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60화
팀 과제(3)
한석이 말을 꺼냈다.
“선배님, 다른 팀들은 뭐 하기로 했는지 아세요?”
“그걸 내가 알아야 하냐?”
녀석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당연히 알아야죠. 경쟁인데요.”
다음 말을 안 하고 눈알을 굴리는 게 물어보라는 눈치였다. 넘어가 줬다.
“그래! 뭐 만들던데.”
“다른 팀들은 딱히 주목할 게 없는데, 준우팀은 달라요. 부석사 무량수전을 만들고 있대요.”
의외였다.
무량수전이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며,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이 돋보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 구조의 아름다움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무량수전을 제대로 만들기는 어려울 텐데? 시간도 촉박할 거고, 그런데 그걸 만든다고?”
“네, 목공예과에서 사람을 불렀다는 소문이 있어요!”
전통 건축이라면 환장하는 한 교수가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러면 돈 주고 학점 사는 거랑 뭐가 다르냐?”
“그래서 애들이 쉬쉬하고는 있는데, 분위기가 안 좋아요.”
당연하지 않을까?
누구는 손가락 베이면서 만들고 있는데, 누구는 편하게 돈질한다고 하면.
‘결과는 좋겠지. 돈값을 할 테니까.’
하지만 상대가 한 교수라면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한석아, 우리 할 일도 바쁘다. 신경 꺼라.”
“네, 선배님.”
그래도 경쟁인데, 어쩌고저쩌고 하는 한석이의 소리가 들린다.
“캐드 배우기 싫다고?”
그제야 한석의 입이 다물렸다.
***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교수가 들어왔다.
“수업을 시작하지. 다들 과제를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교수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과제를 살피던 한 교수의 눈이 우리 팀의 텅 빈 책상에 닿았다.
“너희 과제는 어디 있어?”
손가락으로 쓱 교실의 맨 뒤를 가리켰다. 그제야 한 교수의 눈에 검은 천에 싸인 거대한 박스가 보였다.
“저게 너희거야?”
“네, 저희 작품입니다.”
“뭘 그렇게 꽁꽁 싸매놨어? 비밀이냐?”
“네, 아직은 비밀입니다.”
“훗. 좋다. 자네 의견을 존중해서 맨 마지막에 보도록 하지. 맘에 안 들면 F야. 알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교수님.”
“좋아! 기대해 보지.”
한 교수는 학생들의 과제를 보면서 하나하나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에 부연 설명을 해줬다.
“흠. 벤딩 모멘트 때문에 여기를 보강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다른 부자재를 사용할 생각은 못 했나?”
한 교수는 9개 팀의 질문과 설명이 모두 끝나고, 우리 자리로 왔다.
교수가 지휘봉으로 책상을 치며 말했다.
“자, 자. 마지막이다. 집중! 나는 솔직히 이 팀에서 에펠탑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었다. 올려봐.”
민수와 한석이 거대한 박스를 들고 와서 책상에 올렸다.
한 교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중간 심사할 때, 부서질 우려가 있다며 안 가져 와서 많이 실망했었지.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게 제대로 만들었으면 너희 팀은 무조건 A+다. 벗겨 봐.”
한석이 책상을 두드리며 분위기를 잡는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민수가 책상 위로 올라가 묶어놓은 매듭을 풀었다.
사르르륵-
천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감춰져 있던 에펠탑이 그 베일을 벗었다.
투명 아크릴로 보관함을 만든 탓에 사방 어디에서든 그 모습을 관람할 수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교수가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
교실의 학생들도 그 크기와 정교함에 감탄을 토해냈다.
“우와! 진짜로 만들었네.”
교수가 학생들을 지휘봉으로 밀어내며 책상 앞에 다가섰다.
“잠깐만 비켜 봐라. 나도 좀 보자.”
교수는 바닥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기단에서부터 하나하나 올라가며 목재의 이음매를 보았다.
물론 콘크리트 구조물은 석고로 만들었지만.
“이거 정말, 자네들이 다 만들었어?”
한 교수의 말에 내가 답했다.
“네, 하지만 거의 민수가 만들었습니다. 구조 계산은 한석이가 거의 다 하다시피 했구요.”
“민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교수가 민수를 쳐다보았다.
그 틈에 눈치 보던 한석이 구조 계산 리포트를 잽싸게 교수에게 들이밀었다.
교수가 리포트를 한 장씩 넘기면서 보고 있다.
