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56화
도산 건축 소장(5)
소장에게 물었다.
“소장님, 스페인 가 보셨어요?”
“뜬금없이 스페인은 왜?”
“얼마 전에 바르셀로나에 갈 일이 있어서 구엘 공원을 둘러봤습니다.”
가우디의 동화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곳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이다.
나는 그곳에서 콘셉트를 가져왔다.
“진짜? 정말이냐?”
지금의 일과는 아직 연관이 없음에도 소장을 비롯한 사무소 식구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부러움의 눈빛이었다.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고,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소장이 물었다.
“갑자기 웬 구엘 공원? 그게 왜?”
“네, 곡선으로 된 구조물에 타일 조각으로 마감되어 있죠.”
왜 뜬금없이 가우디의 걸작을 얘기하나 싶었을 거다.
딱 그 표정이었으니까.
“여기 운동장 빈자리에 하나 만들죠. 비슷한 걸로!”
이 사람들도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위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하면 동화적인 상상력이 떠오르죠. 타일로 된 도마뱀하며 직선이 아닌 곡선의 벤치.”
“그렇지. 가우디하면 구엘 공원하고 파밀리아 성당이지.”
소장도 내 말에 답을 하면서도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묻는 표정이었다.
구엘 공원은 직선 없이 곡면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기계로 만들 수 없는 하나하나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다.
그만큼 신비로울 수밖에 없다.
기계로 가득 찬 차가운 세계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빛을 내뿜는 곡면의 세계였다.
직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우디만의 세계.
추측일 뿐이지만 바르셀로나시의 수입 중 적어도 십분지일 정도는 관광수입에서 나오지 않을까?
사실이라면 바르셀로나의 시민 중 그만큼의 수는 가우디 때문에 먹고사는 것이다.
천재 건축가 한 명이 후세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 한 영원할 것이다.
난 소장이 여기까지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실제로 가본 사람과 사진으로만 접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나는 것일까?’
나는 한 번 더 설명해야 했다.
“그 공원을 거닐면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이곳에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옛날에는 학교에 기린이나 코끼리 같은 거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서 학교에 놔 뒀었잖아요. 그거 비슷한 거죠.”
“그러니까 자네 말은 아이들의 동심을 살릴 수 있는 ‘구엘 공원’을 운동장에다가 집어넣자. 그거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건물들은 모두 직선이잖아요. 그런 와중에 곡선으로 된 놀이터가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작더라도 눈에 띄고, 전체적인 배치에서 균형이 맞지 않을까 하는데요.”
결국 내 말을 이해 못 한 소장이 폭발했다.
“야! 이 친구야. 그게 말이 돼?”
오히려 짜증을 버럭버럭 내며 말을 이었다.
“4층짜리 교실동하고 체육관이 얼마나 큰데! 그걸 고만고만한 타일 쪼가리로 균형을 맞춘다고? 허 참!”
소장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럴 거면 나가서 일이나 해!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으로 보여?”
소장의 짜증이 점점 짙어갔다.
그때, 과장이 나섰다.
“소장님, 그럴듯한데요?”
“뭐야! 너까지 더위 먹었냐? 말이 되냐? 몇 층짜리 건물도 아니고, 단층도 안 되는 놀이터로 균형을 맞춘다고.”
“그게.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데요.”
“말로도 설명을 못 하는데 뭐로 설명할래? 실제 건물 지어놓고 설명할까? 엉!”
내 편을 들어주려던 과장이 짜증의 폭탄을 맞았다.
말로는 설명이 어려울 것 같았다. 공간을 말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소장의 짜증을 말리며 말했다.
“잠깐만요. 소장님!”
“아! 또 왜? 이것들이 단체로…….”
소장 앞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서 보여줬다.
이제 내 그림실력은 웬만하지 않다.
왜냐고?
르꼬르뷔제의 롱샹성당을 그릴 때, 그 성당 신부가 엄지를 척 치켜들었거든!
‘입장료 필요 없다고, 기증하고 가라고 떼쓰는 걸 떼어놓고 오느라고 애를 먹었었지.’
직각으로 날을 세운 교실동과 체육관, 그리고 그 반대편의 곡선의 놀이터.
