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68화
현장 수업(8)
고객들만 편리함을 찾는가?
아니다. 시공자들도 편리함을 찾는다.
처음엔 벽과 싱크대 사이의 10㎜의 틈을 실리콘으로 메우는 것도 양심에 걸려 부담스러워했다.
나중에는 30㎜의 틈도 죄책감 없이 메우게 된다.
30㎜의 틈이라면 액상으로 된 실리콘이 흘러내리지 않을까? 아무리 점도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고심 끝에 찾은 해결책은 실리콘을 담은 박스의 골판지를 뜯는 것이었다.
먼지 자욱한 실리콘 박스의 골판지를 뜯어서 벽과 싱크대 사이에 끼워 넣는다.
찢겨진 골판지는 다른 말로는 ‘쓰레기’라고도 한다.
쓰레기라고 해도, 실리콘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게 30㎜의 틈을 메우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쾌재를 부른다.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작은 아이디어로 해결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건축기사들을 불러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니까. 말한다고 벽을 뜯어 새로 시공할 것도 아니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없는가?
어떻게 일개 가구회사 직원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현장의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건물을 제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공기(공사기간)를 단축하는 것이었다.
왜 그랬냐고 건축의 신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비겁한 변명을 하겠다.
공사를 제대로 했다고 하면 상을 주지 않지만, 빨리 끝냈다고 하면 상여금을 준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치졸한 변명을 하겠다.
주방 벽이 둥글게 휜 걸 내가 어쩌겠냐고 남의 탓을 하겠다.
내 변명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싱크대 하나 가지고 뭘 그리 과대 해석하느냐고 나를 탓할 것인가?
댐이 무너지는 것이 폭격 때문일 것 같은가?
아니다.
쥐구멍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쥐구멍.
건축인의 모랄이 무너지면, 시공자들의 양심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감독관의 정신이 해이한데.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될 리가 있나!
부실시공은 시공자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감독자들의 썩어빠진 정신을 탓해야 한다.
둘에게 물었다.
“그게 그 시공자들의 잘못일까?”
“그럼 아님까? 그런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그게 너야! 너고! 그리고 나야!”
아무도 아니라고 항변하지 않았다. 그 자리의 누구도.
방수에 탁월한 실리콘, 그 물질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탈을 쓴 범죄자들의 잘못을 감추기에도 편리하게 만들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나만큼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그럼…….”
“여기 어디에 건축가의 자부심이 있냐?”
“하지만 우리 잘못은 아니잖슴까? 제가 그런 것도 아닌데 말임다.”
한석의 말이 맞았다.
아직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아니, 나는 빼고 말이다.
그 작은 실리콘 덩어리 하나에!
천 년을 말하던 예술가의 자긍심을 벌레가 좀먹기 시작했다.
0.1㎜의 오차를 말하던 공학자의 자부심은 이미 공중분해되었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놓고. 실리콘으로 눈가림하고는. 잘된 건물입네. 어깨를 펴고 있다.
그것이 공학자의 긍지인가? 그것이 예술가의 명예인가?
머나먼 미래의 어느 날.
석굴암 같은 돔을 만들면서 손가락, 아니, 주먹만큼의 틈새를 실리콘으로 귀신같이 숨겨놓으면 누가 알 것인가.
그것의 폐해는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
내일이 될지, 백 년 후가 될지.
책임질 이가 사라진 그때는 누구에게 따질 것인가.
건축은 정확해야 한다.
건축가의 모랄이 무너지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만능 마감재인 실리콘에 마감을 의지하는 순간, 건축인의 정신에 실금 같은 틈새가 생겼다.
그 틈새는 어느샌가 발이 빠질 정도의 함정이 되었고, 나중에는 블랙홀이 되어 인류 전체를 끌어들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하고 싶은가?
산증인이 여기 있다.
‘나. 김성훈!’
“제대로 된 감독관이, 사명감 있는 감독관이 단 한 명이라도 현장에 존재했다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까? 성수대교가 무너졌을까?”
