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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43화 (43/427)

건축의 신 43화

그리스 여행(4)

지금 우리는 부랴부랴 공모전 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연락을 줄 거면 미리 주든가!”

코펠의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갑작스레 공모전 발표 장소가 변경되었다.

그것도 떠나기 직전에 연락을 받았다. 짜증이 날 만도 했다.

원래 공모전은 저번과 동일하게 시청의 회의실에서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인해 아테네 외곽의 배드민턴 경기장으로 변경되었다.

“예상했던 일이에요.”

“이걸 예상했다고?”

“시민들이 난리를 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장소는 좀 의외네요.”

코펠이 의아하게 물었다.

“뭘 근거로 그렇게 예상을 했는데?”

“신문에 냈잖아요. 시민들이 볼 거고, 시장도 보겠죠.”

“마피아들도 볼 거 아냐!”

“시민들을 상대로는 마피아도 어쩔 수 없어요. 몽땅 죽일 게 아니라면.”

“무섭지 않아?”

“무섭죠. 그러니까 이렇게 시민들로 실드를 친 건데. 그리고 그놈들한테 피해가는 건 없을 거예요.”

“그건 또 왜 그렇게 확신해?”

궁금한 게 많은 코펠이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일을 크게 벌인다는 느낌도 있을 것이다.

“놈들이 원했던 건 돈과 지지율이에요.”

“네 말대로 지지율은 높아진다고 치자. 돈은? 포기할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은 운전이나 신경 써요.”

“성훈, 그래도 빨리 가야지. 입찰 자체가 취소될지도 몰라.”

그리스가 그렇게 시간관념이 정확한 동네이던가.

그리고 이 정도로 신문에 밑밥을 뿌렸으면 시민들이 기다려 준다.

‘오히려 먼저 가서 브리핑을 하면 아이디어를 도둑맞을 염려가 더 크지.’

“그럴 일 없어요. 시민들은 시장의 의도가 궁금해서라도 기다려 줄 거예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차장은 이미 시민들의 차로 꽉 차 있었다.

“코펠, 먼저 들어갈 테니까. 주차하고 오세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보여서 입구에서 주섬주섬 발표할 것을 들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혹여나 누군가가 중간에 장난을 치더라도 코펠에게 치겠지. 나에게 치지는 않을 것이다.

난 설계자가 아니라 관계자일 뿐이니까.

“보통은 설계자가 브리핑을 하는 법이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위해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코펠이 가진 것은 없었다. 도면도, CD도, 아무것도.

그리고 내가 본 마피아들은 적어도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총을 빼 들 양아치들은 아니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아테네 건설에서 브리핑 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던 직원도 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요. 하여간 외국인들이란.”

“미안합니다. 차가 워낙 막혀서요. 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자리를 찾아갔다.

저번 공모전에서 박스 두 개로 브리핑을 하던 남자가 나를 봤다.

멋진 정장을 입고 작대기를 든 채 당당한 얼굴로 서 있었다.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 말과 함께 비릿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패널을 툭툭 두드렸다.

그의 작대기 끝에는 우리가 설계했었던 파르테논 신전이 있었다.

대신 기둥에 좀 힘을 줬던지 힘있는 도리스양식 대신에 화려한 코린트식 양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외의 몇 군데도 약간의 변경된 것이 보였다.

“흐흐흐.”

그의 비열한 웃음에 나도 웃어줬다.

“흐흐흐. 힘 좀 줬나 보네요.”

놈이 더 크게 웃었다.

“크하하. 그래도 눈은 제대로 박혀 있구만.”

나도 더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이 병신아! 도리스식 기둥이 붙어 있으니까 파르테논이라고. 니네 나라 역사나 다시 공부하고 와라. 크하하하.’

건축가들이 보면 경악할 만한 흉물을 만들어 놓고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마설마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무리수를 둬도 너무 과하게 뒀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에다가 철제 방화문을 설치하는 거랑 똑같은 짓을 해놓고는…….

‘내가 너 살린 줄 알아라. 병신아! 그거 당선되면 넌 전 세계의 건축가들에게 돌 맞아 죽는다. 알아?’

어찌 웃지 않고 배기겠는가?

