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95화
발판을 다지다.(04)
알리 왕자가 일어서고, 우리는 따라 나섰다.
그의 경호원을 비롯하여 수행원만 십여 명이 알리 왕자의 주위를 둘러쌌다.
‘어마어마하네!’
우리나라 대통령도 저런 경호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왕도 아니고 왕자가 말이다.
저 사람이야말로 태어날 때 복이란 복은 모두 껴안고 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현재의 왕 회장도 저런 경호는 받지 못하겠지? 아니, 하지 않겠지! 저건 돈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다른 거야.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지만,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었다.
호텔정문을 나서니 10m가 넘는 새하얀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앞쪽 뒤쪽으로는 각각 두 대씩 오토바이가 시동을 건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 호텔의 직원들이 나와 줄줄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퇴근한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민수에게 슬쩍 물었다.
“야, 아까 우리 들어올 때도 이랬니?”
“전혀요! 이건 왕자라서 하는 예우 아닐까요?”
우리와 비슷하게 걸어오던 곽 이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닐세. 이 호텔은 알리 왕자 소유라네. 그는 이것 말고도 호텔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
“50층이 넘는, 이런 고급 호텔을 몇 개나 가지고 있다고요?”
입이 떡 벌어진 나의 말이었다.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곽 이사가 말을 이었다.
“이런 호텔은 그가 하는 사업 중에 일부일 뿐이야. 그리고 그는 왕자 중에서도 가장 실세라고 할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곽 이사님은?”
“현재에서의 내 첫 근무현장이 사우디였다네. 10년을 넘게 근무했지. 왕자도 그때 알게 된 인맥이고.”
“사우디에 대해서 잘 아시겠군요. 이사님.”
역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다더니, 그가 그렇게 아랍어를 잘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도 아랍어를 배워야겠어. 역시 말이 통해야 뭐라도 할 수 있겠지.’
말이 안 통해 답답한 경험을 하게 되니, 목표도 하나 생겼다.
곽 이사는 나의 경탄에 흐뭇했던 모양이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자네 말이 맞네. 내 자랑 같지만, 현재에서는 중동통이라고 불린다네.”
그 순간 내 눈빛이 빛났다.
‘현재의 중동통이라고? 친해지면 얻을 것이 많겠는데!’
그 생각을 하면서 내 스스로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나는 곽 이사를 어느 순간부터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내 스스로 정도(正道)를 걸으려 하는데,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알리 왕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는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랍부자를 생각하면서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벗겨먹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그래서 최고의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
최고의 장사꾼은 될 수 있겠지만.
약간의 성공으로 나는 거만했었고, 내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초보다. 아직 건축을 잘 모른다.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건축에 대한 열망을 이루려고 하면, 건축에 대한 공부를 병행하면서 그 꿈을 함께해 줄 투자자들을 모아야 한다.
‘나는 그 투자자를 잡으러 왔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 되뇌며, 현실로 돌아왔다.
‘아랍의 부자들을 많이 알면 뭐해? 친해지고 인맥을 쌓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인맥 쌓기 가장 좋다고 알려진 방법은 경조사에 화환 보내고 인사하는 거다.
우리나라만 그럴 것 같은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그 표현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내 머리엔 중동 부자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곽 이사와 손을 잡으면 되겠네. 곽 이사 말은 30년 전부터 인맥을 쌓았다는 거니까!’
30년의 인맥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돈으로 시간으로 그 가치를 환산될 수 없었다.
그건 그의 머리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거니까, 빼앗을 수도 없다.
한 번 더 곽 이사에게 눈길이 갔다.
‘이런 사람이 겨우 이사라고? 현재에는 도대체 어떤 괴물들이 버티고 있는 거야?’
새삼 기업체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동시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현재와 파트너가 된다면, 이런 인재들을 모두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용해야 하며, 어떤 관계를 만들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재라는 곳에 들어간 뒤가 되면 이미 늦어버린다.
지금 내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인정한다고 해서 교만하고 내가 잘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나는 끝이다.