민수와 한석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건축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삼풍회장이 부실공사를 하라고 시켰을까? 건설교통부 장관이 부실공사를 지시했을까?”
이 두 개의 질문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뻔한 답은 대답할 가치도 없지!’
당연하다. 콘크리트의 물 비율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건축의 문외한들이다.
부실공사가 뭔지 알기나 하겠는가?
“민수야. 한석아.”
“네, 형.”
“네, 선배님.”
“건축과에서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수업은 선긋기 스킬이나 창조적 건축이 아닐지도 몰라.”
“그럼 뭘 가르침까?”
건축의 기초 중의 기초인 선긋기 말고 뭘 가르쳐야 할까?
“나도 몰라. 생각해 봐.”
나는 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차마 내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건축과에서 가르쳐야 할 첫 수업은 예술과 기술이 아니라 삼풍백화점 생지옥 체험이다.
왜 부실시공이 생지옥이 되는지 알아야. 저지르지 않게 된다.
그 사건은 전 국민적 도덕의 모랄 해저드가 아니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건축인들의 정신만 바로 박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그들에게 건축은 사명이 아니라 승진을 위한 도구였고 생계를 위한 직업일 뿐이었다.
건축인에게 건축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었기에 일어난 당연한 일이었고 예측된 결과였다.
건축에서의 미필적 고의.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7시 48분, 32명 사망, 17명 부상.
1995년6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 50분, 502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 건축인들이 국민 앞에 영원히 무릎을 꿇어야 할 죄이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생지옥이다.
‘나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다른 사람이 알아서 했겠지.’
‘내가 맡은 공구도 아닌데.’
‘내 책임도 아닌데. 신경 끄자.’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내게 돌을 던져라.
그런 사람의 돌이라면 기꺼이 즐거움으로 맞아주겠다.
그런 돌이 산더미처럼 쌓인다면 나는 깔려 죽으면서도 웃을 수 있다.
“하지만 형.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야.”
“그래도 높은 사람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잖슴까?”
당연한 말이었다. 돈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건설사 사장이 될 확률은? 가능하다.
5,000억의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란 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을 테니.
하지만 그것은 내가 40이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부실공사를 하겠다는 사람은 없어.”
“누구라도 그렇겠죠. 초심이란 늘 그런 거니까요.”
“하지만 돈은 바닷물과 같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 나니까.”
사람은 제품을 따지지만, 돈은 효율성을 따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얻는 것을 효율성에 둘 때,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가? 그것이 인과율의 법칙인가?
‘하나를 얻되, 나머지 하나를 잃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한석이 말했다.
“그럼 결국은 회사의 사장들이 잘못했다는 말씀 아니심까!”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면 그런 식으로 연결이 되는 거냐?
모르긴 몰라도 지금 와 있는 귀빈이라는 사람도 어딘가의 사장일 텐데!
‘이 녀석, 이렇게 눈치가 없었나?’
아니나 다를까, 슬쩍 뒤돌아보니 소장의 얼굴도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한석아. 거시기…….”
어이가 없어서 벙찐 얼굴로 녀석을 보고 있는데, 녀석은 동의라고 생각했는지 소장의 말을 끊고 말했다.
“결국 사장들이 돈만 보고 욕심을 부리니까. 그 밑의 직원들도 똑같이 되는 거 아님까?”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이 흐리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로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그 말을 들은 귀빈 중의 비서로 보이는 이가 물었다.
“그게 어떻게 대표의 잘못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나?”
‘왜 이 사람은 또 갑자기 끼어드는 거지? 자기네 갈 길이나 갈 것이지.’
자기 사장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거겠지.
아마 현재 그룹과 연관이 있는 자들일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현장을 방문할 사람이 있을까?
그의 말에 한석이 대응했다.
“그럼. 사장이 정확하게 지시하고, 현장을 둘러본다면 그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하심까?”
“이봐, 자네가 오너라고 한다면 수백 개의 현장을 한꺼번에 다 둘러볼 수 있나?”
그는 지극히 오너들을 대변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니지만 말임다.”
“현장에서 똑바로 하지 않으니, 대표님들이 욕먹는 거 아닌가?”
