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05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4)
“형 거기 제대로 잡으세요.”
“됐지!”
민수가 망치질을 하며 말했다.
녀석도 그들의 헤어짐을 지켜봤던 모양이다.
“정말 친형제 같네요. 저러다 카미가 늙어 죽으면 어떡하죠?”
타당한 질문이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문제다.
이미 죽어본 경험이 있는 나의 생각이니, 거의 맞을 거다.
어차피 알고 있는 결과에 대해 고민하느니, 딸내미 머리 한 번 더 쓰다듬어주는 게 낫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지 고민해야지.”
“그러게요. 나중 일은 나중에 감당해야죠.”
“맞아. 뒷감당은 뒤에 감당하라고 뒷감당인거지.”
민수가 목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후! 정말 이 나라는 가만히 망치질만 하는데도 땀이 나네요.”
지금 시간에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에구, 곽 이사님. 열의에 차서 일 하시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러시는 거예요?”
피식 웃었다.
“뭐.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지.”
곽 이사는 골병들겠다고 그늘에 쓰러져 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중동에서는 점심시간에 일을 안 한다. 능률 떨어진다나 뭐라나.
민수가 전원을 꽂았다.
위잉. 슈우욱.
바람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시원하네요.”
“모터 소리도 좀 들리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네.”
안으로 들어가던 뜨거운 기운이 차단되었다.
거실에 가동하던 에어컨들이 이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틀어도 틀어도 바깥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니, 꺼버린 지 오래였던 에어컨이다.
다른 사람들이 밖에 있는 이유도 바깥보다 안쪽이 더 더웠기 때문이다.
거실의 커다란 창들이 온실 효과를 더했기 때문이다.
밖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세요!”
곽 이사가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뭐 하러! 거기다 더 덥다구!”
덥다고 혀를 빼물고, 나무 그늘에 도로 누웠다.
어깨를 으쓱하고 들어와 버렸다.
“그러시든가!”
내가 더운 것도 아닌데 내버려 두자. 생각해서 말을 해줘도 듣지를 않네!
다른 작업자들은 군소리 없이 들어왔다.
왕자의 손님들인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물었다.
“저기 손님! 에어컨 좀 끄면 안 되겠습니까?”
“왜요?”
그는 자기 팔뚝을 가리켰다.
닭살이 돋아 있었다.
“춥습니다.”
에어커튼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곽 이사는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연신 땀을 닦으며 그늘에 있었다.
그를 향해 손만 흔들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손을 절레절레 젓더니 반대로 돌아 앉아버렸다.
‘나하고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한가?’
“민수야. 이제 투명 매트만 달면 되지?”
“네, 거의 끝났네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현관문 관련 작업이 모두 끝났다.
***
“민수야. 이거 이 스케일 그대로 만들려고?”
“왜요? 문제 있어요? 형 큰 거 좋아하시잖아요.”
내가 큰 걸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그동안 모든 모형을 크게 만들어 왔으니 말이다.
“야! 이건 좀 많이 큰데!”
결국 민수와 나는 물레방아를 장식용도로도 쓸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대략 높이 1m 내외로 만들면 될 것 같았다.
압둘의 취향은 서구적이라고 했었다.
집에서 독특하게 눈에 튀는, 그리고 한국적인 향취를 느끼게 하는 장식이 될 것이다.
“그 옆에 오두막도 하나 만들까요?”
“좋지. 정말 좋은 생각이야. 왕자의 집이니까, 손님도 많이 올 거야.”
“그때마다 저게 뭐냐고 물어보겠죠. 하하.”
민수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난 민수가 만든다는 데는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품이 나올까 기대가 될 뿐이지!
물론 압둘이 물레방아 혹은, 수차를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깜짝 선물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카미가 만족하면 된다.
전기 장치를 써서 물이 흐르는 것을 만들어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정취를 만드는 것은 내 작전에 필요하기 때문이지! 흐흐.’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무능해서가 아닐 것이다.
압둘은 업무에 바쁘고, 고용인들은 수동적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판자에 선을 긋고 톱질을 했다.
지금 나와 민수는 물레방아에 필요한 자재들을 자르고 있었다.
“이걸로! 압둘은 항상 이걸 볼 때마다 우릴 떠올리게 될 거야.”
“이게 뭔지 하는 궁금증도 생기겠죠.”
내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왔다.
그게 바로 귀찮음을 불구하고 물레방아를 만드는 목적이니까!
“실제로 보고 싶지 않을까?”
“카미가 ‘궁금하다’ 그러면 딱인데 말이죠.”
아쉽지만 말 못 하는 카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압둘의 집에 방문을 한 사람들은 ‘저게 뭐냐?’고 물을 것이다.
“적어도 10명 중에 한 명은 아주 궁금해하지 않을까?”
“글쎄요. 전 잘…… 스무 명 중에 하나는 몰라도.”
모든 영업의 기본은 궁금하게 만드는 거다. 궁금하면 알아보게 된다.
‘거기까지만 해도 어디야!’
내 한국전통의 세계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압둘의 리무진이 마당에 멈춰 섰다.
압둘이 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봤는지 카미가 벌떡 일어났다.
쿵쾅 쿵쾅.
‘이제 힘이 좀 났나 보구나. 하루 종일 누워 있더니.’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한 카미가 주인을 보고 뛰어나오는 소리였다.
압둘의 눈이 카미에게 향했다.
“아이구, 우리 까미. 엇!”
까미 앞을 가로막은 투명한 막에 압둘이 깜짝 놀랐다.
“저게 뭐야 우리 까미!”
부딪힐 거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압둘이 뛰어가며, 다급히 손을 뻗었다.
“왕자님, 괜찮…….”
