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57화
도산 건축 소장(6)
지금은 일요일 밤이다.
마감은 월요일 정오!
드디어 내일이면 이 고된 작업이 끝난다.
‘진짜로 한번 불태워 보자.’
이건 내 결심이다.
소장은 자기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72시간을 쉬지 않고 고군분투했으니.
“소장님, 이대로 가실 겁니까?”
“이제 더 어떻게 할 것도 없다. 우리가 할 건 다했다.”
“후면 디자인 조금만 더 손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너 그런 거 잘하잖아. 뭘 해도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알아서 해!”
‘당신이 결정권자거든요. 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그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다.
내가 할 작업은 이미 끝났다.
모델링도, 매핑도, 렌더링까지!
“몰라. 몰라. 과장이랑 의논해 봐! 난 내일 설명해야 된다고.”
소장이 짜증을 부렸다.
40대 중반!
이제 관록이 조금씩 생기고, 인생의 단물 쓴물을 어느 정도 가릴 줄 아는 나이다.
스스로의 사업을 생각할 나이이고, 일을 알고 열정적일 나이이건만.
따라주지 못하는 몸을 어쩌랴!
누굴 비웃을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 저 모습이었으니.
일에 녹초가 된 파김치.
가족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지고, 욕설과 비난의 콜타르 위를 걸어가야 한다.
한 발만 삐끗하면 그 오물을 온 가족이 뒤집어쓰게 된다.
사랑하는 딸이, 귀여운 아들이.
이제는 과장을 붙들고 늘어졌다.
책상에 앉아서 면벽수련이라도 하는 양 퀭한 눈으로 모니터만 보고 있다.
윈도우 98 화면 보호기만 그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비몽사몽이겠지.
정신없는 과장을 붙들고, 교실동 후면의 디자인을 변경했다.
‘사실 그렇게 눈에 확 띄지는 않겠지. 하지만 두고두고 사용하면서 그 가치를 알게 될 거야.’
가우디의 작품들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천주교 쪽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고 한다.
‘하긴 그런 천재를 모시지 않으면 누굴 모시겠어.’
나는 가우디만큼의 독창적인 천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디자인에 대한 책임감은 가지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지겨운 벽은 오래 남지 못하지.’
나는 교실동의 후면 벽에 나만의 장난을 쳤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은근한 아름다움을.
***
드디어 패널 작업까지 끝을 마쳤다.
지금 나는 피폐하다.
정신과 육체가 말도 못 하게 부서졌다.
부스스한 얼굴에 떡이 진 머리, 눈 밑의 다크서클.
사흘 동안의 밤샘 전투의 결과였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소장이 말했다.
“성훈아, 수고했다. 이건 충분히 당선될 거다. 못 시키면 그건 내가 잘못한 거겠지.”
소장은 마무리된 작품을 상당히 맘에 들어했다.
내가 아는 소장이라면 그에 걸맞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입은 뭐 같아도, 일은 제대로 하는 인간이니까.’
소장은 어느새 면도를 끝내고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었다.
그도 이제 진짜 전투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전투!
소장의 등을 떠밀었다.
“전 좀 씻고 바로 시청으로 갈게요. 꼴이 말이 아니네요.”
“흐흐. 그래. 네가 한 일이니까. 결과도 봐야지. 그럼 나는 최 과장하고 출력해서 바로 간다. 거기서 보자.”
***
다른 건축사들의 설명이 끝나고 그의 차례가 왔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가 지휘봉을 들고 자리에 섰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건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패널의 도면과 사진들을 짚어가며 설명을 했다.
“이곳이 우리 사무소에서 가장 강조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하는 공간.”
심사위원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자리에는 교육청 관계자들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발주하는 것이니 관심을 보였던 모양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나라의 보배입니다. 상상력이 빈약한 아이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교육감 선거에 나간 것처럼 아이들의 미래를 말했고, 교육에 대해서 말했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아이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지휘봉으로 물결치듯 가우디의 곡선을 가로질렀다.
“이 놀이터에 저는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후면 벽에 장난쳐 놓은 것은 또 언제 봤는지 그것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그저 벽돌로만 된 밋밋한 벽이라면 몇 년 만 지나도 지겨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후면 벽을 이렇게 장식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수십 년 후에 다시 학교를 찾았을 때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모자이크처럼 요철무늬를 넣어 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단조로움을 없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내가 이렇게 이 학교에 신경을 썼다고요. 꼭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요. 심사위원님들!’
이런 의미였다. 물론 그는 센스 있게 잘 설명했다.
