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71화 (71/427)

건축의 신 71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01)

문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시기. 성훈 씨. 요걸 우짠당가? 곤란허게 생겼는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인테리어 공사는 벌써 며칠 전에 끝났다.

내가 바랐던 것은 AS가 필요 없는 완벽한 공사였지만, 내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었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하지만 큰일이 아니라면 소장님 선에서 처리될 텐데?’

소장의 용건은 AS가 아니었다.

-거시기, 술값이나 허라고 준 지분 말여. 나 통장으루다가 1억이 넘게 들어왔구먼. 이걸 우째쓰까잉. 받아두 될랑가 모르겄당께.

‘그깟 술값 해봐야 월매나 되겄어? 그랴도 나 현장잉께로 나가 책임져야겄제’ 하고는, 목재 물량을 원가에 가깝게 맞춰 주었다. 얼마나 동네 형에게 사정을 했을 것인가?

나는 그 보답으로 10% 지분을 넘겼었다.

그런데 그 10%가 그의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이번에는 신세 한 번 진다. 나중에 갚아주지’라고 생각했었다.

‘눈치는 빠른데, 마음은 생각보다 여리네.’

일은 잘하지만 큰 욕심은 부릴 줄 모르는, 참 소박한 사람이었다.

“저도 공방에서 연락 받았습니다. 현재건설에서 몰딩을 사갔다고 하더라고요.”

-나가 그 말을 듣기는 했는디, 믿을 수가 있어야제. 나 통장에 요로코롬 똥글뱅이가 많이 찍힌 적은 첨잉게 말이지라.

문 소장이라면 아깝지 않았다. 현장 진행 내내 인테리어에 모든 공정을 맞춰주었다.

덕분에 내 첫 번째 현장을 차질 없이 끝낼 수 있었다.

“소장님! 그냥 그걸로 술값이나 하세요. 그리고 목재값 제대로 쳐주시구요.”

-워매. 참말이당가? 고마워서 우째쓰까잉. 성훈 씨, 언제든지 놀러오쇼. 나가 살 텡게. 목재값은 걱정허덜 마쇼잉.

문 소장은 호들갑을 떨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전화를 끊고,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파랬다.

‘참. 김성훈. 많이 컸다. 1억을 술값 하라고 하다니.’

사실 믿어지지 않았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민수 아버님께 연락이 왔을 때는 기절할 뻔했다.

소장이 10% 1억이니, 나는 40% 4억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릎에 힘이 탁 풀렸었다.

1억을 벌기 위해서 9개월 동안 배관수련을 했었다.

물론 그 돈은 고스란히 주식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1억 5,000만 원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이미 결과를 알기에 조바심 나거나 불안해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이따금씩 확인할 때마다 불어나는 속도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나 이래도 되는 거야? 이렇게 손쉽게 벌어도 되는 거야?’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고, 남의 기회를 훔치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이 4억 또한 손도 대지 않고, 주식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 예상했었던 5,000억의 완성 시기는 40대가 될 때쯤이었다.

지금 1억 5천만 원에서 5억 5천만 원이 되었으니, 그 기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아마도 내년 이맘때면 50억이 넘어 있겠지.’

민수 아버님이 전화를 끊기 전에 웃으며 한 말이 생각났다.

“자네가 한 다른 디자인도 있냐고 문의를 하기에 보여줬다네. 그것도 곧 발주가 들어올 거야. 그럼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거야. 하하.”

다른 패턴에 대한 판권은 내가 100%였다.

‘돈은 신경 쓰지 말자.’

이게 내 결론이었다.

어차피 통장에 숫자로 찍히는 것이니, 얼마나 큰돈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물론 돈으로 편하게 일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돈으로 시작하면 건축이 아니라 돈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잠시만 정신을 놓아도 생돈이 줄줄 빠져나가는데, 구조가 어떻고 설계가 어쩌고 할 정신이 있을까?

내가 보기엔 불가능했다.

또한 정작 이 시기에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을 익히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젊기에 무슨 짓을 해도 나만 당당하면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

세상은 젊은이의 만용에 대해 관대하다.

용기가 지나쳐 사고를 치더라도 젊기에 용서받을 수 있다.

어려서 공부하지 않은 자는 나이 들어서 공부한다.

젊을 때 땀 흘리지 않은 자는 늙어서 땀 흘린다.

지금 익히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 익혀야 할 것이다. 나이 들어서, 돈이 없을 때.

