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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58화 (58/427)

건축의 신 58화

팀 과제(1)

전화가 왔다.

이름도 듣지 못한 건축사 사무실이었다.

“무슨 용건이신지.”

-네, OO건축입니다. 도산 소장께 소개 받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엥. 소개? 이 사람들이…….’

“현상설계 건이면 전화 잘못하셨습니다. 당분간 일정 없습니다.”

나도 인간인데, 쉬어야 한다. 사흘 밤새우고 몸 축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해진 수명대로 사는 게, 내 이번 생의 소원이라고.’

-네, 현상설계 건이 아니라 건물 디자인에 도움을 좀 받을까 해서요. 도산 소장이 칭찬을 엄청 하더라고요.

“당장 급한 일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럼 다음에 연락 주세요.”

‘디자인? 다음에 소장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지금 내 주변에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일을 맡기려는 사람 투성이였다.

***

한 교수의 설계 수업이었다.

“구조를 모르고 건축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구조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들어 봐야 한다면서 한 교수는 세네 명씩 팀을 짜고, 2주간 모형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학생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교수님, 2주면 너무 빡세다고요.”

교탁을 지휘봉으로 두드리며 교수가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런 고로 이번 모형 과제에는 부상을 걸도록 하겠다.”

성급한 학생 하나가 물었다.

“그게 뭡니까? 교수님!”

한 교수는 자신의 컬렉션 중의 하나인 ‘GA document’ 30권을 걸었다.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 출간된 유명 건축잡지였다.

학생들이 구입하기에는-권당 4만 원 정도 했으니-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눈에 총기가 돌았다.

“부상이 걸린 만큼 최선을 다해 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일등이라고 해도 내 맘에 안 들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이상!”

한 교수는 자기 맘에 들어야 한다는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엄포를 놓고는 교실을 나갔다.

교수가 나가고 아까부터 울리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도산건축사무소의 과장이었다.

“과장님, 왜요? 현상설계건 다 끝났는데.”

-서류 제출하는데, 수정할 게 하나 있네, 오늘 넘겨야 되는 거다. 급해. 빨리 좀 와 줘!

‘끙. 내가 음료수 얻어먹은 정이 있어서 간다.’

전화를 끊고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과대가 불렀다.

“성훈 선배, 팀 짜야 되는데, 어디 가세요.”

“미안하게 됐다. 약속이 있어서. 누구라도 상관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좀 짜 주라.”

다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 결정이 나를 그렇게 골머리 아프게 할 줄은 몰랐었다.

***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하여 3명이었다.

나 93학번, 최민수라는 94학번, 김한석이라는 97학번.

“민수야. 한석이 늦는다고 연락 왔었냐?”

내 말에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김한석. 이 자식! 지가 약속 시간을 잡아놓고는! 남의 시간을 날로 먹어?’

한석이라는 녀석은 별명이 건축과 꼴통이었다.

수업 시간 대출은 보통이고, 그 시간에 여자들 만나러 다닌다고 정신이 없는 놈이었다.

전화를 하려는데, 문이 열렸다.

한석이었다.

우리 둘의 얼굴을 보고는 뒤통수를 긁으며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내 나이가 있어 어른스러운 대처를 하고 싶었지만 넘치는 혈기는 생각과 다른 말을 했다.

들고 있던 책을 덮었다.

“야! 김한석.”

“네? 선배.”

“약속 시간, 네가 정한 거 아니냐?”

“예, 맞는데요.”

“제 시간에 맞춰 왔냐?”

시계를 힐끗 보더니 히죽대며 말했다.

“에이, 선배 겨우 10분인데, 뭘 그러세요?”

“…….”

팔짱을 낀 채 아무 말 없이 녀석을 째려봤다.

제 시간 아니라고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개념 없는 녀석을.

“저…… 선배님. 앞으로…….”

한석의 말을 끊었다.

“됐고! 앞으로 약속 시간에 늦으면 팀에서 뺀다. 싫으면 지금 말해. 내가 빠질 테니까.”

“선배, 이번에 모형 만드는 거라서 혼자서 힘드실 건데요.”

“흥. 팀 해체되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않냐?”

어물거리는 한석에게 딱 잘라 말했다.

“하나만 확실히 한다. 늦으면 뺀다. 난 약속 시간 어기는 인간을 진짜 싫어한다.”

시간을 훔치는 것은 돈을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다. 보상이 불가능하므로.

녀석은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안 늦을게요. 민수 선배, 안녕하세요.”

민수는 힐끗 얼굴만 보고 인사도 겨우 하는 듯 마는 듯하고 다시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아, 어쩌냐! 앞날이 캄캄하네.’

일주일 만에 끝낼 수 있다면 후딱 끝내 버리겠건만 그런 과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2주는 해야 할 텐데…….’