그런 소장의 어필은 심사위원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
설계 경기는 도산건축사 사무소의 승리로 돌아갔다.
심사위원들과 함께 사무소 식구들이 사진을 찍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와 정희를 소장이 손짓으로 불렀다.
“뭐해? 이리 와. 일등 공신이 거기 있으면 어떡해!”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소개를 시켰다.
“우리 조감도에 있는 사진 전부 이 친구가 그렸습니다. 잘 그렸지요.”
너스레를 떨면서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심사위원들에게 나를 각인시켰다.
‘햐. 정말! 이런 건 또 귀신같이 챙기네.’
자신이 나를 이렇게 챙기고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나에게 각인시키다니!
이런 게 관록이라는 건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 달리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
작은 신문사들에서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취재를 해갔다.
건물의 개념과 함께 그 건물에서 하고 싶었던 주된 메시지 등등.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이 건물을 얼마나 멋있게 설계했는지 구구절절이 늘어놓았다.
공간이 어떻고, 어떤 방식으로 구획을 했으며 얼마나 동선에 신경을 썼는지.
가우디의 구엘 공원을 어떻게 재해석을 했으며, 이것이 이 초등학교의 랜드 마크가 될 것이다. 등등.
그래 봐야 알아서 편집당하겠지만.
취재까지 끝나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더 이상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은 정희밖에 없었다.
정희가 말했었다.
“오라방. 난 야근은 안 한다.”
“왜? 돈 더 줄게.”
“피부 상한다. 안 해!”
‘넌 출세는 다 글렀다. 이것아!’
싫다는 녀석을 붙들 수가 없었고, 그 결과 정희가 나를 태우고 집으로 가고 있다.
쿨. 쿨-
***
그날 밤. 우리는 다시 모였다.
소장의 호출이었다.
“다들 수고했는데, 술은 한잔해야지. 다 나와!”
나? 나는 안 갔다.
‘내가 거길 왜 가? 볼 거 다 보고, 돈 다 받았는데. 내가 자기 직원이야?’
필요 없는 장소에 시간을 버릴 정도로 나는 한가한 남자가 아니었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안 오면, 소장 개지랄 할 거다. 제발 나와줘!’라는 과장의 부탁에 결국 나가고 말았다.
한우 불고기 집에서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모두 배부르게 먹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데 소장이 나를 잡았다.
“우리 술이나 한잔 더 하자.”
“소장님, 많이 취하셨네요. 저도 이제 갈랍니다.”
“어허이! 어른이 붙잡으면 엉,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올 줄도 알아야지!”
버리고 갈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두고두고 돈줄이 될 건데. 쩝.’
돈인지 인정인지 몰라도 그와 함께 막걸리집으로 따라갔다.
“여기가 내 단골이야. 내가 여기 15년 전에 사무실을 내놓고, 계속 여기서 술 먹었거든. 끅!”
처음 보는 그의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설계 경기에서 당선이 되었던 만큼 승리감에 도취되었던 모양이다.
술에 취한 그가 말했다.
“성훈아, 거기 앉아 있던 사람들. 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경쟁했을 것인가?
적자생존이 아닌 강자독식의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그 사람들한테 말로 설득하려고 하면 큰 코 다친다.”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일 되면 생각이나 날까?’
그 정도로 그는 만취해 있었다.
“나도 당신하고 비슷한 레벨이다. 하면서 다가가야 한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도 당신만큼 알고 당신만큼 소양이 있는 사람이다. 어필해야 한다! 이 말이다.”
그의 설교는 이어졌다.
“그 사람들이 잘 아는 게 뭐겠냐? 우리처럼 건축을 알겠냐? 모른다. 공간이 어떻고, 이게 왜 좋고, 설명해도 모른다. 절대로 모른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공자 왈 맹자 왈이 훨씬 잘 먹힌다.”
화장품이 필요한 사람한테는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예뻐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어떤 화학제품이 들어가고 어쩌고저쩌고 전부 헛소리다.
그런 전문적인 백 마디 말보다 당신이 원하는 건 이거다. 그들이 아는 말로 설득하는 게 훨씬 빠르다.
소장이 말했다.
“내가 우리 직원들 도면 그릴 때, 책상에 않아서 책 보는 거 봤지?”
“네, 항상 책을 보시던데요.”
“그거, 공부하는 거다. 인문학 공부, 교육학 공부.”
약간 의외였다.
저 혼자 잘난 줄 알고 오만하게 큰소리치던 사람이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나도 성공하고 싶다. 남들 안 부럽게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그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아깝더라. 한 500만 원 정도 생각했었거든.”