나중에 내 사업을 한다고 해도, 알아야 시킨다.

지금 배워야 할 것은 돈의 힘, 유용성이 아니라 건축이었다.

***

“선배님! 감사함다.”

한석은 나를 보자마자 인사부터 꾸벅했다.

입이 귀에 걸려서는 좋아 죽으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훗. 귀여운 녀석.’

“1억?”

“네, 그렇슴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히죽거리던 한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왜 그러심까?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말임다.”

무슨 깊이 있는 설명이 필요하랴.

“너. 돈 있는 거 소문났는데, 다른 친구들이 십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면 안 빌려줄 거냐?”

“왜 빌려줌까? 맡겨놨슴까?”

한석의 반문은 당연한 말이었다.

“너보고 돈 좀 있다고 사람 깔보냐고 할 텐데? 재수 없다고 할 텐데?”

“뭔 상관임까? 제가 뭔 짓 했슴까? 그리고 내 돈이지, 지 돈임까?”

사람이란 참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 하고 비난한다.

남이 잘났으면 그 뛰어남을 배우거나 함께하지 못할망정 시기하고 질투한다. 비난하고 욕한다.

“돈 있다고 소문 안 내면? 빌려달라고 할까?”

“당연히 안 하겠지 말임다.”

“욕할까? 재수 없다고?”

“안 하겠지 말임다. 돈이 있다는 것도 모를 텐데 말임다. 아하!”

“그냥 너 혼자 조용히 맛있는 거 사 먹든지 해라. 엄마한테 맡기든지.”

“그건 안 되지 말임다. 이건 꽁꽁 숨겨두고, 장가갈 때 쓸 검다.”

“맘대로 해라.”

돈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욕을 먹는다.

그게 어찌 돈의 잘못이겠는가? 돈 있다고 자랑한 사람의 잘못이지.

“형. 저도 왔어요.”

“민수 왔냐?”

“아버지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그렇게 수익이 날 줄은 몰랐는데, 너무 높은 비율이라서 미안하다고 하시던데요.”

공방에서 20%, 민수가 20%, 둘을 합치면 민수네 집이 나와 같은 비율이었다. 그러나 역시 아깝지 않았다.

“아냐. 됐어. 다 같이 잘되면 좋은 거지.”

그저께 꿈 생각이 났다.

‘용하네. 피똥꿈.’

“너도 돈 있다는 말 하지 마라.”

“저 그런 말할 정도로 친한 애들 없어요.”

“맞슴다. 민수 선배는 학교 오면 한 마디도 안 함다.”

“엥? 지금 말하는 건 민수 아니고, 다른 사람이냐?”

“선배님 앞에서만 말함다.”

아직도 낯가림이 심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샤이가이(Shy-guy)냐?”

한 교수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민수의 말없는 얼굴이 붉어졌다.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말했다.

“없다고 주눅 들지 말고, 있어도 없는 척해. 그래야 살기 편해.”

“네, 그렇게 하겠슴다.”

“네, 형.”

한석이 불쑥 생각났다면서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선배님! 정명호 선배 ‘경남구조대전’에 나간다는 말씀 들으셨슴까?”

정명호는 우리 과를 졸업하고, 구조 세미나(전공반)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교였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전생의 나는 농땡이였기에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내가 이름을 들어본 정도였다면 꽤 능력이 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왜는 무슨 왜임까? 칫.”

“이게 왜 말을 하다가 말아?”

“한석이도 출전하고 싶은가 본대요?”

거기 출전해서 뭐하게? 학점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구조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아직 학생이었다.

다시 산다고 해서 없던 지식이 생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로 나는 전혀 출전할 마음이 없었다.

물론 ‘구조대전’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 건축 구조에 특화된 건축대전일 것이다.

얼마나 구조미를 잘 드러내느냐에 점수가 주어질 것이다.

한석의 입장에서는 에펠탑을 만들어 봤었으니, 기고만장했던 모양이다.

“녀석. 구조가 그렇게 간단해 보이냐? 공부나 더해.”

***

수업을 끝내고 교수실을 들렀다.

“성훈, 오랜만이야?”

현장을 나가지 않아서 볼 살이 통통해진 한 교수였다.

“현장 깔끔하게 마감되었다고 소문이 자자해.”

“뭐 현장 작업자들이 잘해줘서 그런 거죠.”

“어떤 건설업체에서는 벌써 이사진들 데리고 와서 견학도 하고 갔다더라.”

“누가 그러던데요? 어느 업체에서요?”

