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63화
현장 수업(3)
목공팀은 민수를 통해서 조달했다.
가능하겠냐는 말에 민수가 말했다.
“네, 가끔씩 고급 빌라 계약이 들어올 때, 내장까지 턴키(***1)로 작업하시는 걸 봤어요. 가능하실 거예요.”
“아버님께 공사비는 짜다고 미리 말씀드려. 대신 네 월급은 많이 준다.”
“하하. 알았어요. 아버지도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어요.”
내장 석재팀은 외부 석재팀장을 불렀다.
그가 말했다.
“어차피 외부 마감 구석구석 손볼 일이 생기면 와야 되니, 그것까지 마감 짓겠소.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소.”
‘그럼 남은 것은 몰딩(***2)의 품질인데,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시방서에는 품질에 관련된 말이 없었고, ‘샘플로 제시된 품질 이상의 것으로 한다’라는 애매한 말만 적혀 있었다.
그 말은 곧, 더 품질이 좋은 것은 얼마든지 해라. 다만 더 저렴하거나 저급한 품질은 안 된다는 것과 같았다.
‘샘플로 제시된 것보다 더 값싼 제품을 찾을 수나 있을까?’
나는 내 첫 작품을 그런 싸구려 자재로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
구할 수 있는 샘플을 모두 구했다.
지금 감리실 벽에는 30㎝가량의 샘플들이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휴.”
그리고 반대편 벽에는 한숨으로 가득한 세 명이 앉아 있다.
한 시간째였다.
나는 질문하고 민수는 대답하고 한석은 입 다물고 있었다.
“민수야. 저건 어떠냐? 물결무늬 있는 저거.”
“괜찮네요. 물결무늬의 요철이 잘 살았어요.”
“요철은 네 말대로 잘 살아 있는데, 난 목재 자체가 영 맘에 안 든다.”
“색깔이라면 저 위에 도장을 좀 뿌리면 되지 않을까요?”
‘역시 좀 아는데.’
나무의 수종(樹種)에 따라 목재의 색깔과 강도가 다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심재(중심부)와 변재(외곽부)의 비율에 따라 또 나무의 성질이 바뀌고, 결 또한 다르다.
색상은 도장액을 잘 조절하여 뿌리면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지만 그 결만은 어떻게 할 수 없다.
“흠…… 결도 별로야. 다른 거 골라 봐!”
이렇게 한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전, 한석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말했었다.
“선배님, 저 나가 있어도 되겠슴까?”
“보는 것도 공부야. 너도 의견이 있으면 말해!”
지식이 풍부한 민수에 비해 내놓을 의견이 없었던 한석은 지금 한 시간째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이었다.
“어째 다 이렇게 촌스럽지?”
“선배님, 한 시간째 심다. 눈이 너무 높으신 거 아님까?”
“전 형이 고민하시는 거 첨보는 거 같아요.”
‘그럴 수밖에. 너희도 20년 후의 몰딩들을 봤어 봐라. 나처럼 한숨 안 나오나?’
내 고민이 그거였다.
지금 나온 디자인들이 모두 촌스러워 보인다는 것.
“형, 지금 구해온 것들이 최신 디자인들이에요.”
당연했다. 울산의 모든 공방과 가구 관련 가게를 모두 뒤져서 가져온 것이니.
“그래도 내가 보기엔 촌스러워 보이는데 어떡하냐?”
민수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저게 촌스러우면 어떤 게 안 촌스러운 거냐고!’라는 눈빛이리라.
“형. 저거 우리 공방에서도 최근에 구입한 프랑스 제품이에요.”
가구 만들 때도 몰딩이 많이 들어간다.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한숨에 한석이 짜증을 부렸다.
“선배님, 땅 꺼지겠슴다. 그냥 대충 하나 고르시면 되지. 뭐가 그리 고민이심까?”
“자식아! 대충 고를 거면 뭐 하러 이런 고민을 하고 있겠냐? 원래 몰딩 쓰면 되지.”
