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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49화 (49/427)

건축의 신 49화

현장감리(2)

며칠에 한 번씩 현장을 들르면서 진표와 친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그도 나도 어색함이 없었다.

진표와 마감 공정에 차질은 없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누가 들어왔다.

“진표야. 잘 지내냐?”

아는 사람인지 진표가 인사를 했다.

“네, 형님. 이제 외부 마감 하러 오셨나 봐요.”

“응. 사흘 후에 들어오라길래,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보러 왔다.”

진표를 툭툭 치며 물었다.

“형, 누구세요?”

“아, 예전 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분이야.”

“이렇게 먼저 현장을 점검하시다니 꼼꼼하신 분이신가 봐요.”

“응. 일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셔. 형님. 이리 앉으시죠.”

이런 공사담당자를 흔히 ‘십장(十長)’이라고 한다.

십장은 대략 10명 내외의 사람을 이끌며 공사의 한 공종을 담당하는데, 그 공종의 우두머리라고 하겠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 달라서 현장에서 들어오라고 하면 그 말만 믿고 인원을 투입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을 받고 직접 현장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볼 때 이런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투입되어야 할 시점을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인원의 누수가 발생하지 않고, 현장과의 트러블이 적다.

그리고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었다.

보통 대부분은 한 번 와보는 것이 귀찮아서, 현장 직원의 말만 믿고 냉큼 투입했다가 직원들은 파리를 잡고, 막걸리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하릴없이 하루를 공치는 경우도 많았다.

‘현장에서 하는 말을 절대로 100% 신뢰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는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자재 당장 밀어넣으세요. 몽땅 다. 네! 자재 창고 텅텅 비었어요.”

“인원 있는 대로 투입시키세요. 아! 선공정 손 털고 나갔다니까요.”

초보 시절에 순진하게도, 이 말을 믿고 자재를 밀어 넣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지하에 놓을 장소가 없어서 지상에 내려놓고는 비가 올까 노심초사를 했었다.

가구는 비 맞으면 쓰레기가 된다. 고물상에서도 가져가지 않는 폐자재가 된다.

그 뒤로는 현장 직원의 말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가보면 자재창고는 선공정이 쓰다 버린 잡자재로 가득 차 있고, 선공정 십장들은 기사를 욕하고 있다.

“김 기사, 창고 안 비우면 물건 못 들어와. 그렇게 알아!”

그렇게 엄포를 놔야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 기사들이다.

바쁜 거 알고 힘든 거 알지만 어쩌랴! 내가 죽게 생겼는데.

이 사람은 되게 꼼꼼한 사람으로 보였다. 사흘이나 전에 오고 말이다.

내가 얼른 일어섰다.

“커피 한 잔 타 드릴게요.”

셋이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중 석공이 말했다.

“외벽 공사 저걸로 할 거냐?”

“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는 무슨 우리는 그냥 있는 돌 가지고 시공하면 되지. 뭐.”

말을 얼버무리는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

‘커피 한잔하러 와 놓고는 우리는 그냥 하면 되지? 당연한 일을 말한다?’

진표가 물었다.

“형님! 혹시 돌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냐. 돌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그런데 형님 말씀하시는 모양이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진표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를 챘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왔다. 단지 말하기가 찝찝할 뿐이다.

“나는 말이지. 돌쟁이지, 건축 잘 모른다. 일만 하고 돈만 받고 가면 된다.”

그가 말을 끊었다.

“그런데 네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하면서 내 쪽으로 눈치를 준 모양이다.

“형님, 괜찮습니다. 어차피 알아야 될 일입니다.”

“너네 현장 입간판에 붙어 있는 사진, 그거랑 똑같이 만들라고 하는 거지.”

“당연하지요. 그거 하려고 붙여놓은 건데요.”

“그렇지. 내가 참…… 당연한 말을 했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라. 커피 한 잔 하고 간다고 했는데, 기다리겠다. 간다. 내일 모레 보자.”

“시공은 그다음 날 이잖아요.”

“그래도 그 전날 한 번 더 와봐야 확실히 사람을 몇 명을 투입할지 계산을 하지. 지금 하는 현장도 사람 모자란다. 임마. 하하.”

저렇게 꼼꼼한 사람이 뭔가 잘 못 볼 리가 없었다.

“그 형님. 참 실없는 사람이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한 것 같은데요.”

