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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82화 (82/427)

건축의 신 82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12)

CCTV 영상을 보며 한석이 흥분했다.

“그럼. 얘네들이 일부러 그랬다는 말임까?”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대번 흥분하는 한석과 달리, 민수는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이야기해 줬다.

“실은 그날, 내가 다리를 직접 확인하고 왔어.”

찍어온 책상 사진을 둘에게 보여줬다.

“완전히 꺾였는데 말임다. 일부러 꺾은 검다. 일부러 우리 엿 먹이려고! 트럭 고장도 그렇고, 박 교수 짓임다.”

“저도 박 교수가 의심은 가는데, 이 정도 가지고는 박 교수에게 시비를 걸기는 어려워 보여요.”

“내 생각도 그래.”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심증은 있었지만, 그를 지목할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했다.

확신이 없는 것으로 핍박을 했다가는 도리어 역습을 당할 것이다.

“한 교수님께는 말하지 마라. 기다리면 뭔가 나올 거다.”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이 무너졌을 때 나는 확신했다.

비릿한 박 교수의 웃음은 ‘꼴좋네’가 아니라, ‘그것 봐라’라는 눈빛이었다.

하나 심증만으로 올가미를 씌우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

책상을 옮기는 것이 조교들이었다면, 그들에게 책임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봐야 돌아오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조교들은 박 교수에게 학점으로 매인 노예와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꼬투리를 잡히기 싫었던 것인지, 박 교수는 어린 학생 둘을 동원했었다.

다음 학기면 군대에 입대할 녀석들을 말이다.

변화가 생기면 변수도 발생한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

구조대전의 결과가 나왔다.

심사위원들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총장이 한 교수와 나를 포함한 4명을 호출했다.

총장실로 들어가니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전에 봤던 심사위원장이 학장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교수님께서 많이 기대를 하십니다. 한국 건축의 내실이 다져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허허. 거참. 그분께서 칭찬을 하셨습니까?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려.”

총장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일어서며 손짓했다.

“마침 주인공들이 저기 오는구려. 이리들 와서 앉게. 이분은 알지?”

심사위원장도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안 오면 가서 만나보고 가려했는데, 잘됐네! 대상수상을 축하하네.”

그는 직접 상패를 전달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자네들 덕에 내가 노교수님께 체면이 섰다네. 다음에 열리는 대전에도 꼭 참가해 주게. 부탁이네.”

라며…….

총장이 차를 권했다.

“한 교수, 그리고 성훈 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군. 오히려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냈어. 허허허.”

총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가 한 약속을 지켰다.

티켓 세 장은 물론이고, 다음 해 내로 구조실험실을 완성시켜 주기로 약속했다.

“H대학 노교수에게서도 연락이 왔었네. 자네들을 아주 좋게 평하던데.”

“교수님이 좋게 봐주셨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할 일이지요. 그리고 이 친구들이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한 교수는 우리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한 교수, 그렇게 겸양하지 않아도 되네. 그 사람이 엄청 깐깐하거든. 쉽게 칭찬하는 분이 아니지.”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 친구들은 또 새로운 인재들이구만. 학교의 앞날이 밝아.”

민수와 한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총장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유명한 H대학의, 그것도 국내에서 알아주는 권위자인 노교수의 칭찬을 받은 것이 더없이 기뻤던 모양이었다.

“자, 이제 내가 한 약속은 지켰네.”

“감사합니다. 총장님.”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데 말일세. 건축과를 위해 더 해줬으면 하는 것이 없는가?”

한 교수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왔고, 한 교수와 의논해 왔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총장님께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 대한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참 동안 나와 총장의 의견이 오갔다.

총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흠. 성훈 군의 아이디어인가? 계획이 아주 잘되어 있어. 그러나 바로 진행시키기에는 애로사항이 있어 보이는군.”

첫술에 배부를 생각은 없었다. 총장의 흥미를 끈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습니다. 그저 총장님의 의견을 여쭤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건 좀 더 심도 깊은 대화가 필요하겠군. 따로 시간을 잡도록 하지.”

인사를 하고 총장실을 나왔다.

***

기말고사가 끝났다. 이제 곧 방학이 시작될 것이다.

“선배님, 우혁이 아심까?”

“그럼 알지. 너 다음 가는 농땡이였지. 아마! 이번 학기 마치면 군대 간다면서.”

“제가 농땡이 딱지를 뗀 게 언젠데 그러심까?”

‘아무리 올챙잇적 시절을 기억 못 한다지만, 너 그 딱지 뗀 지, 두 달도 안 됐거든!’

하긴 지금의 그에게 농땡이 딱지를 붙이기에는 한석이 아까웠다.

“그래서! 우혁이가 왜?”