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끌려왔다는 시위를 하고 싶은지, 한석이 아까부터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문 소장이 들어왔다.
소장에게 물었다.
“기획실장은 뭐래요?”
“십 원짜리 동전 하나도 못 주겠다는 구만이라. 칼처럼 자르던디.”
이미 주문이 완료되어 배 타고 들어오는 대리석이야 교체하는 걸 포기했었다.
그래도 몰딩은 아직 기회가 있었기에 주문을 취소하고 맘에 드는 몰딩을 고르는 중이었다.
맘에 드는 만큼 비쌀 테니 예상 금액을 정하고, 그 추가비용을 기획실장에게 청구했었다.
지금 문 소장이 하는 말이 기획실장의 답이었다.
그럴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 말뿐이에요?”
“그건 아닌디? 안 듣는 게 나을 텐디.”
대체 뭔 소리를 한 거야?
“말해봐요. 들어봐야 알죠?”
“투시도랑 상여금 많이 뜯어갔응게, 그걸로 충당하라는디?”
‘이 망할 놈의 인간이. 그게 언젯적 일인데, 아직도!’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었어요?”
“뭘 어떡하긴 어떡혀. 알아서 하라 그라제. 구워 먹든지, 삶아 먹든지.”
“그리고요?”
“어차피 자기는 현장에 관심 없응게, 입주자대표하고 다이렉트로 상담하라는디? 한 번 더 전화하믄 작살을 내불겄다믄서.”
“이 사람이 진짜!”
“그 사람도 그럴 만도 허제! 이것 땜시 자기네 사장헌티 얼마나 깨졌겄어.”
나도 말은 이렇게 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현장에 관심이 없었다.
떠맡은 일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필립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것이고, 이 일 자체가 꼴 보기 싫을 것이다.
‘그건 그 자리에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자기 사정이지.’
“지금 남의 사정 봐줄 땝니까? 내 코가 석 자나 나왔구만”
“내가 뭐라고 했당가? 나헌티 씅질을 내고 그랴.”
“어쨌거나 맘대로 하라는 말이죠?”
말을 끝낸 문 소장의 시선이 감리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샘플들로 향했다.
“워매! 시방 이것들은 다 뭐다요? 언제 다 모았디야?”
한석이 볼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맘에 드는 몰딩 고르겠다고 모아온 검다.”
“아이고, 아까워서 우짠대요. 싸그리 다 물 건너 가버렀응께.”
“아! 제 말이요. 그렇게 맘에 드시는 게 없으심, 직접 만드시면 되지.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슴다.”
한 시간 동안 묵언으로 일관하던 한석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툴툴거리는 한석을 바라보았다.
민수가 말했다.
“한석이, 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 선배님! 또 때리실라 그러심까?”
손을 X자로 가로 질러 머리를 막으며 넉살을 부렸다.
“에이, 당연히 농담이지 말임다. 아시면서. 헤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이리 와. 자식아.”
“에이, 자꾸 때리시면 저 눈 튀어나오지 말임다.”
민수도 말했다.
“넌 형한테 말이 너무 심했어. 맞아도 싸!”
“이리 안 와!”
한석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다가왔다.
“워매. 내 정신 좀 보소! 성훈 씨. 나는 급한 일이 있응께, 먼저 갈라요!”
애꿎은 불똥이 튀는 것이 싫었던지, 문 소장이 급한 척 부산을 떨며 자리를 떴다.
한석은 오는 도중에 책상에 얹힌 안전모를 슬그머니 집어 들었다.
다가와서 안전모를 슥 쓰더니 머리를 내밀면서 말했다.
“대령했슴다. 선배님!”
‘때릴 테면 때려 봐라. 그거냐?’
자식. 귀엽기 그지없다.
녀석의 머리를 통 때리고는 쓰다듬었다.
“잘했다. 한석아.”
눈알이 튀어나오게 맞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네, 잘못 들었슴다. 선배님!”
