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70화
현장 수업(10)
“소장님.”
“어, 왜? 타일 박 부장 왔어?”
의자를 뒤로 눕힌 채 용건을 물었다.
어제는 창호회사의 정 부장과 밤새도록 달렸다.
그는 접대가 무엇인지 아는 사내였다. 소장의 양옆에 아리따운 아가씨 둘을 붙여주고, 그는 신나게 노래를 열창했다. 진정으로 갑을 대접할 줄 아는 영업맨이었다.
이 자리에 앉기까지 걸린 시간 20년!
그 성질 개 같다는 최 이사의 발바닥을 핥아가며 얻은 자리였다.
‘이런 자린줄 알았으면 진작 핥을걸!’
지난날의 어려움은 설탕 녹듯 녹아버린다는 생각들 정도로 달콤한 자리였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지!’
때마다 들어오는 상납금, 아니, 떡값!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말 그대로 용돈이었다.
마누라에게 주는 용돈!
일 년만 소장 자리에 있으면 서울 변두리에 아파트 한 채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공사가 어디 일 년만 하냐! 크크크.’
이대로 이 자리 잘 보존하고, 다음 현장에서 다시 소장 자리만 따내면 된다.
잠시 IMF라서 주춤했지만, 건설경기가 죽으면 다른 것도 죽기에 나라에서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불경기, 불경기 노래를 부르지만 그건 남의 얘기지.’
이제 공사가 끝나가니 다시 최 이사한테 비벼볼까?
어제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필름이 다 끊겼네.’
그래도 그 처자들은 예뻤지. 흐흐.
힐끗 쳐다보니 공사과장의 얼굴이 노랬다.
‘저 자식이 뭘 잘못 처먹었나? 왜 저래?’
“아, 왜?”
즉문즉답하지 않으면 짜증을 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장은 말을 머뭇거렸다.
“그게…….”
“왜! 어떤 새끼가 왔는데?”
과장 뒤로 안전모를 뒤집어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 새끼가 왔다. 씨벌놈아!”
꿈에 볼까 두려운 그 사람이었다.
소장이 누운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뒤로 자빠졌다.
콰당탕!
중역용의자가 옆으로 튕겨나가 나뒹굴었다.
“큭. 이, 이사님! 어쩐 일로…….”
현장의 왕, 소장의 말끝이 흔들렸다.
최 이사는 정장차림도 아니고, 작업복 차림이었다.
‘대체 뭔 바람이 불어서?’
최 이사의 말을 짧았다.
“나와!”
“네! 이사님.”
언제 술 취했었냐는 듯 갓 입대한 신병의 몸놀림으로 소장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소장실 밖에는 매일 보는 얼굴들이 굳은 채 책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휴. 다행이네. 빠진 놈은 없네.’
매일 아침 점호를 빠뜨리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20년째 이어오는 습관이었다.
밤새 술을 달리는 한이 있어도, 아침점호는 반드시 한다.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셔도, 5시 반이 되면 자동적으로 잠이 깨는 그였다. 알람은 그 자신이었다.
최 이사가 말했다.
“전원 기상!”
그의 말은 나지막했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자에 한 동작처럼 30명 전원이 일어났다.
“정 소장아.”
“네, 이사님!”
“현장 좋지?”
실실 웃으며 물어보는 최 이사의 말이었지만, 정 소장의 등에는 소름이 쫙 끼쳤다.
“저…….”
그의 말에 최 이사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신장 160㎝의 단신이었지만, 그 압박감이란……!
소장에게 다가오던 그가 안전모의 클립을 풀었다.
딸칵!
“저, 최 이사님!”
언제나 당당하던 소장의 입가에 비굴한 웃음이 걸렸다.
처음 겪는 살벌한 분위기에, 긴장한 신입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김 대리님! 소장님 왜 저러세요?”
“쉿. 아무 말도 하지 마!”
“네.”
그의 궁금증을 김 대리가 풀어주었다.
“최 이사님 별명이 미친개다. 거기까지만 알고 있어.”
“네?”
신참의 물음표가 끊어지기 바쁘게 최 이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떤 새끼야?”
으르릉거리며 현장을 둘러보았지만 그의 눈에 걸리는 것은 굳은 듯한 얼굴들뿐이었다.
“전부 대가리 박앗!”
비인간적인 명령에 응당 저항할 만도 하지 않은가?
신성한 현장이 1970년대 군대도 아니고 무슨!
