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80화 (80/427)

건축의 신 80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10)

참가 전시물들의 심사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입장하는 팀이었다.

다급히 안내표에 적힌 자리를 찾아 캐리어를 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반갑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다. 박 교수가 빈정거리며 물었다.

“한 교수, 뭐하느라 이렇게 늦은 거요? 차가 고장이라도 났던 거요? 안타까워서 어떡하나. 그 쓰레기 같은 작품 기껏 만들어서 가져왔는데 심사도 못 받겠으니.”

한 교수는 자리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박 교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딱 맞추십니까? 박 교수님. 손이라도 대신 겁니까?”

“어허이. 이 친구가 또 이렇게 생사람을 잡네. 증거 있어? 우리도 니들처럼 학교에서 빌려준 차를 타고 온 거야. 너희가 운이 나쁜 거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겨우 시간에 맞춰 들어왔으니.”

노골적인 비웃음에 한석이 발작을 일으키려 했다.

내가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싸움이 났을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이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우리에게 배당된 차로 장난을 쳤고, 그 유력한 용의자는 박 교수였다.

오는 내내 흥분을 참으며 왔는데, 지금 나타나서 또 내 속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쯧쯧. 그렇게 준비성이 부족하니, 이 모양이지. 성훈 군. 학교 망신 안 시키게 잘 준비했어?”

“네, 박 교수님께서 대자보에 쓰신 내용처럼은 안 될 테니, 염려하지 마시죠?”

“뭐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내가 썼다는 증거 있어?”

뻔한 사실로 어깃장을 부리니 한 교수도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됐고, 우리 자리가 어딘지나 가르쳐 주시오.”

“저기요. 잘 올리시오. 괜히 학교 망신시키지 말고.”

박 교수는 혀 차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교수님. 일단 먼저 옮기시죠. 시작시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머리 희끗한 노교수의 심사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캐리어를 밀고 가서 겨우 우리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기합에 맞춰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동시에 올렸다.

탁!

우리가 이마의 땀을 닦는 순간…… 전시탁자 한 쪽다리가 꺾어졌다. 1.8m에 달하는 강철 구조물이 넘어졌다.

콰당탕!

아크릴로 된 외부마감이 ‘쩍’ 하니 부서졌다.

넷이서 조심스럽게 들어야 할 정도였으니 무게가 상당했다.

내구성을 튼튼하게 만들긴 했지만, 위에서 넘어진 것이니 안쪽이 파손되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래도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약한 탁자를 놓아뒀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박 교수가 이런 짓까지 했을까?’

의심보다는 설마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박 교수가 비릿한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개새끼!’

***

부서지는 광경을 본 노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위원장. 저 팀은 뭔가?”

“마지막 팀인 모양인데, 급하게 하다가 작품이 엎어진 모양입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저리 준비가 부족해서야. 요즘은 자격 없는 친구들이 많아. 쯧쯧. 저쪽도 진 교수 팀인가?”

심사가 다 끝나고, 남은 것은 하나! 진 교수 학교의 팀이니, 응당 그리 생각할 만했다.

금이 쩍쩍 가 있는 성훈팀의 작품은 누가 보기에도 눈살을 찌푸릴 만했다.

“그게…….”

맞다고 하기는 부끄럽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진 교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한 교수가 앞으로 나섰다.

“이 작품은 제가 지도교수입니다. 한승원입니다.”

출품한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이번은 진짜 마지막이네. 휴. 이게 뭐냐! 학생작품 품평회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대뜸 당신이 뭔데 작품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냐고 혼쭐을 내었겠지만, 눈앞의 노교수는 그런 차원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한 교수에게 물었다.

“늦은 거야. 사정이 있겠지. 묻지 않겠네. 하지만 감점요인이라는 것은 알겠지?”

“네, 교수님. 늦은 저희 잘못이지요. 부서진 건 성급했던 저희 실수구요.”

노교수는 깨진 아크릴 조각을 조심하며, 지팡이로 구조물을 툭툭 찌르며 말했다.

“알면 됐네. 상업적 용도의 건물인가?”

“네, 오피스텔입니다.”

