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72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02)
여비서가 총장실로 안내했다.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리석으로 마감된 방이었다.
한쪽 벽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받아온 상패와 총장 자신이 받은 공로패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총장은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일어나더니 소파로 나를 앉으라고 했다.
“오. 오매불망 기다리던 성훈 군이군. 이리 앉게나.”
대학총장은 훤칠한 키의 인상 좋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처음 보는 것일 텐데도 나를 유쾌하게 맞이했다.
“감사합니다. 외부로 바쁜 일정이 있어서 찾아뵙는 것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괜찮아. 젊은 사람이 바빠야 나라의 장래가 밝은 것 아니겠나.”
총장이 비서가 가져온 차를 권하며 물었다.
“우리 대학은 공대로 시작을 했다네. 알고 있나?”
‘뜬금없이 왜 학교의 연혁을 읊는 것일까?’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1970년 공과대학으로 시작을 했다.
현재그룹 왕 회장이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설립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유명한 것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자동차공학과’와 ‘의과대’라네.”
취업이 제일 목표인 학생들에게는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자동차과는 바로 현재자동차로 취업을 할 것이고, 의과대는 전국 곳곳의 ‘야산 병원’에 취직이 가능했으니.
총장은 개탄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 나라 산업의 기초라고 하면 바로 건축이 아니겠나.”
“맞습니다, 총장님.”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차 없이는 살아도 집 없이는 못 사니까.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건축기술에 있어서는 후진국이었다.
일본은 몇 명이나 배출한 프리츠커 수상자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그 위상은 언론계의 ‘퓰리쳐상’과 버금간다.
반대로 말하면 건축 발전의 여지가 충분한 곳이 한국이었다.
“나는 공대 균형 발전의 시작을 건축과로부터 시작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네.”
“옳으신 생각입니다.”
총장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과 똑같았으니까.
“그러던 차에 자네들이 만든 에펠탑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네.”
“운이 좋았습니다.”
“운만은 아니더군. 민수라는 학생도 제법 손재주가 좋았어.”
“맞습니다. 민수 도움이 컸습니다.”
“그래, 그 학생 조부께서 대목장이라고 하시더군. 어쨌거나 건축과에서 그런 작품이 나온 것은 참 오랜만이야.”
총장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한 교수의 조언을 생각하고 있었다.
‘성훈아. 아마 구조대전에 대해서 말할 거야. 마음 단단히 먹고 가.’
학교의 일부만이 알고 있는 민수의 내력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 교수조차도 전통 건축에 관심이 없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네.’
대학총장이라는 자리는 인맥이나 명성만으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몇십 년의 전통을 가진 대학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적어도 배경이 든든하거나 아니면 권력 싸움에는 이골이 났거나 둘 중의 하나겠군.’
이런 생각을 하니 더 긴장이 되었다.
그는 십여 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 번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상식과 지식이 풍부했다.
부드럽게 나를 칭찬하면서도 아직 결론은 꺼내지도 않았다.
한 교수의 말이 맞는다면 분명히 구조대전에 대해서 말을 꺼낼 것이다.
‘뭐라고 해도 거절을 하겠어. 다음에도 기회는 있으니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총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열정 있는 젊은 인재를 볼 때마다 이 늙은이는 희열을 느낀다네.”
“…….”
“그래서 작년에 한 교수를 어렵게 어렵게 설득해서 한국으로 데려왔지.”
그런 맥락의 일환이라면 총장은 진작에 건축과에 관심을 두었다는 말이다.
‘진심인 건가?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 것일까?’
“현명하신 결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건축과에 관심이 있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동의할 수밖에.
‘한 교수가 없었다면 베를린 박람회를 갈 수도 없었겠지.’
“그런데 지금 그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네.”
총장의 말에는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존 교수들이 그와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를 바랐건만, 오히려 한 교수를 경원시한다더군. 알고 있었나?”
처음부터 견제를 받고 시작했으니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 덕분에 지금의 기숙사라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그건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건 총장님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한 교수는 누가 모략을 한다고 쉽게 넘어갈 인간도 아니고, 그만의 고집과 배짱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건축과 학과장은 물론이고, 한국 건축계에 이름을 날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학교 내의 세력 다툼에 끼어들지 않는 이유는 관심도 없고,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한 교수는 제가 잘 압니다. 경원시당한다고 주눅들 사람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잘 화합할 겁니다.”
총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총장님의 안목을 믿으십시오.”
‘정 안 되면 좀 도와주지. 지금 저는 쉬고 싶습니다. 총장님.’
“두 사제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더니, 그 스승에 그 제자구만.”
총장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리타분한 교수들의 밥그릇 싸움에 몸을 들이밀 정도로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허허. 한 교수의 명성과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네에게 구조대전에 참가해 달라고 말하려 했는데 말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한 교수를 직접 데리고 온 사람이 그의 성향을 모른다고?’
한 교수의 고집과 뚝심을 아는데, 어설프게 덤볐다가는 꼼짝도 못 하고 당한다.
그는 한국 사람과 달랐다. 나이와 인맥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구조대전에 참가한다고, 떡하니 모델만 만들면 끝인가?
에펠탑을 만드는 것도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렸는데, 그마나 간단했기에 망정이지!