스스로를 다잡았었다.
‘지금 내 앞을 걸어가는 자는 사우디의 왕자다. 그는 부자다. 권력자다.’
솔직히 ‘일대일로 한번 붙자’라고 하면, 이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는 잘 태어나서 이런 부와 권력을 노력 없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라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나는 그의 상대가 안 된다.
운 좋게 만났지만, 원래대로라면 절대 만나지 못할 사람이었다.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이 사람과 친해지고, 건축에 대해서 말하게 하느냐 하는 거지.’
프랭크처럼 저명한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의 눈에 낀 눈곱보다 못한 존재였다.
왕자의 뒤를 따라 리무진에 올라탔다.
‘아! 짜증나!’
민수나 한 교수처럼 순수하게 감탄을 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감탄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질투가 생겼다.
차 안을 장식하는 실크와 최고급 원목으로 가공된 팔걸이, 그리고 일반 리무진보다 10㎝는 높은 차고(車高), 팔걸이 옆에 붙어 있는 개인 냉장고, 그 위로 놓여 있는 시가까지.
특별히 손님이 온다고 준비한 것이 아닌, 평소에 이렇게 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무슨 왕자가 어려워할 귀빈이라고, 신경을 쓰겠는가?
왕자의 말 그대로, 그의 집에 밥이나 한 번 먹으러 가는 건데.
‘왜 나는 질투를 하는 거지? 솔직히 부러워하면 그만인데!’
지금의 내 설명하기 싫은 네거티브한 감정의 원인은 내 지난 삶에 있었다.
그때의 내가 살아온 삶은 알리 왕자의 하루보다 가치가 없었다. 돈으로 따진다면!
‘하루가 안 될지도 모르지. 알리 왕자의 한 시간 일수도 있겠구나.’
그가 하루에 소비하는 비용을 벌기 위해 나는 20년을 일했는데, 왜!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영위하는가?
불공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게 60억 분의 1이든, 60억 분의 100이든.
‘인생 참! 복불복이네.’
가식적인 얼굴로 웃고 있다가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으니까!
‘잠시 유치한 생각을 했었네. 개도 비웃을 생각을 하다니.’
지금 내 앞의 인물이 돈 많은 거 알고 따라왔다.
‘다만 착각이 있었다면,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부를 생각했던 거지.’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라리 영화에서 보던 것은 현실성이 있었다.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것과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많이 달랐다.
의자의 쿠션은 내 몸에 맞춘 듯 편안했고, 실크 원단으로 된 커튼은 융단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팔걸이의 나뭇결은 ‘이런 게 최고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살아 있었다.
단지 부드럽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뭇결은 이렇게 되어 있구나!’ 분명히 지문을 통해 느낌은 오는데,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다.
나는 지난 삶에서 나름 최고급 가구를 팔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했었다.
그건 오산이었다.
‘이 팔걸이에 비하면 그때 그 고급가구들은 하품이네.’
수천만 원을 호가하던 그 가구들이 이 팔걸이 하나에 밀렸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곁눈으로 살펴보았다.
꼼꼼히 살펴보자니 남들 보기 부끄러웠고, 모른 척하자니 안목을 높일 기회를 놓치는 멍청한 짓이었다.
검정색 나이테가 있는 흑단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흑단 나무 자체도 비싸지만, 그 가공된 것 또한 최고급이었다.
염치를 무릅쓰고라도 묻고 싶었다.
왕자를 쳐다보니 그는 손을 무릎에 다소곳이 모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집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왕자님께서는 알라신께 감사하는 묵상을 하고 계십니다.”
어느새 나 이외의 다른 인물들도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비서에게 물었다.
“이건 얼마 정도 합니까?”
“네, 일만 달러가 조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이 내장 장식비용을 총 합하면 얼마나 될까?”
한참을 민수와 대화하다가 집사에게 확인을 위해 물었다.
“어마어마한 가격이네요. 내장만 해도 최소 백만 달러는 넘겠죠?”