“내부에 구조가 있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누워 있어서야 내가 볼 수가 없겠구만. 과연 내가 볼 가치가 있겠나?”

“네.”

한 교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내부의 구조 모형도 이미 부서졌을 거고, 그 정도에 부서질 정도라면, 이미 구조적으로 불합격인데도?”

이미 노교수의 마음에서 성훈팀의 작품은 ‘F’로 결정난 것 같았다.

“봐 주신다면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의 자신작입니다.”

“흥. 젊은 친구의 자신작이라. 패기를 봐서 한번 봐주지. 오만이 아니길 빌겠네. 여기! 단상 하나 새로 가져와 봐.”

진행요원들이 단상을 가져와 구조물을 제 위치로 올려놓았다.

노교수의 눈이 빛났다.

진 교수가 한 교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보의 구조결함 해결했나?’

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보시죠?’라는 의미.

눈앞의 이 노교수는 일반적인 의미의 전문가가 아니다.

말 그대로 한국 철골 구조의 산 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한눈에 척 보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만 어설픈 점이 있어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방금 전, 주차장 건물에서도 차마 교수란 타이틀을 달고는 듣기 싫을 정도의 독설을 퍼부었었다.

정작 쓴 소리를 들어야 할 박 교수는 한 교수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그 집중포화를 자신이 다 받았다.

반면 실제 지도교수는 한 교수라 해도, 그 쓴 소리는 이번에도 자신을 향할 것이다.

진 교수의 어깨가 절로 움츠려 들었다.

그는 차마 성훈팀의 작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곤경에 빠진 진 교수를 위해 박 교수가 나섰다.

‘선배의 곤란함을 모른 체하면 안 되지. 이럴 때 도와드리면 선배님께서 얼마나 고마워하시겠어.’

“교수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송구하오나, 우리 한 교수의 건물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학교에서 출품한 작품의 잘못을 드러내다니 사람들의 시선이 박 교수에게 모였다.

노교수도 매서운 눈초리로 박 교수를 노려봤다.

“자넨 누군가?”

“네, 아까 보신 주차장건물을 설계한 팀의 지도교수입니다.”

“아. 그 튼튼한 구조물의 지도교수구만.”

“네, 그렇습니다. 하하.”

박 교수는 진 교수가 독설에 쥐구멍을 찾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 내용을 모르니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노교수의 눈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훗. 그래. 이 팀과 상관이 있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심사위원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네도 알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내가 모를 것 같아서 미리 조언하는 거라면 고맙네.”

“교, 교수님. 그런 말씀이 아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 걱정 말게.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말을 이었다.

“교내의 지저분한 권력다툼이라면 이곳이 아니라도 충분할 텐데.”

오랜 세월 교수로 생활하다 보면 구조에만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박 교수가 찍소리도 못 하고 물러났다.

노교수가 외부 아크릴을 씌우고 있는 진행요원들에게 말했다.

“거기! 껍데기는 벗겨 버려. 필요 없어. 어차피 구조만 보면 되는 거야! 안 그런가?”

노교수의 관심이 한 교수를 향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한석은 떨어진 와플 슬래브 두 조각을 잽싸게 주워서 원래 자리에 끼워 넣었다.

“쯧쯧. 제대로 안 만들었으니 슬래브가 떨어지지. 감점 1”

한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구조의 달인, 노교수의 품평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헛. 이것 보게나! 꽤나 화려해.”

노교수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중인들의 시선이 성훈팀의 구조물로 집중되었다.

“어떻게 구조물에 크롬 도금을 할 생각을 했나?”

백금처럼 빛나는 크롬이 화려하게 빛을 발산하며, 구조물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움츠려 있던 진 교수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 크롬?”

사람 키만큼이나 크고, 거대한 구조물이 방금 수면 위를 올라온 미녀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모든 참가인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야! 장난 아닌데!”

“자동차 휠에나 쓰이는 크롬을 이렇게 도금할 생각을 하다니.”

“히야. H 형강의 깎인 면이 칼처럼 날카로운데. 나도 나중에 써먹어 봐야겠어.”

“그렇게 대단한 소리를 내면서 넘어졌는데, 구겨지기는커녕 휘어진 데도 없는데? 나무가 아닌가 봐.”