“박 교수 구조 수업에서 A+를 받았슴다. 이상하잖슴까?”

“열심히 했나 보지.”

“아님다. 의심스러워서 트러스구조에 대해 물어봤슴다. 전혀 모름다.”

“진짜!”

“진짬다.”

기다리던 변수가 발생했다.

“친하냐?”

“친하지는 않지만, 알고는 있슴다.”

“입대 전에 술 한잔하자고 불러내라.”

“네, 알겠슴다.”

교내에서 일을 벌이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

박 교수 사무실을 찾아갔다.

“박 교수님.”

“뭐야. 이 자식아. 뭐 또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길게 말할 필요 있으랴!

녹음기를 틀어줬다.

우혁과 술을 마시며 알아낸 사실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우혁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박 교수님이 시켜서…… 학점을 주신다고…….]

[이 자식아. 교수가 시킨다고 하냐? 너 제정신이냐?]

[나 구조까지 F 맞으면, 학사경고였어.]

[미친놈!]

흥분한 한석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흥. 어린애를 협박한 거냐?”

“협박이라뇨. 협조를 구한 거지요. 교수님이야말로 학점으로 협박한 게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크크크. 어이가 없구만. 감히 어린놈이! 교수를 협박해?”

‘큰소리치면 장땡이냐?’

“인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교수님?”

“협박으로 얻어낸 자료가 신빙성이 있겠어?”

협조와 회유라는 좋은 단어를 두고, 협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참 많이도 해보셨나 보네요. 이리 대응이 빠르신 걸 보니.”

어차피 처음부터 시인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박 교수는 코웃음을 치며 나를 비웃었다.

“흥. 너도 교수생활 5년 해봐라. 이렇게 안 되나!”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그럼 이것도 보실래요? 총장님께도 보여드릴 건데.”

그가 석고를 뒤집어쓰던 날의 영상이었다.

“이 새끼가! 일부러 날 엿 먹이려고 꾸민 거냐?”

“에이, 설마요! 박 교수님 하나 때문에 그런 일을 꾸밀 정도로 제가 한가해 보십니까?”

“그럼 그게 아니면 뭐냐? 이게!”

“이거랑 비슷한 영상, 총장님 방에도 하나 있어요. 에펠탑 만드는 거. 교수님은 못 보셨나 보죠?”

“…….”

“일부러 찍지도 않았지만 총장님이 보시면 누구 말을 믿을까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물론 진 교수님께도 보여 드릴 겁니다. 교수님께서 진 교수님 오른팔인 거 학교에서 공공연한 사실인데.”

“그걸 진 교수님께 보여줘서 어쩌려고.”

“진 교수님도 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른팔을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르는데.”

“진 교수님이 나를 잘라내실 것 같아?”

“순진하시네요. 설마 교수님이 혼자서 이 일을 계획했다고 생각하실까요? 총장님께서?”

“총장님이 건축과의 일에 왜 끼어드실 거라 생각하냐?”

그는 내가 왜 구조대전에 끼어들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총장과의 거래는 물론이고.

‘왜 우리가 구조대전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하고 싶어서요? 이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서?’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총장은 비장의 카드로 숨겨두기로 했다.

“결정하세요. 박 교수님만 사직하실지, 아니면 감자 뿌리마냥 모조리 잘라 내실 건지. 아! 물론 저는 후자가 더 좋습니다.”

“고작 대전에서 상 한 번 탔다고, 세상이 자네 것처럼 보이는가? 기고만장인걸!”

거참. 누가 기고만장인 건지! 진 교수의 파워를 믿는 것인가?

오히려 단시간의 결과로만 두고 본다면 한 교수의 배경을 만들기에는 지금 승부를 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총장은 명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한 교수를 밀어줄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총장이 말했었다.

‘명분만 가져와. 다해주지.’

“총장님께는 아직 보내지 않았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건축과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고 싶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알았네. 생각할 시간을 주게.”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랍니다. 교수님.”

나는 박 교수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내가 보기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발악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아무런 영양가가 없을 것이다.

‘진 교수가 먼저 잘라 버릴지도 모르지. 소문이 사실이라면 희생양이 필요할 테니까.’

이번 대전을 준비하면서 박 교수가 연구비의 일부를 사적인 용도로 썼다는 루머가 교수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루머가 있었다.

‘박 교수가 혼자서 먹었겠어?’라는 소문 말이다.

결국 박 교수는 뭐가 되었든,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이 일을 총장에게 알리기 싫었을까?

총장의 힘이라면 한 교수는 손쉽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장이 그 자리에 있는 한 그에게 휘둘려야 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니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내가 스스로 성장하는 만큼 한 교수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교수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평생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랐다.

이전의 삶에서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 건축의 중심이 되는 것을 보고 말이다.

