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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77화 (77/427)

건축의 신 77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07)

‘깽판 치라고 진 교수한테 지령이라도 받은 거냐?’

살만 디룩디룩 찐 메기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나이를 마흔이나 처먹고도 고작 할 수 있는 게 이런 장난질이냐!’

보가 휘어지는 순간부터 내 가슴엔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민수는 벌게진 얼굴이 굳은 채 분노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 더 화가 났다.

내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감히 내 신성한 현장에서 깽판을 놔! 메기 넌 죽었어.’

그 순간이었다.

“당신 뭐야!”

한석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박 교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상을 잘 모르니, 겁도 없었다. 예전 내 성격 그대로라고 할까.

제일 어린 한석에게 당신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박 교수가 맨 정신일 리가 있나.

“너. 너. 이익. 싸가지 없는 새끼가.”

내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새끼는 미친 메기다. 상대를 모르고, 무작정 깔보는 코딱지만 한 연못의 미친 메기.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한 교수였다.

“성훈아. 네가 나서면 일이 커질 것 같구나. 내가 하마.”

나를 달래는 한 교수의 눈에서는 이미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누가 누굴 말리는 건지.

‘어째. 교수님이 나서면 더 커질 것 같은데요.’

하지만 결의에 굳은 한 교수를 말릴 수는 없었다.

될 대로 되라. 말리기엔 늦었다.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결국은 총장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건가? 그래도 우리가 손해 볼 건 또 뭔가? 없었다.

우리가 먼저 시작했나? 아니다.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왔다. 그것도 지극히 예상 가능한 추잡한 방법으로.

‘걸어온 승부 받아줘야지.’

대신! 이왕 손댄 것 후환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싸움을 걸어온 상대에게 어설픈 동정은 금물이다.

어차피 수확을 거둘 대상이 아니라면,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한 교수가 말했다.

“한석아. 교수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교, 교수님!”

혼이 난 한석이 한 교수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박 교수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지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한 교수가 그에게 다가갔다.

박 교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응당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킨 것이오?”

그 앞에 선 한 교수가 말했다.

“당신. 대체 뭐야?”

“뭐? 다, 당신?”

한 교수가 머리라도 숙일 줄 알았던 모양이지?

한 교수는 오히려 박 교수에게 따졌다.

“당신이 뭔데, 우리 애들 작품을 건드려?”

갑작스런 공격에 박 교수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게 지금 내가 누군지 알고?”

“이게? 지금 당신이 그런 말이 나와?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따지라고. 찌질하게 애들 괴롭히지 말고 말이야.”

한 교수의 말에 열이 받았던지, 그는 한 교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 밀었다. 마치 자기 조교에게 늘 그래 왔듯이.

‘너 따위가 감히 나와 말을 섞으려 하느냐’ 하는 느낌이었다.

“뭐? 찌질하게? 내가 너 선배야! 말조심 안 해?”

말로 안 되면 배경인가?

박 교수는 이제 나이와 경력, 직장 선배라는 연으로 한 교수를 누르려 했던 것 같다.

‘이 양반아. 말을 해도 어떻게. 한국에서 한 교수를 학연, 지연으로 누를 사람 아무도 없어.’

“선배? 말 잘했다. 당신 예일대 나왔어? 필립스 익스터 아카데미 졸업했어? 당신이 왜 내 선배야? 그리고 선배면 선배답게 행동을 해? 당신네 교수는 그렇게 가르쳤나?”

뱉어놓은 말에 본전도 못 찾은 박 교수가 버벅거렸다.

“어…… 그…….”

“대접을 받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라고. 이런 유치한 짓거리 하지 말고.”

“아오. 씨.”

입이 있으나 말도 못 하고, 박 교수는 혼자서 씩씩대고 있었다.

“왜 화나? 한판하자고? 할 거면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붙자고.”

한 교수는 양복 조끼를 벗어 던졌다.

정말 한판 붙자는 심산으로 보였다.

박 교수는 여기서 싸워봤자 얻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싸우러 온 심산은 아니었는지, 한 발 물러서며 박 교수가 투덜거렸다.

“쳇. 그깟 저런 쓰레기를 가지고.”

“이 양반이? 지금 당장 나도 당신네 사무실로 가볼까? 엉?”

‘싸움에 졌으면 곱게 물러날 것이지, 저게 무슨 추태람.’

그의 작은 투덜거림 한마디에 결국 한 교수 뚜껑이 날아가 버렸다.

곱상한 얼굴에 지랄 맞은 다혈질. 한승원의 본래 모습이다.

“가서 뭐 어쩌려고!”

“가서 봐야지. 얼마나 예술이기에 우리 애들 작품을 쓰레기라고 부르는지! 내가 보기에 우리 애들 작품보다 못한 쓰레기라면…….”