“먼저 할 거요?”

시청 공무원이 물었다.

“아뇨. 아직요. 코펠이 안 왔네요.”

“크흐흐.”

저 웃음의 의미는 뭐지! 설마…….

그는 약 올리듯 웃었다.

“걱정 마쇼. 끝날 때나 되면 말짱하게 돌아올 테니까. 능력되면 당신이 직접 하든지.”

그렇다면야 뭐, 걱정할 것은 없었다.

‘흥. 고맙다. 기회를 줘서.’

그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것 보쇼. 외국인 양반! 뭔 짓을 해도 안 될 거요.”

“그건 뚜껑을 열어봐야 알죠.”

내 말이 맘에 들지 않았던지 혀를 차며 대꾸했다.

“쳇! 이미 결과는 나와 있는데,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지 몰라. 어리석은 외국인들!”

낙찰과 유찰은 자신의 손을 거쳐서 결정되는 것이니 그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아직은 말이다.

아테네 건설로부터 받은 검은 돈은 이미 낱낱이 분해되어 시청 식구들과 나눠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욕심이 좀 있는 자라면 높은 사람들에게만 바쳤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애초에 시장의 지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시장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돈 아니면 지지율.’

아테네 건설의 브리핑이 끝났다.

그는 적절히 중간중간에 ‘시민과의 소통’이라는 말을 집어넣었다.

아마도 시민과의 소통을 말한 건축사무소가 자신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한 명의 시민도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시민들을 바보로 보는구만.’

“이상 시민들과의 소통을 목표로 하는 아테네 건설, 클라우스였습니다.”

시장을 포함한 시청직원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이내 시민들의 차가운 반응에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우리 차례가 왔다. 아니, 정확히는 내 차례였다.

코펠은 아직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두려운 기억이 되지 않기를…….

이번에는 패널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 이미지를 괘도에 붙여서 둘둘 말아서 왔다.

패널이 되면 부피도 부피거니와 파손되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누군가가 우리 도면을 가로챌 거라는 생각도 어느 정도는 있었고 말이다.

클라우스에게 다가갔다.

그가 나를 뻔히 쳐다봤다.

“뭐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작대기 좀 빌려주시죠.”

거만한 승자의 자세로 작대기를 내밀었다.

“잘해 보쇼.”

“그럴 게요. 잘 보세요.”

그의 패널 옆에 괘도를 걸었다.

작대기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우리가 모티브로 한 파르테논의 신전이 나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똑같은 것 같은데, 베낀 거 아냐?”

“쳇. 누가 누굴 베낀 건지 알 수가 있나?”

“그게 중요해? 시장의 의도가 중요하지!”

몇몇의 다혈질인 사람은 야유를 한다.

“우~!”

‘흥. 뒤에 발표하면서 이 정도의 반응이 나올 거라는 건 각오했다고.’

그러나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다.

이들의 잘 흥분하는 민족성도 한몫을 했다.

‘흥분도 잘하지만 반대로 열광도 잘하지.’

클라우스의 얼굴에서도 비릿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그럼 그렇지! 네까짓 게’의 느낌!

그런 그의 음흉한 웃음을 무시했다.

내가 승부할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몇 페이지가 넘어갔다.

“우리는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이 설계를 했습니다.”

한 호흡을 가다듬고 냉소섞인 눈빛의 시민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테네를 상징하는 것은, 그리스의 자랑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흥. 아테네 여신께 봉헌한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클라우스가 우습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진작에 그걸 들고 나온던가! 베껴놓고는 큰 소리야. 큰 소리가!’

침착하게 군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아테네의 진짜 상징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혈질의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엉? 민주주의?”

“그렇지!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지. 암.”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대한 그리스인의 자부심은 대단했으리라.

“페리클레스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정체가 민주주의로 불리는 까닭은 권력이 민중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페리클레스는 민주정을 주도하고 발전시킨 민주주의에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이며, 파르테논 신전을 짓도록 지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중의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소통 부재로 답답했던 마음들이 함성으로 터져 나왔다.

“옳소.”

“맞는 말이오.”