“기단부의 응력 계산, 좋아. 접합부도 잘 했네. 흠……. 꼭대기 층의 풍력저항에 대한 계산도 했네. 정말 한석이 네가 한 거냐?”
교수 체면에 ‘우리과 최고 농땡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나 보다.
“네, 형들 도움 좀 받기는 했지만요. 헤헤.”
칭찬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교수가 나를 보며 물었다.
“모형은 민수가 다 했고, 구조 계산은 한석이가 다했다.라…… 그럼 성훈, 자넨 뭘 했냐?”
“전. 이 보관함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뿐이냐?”
“그리고 총괄 지휘를 했습니다.”
교수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그리고 민수와 한석을 바라본다.
다시 에펠탑과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훗. 우리 과 최고의 샤이보이와 최악의 한량을 데리고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지휘를 했다? 좋아. 그건 내 인정하지.”
한 교수가 자리로 돌아갔다.
“제군들. 모두 눈높이를 책상바닥에 맞춘다. 실시!”
‘역시 교수라 다르군.’
학생들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쭈그려 앉으며 바닥 면에 눈높이를 맞췄다.
교수가 물었다.
“뭐가 보이는가?”
그때, 한 친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에펠탑 같네.”
“진짜네. 이렇게 보니까. 딱 에펠탑이네. 파리에 와 있는 기분인데?”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모두 모형을 만들었다. 각자의 수고가 더하고 덜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평가는 제군들에게 맡긴다. 지금 당장 프랑스에 갈수는 없지만 여기에 그것이 있다. 충분히 즐기도록.”
그리고 자신도 눈높이를 맞추면서 서서히 다가온다.
그리고 책상 앞에서는 고개를 쳐들어 첨탑의 꼭대기를 바라본다.
교수가 확인하듯 물었다.
“역시 잘 만들었군. 민수가 만들었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민수 녀석은 대답하지 않을 테니까.
“네.”
“음…… 역시. 그럴 수밖에.”
교수가 민수에게 물었다.
“이음매 부분에 본드가 떡이 진 부분이 하나도 없던데, 어떻게 처리했나?”
민수는 나와 한석을 보더니 대신 대답해 줄 기미가 없자 스스로 입을 열었다.
“큰 부재들이 이어지는 조인트 부분은 반턱맞춤으로 이었습니다.”
“호, 반씩 깎아서 재료들을 이었고, 그 사이에 본드를 넣음으로써 본드가 보이지 않게 했다?”
“네.”
“그럼 다른 부분들은? 입체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그런 방법으로 안 될 텐데.”
“나머지 부분들은 하중을 크게 받지 않는 부분이라서 굳이 강한 결합이 필요 없었습니다.”
민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반쯤 마른 돼지본드로 임시고정을 시키고, 이음매에 순간본드를 집어넣었습니다.”
한 교수가 아직 흡족하지 않은 듯 눈짓으로 계속해 보라며 민수를 추궁했다.
민수의 말이 이어졌다.
“주사바늘로 순간본드를 최소한으로 집어넣어 새어 나오지 않게 한 후, 돼지본드를 제거했습니다.”
교수가 민수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러고도 남은 부분이 있으면 알코올을 면봉에 묻혀서 닦아내었겠군. 그렇지?”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았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을 텐데 말이야.”
“성훈 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대나무의 아이디어도, 세부 디테일을 만드는 것도 모두 형의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한석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민수 선배, 나도. 나도.”
“한석이도 조금…… 도움이 되었습니다.”
“칫.”
한석이의 푸념이 들린다.
한 교수가 교단으로 가며 물었다.
“민수 군. 뿌듯하지 않던가?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간다는 것이?”
여전히 민수는 말이 없었다.
광대가 살짝 올라가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답 없는 끄덕임에 교수가 말했다.
“좋아. 앞으로도 계속 그래 줬으면 좋겠어.”
교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강단으로 향했다.
내 옆을 지나치며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치듯 말했다.
“성훈 군! 고생 많았다.”
한 교수의 한마디에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모여서 민수가 말했던 부분을 보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어쩐지 본드 똥이 거의 없더라.”
“엄청 하중받을 거 같은데, 단단해 보이는 이유가 있었네.”
“민수 손재주 좋은 건 알았는데, 야. 이건 완전 전문가 수준이네.”
“난 저 팀에 성훈이 형 있다 그래서 솔직히 망할 줄 알았거든.”
“근데, 민수 말로는 성훈이 형이 거의 주도한 거 같은데?”
“신문 봤지? 성훈이 형 3D 도사잖냐! 입체도 있는데, 못 만들면 바보 아니냐?”
