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81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11)
‘이건 구조대전이 아니라, 과제물 검사 같은 느낌인걸?’
정말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였다.
교수는 문제를 내고, 학생은 과제를 해온다.
그리고 교수는 학생의 멘탈이 가루가 될 때까지 박살 낸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배운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떤 것을 보강해야 하는지.
건축과의 흔한 수업 방식이다.
거만한 진 교수도 안절부절못하는 게 형을 기다리는 죄인 같았다.
그런 가운데 화살이 내게 향했다.
“성훈 군, 나와서 설명하게.”
한 교수의 깜짝 발언에 놀라 나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왜?
‘이게 마지막 숙제야’라며 수제자에게 신뢰를 담은 듯한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내가 보기엔 재미있어하는 모습이었다. 자랑스러운 작품을 남에게 소개하는 느낌?
다른 모든 이의 주목을 받았으니 나가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질 것이다.
노교수 앞에 서서 내 소개를 했다.
“ㅇㅇ대학의 2학년, 김성훈입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2학년?”
“네,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사제지간이군. 설명해 보게.”
건방진 학생의 교만을 반드시 꾸짖고 말겠다는 노교수의 의지가 보였다.
“앞서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는 몇 가지 미션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미션에 대해 노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상은 좋아. 어떤 정신머리 없는 인간이 돈 많이 드는 줄 알면서, 건물만 높이 올리겠나?”
현장에 익숙한 교수답게 그 말 또한 거칠었다.
그의 뒤에 있던 제자, 심사위원들이 쑥덕거렸다.
“우리 교수님. 나이 드시더니, 많이 부드러워지셨네. 예전에 쌍욕을 하시더니. 미친 또라이들이라고…….”
“어허. 이 사람들이! 조용히 안 해? 지금 내가 뭐하는 걸로 보이나?”
노교수는 완전히 수업 중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설전이 오갔다.
“보마다 PS공법으로 할 수도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나? 한 교수가 안 가르쳐 주던가?”
한 교수도 생각했던 어쩌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일 것이다.
PS란 Prestress. 부재에 미리 응력을 가하는 공법을 말한다. 그만큼 더 많은 하중을 견뎌낼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긴 부재에 하중이 가해질 경우 휨이 발생하며, 부재가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파괴된다.
이 경우, 하중의 반대방향으로 미리 와이어로 당겨주면 휨이 덜 발생하고, 파괴 범위에 도달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공법을 말한다.
“그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보에 스트레스가 과하게 전해지므로, 보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배제했습니다.”
보를 얇게 하기 위함인데, 보가 두꺼워져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얇은 보에 와이어를 걸어 봐야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이미 생각했던 방법이니, 그에 대한 답도 있게 마련 아닌가?
노교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무리 방청처리를 한 와이어라고 해도, 세월이 지나면 녹이 슬 것이다. 그때는 와이어를 어떤 방식으로 교체할 생각인가?”
“보마다 와이어를 연결시킬 구멍이 2개씩 뚫려 있습니다. 하나씩 사용해서 교체하면 됩니다.”
이 부분은 나중을 생각한 방법이었다. 이미 고려되어 있었다.
디자인과 실무적인 부분을 총망라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난 모두 대답할 수 있었다.
왜냐고?
직접 설계했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한 교수가 모두 지적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 교수는 좋은 스승이었다.
노교수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말은 잘하는군. 요즘 젊은이들은 말을 너무 잘해. 끄응!”
뒤에 있던 제자들이 재빨리 일어나, 그의 양옆에서 어깨를 잡으며 부축했다.
“됐어. 이놈들아. 놔! 나 쌩쌩해.”
심사위원들의 속닥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에구, 교수님. 또 완전 몰입하셨네. 지금이 수업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나 봐.”
“냅 둬라. 나 저번에 말렸다가 지팡이에 두드려 맞았잖아. 건방지게 끼어든다고. 50이 넘은 내가 말야.”
“하긴. 저러고 나서 끝나면 사과하시니 문제는 없잖아. 그런데 저러시는 모습 참 오랜만이네.”
“좋다. 야, 난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하하.”
