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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03화 (103/427)

건축의 신 103화

애완동물이 있는 집(02)

“민수야. 압둘의 취향이 보여?”

“상당히 서구적이네요.

“그래?”

거기까지는 예상을 했었다.

“스타일이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추구하는 취향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흠. 왕자가 낙타랑 찍은 사진만 눈에 띄더라고요.”

민수에게는 오자마자 집 안을 둘러보라고 보냈었는데, 녀석은 이런 답변을 가져왔다.

손으로 입을 감싸고 생각에 잠겼다.

‘역시. 짧은 시간에 몰딩으로 압둘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오만이었어.”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미래는 언제나 예측이 불가능했다.

곽 이사에게 대충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형. 낙타를 훈련시키시려고요?”

“엥! 내가 조련사냐? 낙타를 어떻게 하게.”

“그럼요?”

“우리 클라이언트는 압둘이라고. 낙타가 아니라.”

“그렇긴 한데…….”

“압둘이 기쁘기 위해서는 낙타가 필요하고.”

민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아니,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다른 말이야.”

낙타의 행복은 측정할 수 없지만 압둘은 가능하다.

내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낙타의 안전, 그것만 해도 압둘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것이다.

둘째는 낙타의 행복, 물론 압둘이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압둘은 카미를 위해서 뭔가를 해 주고 싶어 할 거야.’

그 뭔가를 해줘서 낙타를 만족시키리라 확신하지는 못 한다. 그러나 적어도 압둘은 만족할 것이다.

애초에 카미가 압둘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나 할까?

애완동물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주인의 관심뿐이니까.

적어도 내가 키우던 개는 그랬다.

그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좋은 사료와 놀이 기구로 나타나는 것뿐이다.

압둘이라면 카미가 행복해 보일 수 있다면 뭐든지 좋아할 것이다.

내가 건넨 도면을 보더니 민수가 말했다.

“형. 현관 바로 밖에 테라스를 만드시게요?”

“응. 뭐 중문 개념이라고 보면 돼.”

“에어커튼 하나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원래는 에어커튼만 설치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모래바람을 견디기에는 너무 약했다.

사막의 바람은 내 생각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지금도 마당처럼 넓은 거실 안은 모래가 굴러다녔다.

“출력을 강하게 하면 되겠지. 그런데 내 생각에는 낙타가 나오다가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

“그 정도로 강하게 하시게요?”

“그런 출력이 아니면 모래를 못 막을 거고, 그렇다고 계속 세게 돌리면 모터가 견뎌내질 못할걸!”

민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는 에어커튼을 설치할 계획이고, 외부에는 뭘 설치하시게요?”

“응. 테라스 삼면에다가 투명매트를 잘라서 커튼처럼 설치할 거야.”

투명 매트란, 책상이나 식탁 위에 유리 대신 종종 까는 두꺼운 비닐을 말한다.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기서 한 번 모래랑 뜨거운 바람을 걸러주겠네요.”

“그리고 저 녀석이 다칠 일도 없겠지. 눈도 많이 어두운가 봐.”

“알았어요.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응. 매트 20㎝ 단위로 자르는 것 잊지 말고!”

민수에게 제작을 서두르라고 하고, 압둘에게 갔다.

여전히 압둘은 묵묵히 카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 집사가 시립해 있었다.

집사에게 뭔가 물어보려고 하는데, 카미가 벌떡 일어섰다.

압둘도 카미를 따라서 일어섰다.

“카미야!”

일어선 카미는 주인의 말에 대꾸도 없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집사님, 쟤 왜 저래요?”

카미를 따라서 걸어가며 집사에게 물었다.

“물 마시러 가는 겁니다.”

‘왜? 행동도 불편하면서! 그럼 집 안에 물을 떠다 놓으면 될 거 아냐?’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민수가 따라붙었다.

“형. 어디 가는 거예요? 까미 아프다면서요.”

“낙타 물 마시러 가는 데 따라간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집 안에 수도도 있을 거 아닙니까? 떠다 놓으면 되고.”

“그러게 말이다.”

“그래 봤자 애완동물인데, 버릇을 안 좋게 들였네요.”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압둘이 낙타성애자라더니, 저래서 그런 소문이 있는 건가?”

확실히 형제 같은 애완동물이고, 테러의 위험에서도 구해줬다고는 하지만 과한 감이 있었다.

아! 민수와 있을 때는 한국말로 했다.

이런 대화를 압둘과 집사가 들었다가는 압둘에게 잘 보이려는 나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집사에게 물었다.

“집사님, 왜 항상 문을 열어두는 겁니까?”

집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렇잖아요. 어차피 나갈 때만 주의를 하면 될 텐데. 같이 나가거나.”

집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녀석은 목이 마르면 수시로 물을 마시러 드나든답니다.”

“왜요? 낙타잖아요.”

낙타는 물을 저장하는 동물로 유명하지 않던가!

게다가 나이가 많아서 물 먹으러 가기도 힘들 텐데.

“녀석의 등에 혹이 보이십니까?”

카미의 혹은 생각보다 작아보였다. 그리고 흉터도 있었다.

‘왜 저렇지?’

그 의문에 집사가 답해주었다.

“주인님과 있다가, 총탄을 맞은 겁니다. 물론 수술로 제거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 후유증으로 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카미는 흐르는 개울에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셨다.

그마저도 불편해 보였다.

아직도 아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압둘이 측은하게 카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님, 왜 카미는 저기서 물을 마시는 거죠?”

조용히 있던 압둘이 입을 열었다.

“탈랄. 7, 8년쯤 되었지. 녀석이 그런 행동을 한 지가?”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압둘이 카미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라크가 내 나라를 침공했을 때였어. 그때도 나는 녀석을 끌고 전쟁터로 향했지.”