“당연하지. 나무에 크롬 도금을 어떻게 해! 그럼 통짜 철이야? 미친 거 아냐? 저걸 어떻게 만들어.”

“그러니까. 그런 소리가 났지. 나무였으면 벌써 박살 났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노교수의 일갈이 이어졌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니, 구조의 결함을 못 보는 거야!”

그의 지팡이가 박 교수를 향했다.

“일단 시선을 사로잡은 건 인정하지.”

내키지 않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끙. 그리고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그렇다고 감점요인이 사라지는 건 아닐세!”

“그저 이 아름다운 구조물에 어울리는 치장을 한 것뿐입니다. 중요한 건 알맹이죠.”

“젊은 친구가 자신만만하군. 언제까지 그럴지 보겠어. 완전히 철로 만들었나?”

“철과 석고, 그 두 가지만 썼습니다.”

“철과 석고라. 석고는 콘크리트 대용일 테고, 와플 슬래브에 쓰인 거겠지.”

“그렇습니다.”

“실제와 동일하게 하겠다는 발상은 아주 좋아. 누구처럼 나무에 페인트칠 해놓고 철이라고 우기는 것보다는 백배 나아.”

진 교수와 박 교수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음속의 목소리는 아마 이것 하나였을 것이다.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강철로 모형을 만들 생각을 하냐고요. 돌았습니까. 교수님?’

강철에 칼을 대고 잘라낸다는 생각을 하느니, 어차피 모형인데 나무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나무가 아니라면 아크릴 등의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강철은 괜히 강철인가? 가공성 ‘0’에 가깝다.

“강철은 가공성이 떨어지고, 석고 또한 손이 많이 가는 재료인데, 왜 그렇게 만들 생각을 했나?”

“제 제자 중의 한 녀석이 그러더군요. 똑같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요.”

“재미없다고? 아니, 이게 재미있다고?”

“집 만드는 것보다 즐거운 놀이가 어디 있습니까?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집 만들기? 당연히 재밌지. 건축하려는 사람은 다 그런 거 아닌가? 재미도 없는 걸 어떻게 평생 하고 살겠나?”

노교수가 주변을 둘러보며, 반응을 보았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밥벌이로 건축을 택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하려면 즐겁거나 혹은 미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이어야 한다.

“그럼 이제, 저 친구가 말한 구조적 결함을 찾아보지.”

한 교수가 눈썹을 으쓱인다.

‘찾아보시죠’라는 도발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넘어졌음에도 구조 자체는 손상도 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자신감이리라.

노교수는 주차장 건물에서 했던 질문을 반대로 했다.

“왜 이렇게 보를 얇게 했나?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노교수의 매서운 눈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지도교수의 눈빛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는 것을 왜 했느냐는 질책이었다.

“절감을 위해서입니다.”

“절감?”

“건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에 의한 횡하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노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지적했던 부분이 아니던가?

“그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 그래서 보를 얇게 해서 층간을 낮추려 했다?”

“그렇습니다.”

“의도는 좋지만 너무 위험한 발상이지 않나?”

“해결책이 있다면 신선한 발상이지 않겠습니까?”

노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말에 전면으로 반박을 한다? 그만큼의 준비도 되었는지 볼까?’

“의도는 좋아. 그리고 보기도 좋아.”

한 교수가 씨익 웃었다.

“이렇게 의자에 앉아서 보니, 확실히 구조가 보이는군. 멋있고, 화려해.”

크롬의 구조물은 매끈한 몸체에서 생동감 있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려함에 취해서 그 기본이 흐트러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야.”

한 교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겉치장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속이 비어 있다면 빛 좋은 개살구지요.”

“이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설명해 보게.”

한 교수가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교수님, 문제를 푼 사람이 설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를 푼 사람?”

“저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냈습니다. 구조물이 높아지면 풍하중에 휩쓸린다. 층고를 줄여라. 보를 줄여라.”

구조교수가 설명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얘기를 들어보니 예일대를 우수하게 졸업했다던데.

‘그런데 다른 사람을 추천한다. 흥미롭군.’

“어느 학생에게 문제를 냈나? 불러 보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