‘같은 것으로 무게감을 대체할 수 없다면 전혀 다른 것으로 균형을 맞추면 되지 않을까?’
수십 톤의 철근과 동일한 무게를 맞추기 위해서는 꼭 같은 양의 철근이 필요한가?
새끼손톱만 한 다이아몬드 한 알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단위인 ‘무게’로는 비교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다른 차원의 단위로 놓고 봤을 때도 과연 철근이 압도적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에서 시작되었던 발상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지만, 그걸 그림으로 구현할 능력이 내게는 있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과장이 말했다.
“오오, 이거 괜찮은데요.”
“그러게요. 과장님. 저도 말로 들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그림으로 보니까. 딱 느낌이 오는데요. 성훈 씨. 굿!”
과장과 대리가 엄지를 척 들었다.
과장이 다시 감상을 말했다.
“햐! 그거 묘하네. 놀이터도 직선이면, 크기가 작아서 눈이 안 갈 텐데, 곡선으로 딱 돼있으니까. 눈이 확 쏠린다.”
과장의 말을 내가 이어받았다.
“무게감이 양 편에 골고루 실리는 것 같지 않으세요?”
“응. 응. 전혀 다른데 완전 균형감 있다. 죽인다. 역쉬 전문가는 다른데.”
과장이 한 눈을 찡끗하며 감탄을 했다.
이 안의 결정권자인 소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까지 소장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팔짱을 끼고 그림을 보면서도 뚱한 표정이었다.
‘맘에 안 들면 표현을 하라고. 나처럼 그림을 그리시든가!’
소장은 그 불편한 마음을 직원들에게 퍼부었다.
“야 이 병신들아! 학생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늬들은 뭐냐? 나이도 몇 살이나 더 처먹고, 배우기도 한참을 더 배운 것들이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엉. 월급 도둑놈들아!”
‘꼭 말을 해도 그딴 식으로 하냐. 인간아!’
가만히 있다가는 그 불똥에 직원들만 죽게 생겼다. 나 편들어준 사람들인데!
“소장님, 꼭 그렇게 생각하실 건 아니죠. 저야 얼마 전에 다녀와서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거예요. 가보셨다면 누구나 생각하셨겠죠. 기억에서 쉽게 지워질 게 아니거든요. 전 그런 느낌의 놀이공원을 학교에 만들면 좀 독특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소장은 결정을 해야 했다.
기분은 기분이고, 일은 일이니까. 그리고 이 설계의 끝에는 거금이 걸려 있었다.
“흥. 다들 괜찮다고 하니 뭐 어쩌겠어. 그걸로 해.”
“아뇨. 꼭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맘에 안 드시면 전 일하러 가겠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A4 용지를 집어 들었다. 그림이 그려진 종이 말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많다.
‘디자인은 좋은데, 네가 그려서 맘에 안 들어!’
인정하기 싫다는데, 굳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른 데 가져가면 된다. 인정해 줄 만한 곳으로.
탁!
채가려는 종이를 소장이 눌러 잡았다.
자존심 상하는 듯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 누가 맘에 안 든댔어?”
“맘에 안 드시는 것 같아서요. 저도 할 일 많아 바쁘거든요. 이거 놓으시죠. 소장님!”
종이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찢어지라지 뭐.
“맘에 든다고! 맘에 들어.”
다시 직원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맘에 안 드는 놈 손 들어! 최 과장 너야? 박 대리 네가 그랬어?”
지명당한 두 사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적 없다고요. 엄지 드는 거 못 보셨나 봐요?’라는 굉장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소장이 다시 나를 쳐다본다.
“봐. 다 맘에 든다잖아.”
내가 별로 대답이 맘에 안 든다는 낌새를 보이자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맘에 든다고. 맘에 들어. 이거 놔! 찢어지잖아.”
그림 그린 종이를 놓았다. 얼른 소장이 내 손길 닿지 않는 품속으로 그것을 챙겼다.
소장에게 말했다.
“우리는 타일 대신에 고무타일을 써야겠죠. 아이들의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그래, 그래. 오케이! 성훈이 안건에 이견 있는 사람?”
무슨 이견이 있겠냐만 꼭 직원들에게 확인을 해야 속이 시원한 소장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민주적이었다고. 쳇!’