백만 달러, 한국 돈으로 15억이 넘는 돈이었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가 5억이 채 하지 않을 때였다.
이 리무진 한 대에 한국 노른자위 땅에 있는 아파트 세 채 값이 넘게 들어간 것이다.
‘자기 돈 쓰는 걸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돈 지랄이네.’
내 질문에 집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못 알아들었나 해서 다시 말하려고 했지만 그는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외국인 손님.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네, 무슨 오해 말씀이신가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 팔걸이 하나의 가격이었습니다.”
‘헉! 팔걸이 한 개가 1,500만 원?’
내가 더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입을 떡 벌렸다. 다시 계산할 정신도 없었다.
‘젠장!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사는 세계가!’
곽 이사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럼 이 차에 쳐 바른 돈이 천만 달러가 넘는단 말입니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다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중동통이라는 그라면 알 것 같았다.
“이사님. 저 사람들 미친 거 아닙니까?”
곽 이사는 좌우의 사람들을 눈으로 훑으며, 역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보이기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우리 같은 사람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니 말일세. 하지만…….”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리 왕자는 한 번도 손해 본 적이 없는, 유능한 장사꾼일세. 저렇게 허술해 보여도 말일세.”
그의 말에 지난 삶을 떠올려 보았다.
혹시 사우디의 어떤 바보 왕자가 사기를 당했다거나, 호구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있는지.
이 정도 호구라면, 누가 달라붙어도 붙었을 것이고, 소문이 나도 났을 것이다. 돈의 단위가 달랐을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네!’
아무리 내가 세계정세에 관심 없었다고 해도 모를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군.’
중동의 부자는 호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 관념이 싹 사라졌다.
나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며 자만했던 것이다.
지금의 알리 왕자는 호구가 아니라, 호구(虎口)로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곽 이사가 물었다.
“우리가 달리는 동안, 이 차가 멈춘 적이 있었나?”
“아뇨.”
리무진은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 번잡한 시내도로를 달리면서 말이다.
서울 시내라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게 이 나라에서 왕족의 위치라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왕족이 지나간다고 하면, 모든 차들이 멈춰 선다네. 국민들이 왕을 존경한다는 표시로 말일세.”
“그럼 아까 오는 도중에 경찰들이 보였던 것이.”
곽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족을 만나본 적도, 왕족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나라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중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스스로를 자신했던 것!
당장 팔거나 어필할 것도 없으면서 만날 기회가 생기자 덥석 달려든 것!
어쩌면 중동의 부자가 내 몰딩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디어는 중동에 통할 정도라고! 부자들은 내 몰딩을 보고 혹할 거야’라고. 병신 같은 생각을 했어. 병신!’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스스로 잘 안다고 자만했어.’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응원군이 옆에 있었다.
곽 이사!
그가 왜 나에게 잘해주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나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이득이 될 사람이었다.
그가 있음으로 인해 말 한마디라도 더 붙여볼 것이다.
그를 동아줄 삼아서 이 위기의 상황을 이득의 상황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평생 한 번 주어질까 말까 한 이 기회를 허공으로 날릴 수는 없지!’
창밖을 응시하는 곽 이사의 옆얼굴을 보며 마음을 다졌다.
곽 이사가 말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세.”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면 알게 될 걸세.”
***
사막의 태양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리무진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었다.
우리를 수행하는 차들 외에는, 오가는 차 한 대 없는 황량한 도로였다.
8차선은 될법한 넓은 도로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곽 이사님, 여기가 어딘가요?”
“알리 왕자의 사유지일세.”
“저택이 꽤 멀리 있나 보군요.”
영화에서 많이 보는, 정문에서부터 한참이나 꼬불꼬불 정원을 지나야 도착하는, 그런 저택을 생각했다.
곽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곳은…….”
곽 이사가 씨익 웃었다.
“그의 개인 공항 활주로일세!”
‘하긴! 사막에서 정원은 무슨!’
창밖을 보니, 검은 사막 한가운데 3층짜리 대저택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저 멀리서 비행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