“민중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통하지 않는 것은 정치가로서의 자세가 아니고, 그것은 민주주의도 아니오.”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는군.’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시장의 ‘불통정치’에 불만이 있어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신문 한편의 작은 인터뷰를 보고, 공모전 발표 장소를 당일 아침에 바꿔 버린 정열적인 사람들!

‘일단 반은 성공이군.’

예전에 내가 알던 건축소장은 이런 말을 했었다.

“성훈아. 네가 하고 싶은 말을 강요하지 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뭔지를 먼저 생각해라.”

그는 내가 지난 삶에서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열정적인 시민들이 무엇을 보기 위해,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는지 알고 있었다.

‘여기 모인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라고.’

“어느 신문기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시청 설계의 컨셉이 뭐냐고요. 저는…… 소통이라고 했습니다.”

군중들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건축이란!

구조에 따라서 용도가 고정되지만, 때로는 용도에 따라서 구조가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이것입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곧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 거대한 지붕이 하늘과의 소통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중이 곧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옆으로 다가갔다.

아테네건설의 설계안이 있었다. 파르테논이 보인다.

그 묵직한 지붕을 작대기로 짚었다.

“이 꽉 막힌 지붕 안에 위정자가 있습니다. 지붕을 틀어막고 눈과 귀를 닫고 있으면 과연 소통할 수 있을까요? 파르테논을 그대로 짓는 것이 중요할까요. 소통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달랐으면 비교하기 어려웠을 텐데, 비슷하니 더 좋았다. 금상첨화!

‘과연 비교가 잘되었을까? 시민들에게 통할까?’

너무 조용하게 반응이 없으니, 걱정이 되었다.

‘여기서 안 먹히면 곤란한데.’

돌아오며 클라우스 쪽을 슬쩍 보았다.

그의 얼굴은 썩은 두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먹혔구나!’ 하고.

나는 그리스인들을 잘 모르지만, 클라우스는 나보다 100배는 더 잘 알 것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옥상의 배치도를 가리키며, 확신을 가지고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이 옥상에 그리스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스의 중심. 그 아테네의 한가운데 있는 시청입니다. 전 세계인이 아테네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들러서 민주주의의 산실이 그리스임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옥상을 짚었다.

“알고 계십니까?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던 장소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리스인들은 알리라.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기억하십니까? 삼천 년 전, 당신의 선조들이! 국방의 의무를 말하고, 왕과 정치를 논했던 그 광장을!”

야유의 목소리도, 흥분의 목소리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이들은 알고 있을 거라고. 내가 말하려는 것이 뭔지. 당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드넓은 체육관에 들리는 것은 내 목소리뿐이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땅에서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태동된 요람을!”

그리고 괘도 위 이미지를 덮고 있던 얇은 종이를 벗겨 버렸다.

시청 옥상 곳곳에 배치된 시민들을 위한 공간, 조각상, 연기를 위한 무대가 드러났다.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아! ‘아고라’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철학을 말하고, 정치를 토론하며, 문화 전반을 소통했던 광장이었다.

“시청 옥상에다가 아고라를 설치한다고? 정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이게 정말 시장의 의도라고? 저 고집불통 같은 인간이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이 돼? 허풍 치는 거 아냐?”

하지만 그들의 웅성거림은 다른 소리에 덮여 버렸다.

누구인지 모를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파동의 시작이었다.

“아.고.라! 아.고.라!”

몇몇의 정열적인 시민이 자국의 자부심에 ‘아고라’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 그리스 문명을 찬란하게 꽃 피우게 했던 그곳의 이름을.

소크라테스라는 성인이 처음으로 자신을 알린 그 광장을.

뜨거운 태양 아래 잉태된 고대 그리스의 찬란함을 이들은 원하고 있었다.

앞선 물결이 잦아들기 무섭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더 뜨거운 파도가 뒤따랐다.

“아.고.라! 아.고.라!”

아테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제우스의 자비를 논하고,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음과 아테네의 지혜를 말했던 그 장소를.

지중해를 주름잡던 고대 그리스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염원이 이곳에 임한 것 같았다.

“아.고.라! 아.고.라!”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 목소리였다.

그리스 지성의 바탕이었던 ‘아고라’가 폭풍이 되어 체육관을 휩쓸었다.