내 말은 들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까미! 안 돼!”
오늘 아침에 다쳤는데, 카미가 또 다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쏴아악.
투명 막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카미가 뛰어나왔다.
압둘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카미에게 물었다.
“안 다친 거냐? 카미.”
카미가 대답 대신 압둘에게 얼굴을 비볐다.
압둘의 찡그렸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이제 안 다쳐도 되는 거냐. 그런 거냐! 으하하.”
카미가 대답이라도 하는 듯 긴 혀를 내밀어 압둘을 핥았다.
후루룹.
‘크아악!’
순간 내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저래서 동물을 싫어했었지!
“으아. 소름 돋아.”
“보기 좋은데요. 형.”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응. 정말 보기 좋네.”
‘저 스킨십만 없으면.’
압둘을 뒤따라 뛰어온 집사에게 물었다.
“왜 저러시는 거예요?”
집사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알리 왕자님 방문과 카미 일로 일정이 밀려 버린 터라, 미처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압둘이 물었다.
“성훈 군. 이게 어찌…….”
압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모래바람이 너무 심해서요. 그걸로 막았어요. 투명 매트예요.”
압둘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설명을 덧붙였다.
“고무 비슷한 거예요.”
착착착.
매트가 다시 붙는 소리였다.
압둘의 표정을 보고 대답해 줬다.
“자석을 붙여놔서 그래요. 그래야 모래바람이 안 들어오죠.”
압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가 다가가서 그에게 속삭였다.
“왕자님, 체통을…….”
“크흠!”
손을 막고 헛기침을 하며 압둘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고생들 했군! 카미를 대신해서 감사하네. 고마우이.”
압둘이 카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나 나누세. 모두 들어오게나.”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민수야, 자른 거 가지고 들어와라!”
들어가는 집사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그건 문제없는 거겠죠?”
몰딩의 기간 연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염려 마십시오. 주인님께는 카미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주인님께서 저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오랜만입니다. 얼른 들어오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모여 앉았다.
“집이 아주 시원하군. 아내들과 아이들이 고맙다고 전해 달라 하더군.”
아랍 문화에서는 남녀 구분이 엄격하여 아직 그의 아내들을 보지 못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카미가 아프지 않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래, 집사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몰딩 디자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들 몰딩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동서양의 문화를 합친 거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렇다면 기다렸다가 제대로 받는 것이 좋겠군.”
압둘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리고 아까 식사 전에 민수가 들고 왔던 자재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저건 뭘 만들던 잔해인가?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건가?”
“물레방아 아시죠?”
압둘이 집사에게 물었다. 모르는 듯했다.
“물레방아가 뭔가? 탈랄.”
“물레방아란, 물을 이용해서 방아를 찧는 것을 말합니다.”
집사의 아주 정석적인 답이 튀어나왔다.
도면을 왕자에게 넘겼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겠죠.”
그에게 건축적 지식이 없으리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
“흐음.”
그래도 이해가 덜 가는 모양이었다.
“원래 물레방아는 물의 흐름을 인공적인 동력으로 바꿔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농경 사회에서나 사용되는 것이니, 유목민족의 후손인 그로서는 금방 감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중동 사회는 급격한 발전을 이룬 나라들이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나라의 형태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유목생활을 했었다.
더구나 쿠웨이트의 경우는 1899년부터 1961년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 뒤로도 1990년부터 1년간 이라크에 점령을 당했었다.
제대로 된 나라로서 기능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왕자가 미국에 유학을 가 있다가, 알리보다 일찍 돌아온 이유도 이라크 전쟁 때문이라고 들었다.
한참의 설명이 있은 후에야 왕자는 이해를 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려고?”
“이걸 수차처럼 이용해서 물을 끌어 올리고, 그 물을 비스듬하게 경사진 곳에 흘려주면 물이 흐를 겁니다.”
“그런데 그걸 왜?”
“카미가 흐르는 물만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렇죠. 탈랄?”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말을 이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자연의 시내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압둘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 후, 압둘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나와 카미를 생각해 주는 것인가?”
“그렇다기보다는…….”
“왜 그러는 것인가?”
압둘은 꼭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외국의 이방인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 이유를!
‘네 능력과 배경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이럴 경우, 말로 때우는 게 최고다.
“왕자님, 이런 말씀드리기가 외람되오나, 원래 우리 한민족은 남이 힘들어가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합니다.”
곽 이사가 나를 보고 뜨악했다.
‘어떻게든 압둘을 이용해 먹으려는 인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라는 의미이리라.
‘곽 이사님, 원래 당신이 해야 하는 말이라고. 사람이 연륜이 있지!’
압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네, 그걸 우리 한민족은 정(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마음을 받아서야.”
“왕자님, 그저 제 성의려니 하고 받아주세요. 실패할 수도 있으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압둘의 눈매가 붉어졌다.
“고마우이. 내 자네들의 정성 절대로 잊지 않겠네.”
그러더니 두 팔을 걷어붙였다.
“나도 돕겠네!”
집사가 그를 만류했다.
“왕자님께서 나서지 않으셔도.”
“어허, 이 사람! 카미의 일이야!”
나도 당황했다.
‘민수 정도의 실력이면 모를까? 칼질은 사람 벨 때나 해봤을 사람이!’
그러나 저렇게 나오는 압둘을 말릴 능력이 없었다.
가끔씩 일을 하다 보면, 없느니만 못한 사람이 있다.
정작 일은 못 하면서 요구만 많은 사람!
그것보다 더한 건 그 말을 안 들어줄 수 없는 사람!
그건 나이와 상관없고, 지위와도 상관없다.
손은 안 따라주는데 열정만 가득하면 그게 바로 민폐다.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