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67화
현장 수업(7)
사장이 물었다.
“이 현장은 실리콘을 안 쓰시나 봅니다?”
사장은 언제 들었는지 실리콘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이 거시기. 우덜 감리가 겁나 깐깐하당께요.”
“실리콘 없이도 마감이 가능한 겁니까?”
사장의 의문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 소장이 웃었다. 의미심장한 웃음이었다.
“여그 쪼까 보시랑께요.”
소장의 손가락 끝에는, 바닥 대리석과 벽체 대리석 사이에 다른 색상의 대리석이 걸레받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비서가 인상 쓰며 물었다.
“뭘 보라는 말입니까?”
“거시기. 여그다가 실리콘을 쏘는 게 좋겄는지, 안 쏘는 것이 맞겄는지 물어보는 것이지라.”
1㎜의 틈새도 없이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었고, 그 작은 틈 또한 선을 그어놓은 듯 균일했다.
누가 와서 딴죽을 건다고 해도, 흠 잡을 곳이 없어 보였다.
사장이 의아한 눈으로 소장을 바라보자 소장이 그제서야 어깨를 펴며 말했다.
“우덜은 이것이 마감이지라. 실리콘 따위는 안 쓴당께요.”
“허허. 이것이 마감이라. 허허허.”
그럴 만했다. 균일한 틈새를 유지할 수 없으니 그 들쭉날쭉한 틈새를 덮어버리고자 실리콘을 쓰는 것이다.
자재들의 아귀가 딱딱 맞는데, 실리콘을 쏠 의미가 있을까? 그거야말로 낭비가 아닐까?
그제야 사장은 전체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아까의 젊은 감리가 왜 실리콘을 극도로 싫어하는지 해답을 찾았다.
자를 댄 듯 반듯하게 시공된 현장이었다. 과연 누가 실리콘을 쓰고 싶을까?
사장이 말했다.
“실리콘을 안 쓰니 더 깔끔하군요. 군더더기 없이! 그렇지 않나.”
“네? 네. 그렇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창호 말고는 실리콘을 쏜 곳이 한 군데도 안 보입니다.”
“실리콘 마감이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는걸.”
사장의 눈이 로비 전체를 둘렀다.
“쪼까 어둡지라? 불을 켜야 쓰겄구만이라.”
실내가 밝아졌다.
“호. 불을 켜니, 천정몰딩이 아까랑은 느낌이 좀 다릅니다.”
일부 시공된 몰딩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소장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캬! 역시 높으신 분이시니께, 보시는 눈도 높으시구만유!”
“소장님. 제발 묻는 말에만…… 좀!”
소장이 찍소리 못 하고 다시 허리를 굽혔다.
“거시기. 우덜 현장에서 자체 제작한 몰딩이지라.”
“그래요? 제가 좀 구입할 수 있겠습니까?”
소장의 눈빛이 변했다.
하청업자의 눈에서 영업자의 그것으로.
‘흐흐흐. 한두 개만 사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제. 한 개에 5만 원, 백 개만 사도 500만 원, 나무값 빼고, 가공비 제하믄, 못해도 순마진 50%, 250만 원. 거시기. 보자…… 내가 10%잉게. 나가 25만 원을 먹는구먼. 꿀꺽!’
순식간에 계산을 마쳤다.
소장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월매든지 말씀만 하시랑게요. 10개유. 100개유. 요것이 편백나무 원목으로다가 맹근 것인디 말이지라. 도장…….”
소장의 영업에 누가 제동을 걸었다.
“거기! 방문자분들! 안전모 착용하십시오.”
소장은 짜증이 나서 고개를 홱 돌렸다.
‘워매! 워떤 잡것이 소장님 영업하시는디, 헉!’
소리친 자를 바라보고는 소장의 입이 닫혔다.
‘아따, 쪼까 더 영업할 수 있었는디. 아오! 눈치도 드럽게 없당께.’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비서는 광대가 꿈틀거렸다.
“아니, 저 친구가? 이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비서가 사장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그가 십 년 가까이 모셔온 분이었다.