“문 소장이 그랬지. 그래서 어디냐고 물어 봤는데, 입도 뻥끗 안 하더라.”

“그래요? 혼자서 좋은 데로 스카우트되서 가는 거 아닐까요?”

“그런 꿍꿍인가?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양반?”

“문 소장님 잘되면 좋죠. 저도 그쪽으로 넣어달라고 하죠. 뭐.”

한 번 손을 맞춰봤으니 다음 현장에서는 더 편하게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한 교수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넣어줄까? 문 소장은 너 싫어할 걸?”

그럴 리가?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이득 본 게 얼만데.

그리고 아마 그 업체는 현재건설일 것이다. 몰딩을 사간 것만 봐도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문 소장에게 몰딩 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말라고 했으니, 한 교수에게도 숨긴 모양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문 소장이 나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일 없으면 저 들어갈게요.”

“뭐 그리 바쁘냐?”

“미술학원도 가고, 운동도 하러 가야죠. 요즘 바빠서 며칠 못 나갔더니 손이 근질거려요.”

“아직도 다니고 있었냐? 너도 참 대단하다.”

문 밖을 나서는데, 교수가 급히 나를 불렀다.

“참, 깜빡했네. 내일 낮에 시간 되지?”

“네, 무슨 일인데요?”

“그럼 총장님한테 한 번 들러라.”

엥? 학과장도 아니고 우리 대학 총장?

“총장님이 왜요? 저하고 아무 상관없잖아요.”

나는 그를 만날 일이 없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도 몰랐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네가 계속 현장 나가 있었으니 모르지. 그동안 너 많이 찾으셨어.”

그런 높은 사람이 나를 왜 찾아?

“무슨 일이라는데요?”

“에펠탑 만든 사람 얼굴 한번 보자는데, 그런 이유로 부를 정도로 한가한 분이 아니거든.”

한 교수는 자기 머리를 톡톡 치면서 추측하는 바를 말했다.

“에펠탑은 핑계고, 뭔가 할 말이 있어서일 거야.”

“에펠탑요?”

왜 여기서 갑자기 에펠탑이 튀어나오는 거지?

벌써 몇 주나 지난 일인데!

에펠탑이 도서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민수네 부모님도 다녀가셨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그곳에 갈 여유가 없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거기 전시하는 것도 총장님 아이디어였거든. 하여간 영업은 기가 막히게 하시는 양반이야.”

“알아듣게 말씀 좀 해주시죠.”

“그거 때문에 우리 과 지원자가 작년보다 3배나 늘었거든.”

한 교수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정원을 늘려야 하니 마니 하며 교수들이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거 만든 친구들 얼굴 좀 보겠다고, 한 번 오시기도 했었어.”

“하하. 저 완전 유명인사가 됐는데요.”

“그래, 너 유명인사니까 너무 비싼 티 내지 말고 만나봐. 만나서 손해 보진 않을 거야. 그리고…….”

한 교수가 말을 멈칫거렸다.

“아마도 이번 경남구조대전 이야기 할 거다.”

“저 거기 참가 안 할 건데요?”

“꽤나 배우는 게 많을 텐데, 해보지 그러냐?”

한 교수의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좀 쉬고 싶었다.

“구조대전이면 또 모형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걸 또 하라고요?”

솔직히 내게는 모형보다 3D가 훨씬 더 편했다.

지금 시대에서는 희소성도 있었고 말이다.

한 교수가 피식 웃었다.

“훗. 그런 에펠탑을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에펠탑 만들면서 이제 구조라면 알 만큼 안다고요. 교수님.”

“녀석. 에펠탑 하나 공부했다고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구조가 그렇게 간단한 학문인 줄 알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물론 한 교수의 전공이 원래 ‘구조(構造)’였으니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아까 한석에게 했던 말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한 교수에게 듣고 있었다.

‘내가 너무 건방져진 것인가?’

애초에 나를 설득할 생각은 없었던지 한 교수는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하여간 가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가. 절대 만만한 양반은 아닐 테니.”

“어쨌든 지금 당장은 좀 쉬어야겠어요. 너무 일만 했더니 정신이 없어요.”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학교 수업 말고는 내리 현장에서만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 논문은 끝나신 거예요?”

“이제 막바지 작업이다. 이번 달 내로 끝날 거야. 구조대전 하게 되면 짬 좀 내볼게.”

“안 한다니까 그러시네.”

“그건 다녀와서 말하도록 하고. 내일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