“그래도 만든 게 대단한 거지!”
“야! 넌 현장 가서 네가 직접 만드냐? 지시하지! 바보냐?”
사실 민수는 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거대 아치와 트러스 부분의 이음부에서 대나무를 넓게 깎아서 하나하나 작은 아치를 넣었다는 것과 각 전망대의 아랫부분을 받치는 곳에도 그의 손길이 들어갔다는 것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밤이 새우도록 자랑을 해도 모자를 것이다. 노력에 대한 찬사를 받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민수는 그 보답을 받은 것 같았다.
미미하게 떨리는 광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수줍음 많은 녀석!’
교단으로 올라선 교수가 말했다.
“순위권의 들 만한 것들 몇 가지가 보였다.”
“준우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주심포양식을 정말 잘 표현했다. 그리고 기둥과 대들보의 아귀 부분도 잘 맞췄고 말이야. 또한 지붕을 분리형으로 만들어서 내부와 목구조의 디테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대단했다.”
준우를 포함한 네 명이 박수를 치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한 교수가 물었다.
“어떻게 만들었나?”
“네?”
“직접 만들었으면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구조를 썼는지 다 알 거 아닌가?”
“그게…….”
아무도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한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대답을 못 한다는 건 목구조에 대한 리포트도, 심지어 구조 계산도 직접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군.”
아무 말 못 하는 사인조를 보며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저번 주부터 미대생인 최민석 군이 우리 과 건물을 들락거리더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친구 할아버지께서 대목장 인간문화재이신 최명식 옹이시다.”
교수도 보고 듣는 귀가 있는데, 그걸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돈으로 학점을 사려는 치사한 놈들’ 하며 한석이가 통쾌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F. 불만 있으면 이의 제기해라.”
준우팀의 얼굴이 시커멓게 썩었다.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정수팀의 석굴암. 내부 디테일이 참 좋더구나.”
정석이를 포함한 네 명이 슬쩍 웃었다.
“좋은데. 그걸 정말 돌조각을 쪼개서 아귀를 맞춰 하중을 분산시켰다면 인정했을 것이다.”
한석이가 우리에게 소곤거렸다.
“쟤네들 만들다가 결국 실패해서 통짜 석고를 깎아내서 석굴암 무늬만 낸 거래요. 킥킥.”
‘그런데도 저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단 말이야? 대단하네.’
“누가 수업 시간에 킥킥거리나!”
준엄한 교수의 호통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훈팀의 에펠.”
교수가 말을 멈췄다.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한 학생이 이의를 제기했다.
준우였다.
“저 팀도 다른 사람이 만들었을 수 있잖습니까?”
교수가 말했다.
“증거 있나?”
“안 했다는 증거도 없잖습니까?”
교수가 우리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같이했나?”
누구보다 한석이 먼저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증인입니다. 아무도 우리 일을 거들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민수의 얼굴이 굳어 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인가?
원래 무표정한 얼굴이라 나 정도나 알지. 다른 사람은 그 표정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이 웅성거린다.
“민수가 말이 없어서 그렇지. 그런 짓 할 애는 아니거든.”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민수도 그런 줄 아는가 보지? 재수 없네. 저 새끼.”
“우리도 민수랑 팀 작업 해봐서 알 거든. 그런 짓 할 녀석은 아니다.”
모두가 무관심한 것 같아도 그가 모르는 곳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편들어 줘서 기분이 좋은 것인지, 민수의 입술이 살짝 삐죽거린다.
‘좋으면 좋다고 하고, 고마우면 표현을 할 것이지. 자식이. 수줍어하기는.’
타고난 성향을 어쩔 수는 없다. 차차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저래서 나중에 건축가가 되어서 자기 설계안을 제대로 브리핑이나 할지 걱정이 되기는 한다.
‘내 차례군. 한 교수와 거래를 하려고 했던 건데. 어쩔 수 없지!’
교단 옆에 있는 컴퓨터에 CD를 집어넣었다.
“저건 뭐지?”
“민수잖아. 어! 에펠탑 만드는 과정이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각자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시 한 번 준우 팀의 얼굴을 썩어 들어갔다.
‘곱게 승복할 일이지. 쯧쯧.’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직 3개 더 있는데, 볼래?”
한 교수가 지휘봉으로 교탁을 두드렸다.
“아직도 이의 있는 사람 말해!”
있을 리 없었다. 조용하다.
“그럼 박수로 마무리한다. 김성훈팀. 일등!”
짝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