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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04화 (104/427)

건축의 신 104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3)

흥분한 곽 이사가 물었다.

“저것도 끝나려면 차례 멀었는데, 또 물레방아를 만들자는 말입니까?”

“네, 그리고 이사님. 불편하다고, 말씀을 낮추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크흠. 알았네. 그 생각은 민수 녀석 머리에서 나온 거겠지? 방금도 낙타가 불쌍하다고 쓸데없는 소릴 하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아닙니다. 이 녀석 머리에서 나온 겁니다.”

민수를 보며 이를 뿌득뿌득 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그러신 줄 알았…… 네. 민수 녀석이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큼.”

급히 표정을 바꾸느라 얼굴이 찌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더 할 필요까지야.”

압둘은 호의에 답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하물며 낙타에게도 저리 지극정성인데.

눈앞의 곽 이사처럼 뒤통수로 되받아치는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었다.

“더 해줘야 합니다. 해줄 수 있는 한 최대치로.”

“굳이 시간을 낭비하면서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당신은 없을지 몰라도, 저는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곽 이사와 길게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면 될 터!

“이사님, 우리가 언제 또 압둘을 만나겠습니까?”

곽 이사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시간이 없다고 닦달을 하겠지.’

“이사님, 지금 그의 환심을 사두면 차후의 그룹의 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곽 이사는 ‘그룹이라니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크게, 그리고 멀리 보셔야 합니다. 현재에서 하는 일 중에 석유와 관련되지 않은 사업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야!”

“현재 정유, 자동차, 조선, 중공업, 연관되지 않은 곳이 있습니까?”

“그건 건설과 상관이 없지 않나?”

“석유를 수입하는데, 자동차와 탱크선을 수출하는데 알리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쿠웨이트는 걸프 만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다.

단시 석유 하나 때문에.

“제가 밀어드린다고 했지요!”

곽 이사가 말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중동에서의 일은 모두 곽 이사님을 거치게 될 겁니다. 그게 단지 건설에만 국한되겠습니까?”

곽 이사의 눈에서 야욕의 불길이 일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곽 이사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실 압둘의 호의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나였다.

지금까지 말한 그것들은 나를 통해서 현재로 흘러가야 한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곽 이사를 키우기 위해 현재를 밀어주는 것임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압둘의 호의’라는 수도꼭지를 쥐고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나 김성훈이 될 것이다.

***

민수가 작업하고 있는 현장으로 갔다.

위잉.

마당에서 전동공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막 아침이 지난 시간임에도 햇빛은 강렬했다.

목재를 치수대로 잘라서 중문을 만드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모래바람과 열기를 막기 위해서는 두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보다, 하나의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을 각각 설치하는 것이 나았다.

끼이잉.

목재를 자르는 소리가 강렬하게 내 귀를 때려왔다.

작업자들이 열심히 자재들을 나르고, 재단한 것들은 필요한 위치로 운반하고 있었다.

모두 목장갑을 끼고 열심히 나르는 중이었다.

“민수야. 잘되어 가냐?”

“네, 이제 반쯤 재단했어요.”

곽 이사도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두 팔을 걷어붙인 채 일하고 있었다.

목재를 나르는 사람들에게 민수가 외쳤다.

“장갑 끼고 하세요. 손 다쳐요.”

이런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장갑을 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말 위험하다고 장갑을 끼라고 해도 말을 잘 안 듣네요.”

민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장갑이라는 말에 번뜩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무를 자르고 있는 사람을 봤다. 역시!

“민수야. 저 재단하는 사람, 아니, 절단공구 쓰는 사람들은 모두 목장갑 벗고 하라고 해.”

“왜요?”

“넌 공장에서 일 안 해봤니?”

“아뇨. 해봤죠.”

“흠, 장갑 항상 끼고 하니?”

“당연하죠. 목재 조각할 때 장갑 안 끼면, 손등 엄청 찍혀요.”

‘넌 다른 영역에서 작업을 했구나. 조각이라니.’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민수처럼 조각칼을 쥐고 일을 하게 되면 장갑을 끼는 것이 당연하다.

짐을 나르다가 찍히면 손의 뼈는 부러지지 않더라도, 피부가 쓸려나가게 되니 당연히 장갑을 껴야 한다.

조각 또한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칼날이 혈관까지 도달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목장갑이 한다.

가장 저렴하고 간편한 안전장비 중의 하나가 장갑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장갑을 벗고 일을 하라고 하는가?

***

지난 삶에서의 일이었다.

나는 퇴근하기 직전, 가구 공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공장장님! 다 안 실어도 되니까, 되는 대로 실어서 보내세요.”

공장장은 건성건성 알았다고 말했다.

“케파 안 되는 거 뻔히 아니까, 다 되면 싣지 마시고, 되는 대로 실어 보내세요. 알았죠.”

“알았다니까 자꾸 그러네.”

‘케파’란, 현장에서 많이 쓰는 외래어다.

‘Capability’의 줄임말로 정해진 기간까지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을 말한다.

생산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하면 기분 나쁠 것 아닌가!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공장장의 말투로 보아, 분명히 내일 아침 8시까지는 들어와야 할 물건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불러놓은 인부들 인건비는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현장관리인 내가 직접 공장으로 가서 트럭을 부르라고 쪼는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는 트럭을 부르는 것도 모두 경비로 나간다.

1톤 3대로 30만 원을 지불하느니, 2.5톤 한 대로 15만 원을 지불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또한 2.5톤의 트럭이 훨씬 많은 물건을 적재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장에서는 20명을 불러놓고, 한 시간 놀리면 그만큼의 비용이 사라진다.