기나긴 마라톤을 달려야 하는데, 한 교수가 누군가의 의도적 도움으로 꼭두각시가 되는 것도, 그 힘에 취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적어도 내 파트너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그 배경을 거머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전의 생에서 그가 그랬던 것처럼!

***

성훈이 사라진 후, 박 교수가 이빨을 갈았다.

“어린 노무 새끼가…… 감히. 곧 후회하게 해주지!”

그날 밤, 박 교수는 진 교수 방을 찾았다.

그는 성훈이 찾아와 자신을 협박했다며 흥분했다.

“선배님! 그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어디 있습니까? 감히 교수를 협박해?”

하지만 진 교수는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성훈이는 아직 서른도 안 된 학생이야. 그렇게 영악할 리가 없어.”

‘박 교수. 협박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멍청하기는 쯧쯧.’

“선배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실수하시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한 교수가 시킨 일일 거야. 성훈이가 그의 오른팔인 건 다 알잖나?”

“한 교수가 알았다면 이랬겠습니까? 당장 튀어 와서 멱살을 잡았겠지.”

그러나 진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한 교수는 그럴 시간이 없어. 얼마나 일처리를 허술하게 했으면 학생에게 약점을 잡히나. 쯧쯧. 버릴 때가 됐어.’

그렇지 않아도 진 교수는 코너에 몰려 있었다.

이번 구조대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다음 학기에 예산을 풍부하게 타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엉뚱하게 한 교수팀이 대상을 타버렸다.

박 교수팀은 순위권에 입상하지도 못 하고 장려상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그걸 빌미삼아 한 교수파에서 연구비 내역을 투명하게 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한 교수가 양동작전을 쓰는 모양인데. 애송인 줄 알았더니, 수 싸움이 대단해!’

한 교수파란, 박 교수 난동 시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과목 교수들이 한 교수를 중심으로 뭉친 파벌을 말했다.

‘어차피 이 일을 넘기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어.’

진 교수가 물었다.

“자네 충고는 고맙게 듣지. 자네는 이 사태를 어찌 해결했으면 좋겠나?”

“어쩌긴요. 눌러 버려야지요. 저는 선배님만 믿고 있습니다.”

당연한 듯 말하는 박 교수의 대답에 한숨이 나왔다.

‘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총장이 그들을 불러 직접 치하하고, 한 교수에게 구조실험실을 지어준다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한 교수에게 해코지를 한다고? 미친 자식!’

암투가 벌어졌다가는 진 교수 자신의 자리도 온전하지 못할 것인데, 오른팔이라는 박 교수는 속편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노교수에게 욕먹을 때도 멀리 피해 있더니…….’

얼마 전 구조대전에서 노교수에게 신랄하게 비난받던 일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다.

‘이번에는 나를 방패 삼아 뒤에 숨을 셈이냐?’

잘 키워서 방패로 쓰려고 했더니, 박 교수는 오히려 자신을 방패로 쓰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선배님! 이제 곧 방학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유야무야될 겁니다. 아니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진 교수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자네는 이번 일에서 몇 번이나 한 교수팀에게 덫을 놓지 않았었나?”

박 교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배님, 그 말씀은? 제가 미덥지 못하다는…….”

“어쨌거나 지금은 싸움을 할 때가 아니네. 그 녀석 말대로 아직 총장은 이 사실을 모르네.”

“그럼 정말 그 녀석이 총장에게 발설을 할 거라는 말입니까?”

“못 할 이유는 또 뭔가? 이번에 잘못 걸리면 나도 자네도 아웃이야.”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사직서 내! 자리가 비는 대로 바로 자네를 부름세.”

“선배님!”

“어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한참 후, 박 교수가 물었다.

“선배님. 진짜 불러주실 거지요?”

“당연하지. 내 나중에 반드시 불러주지. 걱정하지 말게.”

“그럼 제가 스스로 사직서를 내겠습니다.”

박 교수의 목소리가 꺼끌꺼끌했다.

그걸 듣는 진 교수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자네에게 희생을 강요하다니, 내가 할 말이 없구만.”

“제가 선배님께 충성한 것 알고 계시죠?”

“그럼 알고말고. 나도 자네 아끼는 것 알지?”

“알다 뿐이겠습니까?”

박 교수가 물을 들이켜며 눈을 번뜩거렸다.

‘내가 당신 비리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 안 부를 수 있겠어.’

진 교수도 머리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저놈이 나에 대해 아는 비리는 껍데기지. 어떻게 하면 비는 돈을 채우지? 저놈이 잘했으면 이런 고민할 이유가 없었는데. 젠장!’

문을 나서는 박 교수에게 진 교수가 말했다.

“박 교수, 조금만 참아. 내가 나중에, 나중에 다시 부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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