시간이 아까워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모이자고 한 안건이 뭐냐?”

“그게 저. 과대가 뭐 만들지 정해서 올리라고 하더라고요. 선배님들 생각은 어떠신지 싶어서.”

민수를 힐끗 쳐다봤다.

‘대답을 바라기는 무리겠지.’

녀석은 아까 날 만났을 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석에게 물었다.

“넌 뭐 생각해 온 것 있냐?”

“네? 전 선배들 말 듣고 따라가려고 했는데요.”

훅 하니 가슴을 치고 오르는 짜증!

‘그럼 그런 안건은 전화로 미리 말하든가! 생각이라도 해서 오게.’

안건을 알고도 아무 생각 없이 온 이놈은 또 뭐냐?

대책 없는 후배가 아닐 수 없었다.

안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바쁜 와중에 용건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 물어볼 사람은…….

“민수, 넌 만들고 싶은 거 있냐?”

이젠 아주 귀찮다는 듯이 고개도 안 돌리고 머리를 흔든다.

이 녀석은 히키코모리냐?

’아오, 빡쳐!’

이건 ‘다다익선’ 명장 한신이 와도, ‘지피지기 백전불태’ 지장 손무가 와도 이 멤버로는 안 되겠다.

한석에게 물었다.

“네가 팀 대표지?”

“네? 아뇨? 그냥 형들 불러 모을라고 전화 한 거지. 전 그런 거 안 해요.”

책임질 일이라고 있을까 봐서 잽싸게 손을 내젓는다.

“그럼 민수 네가……. 아니. 내가 팀 인솔한다. 잘 따라와. 알아들었어?”

화는 내지 않았지만 내 살벌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막내 녀석이 잽싸게 대답한다.

“네, 선배.”

끄덕.

둘에게 물었다.

“인상적이었던 건축물 있으면 얘기해 봐라.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판단해 보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에 잠겼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그 구조미를 살릴 수 있는 것.

‘전생에선 뭘 했더라. 아! 간사이국제공항을 했었지. 해볼까?’

전생에서는 ‘아크릴 바(Bar)’ 몇 개로 공항의 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심축을 잡고 나머지 작은 부재들은 작은 아크릴과 순간접착제로 트러스구조를 만들면서 마무리했었다.

그것도 시간이 간당간당하게 마감을 맞췄었는데, 이 멤버로는…….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구조미 하니까 생각이 났을 뿐이고, 해보고 싶었다.

이번이 아니면 평생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에펠탑 아냐?”

한석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에이,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선배도 참!”

“그걸로 가자.”

“네!”

그럴 줄 알았다.

대뜸 대답하는 한석을 보며 얼마나 건축에 대한 상식이 없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말에는 그 낱말의 뜻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에펠 탑은 프랑스 교량 기술자 구스타브 에펠의 작품이며, 1889년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 만국박람회의 기념탑으로 세워졌다.

완공 당시 프랑스의 파리지엔들이 파리의 경치를 해친다고 해서, 철거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할 정도로 흉물로 평가를 받았다.

원래 20년 후,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통신 탑의 용도로 사용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지금은 파리의 명물로 남아 있다.

1930년, 뉴욕에 크라이슬러 빌딩이 생기기 전까지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7,300톤의 철로 만들어진 이 탑은 18,000여 개의 철골자재와 50여만 개의 리벳으로 조립되었다.

그 외에도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면 밑도 끝도 없이 많을 것이다.

파리에서 그 구조물의 위용을 보고 얼마나 감탄을 했던가!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300m 이상 쌓아올렸다니.’

나는 도전을 하고 싶었다.

학교생활에 기억에 남을 만한 결과물은 만들고 싶었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해볼 가치는 있어.’

자잘한 작은 자재를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철골자재들만 한다고 해도. 개수 측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순한 트러스 구조의 누적으로만 만들어진 에펠탑이니, 구조미만큼은 세계 최고라 하겠다.

‘한 교수가 제시한 기준에 이보다 딱 맞는 구조물은 없어.’

욕심이 앞을 가린 것인지, 아니면 건축구조에 대한 욕망이 나를 지배했는지 나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하중의 크기와 힘의 방향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물이 또 있을까?

삼각형은 가장 안정적인 구도이며, 또한 가장 강력한 구조라고 말한다.

그 단순한 트러스의 수많은 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에펠탑이었다.

‘난관은 있겠지만, 이걸 하고 나면 얻는 게 더 클 거야.’

그렇게 나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기로 했다.

내가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해도, 두 손 들어 말렸을 것이다.

이 히키코모리와 소문난 꼴통 이 인조를 데리고.

둘의 얼굴을 보다가 교실 천장을 보며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완성한다는 데 의의를 두자. 한 교수에게서 부상을 타 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겠지. 허 참.’