영문을 모르고 눈동자를 희번뜩 뜨고 나를 쳐다본다.
민수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석의 엉덩이를 툭 쳤다.
“말 한 번 잘했다고. 몸 쓰는 거 말고는 쓸데가 없을 줄 알았더니.”
돌변한 나의 태도에 모두가 놀랐다.
“형. 왜 그러세요? 화나신 거 아니셨어요?”
“그러게 말임다. 너무 고민을 하셔서 돌아버리셨나봄다. 119에 연락할까요?”
‘내친김에 한 대 때리고 시작할까?’
감리실의 샘플들을 전부 밖으로 내놓았다.
“보고 있으니 머리만 아프다. 그치?”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고민 따위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차피 길은 정해져 있었다.
기존의 몰딩은 쓸 수 없다. 아니, 쓰기 싫다.
추가 비용을 받아내서 고급 자재로 변경하는 것은 문 소장 말대로 물 건너갔다.
모든 것이 ‘Zero’로 돌아가니 흔들렸던 내 초심도 돌아왔다.
애초에 인테리어를 맡은 목적이 ‘내 맘대로 만들기’였다.
비싼 자재로 건물에 덕지덕지 돈질하는 게 아닌, 내 맘에 드는 건물 만들기였다.
앞을 가로막은 작은 난관에 잠시 혼돈에 빠졌었다. 돈질로 편하게 가려고 했다.
“만들자! 우리 맘대로!”
한석이는 눈만 굴리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했다.
민수가 물었다.
“네? 몰딩을요?”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형. 무리예요.”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한석이 비명을 질렀다.
“선배님! 무슨 말도 안 되는…….”
‘너보고 만들라고 한 적 없거든! 이놈아.’
“됐어. 결정했어. 너희는 따라만 와!”
“형. 무모한 도전 같아요. 시간도 촉박하고.”
“선배님, 톰크루즈심까?”
“갑자기 웬 톰크루즈냐?”
“미션 임파서블 찍으시냐 그 말임다.”
이 건물 주인이 그랬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왜 자꾸 이 말을 되뇌는 건지. 참!
“왜 불가능인데?”
“우리는 학생임다.”
“또?”
“우리가 뭘 할 줄 아냔 말임다.”
“그래? 무슨 말인 줄 알았어. 기각!”
해보지도 않고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도저히 내 맘에 안 드는 걸 어쩌라고.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그때는 대가를 치러야지.
‘현상설계 3, 4건 정도 하면 복구되려나?’
“한석이! 가서 문 소장 불러와!”
한석은 대꾸를 하려다가 서슬 퍼런 나의 말에 찍소리 못 하고 나갔다.
민수가 물었다.
“형. 어떡하시려고요?”
“패턴은 만들고, 목재는 구하고, 너희 아버지 공장에서 NC가공으로 문양 뜬다. 문제 있냐?”
이론은 언제나 완벽하다.
민수가 물었다.
“돈은요?”
“목재 구입은 몰딩 취소한 걸로 충당하면 된다. 나한테 1,500만 원 있으니, 그걸로 NC 딴다. 빠듯하지만 된다.”
“형에게 남는 건요?”
“난 의장권을 가진다. 너랑 나누면 되겠네!”
의장권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길지만 간단히 말해 디자인에 대한 권리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제 생각에는 손해가 될 것 같은데요?”
뭐가 되든 상관없었다.
난 이 건물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손익의 계산은 내가 하는 거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건축가에게 자기 손으로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는 것보다 중요한 경험은 없다.
설계자는 설계만 하고, 시공자는 시공만 하고, 감리자는 감리만 하는 세상이다.
건축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세상의 발전에 따라 수십, 수백 갈래로 찢어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20대에 나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건축가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한 건축물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경험을!
민수에게 말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하더라. 나는 이 소중한 경험을 대충 현실과 타협하며 끝내고 싶지 않다.”
문 소장이 왔다.
“편백나무 더 구할 수 있죠?”