희열의 물결은 가라앉았다.

격앙된 감정으로 울먹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귀에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아고라’는 그리스문화의 요체입니다. 저는 이 아테네의 중심에, 그 찬란했던 토론의 장을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와~!”

휘익!

축제를 방불케 하는 휘파람과 함성이 나를 향해 밀려들었다.

다시 소란스러워진 군중에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군중의 소란이 잦아들었을 때.

올리브 나무가 곳곳에 장식된 옥상의 귀퉁이 작은 방을 작대기로 짚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이곳이 바로! 시장의 집무실이 될 것입니다.”

-와! 진짜! 아고라 바로 옆에 시장이 있다고?

-와우! 대박이야! 브라보!

-으하하. 시장이 드디어 미쳤구나. 말도 안 돼!

아직 실현이 된 것도 아니건만, 상상만으로도 현실이 된 듯 기뻐 날뛰고 있었다.

반면, 시장의 얼굴은 찌그러진 깡통마냥 구겨졌다.

결단코, 시장이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그는 왕처럼 군림하려고 했다.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만큼 시민들의 불만이 쌓이지 않았을 테니.

시장의 타오르는 시선을 귀 뒤로 흘려보냈다.

시민들의 함성 소리 때문에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공모전 결과를 따지러 시청에 갔을 때, 부끄러웠습니다.”

뭐가 부끄러웠을까?

소리는 잦아들고 시선은 내게로 모아졌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까짓 외국인이 아테네에 대해서 뭘 아냐고.”

시청 공무원을 직시하며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눈을 좇아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나 김성훈. 받은 만큼은 갚아준다.’

눈빛을 받은 자의 고개가 점점 땅으로 기울어졌다.

“혹시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모기 소리 같은 대답이 들렸지만 나는 못 들은 척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군중들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요한 침묵이 한 사람을 짓눌렀다.

그가 고개를 치켜들면 고함치듯 말했다.

“그렇게 말했소. 진심으로 미안하오!”

부끄러움으로 벌게진 얼굴로 잘못을 시인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경멸과 눈앞의 동양인에게 부끄러운 감정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엇갈렸다.

“하지만 저는 그 부끄러움으로 아테네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말을 이었다. 사과한 사람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복수를 했으니 이제는 결론으로 치달아야 했다.

탁!

시장 집무실을 소리 나게 치며 말을 이었다.

“왜! 시장 집무실을 여기에다 설치했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전율이 일 정도로 조용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시장께서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혹여 저의 섣부른 식견으로 시장님의 의중을 오해하는 결례를 범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시장의 눈썹이 꿈틀꿈틀 경련을 일으켰다.

근엄한 얼굴에 금이 가는 느낌!

시민들 중 성질 급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정말 시장이 원하는 게 그거였소?”

원래 여기 모인 시민들의 관심은 얼마나 아름다운 시청이 지어지느냐가 아니었다. 시장의 의중이었지.

나는 말을 슬쩍 돌렸다.

“시장님께 직접 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때 시청 직원이 말했던 것이 그런 뉘앙스였습니다. 아닙니까?”

용서를 받은 시청 직원은 시장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짓으로 시민들을 가리켰다. 내 시선을 따라 그의 눈도 시민들을, 아니, 체육관 전체를 둘러보았다.

과연 그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한숨 쉬듯 말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체육관이 점점 달아오른다.

증언을 한 시청 직원은 죄라도 지은 양 시장의 눈을 피해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하던 대답을 들었으니 다음 설명을 이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 시민이 내게 소리쳤다.

“건축가 양반! 잠시만 멈춰 주시요. 나는 시장의 말을 직접 듣고 싶소. 정말 소통할 마음이 있는 것이오?”

“신문에 난 게 정말이오? 그걸 들으려고 이 자리에 왔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시장에게 마이크를 줘라. 우리는 시장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다.”

이제, 바통은 시민들에게로 넘어갔다.

‘진인사 대천명! 이제 하늘에 빌 수밖에.’

내가 준비한 것은 모두 끝이 났다.

시장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지지율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100만 달러에서 파생되는 부스러기 푼돈을 거머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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