“쓰레기? 참 나. 그럼 어쩔 건데.”

박 교수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배짱을 부렸다.

한 교수가 비릿하게 웃었다.

“몽땅 밟아서 가루로 만들어주지.”

“이 인간이 진짜. 말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엉!”

애나 어른이나 싸움은 다 유치하다. 교수라고 다를 것인가? 이미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는데.

한 교수가 문으로 향했다.

이미 그의 목소리는 싸늘히 식어 있었다.

“걱정 마. 박 교수. 난 말로만 안 하니까.”

우리 건 금속이라 휘어지고 말았지만, 박 교수네는 나무니까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제 손가락 아파봐야 남의 팔도 아픈 줄 아는 법이다.

‘땔감으로나 써라. 겨울 동안 춥지는 않겠네.’

“어허. 이 사람이! 나 구조 박 교수야.”

교수가 계급이냐? 가르치라고 교단에 세워놨더니, 엉뚱한 짓거리나 하면서.

차라리 구조에 대해서 싸움을 걸어왔다면 한 교수가 이렇게 화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한 교수도.

실력으로 한판하자는데, 환영할 일이 아닌가.

‘교내에서 힘 있는 교수라는 말이 한 교수한테 잘도 통하겠다. 등신아.’

“그런데 뭐 어쩌라고? 구조는 뭐 특별나? 저기 계신 도시계획, 환경계획 교수님들은 눈에도 안 보이지도 않지? 구조만 있으면 건물이 완성돼? 구조가 건축의 전부야? 당신은 뼈다귀만 가지고 서 있을 수 있어?”

건축은 두말이 필요 없는 종합학문이니, 반박할 것도 없었다.

한 교수의 말마따나 교수들의 따가운 시선이 박 교수에게 쏟아졌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이거 왜 이래.”

“그래, 좋다. 난 구조 교수 아냐? 나 구조 한 교수다. 비키시지.”

고성이 오가는 것을 민수가 멈추게 했다.

“박 교수님, 사과하시죠.”

“내가 뭘 사과해? 뭘 잘못했는데?”

“제가 봤습니다. 일부러 힘줘서 누르시는 거.”

“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저런 쓰레기 같은 걸 만들어놓고는 누굴 모함해.”

“사과하십시오.”

“지금 당신네들 명예훼손하고 있는 거 알아? 고소당하고 싶어?”

“고소하시든 마시든 맘대로 하시고, 사과 하십시오.”

박 교수가 어이없어하면서 민수를 비웃었다.

“하이고. 사과해라면 해야 되냐? 네가 그렇게 대단하냐? 사과 안 할 거거든.”

비열하게 웃으며 민수를 도발하고 있었다.

민수가 박 교수를 노려보았다. 분노한 민수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왜? 흥. 치시게? 쳐라. 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주지. 모 대학 모 교수 책임하의 학생! 교수를 치다. 크하하.”

‘초등학생보다 못한 정신연령을 가진 저런 인간이 교수랍시고, 학교 교단에 서다니.’

실력 이전에 인성의 문제가 아니던가? 교수들끼리 저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나이 마흔 넘은 사람들도 동창회만 가면 어린아이처럼 옛날 언어를 구사하지 않던가!

그와 한 교수의 싸움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민수는 그런 급이 아니지 않은가?

아무래도 사고를 칠 것 같았던지, 한 교수가 민수를 달랬다.

“민수야.”

박 교수는 민수를 일부러 도발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서 현재의 불리함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그의 꼼수가 느껴졌다.

“쳐! 줄줄이 엮어서 콩밥을…….”

정체불명의 액체가 약 올리고 있는 박 교수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에퉤퉤. 이게 뭐야?”

별안간의 봉변에 놀란 박 교수는 액체의 출처를 알고자 했다.

끈적끈적 흘러내리는 액체를 손으로 닦아내 털었다.

“니미. 재수가 없으려니, 퉤퉤.”

안경을 벗어 대충 닦고는 씩씩거리며 범인을 찾았다.

누군지 걸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민수였다.

민수가 굳은 얼굴로 분노를 참으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하루 종일 작업을 했었던 그의 손에는 재봉틀용 기름 튜브가 들려 있었다.

나오는 본드 량을 조절하기 위해서, 짜면 짜는 대로 나오는…….

보통은 주사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민수는 그것이 더 편하다고 했다. 미세한 양 조절이 더 편하다고.

민수처럼 손의 감각이 민감하지 않으면 그 나오는 양을 조절하기 어렵고,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었다.

한석도 자기도 해보겠다고 나대다가 쭉 하고 쏘아져 나오는 바람에 기겁을 했던 그것이었다.