더 복잡한 건물의 설계와 구조계산까지 하려면 한 달은 거기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절대로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총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구조세미나 조교 정명호 선배가 나간다고 했으니, 잘할 겁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자네도 함께했으면 좋은 경쟁 상대가 되었을 텐데.”
“어쩔 수 없죠. 선후배 간에 괜한 자존심 싸움이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선후배 간 싸움보다는 교수들 간의 싸움에 끼어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정명호 조교의 뒤에는 건축구조 세미나의 교수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일인자인 ‘학과장’도 한 교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인자 ‘진 교수’도 한 교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진 교수는 건축구조 세미나의 수장이었다.
대놓고 한 교수를 경원시하지 않았지만, 예일에서 구조를 전공한 한 교수가 구조대전에 관련된다면, 교수들의 자존심 싸움이 될 우려가 많았다.
‘분명히 과열 경쟁이 될 거야. 총장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총장의 격려에 ‘네!’ 하고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에펠탑 건도 있고, 자네에게 주려고 준비한 게 있었는데, 아쉬워.”
‘안 할 겁니다. 총장님! 주려고 했으면 진작에 내밀었겠지.’
사실은 도산소장에게서도 시간을 좀 내달라는 요청이 와 있는 상황이었다.
도산소장의 현상설계는 건당 1,500만 원이었다. 그 돈이면 한 학기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준비라는 말에 궁금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실은 자네가 입상을 하면 놀래켜 주려고 가지고 있었다네.”
입상? 무슨 입상? 참가하지도 않을 건데!
인터폰을 누르고 준비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자네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고 싶었다네.”
그가 받은 것은 영어로 된 서류봉투이었다.
총장이 내용물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다.
“연말에 사우디에서 열리는 ‘국제 구조 심포지엄’ 입장권 몇 개를 어렵게 구했다네.”
“‘국제 구조 심포지엄’요?”
“건축계에서는 꽤나 명성 있다고 하더군.”
매년 할 때마다 이슈가 되고, 건축 구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학술회의였다.
제품을 홍보하는 박람회와는 그 성격 자체가 다르기에 입장권이 없으면 참석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매체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아서 모를 걸세.”
신문이나 매체에서는 그 내용을 잘 다루지 않는다. 시청률의 등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건축에 관심 없는 나라에서는 그것이 개최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걸!’
총장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카드를 내밀었다.
‘정말 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내밀지 않았을까? 무슨 꿍꿍이지?’
“자네들 주려고 구했는데, 티켓에 조건이 있지 뭔가.”
“네?”
“국내 대전 어디라도 좋으니, 입상을 해야 한다네.”
납득은 가는 설명이었다. 또한 눈에 보일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명성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무 자격도 없는 자가 참석이 가능하겠나? 그래서 참가해서 입상하기를 바랐던 것이지. 조건이 안 되면 줘도 소용이 없다네. 아쉬워.”
총장의 말에 구조대전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 결심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기회가 왔는데 잡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다.
총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젊으니 다음 기회도 있겠지. 하지만 미루지 말게. 내일은 더 바쁠 수도 있어.”
입이 타서 차를 한 잔 들이켰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회는 왔는데 조건이 있었다.
“성훈 군. 관심이 있나?”
여기서 바로 결정할 수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아직 대학 생활은 2년이나 남아 있었다.
만의 하나 입상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없을 것이다.
“관심은 있습니다만 아직 저는 그럴 역량이 안 됩니다.”
탐나는 것은 탐나는 것. 역량이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한 교수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도움은 될 것이다. 그는 구조 쪽에서는 전문가이니.
“한 교수는 논문 때문에 바쁩니다. 시간이 안 될 겁니다.”
“아쉽군.”
“만약 제가 입상을 못 하게 되면 그 티켓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른 주인을 찾아야겠지.”
총장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 봐라. 뭔가 낚이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총장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없다.
고작 티켓 몇 장으로 학교의 명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는 만족일 것이다.
경남구조대전이라고 해도, 거기서 우리 대학이 대상을 탔다고 하면 그것은 그의 공로가 될 터이니.
총장에게 물었다.
“한 교수의 입지를 세워 주시려고 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그러네.”
문득 아까 교수실에서 나올 때 한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정 해야 된다면, 구조 실험실이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 봐. 우리학교는 건축 구조에 대한 설비 투자가 너무 적어!’
한 교수는 내가 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정사실처럼 믿고 있었다.
한 교수를 끌어들이려면 그도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총장님, 만약 제가 우승을 하게 되면, 구조 실험실을 하나 만들어주십시오.”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호탕하게 웃으면 대답했다.
“그럼! 자금을 투자할 명분이 있다면야 뭘 못 할 텐가! 그 관리권을 자네 교수에게 맡기지.”
“그거라면 충분히 한 교수를 진심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참가하겠습니다.”
“역시 결단이 빠르구만. 그러니 에펠탑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총장에게 인사를 하며 일어섰다.
“그래, 대상 타오길 기대하겠네. 뭔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게나.”
총장의 목적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교수들 간의 싸움을 바라는 것인지 혹은 진정으로 학교의 명예를 원하는 것인지.
무엇이 되었든 해보기로 했다.
아직 쉬기는 이른 나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