“그나저나 저 친구들 보니까 그러실 만도 하네. 뭔가 꼬투리를 잡고 호통을 쳐야 끝을 내시지. 하하.”
“언제 끝내시려고, 또 일어서시는 거야. 나 오늘 약속 있다고.”
“포기해라. 저러면 일찍 끝나긴 글렀어. 흐흐.”
그들은 말리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노교수의 열정적인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어깨로 그들의 손을 떨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말은 번지르르한데, 그만큼 튼튼한지도 한번 볼까?”
노교수에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얼마든지 테스트하셔도 됩니다.”
“이 보의 중단부분은 이렇게 와이어로 보강을 했으니, 당연히 튼튼하겠지.”
보의 중단은 뚱땡이 메기, 박 교수가 눌렀던 부분이다.
그러나 노교수는 기둥과 와이어 사이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의심스럽단 말이야. 보의 중앙을 인장력 위주로 설계했다면 아무래도 약하겠지?”
나에게 웃음을 보였다.
‘설마 여기를 만질 거라 생각했어? 요건 몰랐지. 요놈아!’
노교수의 장난기를 노안의 눈가에 어린 주름이 말하고 있었다.
그 행동에서 나에게 약간의 흔들림이라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노교수의 손이 보를 눌렀다.
“어! 어?”
교수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눈가의 주름이 이마로 올라가 버렸다.
“왜 꿈쩍도 안 하는 거지? 휘어지지 않을 리가 없는데?”
다시 한 번 눌러보던 노교수가 호통을 쳤다.
“여기에 무슨 장난을 친 거냐?”
‘장난이라뇨. 당연히 준비를 해야 하는 거지요.’
“한석아.”
“네, 선배님!”
“설명해 드려!”
“네, 선배님!”
한석에게 바통 터치를 했다.
노교수의 놀라움은 와플 슬래브로 인한 일이었고, 그것을 담당한 십장은 한석이었으니까.
그의 옆으로 간 한석이 아까 주워 넣었던 반토막 와플 슬래브를 빼내어 노교수의 손에 올려놓았다.
한석이 인사를 꾸벅하며 말했다.
“아까 주워놓았던 거지 말임다. 보여 드리려고 일부러 잘라 놓았던 검다. 교수님!”
노교수는 감점 1점을 ‘0’으로 되돌려야 할 것이다. 의도된 실수는 실수가 아니니까.
건축에 무슨 말이 필요한가? 결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슬래브 단면의 배근은 ‘U’자형이 아닌, ‘W’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중앙 부분에 와이어가 들어가면서 인장력과 압축력의 위치가 서로 바뀌는 것을 고려한 설계였다.
“요놈들!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게냐?”
비장의 무기가 헛방으로 돌아간 듯 허탈한 모습이었다.
노교수가 내게 물었다.
“그럼 나중에 땜빵으로 와이어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정말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흠.”
잘려진 슬래브를 보며 노교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똑같이 안 하면 재미가 없다……라.”
말하면서도 눈으로 철근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귀신같은 양반이네. 가는 철사를 굵은 철사로 바꾸길 잘했군. 후!’
노교수가 나를 보며 웃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며.
나도 웃어주었다.
‘당신 같은 양반을 만날까 봐 철사를 바꿨다’고.
진짜 전문가에게는 꼼수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
노교수는 번쩍거리며 광택을 뿜는 철골들을 군데군데 만지기도 하고 들여다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자네가 직접 만든 건가?”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저희 모두가 만들었습니다만, 주된 제작자는 따로 있습니다.”
대답과 함께 민수를 소개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또 한 번 노교수가 입맛을 다셨다.
민수에게는 실질적인 조립 부분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다소 고난이도의 질문도 있었지만, 직접 만들었는데 막힐 것이 뭐가 있는가?
모형을 만들 때, 우리의 포지션은 무조건 민수가 소장이었다.
민수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차분히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나갔다.
간혹 노교수의 호통이 들렸다.
“나 늙어서 잘 안 들려! 죽도 안 먹었어? 그래 가지고 현장 지휘하겠어?”