감히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제가 한마디 하고 오겠습니다.”
사장이 말했다.
“자넨 제발 오바 좀 하지 말게. 그리고 안전모는 자네만 쓰면 돼!”
비서가 벌떡 고개를 쳐들었다.
“헉, 사장님. 언제!”
이미 사장은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비서는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배신감인가! 저한테는 말씀도 없이.’
소장은 보았다.
성훈이 안전모를 쓰라고 하는 순간에, 사장이 벼락같이 바가지 뒤집어쓰는 모습을.
문 소장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캬. 그 양반! 비호가 따로 없고만.’
사장이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어허, 사장이라니. 말조심하게.”
그리곤 말을 이었다.
“현장에선 감리가 법이야.”
소장이 그 말을 거들었다.
“그라지요. 로마에 가믄 로마법을 따라야 한당께!”
비서의 목소리에서 어금니 가는 소리가 들린다.
“제발 소장님. 묻는 말에만…….”
“알았당께요.”
소장의 목소리가 죽어 들어갔다.
***
소장에게 말했다.
“소장님, 귀빈들 안내 중이셨나 봅니다.”
“그라제. 나가 쪼까 바쁘잖여.”
“그럼. 수고하세요. 잘 둘러보시고 가십시오.”
귀빈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장이 내게 물었다.
“그란디 여그는 어쩐 일이다요. 바깥에 일은 끝난겨?”
“네, 제가 내일은 현장을 좀 비워서, 동생들한테 업무 지시 좀 하려고요.”
“여그서?”
“네, 천정 몰딩 건 때문에 그래요. 봐야 설명을 하죠.”
소장이 귀빈을 보며 말했다.
“거시기. 사무실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떠시당가요?”
“아닙니다. 여기서 좀 더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그서요?”
소장이 재차 확인을 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 씨, 우덜도 여그서 볼일이 있는디, 괜찮겄제?”
“네, 뭐 상관없습니다. 비밀 이야기 할 것도 아닌데요.”
“그라믄. 일 들 보쇼. 우덜은 우덜 일 볼텡게.”
민수와 한석에게 천정몰딩을 어떻게 시공할 것인지를 설명했다.
“좌측에서 오는 몰딩과 우측에서 오는 몰딩 보이지?”
“네, 거기에 주먹장 맞춤을 연결시키라는 말이죠.”
아무래도 실제적인 공사에 대해서는 민수가 좀 더 알았다.
“그런데 선배님.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오는데, 주먹장 맞춤을 어떻게 함까? 주먹장은 한 방향에서 때려 박는 거라서 직각방향의 당김에는 강하겠지만, 박은 방향에서의 당김에는 약할 거 아님까?”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 질문에 민수가 대답했다.
“서로 다른 방향의 주먹장 맞춤을 각각 한 개씩 쓰면 되지.”
“엥. 그렇게 박을 수가 있슴까?”
민수가 웃었다.
“주먹장 맞춤 2개를 만들어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겹치게 하거나, 위아래로 이어서 몰딩에 타카를 쏴야겠지.”
실전에서 우러나오는 민수의 설명에 한석도 이해를 했다.
“아하! 그러니까 마구리 쪽의 몰딩은 미리 ‘ㄱ’ 자로 만들어서 올려야 시공이 가능하겠슴다. 역시 민수 선배! 컥!”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녀석아. 너 주먹장 맞춤이 뭔지 한 번도 못 봤지?”
뒤통수를 문지르던 한석도 뭔가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아님다! 선배님. 저도 봤슴다. 제 책상 서랍통 빼니까, 그렇게 되어 있었슴다.”
“호오. 그래도 꽤나 관심이 있나 보네. 그런 걸 다 보고 다니고.”
‘이런 녀석이었나?’
앞뒤 양쪽으로 주먹장 맞춤이 되어 있다고 해도, 앞쪽의 것은 서랍판이 있어서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은 서랍을 끝까지 빼서 뒤쪽을 봤다는 것인데, 이건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엄마가 거기까진 청소 안 하심다. 헤헤.”
‘그럼 그렇지!’