시간당 돈을 주겠다고 불렀으니 지불해야 한다. 물건이 늦어졌으니, 한 시간 더 해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영세한 공장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사정을 봐달라고 한다.

자기 공장 15만 원을 아끼려고, 내 현장에서 그 이상 날아간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정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 욕은 내가 다 먹고?’

아무리 설득하고 말싸움해 봐야, 내일 제시간에 공장에서 물건 안 보내면 아무 의미 없다.

‘분명히 내일 아침에 한 시간만 기다리라고 할 거야. 거래 한두 번 해보나!’

지금 거래하는 공장의 케파로는 죽었다 깨나도 못 맞추는 걸 아니, 내일 아침 공장으로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공장장을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병원에 가 있었다.

일단 공장의 물건을 실어 보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회사의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었다.

“미안해. 김 주임. 시간을 못 맞췄네.”

마취가 덜 깬 얼굴로 내게 사과부터 했다.

‘젠장!’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손가락은요? 산재는 된대요?”

손가락 붙고, 산재 되면 뭐하는가?

손가락은 제대로 안 움직일 거고, 산재 되는 동안 놀아야 하는데.

그나마 손목이 아닌 것을 위로로 삼아야 했다.

다음 공장에서 누가 써줄 것 같은가?

자기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사장 돈을 아껴주기 위해서 자기 손가락을 날린 거다.

사장에게 욕 한 마디 안 먹으려고 밤새서 일하다가 제 손가락 잘려나간 거다.

한마디로 바보 병신 짓 한 거란 말이다.

나는 그에게 화낼 수 없었다.

“빨리 나아서 나오세요. 손가락 잘 붙길 바랄게요.”

박하스 한 박스 놓고 병실을 나왔었다.

전동공구를 다룰 때, 특히나 절단형 전동공구를 다룰 때는 절대로 장갑을 껴서는 안 된다.

왜 공장장이 그 꼴을 당했는지,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재단을 해줘야, 다음의 공정이 이어질 수 있었다.

재단하고, 에지 붙이고, 조립까지 해야 주방에 설치되는 가구 한 통이 나온다.

이 공정에서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운반이다.

재단기에서 에지 벤딩기까지 손으로 운반을 해야 한다.

재단기에서 바로 나온 PB*나 MDF**는 그 모서리가 날카롭다.

장갑 없이 운반을 하면, 손이 베이고, 긁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장갑을 벗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까웠던 것이다.

장갑을 꼈으니, 톱날에도 덜 다치고 좋지 않냐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1초에 100 이상을 회전하는 톱날에 장갑 한 올이 빨려 들어가면, 순식간에 손목이 날아간다.

안전장치를 0.1초 만에 놓았다고 해도, 이미 10회 이상 갈린 상태가 된다.

공장에서의 0.1초는 혈관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공장장이 십 년 이상을 일하면서, 그런 모습을 한 번도 안 봤을 것인가?

‘설마 내가 그러겠어’라는 생각, 그리고 바쁜 와중에 잊어버린 안전에 대한 해이가 그의 인생을 망쳐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공장에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일이다.

그곳에서의 단순 작업은 컴퓨터로 이루어진다.

NC가공이라고 한다. ‘Numerical Control(수치 제어)’의 약자이다.

말 그대로 기계에 수치를 입력하면, 그 수치대로 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는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가공으로 바뀌며 도면만 집어넣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둘 다 NC가공으로 통틀어 칭한다.

기계에 도면 수치를 입력하고, 자재를 공급하면 딱 조립할 수 있게 피스구멍까지 뚫려서 나온다.

사람이 하는 일은 중간중간에 중간 단계 제품이 적재된 캐리어를 잠시 밀어주는 것뿐이다.

지난 삶을 살면서, 나는 공장장 일을 하시는 분을 많이 만났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제대로 있으신 분은 열 분 중에 다섯 분도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

‘카미의 일을 하는데, 사람이 다쳐서야 되겠어?’

끝맺음을 정말 잘하려면, 중간 과정에 아무런 탈이 없어야 한다.

민수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전동공구를 다루고 있잖아.”

“그게 왜요?”

“손목 날아간다. 너 기계한테 이길 자신 있냐?”

내 지난 삶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다면서 말해줬다.

민수가 총알같이 뛰어가서 말했다.

“당신 장갑 벗고 하세요. 그리고 당신은 절대 운반하지 말고 재단만 하세요. 알았죠?”

엄포를 놓고 다시 돌아왔다.

“민수야. 이제 얼마나 남았어?”

“오늘 정도면 끝날 것 같아요.”

***

집사가 서류가방을 들고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님, 국왕께 업무보고를 가야 할 시간입니다.”

카미와 함께 앉아 있던 왕자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래야지.”

우리의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밖으로 나갔다.

“괜히 불러서 대접도 못 하고 고생만 시키는군.”

집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압둘 잘 설득하라고.

집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 마십시오. 부디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카미도 걸어 나와 압둘을 배웅했다.

카미의 볼을 툭툭 치며 압둘이 말했다.

“잘 놀고 있어라. 내 형제여!”

<작가 주>

*PB[Particle Board(파티클 보드)]

나무를 작게 분쇄해서 접착제를 혼합하여 가열 성형한 판재를 말한다.

주로 가구의 몸통 부분을 구성한다. 칩보드(Chip Board)라 부르기도 한다.

**MDF[Medium Density Fiberboard(중밀도 섬유판)]

PB보다 더 미세하게 섬유질상태로 갈아서 접착제와 혼합하여 가열 성형한 판재를 말한다.

주로 가구 문짝의 성형에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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