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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73화 (73/427)

건축의 신 73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03)

교수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한 교수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일단 해보기로 했습니다.”

“안 한다고 장담하면서 갔잖아.”

“그렇게 됐어요. 손해 볼 거 없잖아요.”

“낚였구나? 그러게 내가 맘 단단히 먹고 가라고 했잖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 교수가 웃었다.

“한 교수님은 왜 제가 할 거라 예상하셨어요?”

“그 양반이 말발도 좋지만, 불렀을 때는 계획이 있다는 거야. 준비가 치밀한 양반이거든.”

“확실히 말씀은 잘하시더라고요.”

총장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이야기를 듣던 한 교수가 말했다.

“내가 한국에 왜 온 줄 아냐?”

“왜 오시긴요. 전통 건축이 좋아서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 양반, 인재를 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하지 않아?”

“어떻게…….”

“그거 그 양반 레퍼토리야. 그렇게 사람을 추켜세우면서 사람이 움직이게 만들지.”

“그럼 교수님도?”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교수들과의 알력 이야기도 해줘야 하나 망설이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대신 한 교수가 좋아할 만한 소식을 전했다.

“대신 일등하면, 구조 실험실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정말이냐? 이거 의욕이 불타오르는데!”

불타오르라고 말한 거니 응당 그래야지.

‘이왕 낚시에 걸린 거 나중에 빠져 나가더라도 미끼는 다 따먹어야 할 거 아냐!’

“심포지엄은 나도 같이 가는 거지? 내가 박람회도 보내줬잖아.”

한 교수는 티켓까지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고생을 좀 했지요.’

“애들한테 물어보고요.”

기왕이면 내 새끼들 먼저 챙겨야지. 당신은 나중에 발표자로나 참석하라고!

한석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선배님, 들으셨슴까?”

“뭔데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그러냐?”

“소문이 이상하게 났슴다. 헉헉.”

한석에게 핀잔을 주었다.

“또 뭐 소문을 들었나 보죠.”

“문제가 보통이 아니란 말임다.”

“결론만 말해. 결론만!”

“한 교수님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진 교수한테 도전한다고 말임다.”

“허허, 도전은 무슨?”

한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 넘겼다.

‘벌써부터 시작된 건가? 하지만 어제 일인데, 벌써 소문이 났어?’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한석아, 신경 쓰지 마.”

이미 신경도 안 쓰는 한 교수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성훈아, 만들 건 정했냐?”

“아직요. 일단 부지 선정부터 해야죠.”

“흠. 반대로 생각하면 어떠냐?”

“반대라뇨. 무슨 말인지.”

“부지라는 것에 얽매이는 순간, 그 부지에 최적화된 모델을 찾게 되어 있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뭘 만들지를 생각하고, 부지를 검색해 봐. 파격적으로 말이야.”

한 교수는 파격을 말했다.

그러나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어딘지를 알아야 주변 환경에 맞춰서 건물을 지을 것이 아닌가?

한 교수는 역발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잘 생각해 봐. 5층 이하의 건물만 지어진 곳에서는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서 건물 자체에서 한계가 생기게 되어 있거든.”

“당연한 말이죠.”

“5층짜리 건물에서 무슨 구조미를 뽐내겠어.”

구조의 발전은 인간이 상상 가능한 높이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이루어졌다.

1층짜리 건물에서 활용되는 구조와 100층 이상에서 적용되는 구조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공학의 최첨단을 달리는 것이 바로 구조다.

당연히 저층건물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조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5층 건물에 철골구조나 강구조를 쓰면 그 자체로 낭비가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지 마라. 새로운 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거야.”

“그래도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 당연히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에서는 새로움을 줄 수 없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내 스스로 창조를 말했으면서도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려하고 있었다.

한 교수는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한 교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때, 이런 일들이 의미가 있다. 발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학생이다. 배우는 학생이다. 구조라는 어려운 학문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에펠탑을 만들기 이전에는 아무도 강철 구조물로만 건축물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에펠탑은 건축 구조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인간이 300 이상의 상공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랬기에 40년 동안 세계 최고(最高)의 건물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에펠탑은 파리의 흉물이라고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하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성훈아, ‘새롭다’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기존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라면 전부 ‘새롭다’에 속한다.”

한 교수는 팀의 리더인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안주하지 말라고. 쉬지 말라고.

“예를 들어 성냥개비로 지은 집은 10㎏짜리 아령을 버티지 못한다. 그렇지?”

당연한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을 버틸 수 있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알 리가 없잖은가? 누구도 모를 것이다.

묵묵부답.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불가능의 해결책은 새로움에서 나온다. 새로움이란 발견이다. 가능성의 발견.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것이지.”

한 교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그럼 설명을 했으니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제군들의 몫이겠지.”

“질문만 던져놓고 끝입니까?”

어안이 벙벙해서 한 교수를 바라보자, 얄밉게 웃었다.

“Your turn! 실력 발휘 한번 해봐!”

***

고민은 많았지만 구조라는 학문에 취약한 우리로서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하루 동안 우리 머리를 아프게 했던 주범이 교수실로 들어왔다.

“성훈아, 생각이 결과를 바꾸는 거야.”

“하지만 이래서 우승할 수 있을까요?”

“하다가 실패해도 괜찮아. 한국에서 왜 세계적인 건축가가 안 나오는지 알아?”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도 대답하기는 자존심 상했을 것이다. 사실이었으니까.

“도전을 안 해. 외국 건축가들의 구조를 베끼기 바쁘고, 어떻게 하면 잘 따라 할까를 고민해. 발전이 있을까?”