“당연허제. 그란디 편백나무는 뭐땜시?”
“필립이 찬성하면 이 공사는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죠.”
입주자가 맘에 든다고 한마디 하면 시공사나 발주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이 편백나무라면 좋아 죽죠?”
“당연허재. 인자 매주 한 번씩 장성에 간다고 하더만.”
“일단 그걸로 점수 따고 들어가죠.”
소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따! 딱이구만. 이걸로 필립은 딴지를 안 걸겄제!”
기분 좋아진 소장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말랑께, 필요한 수량만 말씀하쇼. 그 성님 목재소에 널린 게 그것잉게.”
“그럼 내일 정확한 수량을 말씀드릴게요.”
지금 당장 소장이 나의 계획을 모두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것만 묻고 돌려보냈다.
민수에게 물었다.
“너, 패턴 연습 해봤지? 어릴 때부터 매일 조각칼 가지고 놀았다면서?”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자. 난 내가 여행하면서 본 패턴들 그릴 테니까. 너도 기억나는 거 그려 봐!”
“선배님! 저는 그런 거 해본 적 없슴다.”
한석이 서둘러 설레발을 쳤다.
“넌 패턴집이란 패턴집(集)은 다 구해와. 너 월급 주고 시키는 거다. 제대로 해!”
“네, 사장님! 쳇.”
투덜거리며 한석이 자리를 비웠다.
나와 민수의 말없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타성에 젖어 있는 내게, 마흔셋의 김성훈이 말했다.
“나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다.”
“사고를 치는 것을 겁내야 할 나이가 아니다.”
“나는 대리도, 과장도, 차장도, 부장도 아니다.”
“순수한 욕망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불태우는 나는, 젊은이다.”
도전이 두려워 뒤로 물러나는 순간, 젊은이는 젊음을 상실한다.
<용어 설명>
1. 턴키
‘턴키(일괄수주)계약’라는 용어는 계약 방식의 일종이다.
도급은 원청이 설계를 하고, 하청업체에서 자재 구입와 가공을 맡기는 경우. 사급은 원청에서 설계와 자재를 공급하고, 하청업체에서 가공만 하는 경우.
턴키는 하청업체에게 설계와 자재, 가공까지 통틀어서 맡기는 방식을 말한다. 하청업체는 원청의 요구에 맞추어 설계를 하고 승인을 받은 후, 능동적으로 자재를 구매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가공을 끝낸 후, 원청업체에게 완제품을 인도할 의무를 가진다.
굳이 도급과 턴키의 차이를 따지자면, 도급이 ‘내가 원하는 휴대폰을 이 설계도면대로 만들어 주시오’라는 거라면, 턴키는 ‘나는 이런 이런 기능이 있는 휴대폰을 원하니, 알아서 만들어 주시오’라는 식이 되겠다.
그럼 하청업체에서 설계를 해와서 ‘이 도면대로 하려 한다. 맘에 드느냐?’라고 물을 것이고, 승인하면 그다음은 만들어서 완제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승인 과정도 귀찮으면 ‘책임 안 물을 테니, 그냥 원하는 휴대폰만 가져와라’라고 할 수도 있다.
원청의 입장에서 그 하청업체가 신뢰할 만하고 코드가 맞다고 판단된다면 가장 편한 방식이다.
민수가 말하는 경우는 처음 가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건축주가 민수 아버지의 실력과 인품을 신뢰해서 ‘내장(인테리어)공사까지 도맡아서 해 주시오’ 하고 모두 맡겨버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2. 몰딩
몰딩이란 마감재의 한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벽체와 천정, 혹은 벽체와 문틀 등 서로 다른 마감재가 이어지거나, 다른 면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자연스러운 연결이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는데, 몰딩을 부착하여 다른 마감재들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천정몰딩, 걸레받이, 문선몰딩, 허리몰딩 등 그 쓰이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진다.
그 원자재로는 원목, MDF(가공목재의 한종류), 알미늄, 우레탄 등등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