에펠탑에 대해서 조사할 것들을 나누고, 각자의 분량을 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특히 너 꼴통. 제대로 안 해오면 죽을 줄 알아. 엉!”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자꾸 옛 모습이 나오게 만드네.’

지난날, 힘겨운 삶을 살면서 건축에서 멀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전생의 이맘 때, 간사이국제공항을 만들면서, ‘렌조 피아노’가 왜 이런 구조를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지.’

직접 만들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많았다.

둘과 헤어지고 나서 교수실로 갔다.

“교수님, 저 이번 팀 작업 혼자 할 수도 있습니다.”

“왜? 뭐 때문에?”

한 교수는 화들짝 놀라면서 내게 물었다.

‘왜 한 교수가 저렇게 과민반응을 하는 거지?’

아까 있었던 일을 말했다.

“저런 애들이랑 어떻게 과제를 해요. 한 녀석은 히키코모리, 나머지 한 놈은 꼴통.”

“야! 물살 맘대로 결정하냐? 그걸?”

“그럼 어떡해요. 이러다간 과제고 뭐고 제가 먼저 화병 나서 죽을 것 같은데요.”

“안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 인간아.’

이건 분명히 뭔가 속셈이 있는 거였다.

한 교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교수님, 속셈이 뭡니까? 솔직히 말씀하세요.”

딴 소리 못 하도록 못을 박았다.

한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큼…… 성훈아. 민수가 어떤 애인지 아냐?”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한 교수는 사실을 토해냈다.

“너 대목장 최기형 옹 알지?”

“당연히 알죠. 어떻게 몰라요?”

대목장, 그러니까 전통 건축을 짓는 것에 관련된 장인을 대목장이라고 한다.

그는 무형문화제 대목장에 지정된 인물이며, 현재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대목장 중의 한 분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건축의 길 중, 큰 줄기는 전통 건축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한 교수가 말했다.

“그분 손자다.”

“예? 그런 애가 여길 왜 와요?”

그 가업을 이어서 하면 될 일이지, 뜬금없이 건축과냐? 전통 건축이나 공예과도 아니고.

“모르지. 집안 사정이 있는 것 같아. 그런 것까지야 내가 알겠냐?”

“쟤가 여기 있으면 대목장은 누가 전수 받아요?”

“장남이 이어 받겠지. 민수 아버지는 차남이시래.”

하지만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든가?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하하. 네가 원하는 건 인맥, 내가 원하는 건 전통 건축. 민수 하나 잘 잡아서 손해 볼 건 없잖냐?”

‘반대로 말한 거 아닙니까? 교수님!’

“허허허. 그래서 제자를 미끼로 사용하시겠다 이 말씀이세요?”

“뭐, 어차피 능력 있는 놈. 이럴 때 안 써 먹으면 언제 써 먹냐? 너 몸은 젊어도, 생각은 중늙이잖아. 땡기지?”

“땡기긴 뭐가 땡겨요. 안 해요. 못 해요.”

한 교수에게 짜증을 부렸다.

‘이 인간은 뭘 할 때 상의를 하는 법이 없어. 베를린 건도 그렇고.’

그리고 마음 안 맞는 셋이 할 때보다 혼자 할 때가 편한 법도 있다.

“좀 부탁 좀 하자. 어떻게 엮을 건덕지가 있어야 나도 그분한테 얼굴 한번 비출 거 아니냐? 응?”

한 교수에게 따졌다.

“그럼, 일부러 민수랑 엮으신 거예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쳇. 일부러는 무슨! 팀 다 짜고 나니까. 딱 세 명 남더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네 세 명이랑은 아무도 안 하려고 하더라고. 넌 개날나리, 민수는 히키꼬모리, 한석이는 꼴통!”

“…….”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개날나리라니!

20년 만에 듣는 별명이었다.

“왜? 과대 불러줄까? 대질시켜 줘?”

“아뇨. 됐어요.”

“팀 선정 과정에서 꼼수 부린 건 없어. 그냥 팔자려니 해!”

아직도 개날나리라는 별명을 들어야 하다니. 힘이 축 빠졌다.

“네, 알았어요.”

“제대로 안 꼬시면 학점 박살 날 줄 알아.”

‘민수가 여자냐? 꼬시게.’

차라리 여자라면 쉬울 텐데. 민수에게는 들이댈 게 없었다.

한 교수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휘두르며 나를 압박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학점에 투영할 수 있는 인간이 한 교수였다.

‘전생엔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쩝.’

한 교수가 내준 두 가지 숙제가 하나로 줄었다. 그 하나가 두 배로 어려워서 문제일 뿐.

‘한석이 녀석은 어떻게 어르면 될 것 같은데, 민수는 영 자신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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