교수의 감상평이 끝났다.
“아직은 멀었지만…… 크흠.”
못내 칭찬하기가 쑥스러웠던지, 노교수는 끝내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잘 만들었어. 특히 철골 구조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높은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지팡이로 전시대를 통통 치며 말했다.
“고로 이 작품에 대한 본교수의 학점은…….”
심사위원들이 뛰쳐나왔다.
“또, 또, 시작이시다. 야! 교수님 말려!”
잠시 작품평에 몰입했던 교수가 달려오는 제자들을 보았다.
“뭐냐? 이놈들아!”
“교수님! 지금 수업 시간이 아닙니다. 고정하세요.”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쩝. 고놈들. 잘 만들었네.”
다시 한 번 우리 구조물을 쳐다보고는 자리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는 한 교수를 향해 엄지를 척 올리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A+’
한 교수가 열정적인 노교수에게 허리 숙여 존경을 표했다.
‘제가 할 품평을 대신해 주셨군요. 저보다 더 디테일하게.’
노교수가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물었다.
“내가 더 봐야 할 것이 남아 있나?”
“없습니다. 교수님.”
“그럼 나는 일어나겠네. 끙!”
“교수님, 지팡이 여기 있습니다.”
경남, 부산지역의 난다 긴다 하는 건축가들이 늙은 교수에게 허리를 숙였다.
노교수가 말했다.
“저거!”
“네, 교수님.”
“껍데기 씌우지 말고, 저기다 놔둬.”
“네?”
그가 가르친 곳은 전시회장의 한 가운데 휑하니 빈 공간이었다.
“오는 사람마다 보고 배우라고 해. 구조의 최적화라는 게 뭔지! 껍데기 절대 씌우지 마. 알겠나?”
“네, 교수님. 살펴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나가는 길에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성훈이라고 했나? 나중에 대학원을 진학할 거라면 우리 학교로 와! 내가 철저하게 단련시켜 주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교수님.”
나에게서 눈을 떼고는 한 교수에게 말했다.
“한 교수라고 했나? 좋겠어. 뛰어난 제자들을 둬서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저놈은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도 다 쓸 만하니, 그야말로 소수정예로구만. 부러우이. 시간되면 우리 학교로 놀러오게나.”
“감사합니다. 꼭 한 번 놀러가겠습니다.”
노교수가 일부 심사위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사라졌다.
노교수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놔라. 이놈들아. 내가 치매 들렸냐? 뭣이 어쩌고 어째!”
“교수님, 그런 말씀이 아니잖습니…… 앗.”
비명 지른 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야! 교수님 지팡이 빼앗아! 앗. 앗.”
***
설마설마 하면서도 의심이 가는 부분은 반드시 풀어야만 했다.
학교에서 준비한 차량?
고장으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었다.
박 교수를 충분히 의심할 만했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너진 단상은 그 의미가 다르다.
철로 된 구조물이 아니라 에펠탑처럼 나무로 된 구조물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 달을 투자한 우리의 결과물이 한순간에 날아갈 뻔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구조대전 주최 측을 찾아갔다.
“대전 현장의 CCTV가 있더군요. 비디오테이프 사본을 얻고 싶습니다.”
몇 차례 사정을 할 각오로 왔지만 의외로 협조적이었다.
심사위원장이 말했다.
“더 필요하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오.”
그의 명함을 건네 받았다.
***
“교수님, 찾으러 왔습니다.”
-그렇지? 그놈이라면 반드시 그럴 것 같았어. 잘 전달해 줬겠지!
“그럼요. 교수님 명이신데요.”
-이놈아. 너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명색이 경남 건축가 협회장이란 놈이. 쯧쯧.
“에이, 교수님도. 제가 나이가 50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잔소리 듣기 싫다고? 맞먹자는 거냐?
“아이고,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대로 안 하면 네놈부터 박살 날 줄 알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가 잘 안 들립니다. 교수님 끊습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이놈이…… 뚜.뚜.뚜.
심사위원장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넥타이 끈을 풀었다.
“휴. 김 비서. 물 한 잔만 줘. 목이 타 죽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