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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06화 (106/427)

건축의 신 106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5)

우리는 물레방아를 만들고 있었다.

“형. 거기 흔들리지 않게 잡으세요.”

위잉-

드릴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는 못을 박으려고 했지만, 오랜 시간 사용하려면 피스를 박아주는 것이 결착력이 강하다.

부재와 부재를 좀 더 밀착시켜 주니까.

왕자가 말했다.

“흠, 성훈 군. 이거랑 똑같은 게 도면에 있더군. 맞지?”

당연한 말이었다. 돌림판 2개를 합쳐야 하나의 물레방아가 완성될 테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그쪽 판 만드는 것을 돕기로 하지!”

‘무슨 자신감이지? 드릴질이 쉬워 보이나?’

분명히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아! 안 되는데.’

솔직히 말리려고 했었다.

자재 수량을 그렇게 넉넉하게 만들지 않았다.

못을 박으면 장도리로 빼면 되지만, 피스는 그것과 다르다.

하지만 허락을 하기도 전에 왕자는 이미 결심을 굳힌 눈빛이었다.

아니, 이미 집사가 웃음을 머금고 드릴을 들고 있었다.

‘아까는 말렸었잖아. 탈랄! 일관성을 유지하라고!’

왕자의 활기찬 모습에 그도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자신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카미도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집에서는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 이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압둘이 카미의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마! 내가 지금 네 물통 만들려고 하는 거야. 기쁘지?”

친우라고 하기는 뭐한 낙타지만, 압둘은 카미가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는 뭔가를 하는 것이 기쁜 모습이었다.

왕자에게 말했다.

“우리 만드는 거랑 대칭으로 만드셔야 해요. 도면 반대로요.”

“걱정 마. 성훈. 도면 보는 건 내가 전문이야.”

다행이라면, 대뜸 드릴질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도면과 나와 민수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단은 신중하네. 얼마나 잘하는지 볼까?’

보통의 사람들은 뭔가를 만들게 되면, 만든다는 기쁨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대뜸 못부터 때려 박다가 뽑기를 되풀이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첫 작품이 끝나 갈 때 즈음, 걸레 조각을 완성하게 된다.

누구나 그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부디 지금이 압둘의 첫 작품이 아니기를!’

***

압둘이 소리쳤다.

“곽 이사, 꿔다 논 보릿자루야? 거기서 뭐 해! 이리 와서 도와!”

우리가 끼워주지 않아서 포지션을 잡지 못하던 곽 이사는 압둘의 부름에 기쁘게 �i아갔다.

압둘에게 잘 보일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왕자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드릴질은 전문입니다.”

압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어디서 드릴질을? 잡기나 제대로 잡아!”

압둘의 호통에 곽 이사의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우씨. 내가 현장 짬은 더 센데. 지금 이 나이에 시다바리나 하게 생겼냐?’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은 오직 하나! 계급뿐이다.

“도면대로 맞지? 여기?”

압둘은 도면과 우리의 실물을 몇 번이나 확인을 하면서, 자재들의 위치를 잡았다.

그의 우람하고 구릿빛 팔뚝이 드릴을 움켜잡았다.

“읏차!”

위잉.

삐긋!

“아얏!”

처음에 너무 힘을 준 탓에 피스는 옆으로 휘어지면서, 옆에서 자재를 잡고 있던 곽 이사의 새끼손가락을 찧었다.

압둘이 말했다.

“어! 미안하네. 왜 그리 가까이 잡았어?”

나이 50의 곽 이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새끼손가락을 입으로 물었다.

그리고 압둘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봤다.

뽁.

다행히도 입에서 나온 손가락에는 피는 나지 않고, 작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곽 이사가 물었다.

“왕자님,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아까의 미안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압둘이 근엄하게 말했다.

“처음이라 그런 거야! 점차 나아질 거야. 나를 믿게!”

처음이라는 말에 곽 이사의 얼굴은 더 파래졌지만, 압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젠장! 처음? 개뿔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빼앗을 수도 없고. 내 손만 아작 나게 생겼네.’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차이는 누가 뭐래도 명백하다.

곽 이사가 성훈에게 눈짓했다.

성훈은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일상 단어까지 영어로 말해줄 정도로 압둘은 친절하지 않았다.

그가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압둘의 기합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읏차!”

곽 이사는 자재를 잡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성훈이 말했다.

“민수야. 파상풍 걸리면 어떻게 되냐?”

“글쎄요. 잘못 걸리면 골치 아프다던데.”

“나 아는 사람은 밤새 안녕이더라고.”

“진짜요?”

“진짜로 재수 없으면 말이야. 곽 이사님 괜찮으려나?”

“글쎄요, 찍힌 것도 아니고, 드릴도 피스도 새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게 장갑이나 끼시지.”

그 소리가 곽 이사의 귀로 쏙쏙 들어갔다.