그러나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
사사삭-
옷깃 접히는 소리만이 들렸고, 전원 원산폭격 자세가 되었다.
상황도 모른 채 콧소리를 흥얼거리면서 청소하러 들어오던 아주머니도 얼굴이 굳었다.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줌마도 그 자세를 취했다.
하늘 같은 소장도 ‘대가리 박아’를 하고 있었으니 오죽했으랴!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정 소장. 기상.”
사사삭-
“헉헉. 흡!”
탁! 탁! 탁!
클립을 제거한 안전모를 들고 최 이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목을 우두둑 돌리며 말했다.
“마이 컸네. 우리 막둥이.”
신장 190㎝의 소장이다. 그 체중만 130㎏이 넘는 거구였다.
고작 5살 차이이니, 언제 최 이사보다 작았던 적이 있었을까?
최 이사, 아니, 20년 전 최 대리를 처음 볼 때부터 컸었다.
소장이 비굴하게 말했다.
“이사님…….”
“아, 씨발. 존나 마이 컸네. 대꾸도 할 줄 알고.”
“…….”
“애새끼. 똥오줌 못 가릴 때부터 키워놨더니, 휴…….”
소장의 신장이 점점 작아졌다.
‘아, 씨발. 또 맞아야 돼? 명색이 소장인데?’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 자기 선에서 끝내는 게 최선이었다.
바로 위 선임 박 부장까지 가면, 따블로 얻어터진다. 눈앞의 최 이사는 박 부장의 사수였다.
박 부장에게 대갈통 까인 적이 5년 전이었다.
정 소장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빡!
“내가!”
“윽!”
“이 새끼야! 어제! 사장님한테! 이 새끼! 저 새끼! 소리를! 들었다!”
빡! 빡! 빡! 빡! 빡! 빡! 빡!
정확히 8방의 타격음이 들렸다.
소장은 신음 소리도 내지 못했다.
“현장에! 있는! 새끼들이! 안전모를! 개떡같이! 쓰고! 다니! 더라!”
쿵!
피 묻은 안전모가 바닥을 뒹굴었다.
‘아직 업무 시작 전입니다’라고 항변해 봤자 날아오는 것은 뻔했다.
최 이사가 아무 의자에나 털썩 앉았다.
“정 소장아.”
“네! 이사님!”
“우리 제대로 하자.”
“네! 이사님!”
“야! 주워 와.”
공사과장이 안전모를 주워다가 이사에게 바쳤다.
“이사님, 여기 안전모. 윽!”
공사과장이 정강이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이, 씨발. 안전모 소리도 하지 마라!”
“어떤 개새낀지 몰라도, ‘안전모’ 그 새끼는 내가 씹어 먹는다. 으득!”
안전모에 한이라도 맺힌 것인지 뜻 모를 소리가 어금니에서 흘러나왔다.
“에라이!”
최 이사가 울분에 찬 소리를 내뱉으며 안전모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간다. 내일 보자.”
소장이 최 이사를 배웅했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였다.
최 이사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허리를 편 소장이 사무실로 무표정하게 들어갔다.
현장의 모든 직원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소장의 눈에 아까 최 이사가 앉아 있던 의자가 보였다.
콰당탕!
소장의 발길에 채인 의자가 사무실을 나뒹굴었다.
또다시 소장의 눈에 피 묻은 안전모가 보였다.
“젠장!”
울분에 가득 찬 소장의 발바닥이 안전모를 밟았다.
돌덩이에도 부서지지 않는 안전모였건만.
꽈드득!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다른 의자에 털썩 앉은 소장이 손을 내밀었다.
공사과장이 잽싸게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불을 붙였다.
과장이 수건을 내밀었지만 소장은 손을 휘휘 저었다.
“후!”
피투성이 소장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금연’이라는 피처럼 붉은 글자가 사무실 한편에 붙어 있다.
냉막한 사무실에 뿌연 담배 연기가 퍼져 나갔다.
소장이 말했다.
“재밌었지?”
***
현장은 언제나 바쁘다.
전쟁이 일어나도, 잠은 현장에서 잔다. 20년 경력의 차 소장의 소신이었다.
도둑은 소리 없이 오고, 고참은 도둑보다 은밀하다!
“드르렁. 드르렁. 쿨. 쿨.”
어젯밤. 현장 직원들과의 회식을 끝내고, 소장실에 비치된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오늘 마루 사장들과의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3,000세대가 넘는 현장이니, 한 업체에서 처리할 물량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난다 긴다 하는 마루업체 3곳에서 분할 수주했다.
