트까지 없는 것이 없을 압둘이었다.

움직인다는 것에 흥미를 느낄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이런 고풍스러운 동력원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물론 이건 전기로 움직이는 수차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압둘은 이것의 출발점이 물레방아라는 말을 들었고, 이런 것이 수백 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에는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공업사회가 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제 외갓집이 있던 동네에도 몇 개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외갓집을 방문했을 때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정미소가 생기면서, 완전히 기능을 잃어 촌동네 처녀총각의 약속 장소로만 쓰였지만 말이다.

수동 양수기를 사용해 본 세대라면,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을 한 바가지 넣고, 펌프질 하듯이 손잡이를 위아래로 왕복하면, 기적처럼 물이 나왔던 그 양수기 말이다.

“엉? 저런 게 그렇게 많아?”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논농사가 위주였으니,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흠……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이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나라일세. 자원은 하나도 없고, 자동차나 반도체를 파는 나라인 줄 알았더니.”

“아직도 한국에서는 농사를 짓는 인구가 많지요.”

“농업과 공업이 동시에 발전한 나라라. 재미있는 곳이군.”

압둘에게 말했다.

“언제 시간이 되신다면, 들러주십시오.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복잡한 취향을 만족시킬 몰딩을 위해서라도, 그의 방문은 꼭 필요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곧 취향으로 연결된다.

***

해가 슬쩍 얼굴을 내미는 시간이었다.

부릉부릉.

거대한 트럭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왕자님! 이게 뭡니까?”

내가 말을 하는 사이에도 트럭들이 줄줄이 이어 들어왔다.

그리고 목재공장에서나 볼 법한 기계들을 실은 차들도 들어왔다.

‘목재소라도 차릴 셈인가!’

왕자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샘플을 만들어 봤으니, 이제 본 제품을 만들어야지!”

결의에 넘치는 압둘을 보며, 민수와 내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게 완성본이라고, 왕자님아! 샘플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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