한국말로 했으니, 압둘이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죽을 수도 있는 병인데, 내가 요즘 재수가 좋았던가?’

요 며칠 사이에 재수란 재수는 옴 붙은 거 같으니, 으슬으슬 몸이 추워지는 느낌이었다.

압둘에게 사정했다.

“왕자님, 열심히 안 하셔도 됩니다. 그저 우리는 저 친구들 조금 도와주는 정도만 해도 된다니까요.”

“어허! 제대로 잡으래도. 그래도 카미한테 이 형님이 반은 만들었다고 말해야 될 거 아닌가? 읏차!”

드릴질 하는데 읏차는 또 무슨 기합인가? 햄머질 하는 것도 아니고!

압둘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크으. 어때. 나 만드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역시 주인님은 못 하시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곽 이사도 맞장구를 쳤다.

“왕자님의 드릴질은 귀신같습니다. 다만.”

“다만 뭐? 문제라도 있나? 곽 이사.”

“제 손은 좀 피해서 박아주십시오.”

“허허허. 이 사람. 엄살은. 사막의 사내들은 고통에 굴하지 않아.”

곽 이사가 환하게 웃었다.

‘저는 사막의 사내도 아니고, 내 손도 나무판자가 아닙니다.’

곽 이사의 양손에는 현재의 미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한 영광의 상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왕자님께서 즐거우시다면야, 이 곽 이사, 뭘 못하겠습니까? 하하하.”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어. 곽 이사의 그 마음 잊지 않겠네. 다시 잡아! 읏차.”

손에 비트날이 박히면서 생각했다.

‘돌아가기만 해봐라, 쿠웨이트 담당은 반드시 딴 놈을 시킬 거야!’

“민수야. 왕자, 완전 초짠데 믿을 수 있겠냐?”

“잘되고 있는 분위긴데요. 설마 왕잔데, 망치기야 하겠어요? 곽 이사님도 같이 계시잖아요.”

그게 왕자랑 무슨 상관이냐!

“그래도 믿는 척은 해봐야겠지? 자재는 넉넉하지?”

“아뇨. 혹시 몰라서 한두 개는 더 만들어 뒀는데, 저렇게 끼어들 줄은…….”

왕자의 난입, 그 자체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변수였다.

“좀 더 보다가 몇 번 오토바이 타면 드릴 빼앗아야 되겠다.”

“크크크. 그 정도까지 가면, 오늘 다 만드는 건 포기해야죠. 뭐.”

민수는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냐며 웃음을 보였다.

오토바이는 드릴질 하는 사람들끼리 쓰는 용어였다.

못 대신 박게 되는 피스(스크류 결착 나사)는 일반적으로 스텐 재질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박을 수 있게 드릴에 부착하는 공구를 비트(Bit)라고 부른다.

그 종류에는 십자 비트, 일자 비트, 드릴 비트, 이중 비트(사라 기리) 외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당연하게 피스보다는 고강도의 금속인 탄소강 혹은 텅스텐강으로 만들어진다.

지난 삶의 경험상, 주로 국산보다는 일제나 독일제를 많이 사용한다.

정확하게 피스를 십자 홈에 끼운 상태로, 자신이 박고자 하는 위치에, 원하는 각도로 박아 넣어야 한다.

여기서 숙련공의 솜씨가 필요하다.

어설픈 사람이 드릴을 잡으면, 피스 대가리의 홈이 모두 파여서 박지도 빼지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장도리로 그것을 뽑았다가는 원자재가 박살 나는 참사가 벌어진다.

못처럼 일자로 박힌 것이 아니라, 스크류의 요철이 나무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원자재를 뜯으면서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자재를 버릴 용기가 없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박았던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빼야 한다.

박힌 나사를 빼면서 진땀도 함께 빠진다.

그나마 대가리라도 나와 있으면 펜치로 꽉 쥐고 돌려 빼면 되지만, 자재에 쏙 들어가 박힌 경우에는, 시작하기도 전에 욕부터 나온다.

잠시 후, 나는 내 스스로를 원망해야 했다.

‘그래도 왕잔데, 그 정도는 하겠지!’라고 믿은 나를 말이다.

“아무래도 가봐야 되겠다.”

“왜요?”

“안 들리냐? 오토바이 타는 소리?”

“엉. 정말 그러네요.”

민수는 집중하느라 듣지 못한 모양이지만, 내 귀에는 자꾸 저 소리가 거슬렸다.

처음에는 소심하던 오토바이 소리가 이제는 따발총 쏘듯이 연발로 들리고 있었다.

압둘이 땀을 뻘뻘 흘리는 곳으로 가봤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계속 나고 있었다.

사방 천지에 피스에서 갈려 나온 찌꺼기들이 널려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증거였다.

압둘이 물었다.

“성훈! 왜 그런 표정인가? 잘못되기라도 했나?”

으드득.

내 눈빛이 곽 이사를 원망했다.