‘빈손으로 오는 미친놈은 없겠지. 음냐!’
이만하면 ‘갑 오브 더 갑’이 아니던가!
시공업체의 갑, 마루업체, 마루업체의 갑, 기사들. 기사들의 갑, 현.장.소.장!
‘누가 감히 날 건드려! 크하하. 흠냐!’
오늘의 불로소득을 생각하니 꿈조차도 달콤했다.
공무과장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소장님! 큰일 났습니다.”
“흠냐. 웬 소란이야! 왜? 전쟁 났어?”
“곽 이사님이 현장에 들어오셨답니다.”
차 소장이 스프링처럼 튕겨져 일어났다.
“왜? 무슨 일로 오셨대? 여긴 왜 안 오시고?”
경황없는 와중에도, 허둥지둥 작업복을 챙겨 입고, 안전모를 뒤집어썼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현장을 둘러보신다면서 들어가셨습니다.”
“뭐? 말렸어야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고함을 버럭 질렀다.
소장보다 몇 직급이나 위의 사람이 현장에 들어간다는데, 무슨 수로 말릴 것인가?
“어디 계시는데?”
소장 책상의 무전기가 치칙거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치직치직! 차 소장. 잘 잤나?
허둥지둥하던 소장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전기를 잡았다.
“아닙니다. 이사님! 업무 중이었습니다.”
-치직. 업무? 지랄을 하세요. 응? 몇 신 줄은 아냐?
“그게…….”
너무 당황해서 시계를 볼 생각도 못 했다.
-치직. 6시 2분이다.
“네, 맞습니다. 이사님.”
-여기 103동 502호다. 3분 준다.
무전기의 착신음이 끊겼다.
“아, 씨발. 조또!”
103동 502호!
현장 중에 제일 외곽!
현장사무실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3,000세대 중에 하필이면 거기냐!’
사무실을 뛰쳐나간 차 소장이 비명을 질렀다.
“현장 직원 전부 103동 502호로 집합! 2분 준다.”
해가 막 뜰 시간, 6시 2분이었다.
6시 5분. 가까스로 그 장소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고 있던 곽 이사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차 소장님. 오셨습니까?”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의 수행원에게 말했다.
“문 닫아. 지금부터 뒤에 오는 새끼들은 전부 대가리박고 있으라 그러세요.”
“네, 이사님!”
30명의 직원 중에 고작 6명이 도착했을 뿐이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곽 이사였다. 사우디 현장에서 닳고 닳은 베테랑이었다.
“자네 이름이 뭐지?”
“김.경.호. 직급은 차장입니다!”
군대에서 그랬듯이 관등성명을 대며 힘차게 소리쳤다.
“자네가 일등이야.”
여우처럼 찢어진 눈이 소장을 향했다.
소장의 얼굴이 굳었다.
“쯧쯧. 소장이나 돼가지고. 쯧쯧.”
이사의 다른 수행원이 굴러다니던 양동이를 하나 가지고 왔다.
“이사님! 여기.”
그가 욕실 앞에 양동이를 뒤집어 놓았다.
이사가 그 위에 걸터앉았다.
“까!”
“네?”
영문을 모르는 김 차장이 눈알을 굴렸다.
“까라고!”
“네? 무슨 말씀이신지.”
김 차장을 뒤로 한 채, 곽 이사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차 소장 앞에 섰다.
느닷없이 그의 촛대뼈를 깠다.
“으윽!”
“이거 봐라. 이거 봐라. 비명 나오지.”
여전히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어젯밤에 서 전무님 알래스카로 발령 난 거 아나?”
알 리가 없었다. 하루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벌어진 발령이었으니.
“…….”
“왜 그런지 짐작도 안 가지?”
“크으윽!”
“쯧쯧. 군기 빠져 가지고. 비명이 나오지.”
삼 년 만에 까여보는 촛대뼈지만, 그 고통은 어제도 당한 듯 생생했다.
곽 이사의 촛대뼈 스킬은 아직도 최상품이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매를 부를 뿐이었다.
극기의 인내심으로 참았다.
“‘안전모’라는 씨발 놈이 사장님한테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
“어제 사장님 댁에 욕조 뜯고는 알래스카로 발령받았다. 왜 그런지 알아?”
“잘 모르……윽!”
“쯧쯧. 현장에서 이리 배때지 부르게 있는데, 알 리가 있나?”
차 소장의 퉁퉁한 뱃살을 쥐고 이리저리 쥐어뜯었다.
