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62화
현장 수업(2)
현장에 들르자마자 민수와 한석을 진표에게 맡겼다.
공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곧장 현장사무소로 향했다.
“문 소장님, 저 찾으셨다면서요?”
도면을 보며 기사들과 이야기하던 문 과장이었던, 아니, 이제는 소장이 된 그가 반가이 나를 맞이했다.
“성훈 씨 왔당가! 언능 이리 오셔!”
기사들과의 대화는 거의 끝났었던지 급히 안건을 마무리 지었다.
“무슨 말인지 알겄제! 그렇게 하면 된당께. 그럼 나가들 일 보셔.”
문 소장이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실은 말이요. 필립 그 양반이 내 머리를 쪼까 아프게 하요.”
“왜요?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은 아닌데.”
“그것이 우리 때문인디, 성훈 씨가 좀 도와줬으면 혀서 그라제.”
필립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실은 전 소장이 뒷돈을 챙겼잖소.”
“그건 다 끝난 일이잖아요.”
소장은 비리 건으로 구속되었다. 현재 쪽에서의 괘씸죄가 적용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사는 시공사 쪽에서 마무리 지으면 되는 것이다. 필립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그란데, 필립 그 양반이 비리 내용을 알잖소.”
“그거야 필립 씨가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줬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는 알겠죠.”
소장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랬다.
비리 감사를 하는 동안, 소장과 인테리어 업체와의 거래도 드러났다.
당연히 인테리어 업체도 소환을 당했고,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
시공사 사장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여기서 끝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현재 쪽에서도 공사를 차질 없이 완료하라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필립이 시공사를 믿지 못하겠다면서 브레이크를 걸었고, 내 이름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불미스런 일이 다시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소! 성훈이 설계를 했고, 우리 요구 사항을 다 알고 있소. 또한, 그는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니, 인테리어 공사를 감독해 줬으면 좋겠다’라면서.
당연히 나는 감리이니, 내 맡은 일을 다 할 것이다.
그 일에는 공사 진행의 관리 감독도 포함이 되어 있다.
여기서 필립이 좀 과민한 반응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기 딸, 비키의 건강 문제가 걸린 만큼 그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성훈이 인테리어 공사를 총괄하지 않으면 기숙사를 다 지어도 우리는 입주하지 않겠소!’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필립의 이 말이 헛소리였으면 좋겠지만, 그는 독일인들의 가장 연장자로 입주자 대표였고, 그 영향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고, 머리야! 은혜도 모르는 야박한 인간 같으니! 일 위에 일을 또 얹냐!’
나중에 한 번 따지러 가야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하셨는데요? 기획실장은 뭐래요?”
현재중공업에서 기숙사 건에 대해서는 그가 총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현장에 얼굴 한 번 안 비치지만.
“우리더러 알아서 하라는디, 우리 사장님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겄다고 빌고 갔거든.”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뭐. 호구도 아니고. 니들이 부탁하면 나는 예 하고 실행해야 되는 거냐?
“그래서 저더러 인테리어를 총괄해 달라 이 말씀이세요?”
문 소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주면 좋겠지만서도, 나도 염치는 있어라!”
“그럼요?”
“거시기 쪼까 이름만 빌려 달라 고것이지라.”
나를 바지 담당으로 올려놓고, 일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필립에게 구색은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겠지만.
손해라고는 볼 줄 모르는 그 꼬장꼬장한 독일인이 나를 엮어서 넘어갈 때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문 소장은 지금 당장의 위기라도 어떻게 넘기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지금 짓는 기숙사의 건축주가 말했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머릿속으로 펜대를 굴렸다.
‘민수와 한석이를 데리고 왔다. 감리 일만 가지고, 녀석들을 효율적으로 단련시킬 수 있을까?’
만약 골조 공사였다면 아직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인테리어 공사라면!’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 했지만 가구 설치를 위해서 항상 들렀던 곳이고 주워들은 지식은 몇 개 있었다.
‘자신할 정도의 경력은 아니지만, 뭐 어때! 모르면 문 소장한테 물어보고, 내 나이 25에 다 안다는 것이 이상하지.’
그리고 또 하나 든 생각!
‘나도 바지 사장 하나 세우지. 뭐.’
물망에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민수 아버지였다.
나무를 만지며 평생 일을 한 장인이 인테리어를 모른다? 하하하.
가구 또한 종합적인 예술이다.
나무에 대한 지식은 당연하고, 가죽과 도장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석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거기다 건물 일체형 가구를 하려고 하면 전기배선과 입수전, 배수전, 조명, 거울 등등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수만 가지다. 그건 내가 해봐서 안다.
‘민수 아버님, 할 수 있는 한 도와준다고 하셨지요!’
이건 지금 상황에서는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기회였다.
내 손으로 직접 총괄을 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외부 디자인은 이미 내 손을 통해 탄생했다. 그 내부를 다시 내 손으로 마감한다?
하나의 건물을 내가 통째로 컨트롤한다는 말이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단시간 내로는 없을 것이다. 절대로!