‘왜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리 압둘에게 쓴소리를 하기 싫었어도 그렇지.

곽 이사는 있지도 않은 사막의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한국어로 크게 말했다.

“이렇게 똥 싸질러 놓으면 누가 해결해요?”

아까 말한 ‘대칭’은 어디다가 팔아먹었는지, 똑같은 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보다 더 열 받는 건, 지금까지 만든 한쪽 판의 4분의 일 정도가 허벌창이 나 있었다.

빼딱빼딱 제멋대로 박혀 있는 피스의 대가리였고, 그나마도 그 대가리들은 자재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거 였다.

왕자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아주 빅 똥을 싸질렀다.

곽 이사가 대꾸했다.

“왜 뭘?”

“대칭이잖아요.”

“그렇지. 그게 왜?”

성훈이 가슴을 텅텅 쳤다.

“우리랑 반대편을 만드셔야죠.”

그들은 우리 만드는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고 있었다.

압둘이 물었다.

“왜?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제가 대칭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 맞다. 깜빡했군. 미안하네.”

도면을 보다 보면 자주 하는 실수이기도 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박은 피스를 뽑아서 다시 재조립하면 되니까!

문제는 지금 상태가 ‘과연 뽑을 수 있는 상황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점이었다.

왕자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저기 남은 자재로 다시 만들지 뭐! 탈랄. 가져와!”

그 말에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곽 이사님은 대체 뭘 하신 거예요?”

그는 대답 대신 손등을 들어보였다.

이만큼 고통을 당했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군데군데 까져서, 고통의 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내가 초짜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군.”

부드럽게 가야 할 시간이었다. 왕자에게 소리쳐 봐야, 좋은 결과는 안 나올 것이고.

“왕자님! 아직은 드릴을 잡으실 때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런가? 나는 점점 나아진다고 생각했는데.”

드릴을 들어보였다.

겨우 50개나 박았을까 하는 시간에 드릴의 비트날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민수야. 네 거 들고 와봐라.”

민수의 것은 방금 산 새 것처럼 깨끗했다.

그들보다 두 배는 많은 양의 일을 했을 텐데도 말이다.

왕자 일행을 데리고 우리가 만들던 곳으로 갔다.

“민수야. 박아 봐!”

위잉. 척-

딱 맞는 힘 조절에, 피스 대가리는 더 들어가고 말고도 없이 정확히 목재와 면이 맞았다.

“보이시죠. 왕자님!”

때로는 백 마디 잔소리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낫다.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지. 알았네.”

그는 집사와 곽 이사를 불렀다.

“다시 해보자고.”

‘그 말이 아니잖아요. 왕자님아!’

의욕을 불태우는 왕자를 붙잡았다.

“제 말은 이렇게 될 때까지 연습을 하시라는 겁니다.”

“엉? 어느 천 년에.”

“점점 나아지신다면서요.”

아까 했던 말이 있어서 그런지, 왕자는 마지못해 수긍을 했다.

“나아지시면 와서 검사받으세요. 카미의 물통이 구멍 숭숭 나서야 되겠습니까?”

“끙. 알았네. 그럼 바로 연습을 시작하지.”

그가 다시 집사와 곽 이사를 부르려고 했다.

“그 사람 둘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둘은 내게 시선을 주었다.

둘을 보며, 성훈이 웃었다.

“연습은 왕자님 혼자서 하실 겁니다.”

그러면서 필요 없는 자투리 나무 조각을 압둘에게 쥐어주고 구석 자리로 밀었다.

“작업에 방해되시면 안 되니까. 저기 구석에 가셔서 연습하세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그는 나무 판때기를 들고 구석을 향했다.

어깨가 처진 왕자의 뒤를 카미가 따라갔다.

“우리는 뭘 하라고?”

집사와 곽 이사가 물었다.

손으로 그들이 만들었던 작업물을 가리켰다.

“저거 보이시죠.”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 만들어 놓으세요.”

집사와 곽 이사의 입이 딱 벌어졌다.

구석진 자리에서 왕자가 드릴 연습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집사와 곽 이사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둘은 드라이버를 피스에 대고 꾹 눌러가며 피스를 빼는 중이었다.

집사가 물었다.

“끙. 정녕 이 방법밖에 없는 겁니까? 이사님.”

“끄으응! 난 내가 왜 사서 고생인지 의문입니다. 끙.”

왕자가 드릴질을 하던 나무판대기를 획하니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곽 이사! 저게 1/4 스케일이라고 했나?”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탈랄!”

“네, 왕자님.”

“자재 더 시켜. 최고급 수종으로! 그리고 우리 기술자들 불러!”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집사가 눈만 뻐끔거렸다.

“나 압둘이 원래 스케일대로 만들어주지. 저런 장난감이 아니라!”

“네.”

“지금 당장!”

“네, 왕자님.”

집사가 드라이버를 놓고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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