“녀석! ‘핫윈드(Hot Wind)’라도 숨겨놨냐!”
핫윈드는 90년대 유행한 칼라화보집이었다.
‘한창 젊은 내 가슴에 불을 질렀었지. 그게 벌써 20년 전이라니.’
혹시나 해서 찔러본 것인데, 녀석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내 전생 판박이라니까!’
“역쉬. 선배님도 거기다 숨겨놓으시나 봄…… 컥!”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자식이 누굴 같은 레벨로 갖다 붙이냐?”
한석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민수 선배, 성훈 선배님 고자 아니심까?”
‘쯧쯧. 녀석. 나중에는 스마트 폰으로 질리도록 볼 날이 올 거다. 기대해라.’
***
한석이 물었다.
“선배님, 그런데 실리콘을 왜 그렇게 싫어하심까? 원수 진 일이라도 있으심까?”
“그러게요. 저도 이해가 잘 안 돼요. 다들 쓰는 건데요. 편하잖아요.”
둘이 이구동성으로 내게 물었다.
“실리콘은 가히 만능의 마감재라고 할 만 하지.”
“네, 맞슴다. 선배님!”
“하지만! 나는 그 실리콘의 너무 뛰어난 효능 때문에 한국 건축은 퇴보했다고 생각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민수는 질문을 던졌고, 한석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 입을 헤벌렸다.
“원래 실리콘은 방수를 위한 마감재로 나온 제품이다. PVC 창호에서는 없으면 곤란할 정도로 유용하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과 귀빈들 포함해서 말이다.
‘살짝 부담스러운데.’
슬쩍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수와 한석도 당연히 나를 따라왔다.
“하나의 공종이 끝나고 다른 공종이 들어갈 때, 현장을 관찰해 본 적 있냐?”
민수나 한석이나 현장이 처음이니 그런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경험이 많았다. 전생에 가구를 하면서 수도 없이 겪었던 경험이다.
가구는 마무리 공정이다.
주방가구는 주로 천정 도배, 타일, 천정몰딩, 마루 공사가 순차적으로 끝나면 그때서야 투입된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현장의 의식구조가 많이 선진화(先進化)되어서 청소 상태가 좋았었지만, 그것도 1군 건설업체에 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1998년 당시의 현장은 뜨거웠다.
돈이 되는 현장이었고, 이제 막 IMF를 지나 돈이 급한 시기였다.
빨리 치고 빠지면 그것이 곧 수익으로 연결이 되었다.
과연 청소를 하고 나올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까?
아니, 그럴 만한 도덕적 양심이 있었을까?
내가 본 지금 시기의 현장은 엉망이었다.
그중에서도 마무리 공정이 들어갈 시기가 되면 그야말로 쓰레기통을 방불케 했다.
시공자들은 양심을 쓰레기통에 버린 채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좀 더 디테일하게 예를 들기로 했다.
“혹시 욕조 교체 공사를 해본 적 있어?”
둘 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봐라.”
“헤헤. 뭔데 그러심까. 선배님.”
보라고 하니까 한석은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저기 굴러다니는 다 쓴 실리콘 통, 욕실을 깔다가 남은 타일 자투리, 하다못해 실리콘 닦아낸 휴지까지 가득 차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아주 운이 좋은 거지.”
“윽! 설마. 그게 말이 됨까? 거기가 쓰레기통임까?”
“그래요. 형. 현장에서 확인하겠죠.”
내가 물었다.
“무슨 수로?”
둘이 멍하니 내 얼굴만 바라봤다.
“이미 설치를 끝내고, 방수를 위해 실리콘 마감까지 다 해버린 욕조를 무슨 근거로 뜯어서 확인하겠어?”
민수가 말했다.
“형. 그건 좀 과장된 말씀 같은데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아직도 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뒤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알 수 없지.’
더욱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욕조가 욕실의 마지막 공정이다. 그렇지?”
그렇다. 욕실장처럼 부착만 하면 되는 것은 공정의 순서에 상관없이 설치한다.
사실 가장 후순위로 밀려나도 상관없는 공종이다. 후에 따르는 공종이 없으니 당연하다.