인테리어를 총괄할 정도의 위치가 되려면 경력이 쌓여야 한다.
경력도 없는 신병에게 ‘현장 알아서 지휘해!’라고 하는 미친 지휘관은 없다.
빨라도 3, 4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 이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자! 이건 못 먹어도 고!’
지금이라면 내 뒤를 봐주고, 책임져 줄 사람이 있었다.
‘안 된다고 하면 한 교수라도 물고 늘어지지 뭐!’
소장은 이미 나를 바지 담당으로 내세울 생각으로 보였다.
어떻게 구슬려야 소장이 나에게 넘길까?
소장에게 물었다.
“문 소장님, 필립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
“그 사람, 0.1㎜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에요. 그런 정밀한 기술자라고요.”
문 소장은 꿀 먹은 벙어리다.
“어떻게 현장이 진행되는지 디테일을 모르고 있다가 필립이 갑자기 물어오면 어떻게 하죠?”
“거시기. 설마 그렇게야 허겄소?”
“그럴 수도 있겠죠. 늦둥이 무남독녀 비키가 없다면요.”
“나도 그것이 걸리기는 허요. 그 양반이 딸 얘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버리니께.”
“저까지 필립한테 신뢰를 잃는 상황이 생기면 이 공사 접어야 합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집을 짓는 공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연 현재에서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까?
다행히 문 소장은 눈치가 빨랐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게 공사를 넘길 생각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라믄 어쩌면 되간디?”
“제가 직접 총괄할게요.”
“뭐시라. 성훈 씨가 해본 적이 있다요? 안 해봤으믄 대가리가 뽀사질텐디.”
“그러니까 소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야 돼요.”
현장에서 나 같은 신출내기에게, 아니, 아직 학생인 나에게 현장을 넘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입주자 대표가 그렇게 하라는 데는 이견을 달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공사는 진행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현장소장은 문 소장이지만 인테리어에 있어서는 내가 총괄 담당하기로 했다.
소장도 그 부분은 인정하기로 했다. 어설프게 필립을 속여 넘기려다가는 완전히 박살 나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 소장이 말했다.
“그럽시다. 나도 성훈 씨헌티 신세진 것이 있고 허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내가 백업헐텡게. 해봅시다.”
“그럼 인테리어 자료 몽땅 감리실로 옮겨 주세요. 거기가 작업하기 편할 것 같아요.”
자리를 옮겼다.
***
“내장 관련된 것은 싸그리 챙기랑께.”
소장이 직원들을 인솔해서 서류들을 옮겼다.
인테리어에 관한 도면과 자료를 모두 감리실로 가져왔다.
소장에게 물었다.
“에게? 남은 공사비가 이것밖에 안 돼요?”
“왜 날 그런 눈으로 보셔? 난 자재 빼돌리는 그런 짓 안 혀! 전라도 장성 양반집 자슥여. 나가!”
소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엄포를 놓았다.
“너무 적어서 그렇죠!”
“자재는 이미 다 구입을 했어라. 그거 다 빼고 나면 남은 것은 인건비밖에 없지라.”
“그래도 5,000만 원이면 적어도 너무 적죠.”
5,000만 원이면 작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 계산으로 봐도, 전문인력 인당 10만 원씩만 잡아도, 하루 30명씩 보름이면 4,500만 원이 나간다.
절대로 많은 돈이라고 할 수 없었다.
독일인 30가구로 봤을 때, 한 가구당 150만 원으로 마감을 지어야 한다는 것.
복도와 현관을 포함하면 더 들어갈 것이다.
남아 있는 공정은 도배, 마루, 걸레받이, 천정몰딩, 조명, 문틀, 욕실, 주방 등등등등!
하나하나 꼽으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는데, 한 가구당 한 공정에 한 사람으로 마감을 지으라는 말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복도와 현관을 제외한 것!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마술산 줄 아세요?”
어디서 은근 슬쩍 책임을 물리고 있어! 눈치는 빨라도 사람 볼 줄 모르네.
그게 아니면 간 보는 거겠지!
“그것이…….”
소장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얘들 때문에 그런 것인가? 외부인 들이라서?
하긴 소장 입장에서는 그럴 것이다.
“민수야. 한석이 데리고 샘플실에 가서, 여기 쓰여 있는 것들 싹 다 찾아와!”
민수 성격에 싹 다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어차피 덜 가져온 게 있어서 한 번 더 가느니, 한 번에 찾아오는 것이 백배 나았다.
둘이 감리실을 빠져 나갔다.
문 소장에게 으르렁거렸다.
짜증이 팍 솟아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일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움직이려면 자금이 있어야 한다.
“소장님, 지금 이 비용 가지고 공사 다 하려고 하셨어요?”
“어쩌겄어. 우리도 지금 파산 직전인디. 그나마 이 공사는 마감짓겄다는 책임감 가지고 하능겨.”
“어떻게 돌리려고 하셨는데요?”