그가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실패해. 이런 시작이면 실패를 해도 얻는 것이 많다고. 크게 시작해. 구조실험실. 그까짓 거 무슨 상관이야. 네가 돈 벌어서 하나 기증해! 너 돈 많잖아.”

“에이, 교수님. 저 돈 없…….”

한석이 아는 척 설레발을 쳤다.

“어떻게 아셨슴까? 교수님?”

‘이 눈치 없는 놈이!’

“응?”

한 교수의 눈썹이 물결친다.

‘눈치챘을까? 아니. 아직은 눈치채지 못했겠지.’

잽싸게 한석의 말꼬리를 잘랐다.

“저번에 현상설계 말하는 겁니다. 그렇지?”

한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엉? 네. 그렇슴다.”

녀석이 귓속말로 물었다.

‘교수님 아직 모르심까?’

‘헛소리 나불거리면 너부터 작살난다.’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아니, 일부 사람들이 내가 거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돈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너. 그 돈 놔두고 어따 쓰려고 그래? 바보냐? 돈으로 해결해.’

귀찮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돈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그리고 지금 내 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 뭐!’

한 교수는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노력할 때,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아직 어떤 건물을 올릴지 생각을 못한 모양이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기준을 제시하겠다. 적어도 50층짜리 건물을 기준으로 해!”

“엑?”

기도 안 차서 그를 쳐다봤다.

아직 5층짜리 건물도 설계해 보지 못한 초짜에게 이 어인 망발이랴!

“여기서는 꼴랑 10층짜리 건물로 구조대전에 참가를 하더라. 그 난쟁이 건물에 무슨 구조를 적용하냐? 구조가 우스워 보여?”

그는 오히려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엠파이어스테이트’ 같은 고층을 말하고 싶었는데 참은 거다. 경남 지역을 기준으로 하는 거니까. 63빌딩보다 클 필요는 없겠지. 서울 기준이었다면 더 큰 걸 말했을 거다.”

이게 아메리칸 스케일인가? 그래도 너무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말은 좋다! 이걸 성공하고 나면 30층 건물은 우스워 보이겠지.’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어떡할 것인가?

“왜 그렇게 기준을 높게 잡으세요? 구조계산은 어떻게 다 해요?”

한 교수가 말했다.

“구조계산? 간단해. 산수야. 산수.”

‘당신한테는 쉽겠지. 당신한테만.’

“그렇게 간단하면 아무나 다 구조기술사 하겠죠?”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한 교수의 주장을 끊었다.

“네가 구조를 몰라서 하는 말이야.”

“네, 저 구조 몰라요.”

나는 당당했다. 이 나이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니까.

“모르면 입 다물고 들어.”

한 교수가 빙긋이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지?’라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보인 채.

‘이 양반아! 당연한 거거든. 구조 전문가인 당신과 나를 꼭 비교해야겠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구조는 간단하다.”

우리를 향한 한 교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워지는 것이 구조다. 개념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뭐든지 간단하다. 너희가 큰 계산을 해서 구조물을 올리면, 나머지는 전문가들이 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처음부터 겁먹고 들어가지 마라는 말이다. 알겠냐?”

‘지금은 우리가 하는 거라고요.’

“구조란 한마디로, 건축물에 걸리는 하중을 어떤 부재로 버틸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는 간이 칠판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했다.

“구조는 뼈대다. 하중을 지탱하는 뼈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뼈대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만 알면 된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세부사항이다. 하중과 그 하중이 가해지는 방향만 알고, 계산할 줄 알면 끝!”

칠판을 탁 치면서 강의를 끝냈다.

이걸로 끝?

“교수님, 더 하실 말씀은?”

“끝이라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해 주랴? 그럼 구조대전 끝날 때까지도 불가능할 텐데.”

그가 몇 개의 책장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 책장에 있는 책 전부! 구조 관련 서적이다. 참조하도록.”

수백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그중의 반 이상은 원서였고.

자신이 살짝 없었다. 그래도 뭔가 알아야 지시라도 하지 않겠는가?

교수에게 말했다.

“저는 괜찮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교수를 쳐다봤다.

‘애들 앞에서 쪽 주면 알아서 하쇼!’

아마 내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지 않았을까?

“흠흠. 그럼 그럴까? 이번 구조대전이 끝나면 부석사에 한 번 가 보고 싶군.”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자고 했었는데, 기숙사 공사에 묶이는 바람에 못 갔었다.

한 교수는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내고 있었다.

“그러시죠.”

“끝나고 바로!”

“콜.”

한 교수는 칠판을 슥슥 지우더니, 잠시 고민에 잠겼다.

“2학년들이지. 어느 정도 구조에 대해서는 알 테니, 넘어가도 되겠지?”

“네, 교수님.”

나와 민수가 동시에 대답했다.

민수도 공부는 꽤 하는 편이었다. 포병출신이라 계산도 정확했고.

한석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석을 바라보았다.

나와 민수의 눈치를 보더니 녀석이 말했다.

“저…… ‘F’임다.”

‘헉. 여기 폭탄이 있었네.’

한 교수가 의아하게 물었다.

“‘에펠탑 할 때는 구조계산 직접 했다면서?”

“그렇슴다. 그래도 에펠탑 만들면서 민수 선배한테 많이 배웠슴다. 트러스 구조는 자신있슴다.”

에펠탑은 ‘트러스 구조’만 알면 계산이 가능하다. 아니, 에펠탑 자체가 트러스의 집합체다.

“민수야. 얘 믿을 만하냐?”

“네, 트러스 구조 하나는 저보다 더 잘할 겁니다.”

“하나만?”

“네, 트러스 하나만!”

“끙.”

한석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처음부터 설명해 주십시오.”

“구조계산은 두 가지만 알면 된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 교수를 주목했다.

“하중의 크기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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