에폭시본드.

그건 본드라고 말하기가 참 두려운 녀석이다.

흔히 아는 돼지본드 내지는 순간접착제와는 다른 면모를 가진 괴물본드다.

종이, 나무, 돌, 쇳덩어리까지 녀석과 닿으면 떡 붙어버린다. 제거하기 어렵기에 세밀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본드와 경화제를 섞어서 사용하는데. 민수가 들고 있는 것은 급속 경화용 본드였다.

한 교수를 비롯한 우리 얼굴이 새파래졌다.

“민수야!”

박 교수는 아직 그게 뭔지 모르고 있었다.

“퉤! 너 이 자식. 잘 걸렸다. 아주 작살을 내주지.”

얼굴에 흘러내리는 걸 대충 닦고는 팔뚝을 걷어 부치고 있었다.

‘젊은 애를 상대로 드잡이 질이라도 하려고. 아서라. 이 양반아. 네 목숨 줄이 코앞이다.’

침착한 목소리로 박 교수를 불렀다.

내 얼굴에 묻은 것도 아닌데, 내가 급할 게 뭐냐. 알려주는 것만도 난 내 할 일 하는 거다.

“박 교수님.”

“왜 이 자식아!”

‘확. 그냥 내버려 둬?’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한 교수가 마지못해 말했다.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박 교수, 그거 본드예요.”

“본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본드고 나발이고, 내 오늘 니들 몽땅 감방에 처넣는다.”

“에폭시예요. 금방 굳는 거.”

“뭐? 뭐! 에폭시?”

이번에는 박 교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바로 물로 닦아내지 않으면 곤란해 지실 수도 있습니다.”

한 교수는 얼른 꺼지라는 의도로 말을 했다.

거기에 내가 친절하게 말을 보탰다.

“네, 잘못되면 실명하실 수도 있습니다.”

박 교수가 발악하듯이 외쳤다.

“물! 물!”

화장실 가서 씻으라고, 여기서 물을 왜 찾아?

“선배님!”

한석이 교수실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박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슬래브 모형 만들려고 석고 물 개놓은 거 있는데, 그거라도 쓰실래요?”

“일단 가져와. 물. 물!”

체통은 어디 멀리 던져 버렸는지, 박 교수가 방방 뛰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교수들의 눈에 경멸이 어렸다.

“한석아.”

“네, 가져갑니다.”

녀석도 참!

석고가 고여 있으니, 물만 좀 퍼오면 될 텐데, 녀석은 다라를 통째로 들고 오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초속 0.1m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물 다라를 기다릴 수 없었던지, 한석이 있는 곳으로 박 교수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교수님. 조심하세요. 바닥이 미끄러워요.”

박 교수를 염려하는 척, 그의 옆을 달려갔다.

그리고…… 넘어졌다. 부드럽게 슬라이딩!

내 발에 부딪친 박 교수의 걸음이 사정없이 꼬였다.

박 교수의 거구가 잠시 잠깐 허공에 떠 있었다.

한석은 날아오는 그의 얼굴을 향해 다라를 발로 툭 밀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물을 만나고 싶은 박 교수를 위한 배려였으리라 짐작한다.

박 교수의 얼굴이 석고 개어놓은 물에 정통으로 처박혔다.

철퍼덕. 꽈당탕!

박 교수가 엎어진 탓에, 잘 개어놓은 석고와 물이 섞이면서 하얀 진흙물이 튀었다.

나는 사방으로 비산하는 흙탕물을 피하며, 박 교수에게 아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아이고. 이런. 교수님. 미안해서 어쩝니까? 발이 꼬여 버렸네요.”

절대로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다. 크흠!

사람 살다 보면 발이 꼬이기도 하고, 앞으로 자빠지기도 한다. 박 교수처럼.

“어이쿠! 흙탕물 다 튀겠네.”

한석이 총알처럼 물 튀기는 범위 밖으로 달아났다.

땅바닥과 충돌한 무릎과 팔꿈치가 아플 만도 하건만, 실명될 위기에 처한 박 교수에게 그깟 것이 뭔 상관이랴.

당장 본드를 닦아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에잇. 푸. 젠장. 푸.”

욕설과 호흡을 동시에 뱉으며 얼굴을 씻어 내렸다.

씻어 내릴수록 얼굴은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그 꼴이 가관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석고 범벅이었다.

듬성듬성한 머리에서는 허연 석고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입안까지도 그 물로 씻어냈는지 입안의 혀마저도 하얀 모습이었다.

‘살고는 싶었나 보지. 쯧쯧.’

뚝뚝 흘러내리는 석고물 위로 벌써 석고가 굳어간다.

물에 빠진 시궁쥐 같은 모습을 하고는 우리를 쳐다봤다.