“우짜긴! 우리 직영 기술자들 데리고 해야제. 꼭 필요한 기술자들만 부르고. 으윽! 우리 사장님, 지금 돈 빌리러 다니고 난리도 아니여. 전 소장 놈이 보통 해처먹었어야재. 그 쌍노무 새끼!”
격분한 소장이 말을 이었다.
“나 첨에 공사 배울 때부텀 나 일 갈챠주신 분여. 사정 좀 봐 주쇼! 아주 한 방에 먹고 외국으로 튈 생각이었나 벼. 제대로 해처먹었더만. 나 요즘 법인카드로 술도 못 먹고 댕긴당께. 울 사장님헌티 미안혀서 말여.”
내게 인정을 호소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읊어대고 있었다.
문 소장의 회사가 많이 힘든 것은 알고 있었다.
‘나 못 하네 배째쇼’ 안 하는 걸로 봐서는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었다.
하지만 남의 똥 치워 주려다가 내 똥구멍 찢어지는 짓은 사양이었다.
일단은 현황 파악이 먼저였다.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을까?
“자재들 다 구입한 거예요? 더 네고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아적 들어오지는 않았어. 최대한으로 사정해가지고 한 것이여.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당께.”
“서류 보니까 기성품인 것 같은데, 주문 취소할 수는 있는 거죠?”
“돌은 어려울 것이여. 이태리 대리석잉게, 몰딩들은 몰라도.”
그럼 몰딩에서 융통성을 부려봐야 하는 것인가?
내가 굳이 이 일을 맡으려는 것은 대충 있는 자재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맨 처음 소장 말대로, 바지 담당을 하는 것이 나았다.
‘방법을 찾아야 해.’
소장이 말했다.
“자재는 그런다고 혀도, 인부들은 우짤 건디?”
“그 부분은 생각해 둔 게 있어요.”
“그람. 알아서 허쇼!”
알아서 허쇼? 이 양반이!
“소장님, 은근슬쩍 손 빼기 하십니까?”
“어허, 손 빼기라니. 쪼까 거시기하구만! 나가 열심히 한당게요!”
그럼 나는 무료 봉사냐?
“내 인건비 누가 줘요?”
“당연히 공사비에 포함…….”
그의 말을 끊었다.
“이거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거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지금도 모자라게 생겼는데, 저보고 삥땅이라고 치라는 말씀이세요?”
“아따, 삥땅이라니?”
소장은 소스라치듯 경기를 일으켰다.
비리, 삥땅 등의 단어는 이 현장에서는 금물이었던 모양이다.
소장이 달래듯 말했다.
“성훈 씨는 거시기, 감리 월급도 받잖소. 얼마 전에 비리 건으로다가 상여금도 두둑이 챙겼다두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일이 다른 일인데, 어디 대충 얼버무릴라고.
“소장님 사정 봐줘서 제가 하겠다는 거잖아요.”
“거시기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겄소? 성훈 씨가 조금만 우덜 사정 좀 봐 주소. 응?”
“전 여기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돕는 거예요. 제 말이 틀렸어요?”
“맞는 말이긴 한디, 우덜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것소.”
“소장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사람 사는 거죠.”
소장은 일단 수긍했다.
일방적인 양보의 강요는 협상 결렬밖에는 얻을 게 없다.
“말씀허쇼! 들어는 볼랑게.”
“일단 제가 인테리어 지휘는 하지만, 모자라는 인력 다 지원해 주세요. 감당 가능한 대로.”
“일단 해보기는 해보는디, 우덜 사정도…….”
“그리고 최종적인 책임은 소장님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당가요?”
“어차피 소장님 현장이잖아요.”
“좋소. 거그까정은 양보를 할랑게.”
양보는 무슨! 어차피 시공사가 도급 주는 형식인데.
말 안 해도 시공사 책임이다.
다만 소장이 제 사정 급하다며 인력 수급을 원활히 하지 않으면 내가 부른 사람들도 놀려야 하고, 거기서 자금의 누수가 생긴다.
거기서 책임을 물으면 내가 곤란해진다.
“좋아요. 인테리어를 최우선으로 인력을 짜세요. 필요할 때 바로 빼갑니다. 아시겠죠? 미리 언질해 놓으세요.”
“알았당께. 또 있소?”
“네, 제가 데리고 온 애들 급여도 따로 주세요.”
직영인력이야 월급제로 부리는 사람들이니 현장에서 얼마든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급여는 또 돈이 나가는 부분이 아니던가?
소장이 벌떡 일어났다.
“에라이, 이 양반아. 벼룩의 간을 빼 먹어도 유분수지. 한 개도 손해 안 보겠다는 거 아녀. 시방!”
지금 내 공사 진행하기도 간당간당하다고요. 그리고 남의 집 귀한 자식 데려와서 공으로 일시키냐!
“안 된다고요?”
“그려! 시방 콩 한 쪼가리라도 노나 먹어야 할 판국에.”
“어쩔 수 없네요.”
“…….”
소장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최초의 협상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
“필립한테 전화해야겠네. 못 하겠다고!”
“어허. 어허! 한당께. 한당께. 누가 안 한다고 혔소? 그 전화기 내려놓으시랑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