“걱정 마라. 석종은 일주일 전에 내가 확인했고, 전표도 다 확인했는데 뭐.”

그는 자신의 권한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감독이다. 공사 진행에 배 놔라 감 놔라 간섭하면 안 된다.

공사는 시공사가, 감독은 감리가, 서로의 일에만 충실하면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감리가 아니었다. 직책도 뭣도 없었지만 말이다.

“형님, 그래도 한번 가보시죠. 하하.”

진표의 손을 끌고 지하층으로 향했다.

주차장 용도로 나중에 지하층을 추가로 설계했었다.

지형이 좁아서 30세대의 차량을 주차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었고, 후에 설계 변경을 했었다.

그러면서 기계실과 전기실을 지하로 옮겼고 지상층은 한층 더 여유가 생겼다.

그 지하층을 공사 현장에서는 통째로 자재창고로 쓰고 있었다.

“그 형님이 아까 조감도 이야기했잖아요.”

“응.”

“전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요.”

“뭐가?”

“그냥요.”

***

끼이익-

빠루로 석재가 담긴 팔레트의 뚜껑을 열었다.

“맞잖아. 포천석.”

포천석은 화강석의 일종으로, 장석이 백색과 분홍색이 섞여 있어서 약간 붉은색이 감돈다.

“예, 맞네요.”

돌쟁이라 일만 하고 돈만 받아 간다라. 당연한 말을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보자’

“형님, 다른 것도 한 번 보시죠.”

“그래, 찜찜한 게 남으면 안 되지.”

몇 개의 팔레트 뚜껑을 더 열었다.

“이상 없지?”

“네, 이상은 없는데, 뭔가 찜찜하네요.”

팔레트에서 돌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다른 팔레트에서도 하나를 꺼내 봤다. 그리고 비교를 해봤다.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형. 들고 나가서 봐요.”

“그래, 여기서는 잘 안 보인다.”

지하실 밖으로 나왔다.

“같은 석종은 확실하네.”

“네, 같은 석종이기만 하네요. 그런데 색깔이 좀 뿌옜네요. 무늬도.”

석공이 말했었다.

‘돌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쓰는 사람이 문제인 거지.’

이런 의미였던가?

석재는 공산품이 아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조석이 아니라면, 모두 똑같은 품질일 수도 없다.

“저번에 왔을 때도 이랬어요?”

“성훈아, 돌을 한 번 본다고 기억하겠니?”

그리고 또 하나.

“이게 보이세요?”

팔레트에 곱게 세워진 돌들을 가리켰다. 조금씩 어긋나는 배열들.

“누가 중간에 새로 정리했나 본데.”

“그렇죠? 이상하죠.”

석재의 원산지에서 바로 배송되는 돌들은 아주 가지런하게 배열이 되어 있다.

누가 억지로 건드리지 않는 한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돌은 아주 무겁다.

“진표 형, 이럴 경우는 어떻게 해요?”

“어쩔 수 없어. 석종이 다른 거라면 클레임을 걸겠지만 이건 석종이 바뀐 것은 아니잖아.”

모든 일에는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침범하면 일 자체가 엉망이 된다. 그리고 책임소재도 명확하지 않게 된다.

고민이 되었다.

석재회사에서는 도면에 명시된 자재를 가지고 들어왔었다.

“형, 아무래도 중국산인 것 같은데요?”

“야. 설령 중국산이라고 해도 구분하기 어려워. 심증만 가지고 클래임을 걸 수는 없지 않냐? 문서는 다 맞는데?”

“형. 혹시 샘플 안 뽑아 놓으셨어요?”

“그걸 깜빡했네. 이럴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아까의 석공이 생각났다.

“아까 그분한테 도움을 청해보면 안 돼요?”

“어려울걸. 자기 일도 아닌데, 끼어들 리가 없잖아.”

하긴 그랬으면 처음부터 다 사실대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확신하건데, 그는 끼어들 마음이 없다.

분명히 문제는 있는데,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심증은 있는데, 걸고넘어지기가 애매하다.

‘한 교수? 아니야. 괜히 일을 크게만 만들 거야.’

현재 쪽에서는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기획실장이 이 일에 그만큼의 비중을 두지도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에게는 귀찮을 일일 뿐이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바쁜데 누구지?’

-오, 성훈. 공사는 잘되어가나?

“네, 필립. 뭐 그럭저럭요.”