“으으…….”
소장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곰팡이가 슬어 있더란다.”
“…….”
말하면 맞으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었다.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입 다물고!
직장생활의 기본이 아니던가?
“욕조 안에……. 타일이랑 실리콘 껍데기가 들어 있더란다.”
곽 이사가 뒤돌아보며 버럭 소리 질렀다.
“안 까고 뭐해? 새끼야!”
그제서야 욕조를 말하는 걸 알고는, 허겁지겁 김 차장이 욕조 실리콘에 칼질을 해댔다.
누가 그걸 뜯으라고 하면 그랬을 것이다.
‘미친 놈 아냐! 다 시공된 걸 왜 뜯어? 또라이냐!’
한껏 비웃음을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실리콘을 잘라냈다.
칼을 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장의 집에 실리콘 껍데기가 들어 있었다면, 이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 것인가?
‘내가 욕조 설치할 때, 점검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해본 적이 없었으니!
‘좆됐다. 씨발!’
***
곽 이사가 말했다.
“소장이라는 새끼가 현장을 똥밭으로 만들어놓고, 잠이 오지!”
“윽.”
“차 소장. 나도 알래스카로 보내고 싶지?”
이미 양쪽을 십여 차례씩 까인 정강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닙니다. 이사님!”
“나는…… 절대로 혼자 안 간다.”
그 소리를 듣는 차 소장의 오금이 저렸다.
왜 알래스카라는 말이 지옥으로 들렸을까?
길게 이어질 것 같던 곽 이사의 훈시는 생각 외로 빨리 끝났다.
“차 소장, 나 간다. 나오지 마라.”
‘휴!’
지옥 같던 시간이 끝났다.
곽 이사가 502호 문을 열었다.
계단참부터 시작해서 그 아래까지 수십 명이 머리를 박고 있었다.
경사진 곳에서의 자세였던 만큼 신음 소리가 계속 들렸다.
“쯧쯧. 빠져가지고. 시간을 그렇게 줬는데도.”
툭-
곽 이사의 발이 누군가를 툭 건드렸다.
우당탕탕탕!
비명을 삼키는 소리가 줄줄이 들려왔다.
곽 이사가 말했다.
“내일 또 보자.”
허리숙인 차 소장의 목젖이 꿀렁거렸다.
‘내일? 또!’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차 소장은 총알같이 베란다로 달려가 곽 이사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감자를 먹였다.
그나마도 뒤돌아보는 곽 이사에게 배꼽인사를 하느라 일 초밖에 되지 않았지만.
딱 24대를 까였다.
밖에서 엎드려 있는 부하들의 숫자만큼!
‘영악한 인간 같으니라고.’
“전원 집합!”
계단에 있던 부하직원들이 우르르 달려 들어왔다.
하나같이 얼굴이 벌게져서 터지기 직전의 홍시 같았다.
‘쯧쯧. 녀석들.’
차 소장이 말했다.
“대가리 박앗!”
맞아본 사람은 안다.
‘줄빠따’가 뭔지!
부하들을 줄줄이 머리 박아놓고, 차 소장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미친 거 아냐? 내일까지 무슨 수로 3,000세대 똥을 다 치우라고.’
하지만 이내 원망의 타깃이 곽 이사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욕조 이 새끼들. 다 죽었어. 내일까지 안 돼 있으면 보자! 으드득!’
갑에게 대드는 것보다 을을 쪼는 것이 백 배, 아니, 만 배는 편할 테니!
“뿌드득!”
현장에서 불가능? 그딴 거, 개나 주라 그래!
불야성(不夜城)? 단언컨대, 그건 현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망할 자식들. 현장을 똥통으로 만들어 놓고, 잠을 자! 그리고 안전모는 또 뭔 소리야!’
***
나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비키가 선물한 곰 인형을 동무 삼아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참. 이상한 꿈이네?’
어제 욕조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꿈은 그날의 잔상이라더니. 딱 그 모습이다.
안전모로 피를 튀기며 사람 패는 꿈. 욕조 안에 말라비틀어진 똥이 있는 꿈. 그리고 단체로 대가리 박는 꿈.
잠결에 뒤척였다.
“똥꿈이면 길몽이라던데. 이건 피똥 꿈이네. 대단한 일이 일어나려나. 쩝쩝!”
오랜만에 사랑하는 ‘예진 공주님’ 꿈을 꾸면서 행복하게 자고 있었다.
“아, 간지러. 한석이 녀석이 내 욕 하나? 내일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