“어허, 김 비서. 자네 오늘 왜 그러나?”
‘이 사람이 왜 현장을 싸잡아서 욕하는 거지? 현장이 만만해 보이나? 혹시 이 기회에 자기 사장에게 잘 보이려는 건가?’
뭐가 되었든 맘에 들지 않았다.
***
사장은 당황스러웠다.
“어허. 김 비서 왜 그리 흥분…….”
“죄송합니다. 이건 분명히 말을 해야 겠습니다. 오너들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다니는지 알기는 아나?”
자신의 보스는 흔한 재벌 2세들처럼 자신의 위치만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장이 얼마나 현장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산증인 아니던가?
그런데도 나이도 어린 젊은 놈들에게 이런 식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말에 한석이 발끈했다.
“그건 자기 돈 벌려고 뛰어다니는 거잖슴까. 그게 무슨 사명감임까?”
“뭐야……?”
“나 같아도 내 앞에 돈이 쌓이면 정신없이 돌아다닐검다. 쳇.”
“어쨌거나 자네들 같은 기사들의 정신만 바로 박혀도 윗사람이 욕먹을 일은 없어!”
가만히 듣고 있던 성훈이 말했다.
“김 비서님의 말씀은 좀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습니다.”
“그거 나도 인정을 하네만. 먼저 시작한 건 그쪽이야.”
“쳇. 누가 엿들을 줄 알았슴까? 컥!”
결국 성훈은 한석의 뒤통수에 응징을 가했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경고의 눈빛도 잊지 않았다.
“물론 전적으로 책임자의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책임을 현장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좀 과장돼 보입니다.”
“물론 책임이 없다고는 하지 않았네. 완전 책임은 말이 안 된다는 거지. 그럼 이 나라의 잘못된 것은 모두 대통령의 탓이라는 건가?”
비서는 성훈의 말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반박했다.
논리의 비약에 성훈은 짜증이 났다.
‘누가 당신 탓을 했어? 한석이 녀석,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그래도 내 새낀데, 내가 안 챙기면 어떡하냐!’
한석이 실없는 말을 해도,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유의 말다툼은 이겨도 아무런 이득도 없는 감정싸움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이야기, 마무리는 지어야 할 것 아닌가?
“대표의 마인드가 확실하고, 그 아래로 내려가는 지침이 정확하다면 확실히 그런 비극은 줄어들겠죠.”
“그래도 불규칙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현장이라네.”
“그에 대한 상벌이 명확하고, 철저히 관리감독이 이뤄진다면 그래도 과연 같을까요?”
“대표라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 않겠나!”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확실히 개선은 되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기사들과 시공자들의 의식구조도 선진화가 된다.
성훈도 알고 있지만 그 시기가 좀 더 빨라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의식의 개혁이란, 위에서 스스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자꾸 현장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통에 성훈도 감정적이 되었다.
“자신이 파는 제품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안다면 과연 당당하게 ‘잘했네’ 할 수 있을까요?”
“무책임이라니. 이 친구가 지금 누구 앞에서!”
“김 비서님께 드리는 말씀 아닙니다. 저분께 드리는 말씀도 아니고요. 불특정 인물에 대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다시 흥분하는 비서를 말리며 사장이 말했다.
“맞는 말이야. 오너는 어떤 일에서건 책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지.”
한석이 ‘거봐요. 당신네 대장도 맞다잖아’라는 듯이 툴툴거렸다.
“그러지 말임다. 손발이 생각하고 움직이겠슴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말임다. 칫! 컥!”
“넌 왜 확대해석을 하고 있어? 이게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지울 수 있는 거야?”
“김 비서도 그만하게.”
“죄송합니다, 사장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니니. 그만하면 되었네.”
비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말했다.
“젊은 나이인 것 같은데.”
“25살입니다.”
“자넨 인부들에게 욕먹는 게 두렵지 않나?”
성훈도 흥분했었던 탓에 아직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았다.
“원래 감독은 욕먹는 자리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의 인부들을 포함하면,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그 정상에 군림하는 사람이었다.