하다못해 입주 직전에 들어가도 된다.
그러나 욕조는 다르다.
일단 타일 작업이 모두 끝나야 투입될 수 있다. 욕조가 들어가지 않으면 공사는 완료되지 않는다.
거울과 욕조가 동시에 작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부피가 크고 무거운 욕조가 운반에 시간을 보내는 동안, 거울은 이미 작업을 끝내고 현장을 나가 버린다.
거울이나 유리처럼 파손의 위험이 있는 제품들은 운반 즉시 설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운반 작업을 끝내고 뒤늦게 작업자들이 뒤따라 붙는 경우가 드물다. 각 실 배치와 동시에 부착이 끝나 버린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욕조는 항상 욕실의 최종 공정이 된다.
물론 그 위에 수전 공사가 따라붙기도 하지만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공정이다.
설령 남긴다고 해도 반드시 주워 나온다. 버리고 올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티가 나는 짓을 할 바보는 없으니까.’
“한석이 넌. 길가다가 남이 버린 쓰레기 줍고 그러냐?”
“헤헤. 그럴 리가 없지 말임다. 제가 남이 버린 걸 왜 줍겠슴까? 거지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
“당연하지 말임다.”
이번엔 민수에게 물었다.
“길가다가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으면 그곳에다가 네가 가지고 있던 쓰레기를 버린 적 없냐?”
“당연히 많죠.”
“왜 그랬는데?”
“거기가 쓰레기 모으는 곳이니까요.”
“누가 그렇게 정의했는데.”
“…….”
“그냥 그럴 거라고 추측했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야. 쓰레기통이 아님에도 거기 모아두면 청소부가 치우겠지 하는 생각도 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들 뭐지? 제 갈 길이나 갈 것이지. 한가한가?’
그래도 귀빈인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또 자리를 옮겼다.
한석에게 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선 공정 하나가 작업하고 남은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갔다. 다음 공정이 치울까?”
“치우지 않겠죠.”
“왜 그럴 거라 생각하냐?”
“제가 버린 게 아니잖슴까. 제가 청소붐까?”
“그래,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그럼 한 사람이 버리고 가면 어떻게 될까?”
민수가 답했다.
“당연히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겠죠. 남들도 버렸으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손에 들린 빈 실리콘 통은 더 이상 쓸모도 없는 짐만 될 뿐이니까. 그걸 버릴 시간에 1m라도 더 쏘는 게 돈이 되거든.”
실리콘 쏘는 사람들은 1m당 얼마로 인건비를 계산한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 일한 만큼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거지만, 후다닥 뛰어와서 실리콘 쏘고, 후다닥 뛰어 내려가는 그 사람들에게 빈 실리콘 통을 챙길 정신이 있을까? 그들에게는 쓰레기일 뿐인데.
훗날 현장에서 쓰레기 버린 업체를 일일이 추적하여 징계를 하고, 정신 교육을 강화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청결해졌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부들의 시공 양심이 청결해지는 것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게 쌓인 쓰레기들은 최종적으로 치워야 할 사람들은 욕조 시공자들이 되겠지. 과연 치울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장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 냈지.”
민수가 그 답을 말했다.
“욕조 밑으로 집어넣었군요.”
“상상에 맡긴다. 너희 집 욕조는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민수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집 욕조는 아버지께서 직접 설치하셨어요.”
“다행이구나. 한석이는?”
“반드시 뜯어보겠슴다.”
“뜯은 김에 청소까지 한번 해라. 어머니께 미루지 말고.”
“네! 선배님.”
결의를 다지는 한석의 얼굴이 마냥 밝지 만은 않았다.
욕조 아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고 직접적인 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다. 알지도 못 한다. 십 년을 살다가 이사를 가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알게 되는 것은 욕조에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더 좋은 욕조로 교체하기 위해 뜯어내는 순간이다.
그때의 더러운 기분은 평생 가도 잊기 어려울 것이다.
깨끗하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바로 옆에 쓰레기가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과연 그 쓰레기들의 잘못일까? 그럴 리가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