-자네의 수액 덕분에 비키가 많이 좋아졌어. 아내가 언제 식사나 같이하재.

‘흥. 또 풀떼기를 먹이려고. 밖에서 먹자고 해야지. 아차! 그럼 비키를 못 보는데.’

“알겠어요. 필립은 잘 지내요?”

-그럼. 딸애도 괜찮아졌고, 이제 힘들어하지 않으니 조깅을 시작했다네.

“하긴 이제 몸 관리도 하셔야죠. 비키도 아직 클 날이 한창인데.”

‘자꾸 비키 얘기만 하네. 하지 말아야겠다.’

-그래, 바쁠 것 같아서 전화했어. 그럴 때 일수록 여유를 가져.

“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네요.”

-그래, 그럴 것 같더라. 요즘은 매일 같이 트럭이 들락날락하더라고.

“네, 맨날 그래요. 저 바빠서 끊을게요. 담에 또 봬요.”

‘당연한 걸 가지고.’

현장에는 항상 트럭이 드나든다. 자재가 넘쳐야 현장인 것이다.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적은 있어도, 남아서 문제될 것이 없는 곳이 현장이었다.

***

자재가 일부 바뀌는 것.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클라이언트가 바꿔 달라고 하면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역시 한 교수에게 도움을 청할까?

다시 생각해 봤지만, 얘기했다가는 현장을 뒤집어 놓을 테니 묻지도 못 하고 도면을 모두 검토했었다.

반드시 국산을 써야 한다고 명시된 문구는 없었다.

다만 견적을 내온 것은 국산의 가격이었다.

“진표 형, 어떡하죠?”

진표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필립 건으로 일전에 만난 공사과장이었다. 문 과장이라고 했던가?

“서 기사님, 아니말여! 손님을 만나러 갔으믄 법인카드 쓸 수 있능거 아녀요? 기여요, 아녀요?”

컨테이너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소장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소장도 문 과장 욕을 하더니 둘이 앙숙인가 보네.’

진표도 늘상 있는 일인 듯 대꾸했다.

“뭐 그러실 수도 있죠. 일하러 간 건데. 얼마를 쓰셨길래.”

“아따! 소장이라는 인간이 말여. 꼴랑 십만 원 쓴 걸로 사람을 이렇게 면박주기 있다요?”

진표가 문 과장을 달랬다.

“얼마 안 쓰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자주 쓰셨나 보죠.”

“거시기…… 자주라기 보담은 맨날 쪼끔씩.”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인가 보다. 곧이곧대로 다 말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말여. 소장, 그 인간은 더 써요! 지가 쓰는 건 당연한 거고. 내가 쓰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나 된다요?”

“커피나 한 잔 드세요.

진표가 상대하는 사이 내가 커피를 들이밀었다.

“이 현장이 말여요. 지가 없었으믄 돌아가지도 않는당께요.”

진표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과장님 오기 전까지 난리도 아니었죠.”

‘그게 무슨 말이지?’

“진표 형. 문 과장님 원래부터 현장에 계시던 분 아니셨어요?”

“저번에 먹줄 잘 못 튀겨 가지고, 소장이랑 한 교수님이랑 한바탕한 거 알고 있지?”

“네.”

“그 이후로도 계속 트러블이 생겨서 과장님이 다른 현장 있다가 급히 투입되셨거든.”

진표가 말을 이었다.

“그 이후로는 한 교수님도 아무 말씀 안 하시잖아.”

‘한 교수의 인정을 받은 건가? 그래도 말씀하시는 투는 신뢰가…….’

진표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진짜 문 과장 없으면 현장 안 돌아갈 정도야. 소장은 낙하산이야.”

다시 진표가 작게 말했다.

“계속 전라도 현장에만 계시다가 여기로 투입되신 거야. 그래서 좀 왕따를 당하고 있지. 여긴 경상도잖냐.”

‘쯧.’

문 과장이 씩씩거렸다.

“요즘 소문이 파다혀.”

내가 물었다.

“뭐가요. 과장님?”

“지눔은 뒷돈 다 챙기고, 물건 다 빼돌려 처묵으먼서, 나가 꼴랑 십만 원 썼다고 그 지랄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능겨?”

내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예요?”

홧김에 한 말인지 문 과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거 비밀이여. 알지라?”

그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거 소장 귀에 들어가믄 나 짤린당께요. 제발 못 들은 걸로 해주쇼.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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