이미 소장의 마음이 돌아섰는데, 이견이 있을 리가 있나!
모두의 머리를 어지럽히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소장은 안심한 얼굴로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금 말하면 되지 않을까?’
소장에게 아까의 수정 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요. 갑자기 튀어나온 생각이라서 계산 밖의 일이었거든요.”
“왜 또! 뭐가 문젠데?”
‘이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경기부터 일으키네! 고마워해야지.’
“수정하라고 하신 것과 이것 둘 중에 하나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물론 시간이 되면 둘 다 하겠습니다.”
소장이 과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최 과장! 그거 꼭 해야 되는 거야?”
“그거…… 소장님이 해야 된다고…….”
마뜩찮은 듯 과장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만! 뭘 사람이 이랬다저랬다 해! 꼭 해야 되는 거 아니라는 거네? 그렇지?”
“네.”
과장은 뭔가 억울한 듯했지만 소장의 윽박에 마지못해 수긍했다.
죄 없는 과장에게 소장의 면박이 뒤따랐다.
“과장이나 돼 가지고 말이야. 일의 우선순위를 몰라. 어찌 된 게!”
소장이 직원들에게 으르렁거렸다.
“니들! 오늘 한 일도 없으니까 구엘 공원 사진 보고 도면 그려서 성훈이한테 넘겨! 오늘 내로 끝내! 알았어?”
소장은 명령을 내리고는 약속이 있다면서 서둘러 나가 버렸다.
말이야 쉽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직원들만 죽어나게 생겼다.
직선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 곡선을 그리라고 하다니?
캐드로 그리면 되지 않느냐고?
‘어렵지. 많이 어렵지.’
규격화를 할 수 없기에 가우디를 따라 할 수 없는 것이건만!
머리칼을 뜯고 있는 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성훈 씨. 아까는 진짜 고마웠어.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거든. 자네 아니었으면 밤새 소장한테 욕먹었을 거야.”
그 와중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뭘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죠?”
가우디 전집에 있는 구엘 공원의 사진을 뒤적이며 과장이 말했다.
“야!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우리는 아무도 생각을 못 했는데.”
과장은 정말 놀라웠던 모양이다.
그런 과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요.”
과장의 모니터에는 구불구불한 라인들이 끝맺음되지 못한 채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던 과장은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렇지. 문제는 그게 아니지. 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당면한 과장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게 말이 되냐? 무슨 수로 그걸 그리냐?”
과장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주문이었다.
‘나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면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그런 걸로 욕먹고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과장님, 제가 모델링해서 단면도 떠 드릴게요. 그거 놓고 똑같이 그리세요. 어차피 심사위원들이 도면 보겠어요? 놀이터 투시도 하나 크게 뽑으면 그쪽으로 시선이 다 쏠릴 건데요.”
해결책을 내어놓자 과장이 반색을 했다.
“정말? 고마워. 성훈 씨. 나 그거 그릴 생각하니까 머리가 빠개질 것 같더라. 덕분에 살았어.”
그리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말했다.
“지금 하는 거 중지! 나중에 성훈 씨가 모델링한 거 본 떠준다니까. 그거 대고 그려!”
“진짜요? 그래도 돼요? 과장님! 아, 짜증나 돌아버리는 줄 알았네. 고마워. 성훈 씨.”
사무실 사람들의 감사 인사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뭘요. 제가 낸 아이디어 때문에 오히려 곤란하셨잖아요. 제가 다 민망하더라고요.”
어디를 가나 오너는 공공의 적이다.
과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소장이 저러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저 혼자 잘 났지!”
“그래도.”
“큭! 그래도 그 인간, 아무 말 못 하는 거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라.”
“…….”
“그리고 우리도 설계 당선되면 보너스 받을 건데. 잘되면 좋지 뭐. 잘 좀 해줘. 성훈 씨 손에 달렸어.”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소장, 저 인간. 말은 저따위로 해도 돈 가지고 장난은 안 친다. 그거 하나 보고 여기 있는 건데.”
과장이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다.
“공짜로 받아먹을 거냐? 넌 가서 커피 한 잔 빼오고, 넌 음료수 사 와. 얼른 안 움직여?”
사자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