큭! 그랬던 거다.
전생의 그는 500만 원으로 타협을 볼 요량으로 처음에 300만 원을 불렀던 거다.
전생의 내가 좀 더 담대했었다면, 내 가치를 좀 더 높이 봤었다면 500만 원에서 줄다리기를 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순진했었고, 그 모습이 소장에게는 봉으로 보였던 것이다.
“허.”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의 나는 소장의 마지노선을 부수고, 2배의 금액을 불렀다. 최종적으로 3배의 금액을 받아냈다.
그런데도 그는 승낙을 했었다.
‘소장은 과연 나를 어떤 사람으로 봤을까?’
그 대답을 소장이 해줬다.
“그런데 너라는 놈, 만만찮더라.”
사발을 들어 또 한 잔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새파란 친구가 1,500만 원을 부르는데, 접을까 했었다. 말이 되냐? 1,500만 원이 뉘 집 애 이름이냐? 그런데 거기서 500만 원을 자르더라. 상여금으로 달라고. 너. 사람 잘 후려치더라. 나이도 어린놈이. 그래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배짱은 좋은데, 실력도 그만큼 되는지 보자. 오기로 나도 질러 버린 거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지금은 어떠십니까? 손해 보신 기분입니까?”
“흐. 손해는! 그럼 내가 너 데리고 여기 왔겠냐? 우리 사무실 직원들도 한 번도 안 데리고 왔는데.”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김성훈이. 너한테는 1,500만 원 하나도 안 아깝다. 대답이 됐냐?”
딱딱한 나무의자를 툭툭 치며 나를 불렀다.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고맙다. 성훈아. 담에 또 하게 되면 우리 사무실만 해주라. 딴 데 가면 안 된다.”
그가 누가 들을 새라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어깃장을 놓았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너! 우리 사무실에 디자인 실장으로 안 올래? 월 500만 원 줄게.”
“싫거든요. 소장님!”
“왜? 그 정도 대우해 주는 데가 있는 줄 아냐? 대기업 가도 그 정도 안 준다.”
“그냥 ‘건 바이 건’으로 할랍니다. 필요하면 불러주십시오.”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분명히 투시도 안 해도 될 일도 하라고 할 거면서.’
딱 잘라 선을 긋는 나의 말에 소장이 투정을 부렸다.
“에이, 더럽게 비싼 놈. 담에 할 때도 그 이상은 안 돼! 절대 안 돼! 알았지!”
가격을 낮추자는 말은 입에도 담지 않았다.
내 입에서 ‘하기 싫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을까?
지금…….
전생에서는 나를 봉으로 여기던 그 소장이, 지금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금액을 높이 부른 것?
일을 하면서 맺고 끊음이 확실했던 것?
사무실의 곤란함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것?
시키지 않은 것에도 디자인을 넣으며 일을 주도했던 것?
무엇이 정확히 그 계기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것들 중의 하나라도 없었다면 과연 그는 나를 제대로 대우해 줬을까?
예전의 그날처럼 300만 원을 받고 딱 부러지게 일했다면 지금처럼 나를 귀하게 여겼을까?
이렇게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와서 술을 먹일 정도로?
300만 원을 주었다면 딱 300만 원의 기대치를 가지고 나를 바라봤을 것이다.
1,000만 원이었기에, 눈동자를 초롱거리며 나를 지켜봤을지도 모른다.
‘이놈이 정말 1,000만 원의 값어치를 할 것인가?’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 이것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이 불러주는 금액이 아니라!’
그와의 거래 이후, 나는 일의 규칙을 만들었다.
돈의 가치란 상대적이며 나와 일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십만 원이든 일억이든 한 시간이든 일 년이든.
내가 받아야 할 금액만큼 부른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지불한 금액만큼 일을 해준다. 그 이상 일하지도 않는다.
대신 금액을 지불한 사람이 더 받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까운 마음에 속상하지 않고, 이득을 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여전히 내게 나쁜 사람이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오만하다.
그는 충분히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고, 그 지위를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자상한 아버지고,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아들일 것이다.
소장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한 공부를 아직도 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공자’와 ‘맹자’를 고리타분한 성현들의 말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심사위원들을 설득했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건축이 아닌 설계 의뢰자의 취향을 고려하여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전생의 나는 과연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김성훈, 너는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네가 바라는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는가?”
또 물어본다.
“너는 바로 가고 있는가? 돈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얻어가고 있는가?”
이 물음이 끝날 때는 내 인생의 마감 날일 것이다.
설계의 완성은 마감에서 결정된다.
잘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