과연 그 수만 명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까?
아니, 단 열 명의 회사라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건 맞는 말이지. 하지만 욕먹고 싶지 않을 것 아닌가?”
성훈이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따라왔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아까 이 친구들과 제가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듣게 되었다네. 가는 길이 겹쳐서 말이야. 큼큼.”
“집을 짓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 겁니다. 그럼 적어도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욕을 먹지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물건은 제대로 만들겠다? 직원들에게는 욕을 먹더라도, 고객들에게는 욕을 먹지 않겠다. 그렇습니다. 팔려고 내놓은 집이 부끄러워서야, 건축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한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슴다. 죄송함다.”
“아닐세. 오히려 젊은 혈기가 부럽구만. 김 비서. 가지.”
더 이상 현장을 둘러볼 분위기가 아닌 듯하자 그는 작별인사를 했다.
“소장님, 현장 잘 봤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소장의 머리에 퍼뜩 떠오른 생각은 장 실장의 엄포였다.
‘불편했다는 말이 들리면, 아시죠!’
“아이고, 요로코롬 가시믄 안 된당께요. 우짜쓰까잉. 우짜쓰까잉.”
그들의 간다는 말에 성훈도 무뚝뚝하게 인사를 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기분 좋게 작별을 고할 상태가 아니었다.
성훈이 뒤를 보며 말했다.
“어깨 펴!”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든 민수와 한석이었다.
“높은 사람이 왔다고 해서 지휘관들이 주눅 들면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을 어떻게 하겠어?”
“네, 형!”
“네, 선배님!”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어! 어차피 욕먹을 거, 당당하게 먹어! 그깟 욕 좀 먹는다고 죽지 않아!”
성훈의 목소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인 어투가 나왔다.
“성훈 씨, 뭐 그리 흥분했당가! 좀 가라앉히쇼잉. 저그 봐. 현장 사람들 다 긴장혔잖여.”
소장이 주변에 모여든 인부들에게 소리쳤다.
“아무 일도 아닝게, 언능 가서 일 보랑께. 쌈난 거 아닝게. 언능 안 가!”
소장이 성훈에게 물었다.
“누군지는 알고 그런 겨?”
“모르죠. 현재 어딘가의 높은 분이겠죠.”
“장 실장이 높은 분잉께 잘하라고 연통이 왔당께. 현재건설 사장님이믄 어칼라고 그란디야?”
“흥. 현재 말고는 갈 데가 없나요? 세상에 널린 데가 건설산데.”
“아따. 다 들리겄구만. 그려도 한국에서는 현재만 헌디가 없당께.”
“뭐. 없으면 외국으로 나가죠.”
“고 입 좀 다물랑께. 민수허고 한석이는 뭐한다냐. 언능 사무실로 델고 들어가잖구.”
“소장님은요?”
들어가라고 등 떠미는 소장에게 민수가 물었다.
“나는 쪼까 볼일이 있당께. 언능 안 드가고 뭐한당가.”
소장이 귀빈들을 뒤쫓아 걸음을 재촉했다.
***
오늘 내 눈앞의 상대가 누구인지 나는 몰랐다.
현생으로 돌아온 후에, 거칠 것 없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며 살아왔지만 눈앞의 남자는 긴장되는 상대였다.
굳이 소장이나 비서의 태도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뿜어 나오는 아우라가 그랬다.
충분히 잘난 척할 수 있는 사람일 텐데도, 그렇지 않은 태도가 그러했다.
‘당당하다는 거지.’
잘난 척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데, 잘난 척할 이유가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행동에서 그런 면면이 보였다.
스스로의 잘남을 뽐내고,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자는 잔챙이다.
심해의 고래는 뽐내지 않는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른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내면 모두가 알아서 물러선다.
그것이 사나운 포식자 상어가 되었든 무법자 범고래가 되었든.
설령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입거리도 안 되는 잔챙이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고래는 없으니까.
높은 사람에게 찍히면 어떡하냐고?
‘흥. 더 높은 사람이 되어버릴 테다.’
내 머리 속에 생각지도 못한, 유치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