화를 내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화를 내지 못했다.

우리 전부!

불쌍한 거렁뱅이를 대하듯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거든!

어느 교수 한 분이 참다못해,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쯧쯧. 꼬락서니하고는.”

“그러게. 교수가 체통도 없이.”

“저것도 인간이라고, 살려고 발악하는 꼴을 찍어 뒀어야 하는데.”

“같은 교수란 게 부끄럽소. 쯧쯧.”

그는 말없이 문을 향해 걸었다.

철벅. 철벅.

하얀 발자국을 남기며 문에 도착했다.

뒤돌아서며 고함쳤다.

“절대로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어. 두고 봐. 에잇. 씨발.”

쾅.

문을 부서져라 닫고는 사라졌다.

우리를 싸잡아 시종일관 쓰레기 취급하던 박 교수는, 물에 젖은 거지꼴을 하고 물러났다.

“한석아.”

“네, 선배님.”

“저거 버려라. 더럽다.”

“네, 선배님. 재수도 없지 말임다.”

말없이 서 있는 민수에게 다가갔다.

“민수야. 괜찮냐?”

“네, 형. 속이 시원해졌어요. 더 잘될 것 같아요. 하하.”

“그럼 됐고.”

민수가 엄지를 척 들었다.

“형! 슬라이딩. 죽여줬어요.”

“에이. 발이 꼬인 거라니까.”

어느새 한석이 다가와 대꾸했다.

“그러게 말임다. 크. 그 예술적인 발꼬임!”

“한석아, 컨트롤이 정확하던데. 일품 다라 밀기였다.”

“크크. 박 교수님이 그렇게 급히 물을 찾으시는데,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슴까!”

녀석들. 어수룩해 보여도 볼 건 다 본다.

한 교수가 내 등짝을 툭 쳤다.

“나도 봤어. 녀석아. 나한테는 그러지 마라.”

“에이, 발이 꼬인…….”

“훗. 알았어. 오늘은 치우기만 하고, 그만들 들어가거라. 이걸로 밥이나 먹고.”

한 교수가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교수님은요?”

“응. 저기 교수님들이 나한테 할 말이 좀 있다네.”

돌아서는데, 한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 인간 고소한다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한 교수에게 미소를 보이며 한석에게 말했다.

“잘 찍었냐?”

“걱정 마십쇼. 제가 확인까지 했슴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가져와.”

“네, 선배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나는 민수가 작업할 때, 항상 동영상을 만들어 둔다는 것을!

준비된 게 있었기에, 한 교수의 싸움을 말리지 않았었다.

우리에게 불리한 영상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흥! 영상 편집하는 거야. 껌이지.’

승부에는 정정당당함이 마땅한 일이지만, 삭초제근(削草除根)에 무슨 정정당당인가?

한석이 가져온 영상에는 박 교수가 일부러 힘을 주어서 누르는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팔을 일직선으로 편 채,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발끝이 들린 것으로 보아, 부수고자 마음먹고 누르는 것이 분명했다.

“야! 생각보다 튼튼한데. 잘 만들었다. 역시 민수!”

한 교수가 민수에게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그에게는 오히려 그 정도만 휜 게 더 대단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훗! 하긴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

“한 교수님, 뭐 하시오?”

아까의 교수들이 탁자에 둘러않아 한 교수를 부르고 있었다.

“네, 갑니다. 잘 들어가라. 내일 보자.”

“네.”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교수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교수, 이번에 구조대전을 빌미로 진 교수가 글쎄…….”

“네, 저도 그런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러게. 아무리 연구비 명목이라고 해도 그렇게 떼어먹는 건 너무 하잖소.”

“힘도 없고, 명분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어느 교수가 말했다. 지긋하게 나이든 목소리였다.

“그래서 말인데, 한 교수가 구심점이 되어주시게. 이대로 가면 안 돼. 학교가 썩어 문드러진다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아까는 잘도 하더구먼. 그놈 얼굴 질리는 게 얼마나 통쾌하던지. 크하하.”

다른 교수도 말을 이어받았다.

“그러게 말이요. 꼴같잖게 실력도 없는 인간이 간신배 짓을 하는 게 꼴 보기 싫었는데, 오랜만에 웃었소. 다 한 교수 덕분이네.”

***

민수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고소할까요? 박 교수?”

“염치가 있겠슴까? 고소하면 인간도 아니지 말임다.”

두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밤하늘을 보며 웃었다.

“제발 고소해다오. 박박 갈아서 메기 어묵을 만들어줄 테니까.”

“선배님! 오늘 메기 매운탕이나 먹는 게 어떻겠슴까?”

“민수. 너는?”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그래, 오늘은 메기나 씹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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