그는 1990년에 있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말하고 있었다.

압둘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지.”

“아닙니다. 주인님. 그건 당연하신 판단이었습니다. 그 전쟁 통의 와중에…….”

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헤어지면 찾을 수 있지만 동물은 찾을 수 없다.

적군에게 끌려가는 것은 물론, 한 끼 식량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카미를 형제처럼 여기는 압둘에게는 필연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전쟁터라면 적어도 함께 죽을 수 있을 테니.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았지. 유엔군의 개입이 있었을지언정. 우리는 승리를 쟁취했지.”

숙연한 분위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중동 지역의 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알라의 축복이라는 기름 때문에 벌어진다. 항상!

석유가 발견되기 전 중동의 여러 나라는 후진국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석유가 나와서 그들은 부자가 되었고, 그것을 알라의 축복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걸프만에 운집해 있는 여러 나라가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약탈과 목축으로 살아가던 베두인의 속성이 남아서, 이제는 풍족해 졌음에도 타인의 것을 탐내는 것은 아닐까?

“왕자님께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군대를 이끄셨고, 적의 잔당을 모두 소멸했습니다.”

“장갑차가 가지 못하는 협곡이라도, 카미와 나는 추격했다네. 내 형제들을 죽인 자들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지!”

“그리고 도주하다 매복한 잔당들의 총탄에 피격을 당했지요. 그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카미가 없었다면, 우리 둘 다 죽었을 겁니다.”

카미는 집사에게도 생명의 은인이었던 모양이다.

“왕자님, 제가 성급했었습니다.”

“아냐. 자네는 잘못이 없어.”

집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때, 피격을 받아 피 흘리고 있는 카미에게 물을 떠다 줬었습니다. 고여 있던 물만 생각했었지, 그게 피가 고인 웅덩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요. 한 입 먹고는 먹지 않더군요. 그때부터 카미는 고인 물을 먹지 않습니다.”

옛 생각이 났던 것인지 집사의 눈도 붉어졌다.

“용케도 집 근처에 개울이 있었나 봅니다.”

“그게 아닙니다.”

“그럼.”

내가 너무 앞서 나갔다.

“왕자님께서는 일부러 개울이 흐르는 이곳에 집을 지으셨습니다. 카미를 위해서요.”

카미를 위한 압둘의 지극정성이 느껴졌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군요. 그래서 카미가 아직 건강한 거군요.”

나도 카미의 흉터로 얼룩진 혹을 쓰다듬었다.

다 자란 낙타라면 적어도 50㎝ 이상의 혹이 있어야 하는데도, 있는 듯 마는 듯 작은 혹이 있는 이유였다.

차마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노령의 나이였지만, 측은하고 귀엽게 보였다.

‘이 정도면 영물이라고 해도 되겠군.’

주인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렸을까?

테러범에게서, 적군에게서 비단 그 뿐이겠는가?

‘진정으로 행복하면 좋겠구나. 카미!’

민수가 말했다.

“괜히 미안해지네요.”

“그러게. 아무것도 모르고, 카미를 비방했으니.”

민수야 어리니까 그렇다고 쳐도, 나이 40을 넘게 먹은 내가 사정도 모르면서 동조를 했다는 데 심히 부끄러웠다.

카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집사님!”

“왜 그러십니까?”

“고인 물을 먹지 않는다고 했죠?”

“네, 고인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입니다.”

트라우마란 고인 물에서 맡은 인간의 피 냄새가 다른 물에서도 맡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물며 짐승도 이러할진대!

“그럼 흐르는 물은 상관이 없나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흐르기만 하면 상관이 없느냐고요!”

집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네, 지금까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비가 오는 계절에는 흙탕물도 개의치 않으니까요.”

민수가 물었다.

“형, 뭐하시게요?”

민수를 보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압둘의 집을 즐겁게 만들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매번 카미가 물을 마시러 가지 않아도 되도록, 물론 그렇게 했는데도 카미가 마시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시도해 볼만은 했다.

카미를 데리고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을 갈 수 있다면, 실험을 해보겠지만 그러기엔 카미는 너무 늙었다.

“민수야. 물레방아 만들자.”

“물레방아는 왜요? 방앗간 하시게요?”

민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면서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놀렸다.

“너도 만들고 싶지?”

“그야…….”

“너도 까미한테 미안하잖아.”

“그러네요. 하지만 곽 이사님은 싫어 하실 것 같은데요. 지금도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고 계신대.”

민수 말처럼 곽 이사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목재를 나르고 있었다.

“하하. 어지간히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으신 모양이네.”

“네, 저한테도 빨리 하라고 얼마나 닦달을 하시던지, 질려서 도망쳐 나온 거예요.”

마당에서 작업 지시를 하던 곽 이사가 우릴 본 모양이었다.

“민수 군. 거기서 뭐 하나? 얼른 끝내고 가야지!”

민수가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형. 저 지금 무지 곤란한 거 아시죠!”

그동안 쌓인 정이 있어서 민수도 냉정하게만 대하지는 못 하는 것 같았다.

“민수, 넌 가서 작업 지시하고, 곽 이사님 이리로 좀 오시라고 해줄래. 내가 할 말 있다고 하고.”

“잘 말씀해 보세요. 저도 녀석의 사정을 들으니, 그냥은 못 가겠네요.”

“그래, 너 작업하면서 물레방아 어떻게 만들 건지나 고민해 봐. 그게 이번 프로젝트의 포인트라고!”

계획이 바뀌었다.

“곽 이사님만 참으면 압둘도 기쁘고, 카미도 행복하겠네.”

‘압둘은 우리나라 물레방아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애당초 사막에 물레방아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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